어떤 직업이든 ‘최초’라는 것은 늘 힘들고 어려운 일이다. '최초'라는 명예도 있지만 모든 면에서 새롭게 개척해야 하고, 또 자신의 역사가 직업의 역사가 된다는 점에서 부담감도 크다. 하지만 결코 그 어려움을 두려워하지 않고 맞섰던 한국 최초의 인물들은 누가 있을까. 이번에는 대한민국 항공과 관련된 인물 스튜어디스에 대해 살펴봤다. 살펴보기 전에 대한항공은 1969년 창사 이래 처음으로 승무원 명칭을 통합했다. 기존에는 여성 객실 승무원은 ‘스튜어디스’, 남성은 ‘스튜어드’로 불렸으나 남녀 승무원 명칭을 ‘플라이트 어텐던트(flight attendant)’로 통합하기로 했다. 지난 2022년의 일이다. 그동안 남녀를 구분 지어 부르는 호칭은 시대 흐름과 맞지 않다고 판단해 성 차별적 요소를 없앤 것으로 해석된다. 우리나라 최초의 스튜어디스는 누구일까. 바로 조민자이다.
첫 방미 길에 오른 박정희 대통령 기내 서비스 도맡아
조민자는 24세 때인 1953년 10월 대한민국항공사(KNA)가 처음으로 모집한 스튜어디스에 합격하면서, ‘대한민국 최초의 스튜어디스’라는 영예로운 호칭을 얻게 됐다. 시에 시험에 합격한 사람은 그녀 외에도 2명이 더 있었지만, 나머지 2명은 사무직으로 발령이 나면서 그녀만이 홀로 스튜어디스가 된 것이다. 당시에는 비행기도 많지 않았고 해외여행도 어렵던 시절이며 외국인을 만나기는커녕 외국어를 배울 기회조차 많지 않았다. 그런데 스튜어디스는 마음껏 세계를 누볐으니 모든 이들의 눈에 특별한 직업으로 보였음은 너무나 당연하다.
조민자는 타고난 미모에 165cm의 늘씬한 키, 뛰어난 영어 실력을 갖췄던 인재였다. 누구나 선망하는 직업에 대한 큰 자부심을 가졌으나 막상 일을 시작해 보니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체감했다고 한다.
특히 일을 처음 시작할 때부터가 고역이었다. “유사시 생명을 잃어도 이의가 없다”는 부모님의 승낙서가 있어야 했다. 일을 가르쳐 줄 선배도 없어 미군 군의관에게 응급처치법만 배운 뒤 비행기에 탔다. 제대로 된 예쁜 유니폼도 없어 자신이 직접 사서 입은 양장 차림으로 일을 했다. 승객 서비스도 혼자서 도맡아 했다. 박정희 대통령이 첫 방미 길에 올랐을 때 기내 서비스를 담당했던 것도 그녀였다. 당시에는 정기 노선이 없어서 대절 비행 명목으로 좌석 48석의 코니기를 타고 처음 우리 영공을 벗어날 때는 몸이 떨려 안내 방송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고 한다. 하지만 힘든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해외에 자주 나갈 수 있었으니 외국의 풍경을 보는 것만으로도 자신의 직업이 자랑스러웠다고 한다. 시간이 흘러 점점 나이가 들면서 더 이상 현직에서 일을 하기는 힘들었다. 스튜어디스로 일한 지 10년, 총 9,500시간이라는 엄청난 비행시간을 끝으로 34세의 나이에 은퇴했다.
■ 쉬어가는 코너-재밌는 승무원 이야기
산토끼 스튜어디스는 무슨 뜻일까?
남성을 만나려고 근무지를 이탈하는 스튜어디스
스튜어디스 세계에도 외부에 잘 알려지지 않은 은밀한 이야기들이 많다고 한다. 그중 ‘산토끼 스튜어디스’라는 말이 호기심을 자극한다. 이는 외국 현지에서 남성을 만나려고 근무지를 이탈하는 스튜어디스를 말한다. 1990년대의 일화가 유명하다. 당시 25세의 매력적인 미모를 지녔던 한 스튜어디스가 있었다. 그녀는 다른 스튜어디스에 비해서 외모가 출중했을 뿐만 아니라 성격 자체도 좋았다. 따라서 공항 직원들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어느 날 그녀는 미국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한 재미 교포 남성을 만났다. 그 후 미국 현지에서 휴식을 취할 때 이 남성과 자주 만나면서 급기야 사랑에 빠졌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다시 미국행 비행기에 올라탔고, 도착 즉시 근무지를 이탈해 그 남자와 도망을 갔다고 한다. 그런데 진심으로 사랑하는 줄 알았는데 그 남자는 그녀를 호텔에 남겨둔 채 영영 모습을 감춘 것이다. 그녀는 버림 받고 나서야 뒤늦게 속은 것을 알고 미국 현지의 한국 대사관에 자수하고 쓸쓸히 한국으로 되돌아왔다. 산토끼 스튜어디스들은 종종 있었지만, 이러한 이야기는 극히 일부 스튜어디스의 일이었다. 그리고 이제는 먼 과거의 일이 되었다. 과거처럼 직업의식 없이 산토끼처럼 행동하는 스튜어디스들은 없다고 한다.
스튜어디스들이 싫어하는 뺑뺑이 코스
스튜어디스는 많은 이들이 선망하는 직업이지만 하는 일은 정말로 힘든 일이다. 예전에는 스튜어디스 사이에서 ‘땅에 내리면 왔따(최고), 비행기에 타면 식모’라는 자조 섞인 말이 돌기도 했다. 그만큼 고되고 힘든 서비스직이라는 것이다. 가끔 까다로운 손님을 만나도 어김없이 웃음으로 대해야 하는 감정 노동자이기도 하다. 유럽으로 가는 비행기를 타는 스튜어디스들은 어느 정도 여유가 있었다. 현지에서 단 며칠이라도 휴가를 즐길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당일 만에 돌아오는 가까운 동남아행 비행기에 탑승한 스튜어디스들은 비행기에서 내리면 파김치가 될 정도라고 했다. 스튜어디스들 사이에서는 이러한 코스를 ‘뺑뺑이코스’라고 했다.
스튜어디스 초창기엔 간호사 출신 많아
스튜어디스는 특별한 경우이기는 하지만, 때로는 응급 처치사가 되어야 한다. 고공비행 중에 가쁜 숨을 몰아쉬며 호흡 곤란을 겪는 손님에게는 입을 맞대고 응급처치를 하기도 한다. 비행기 안에서 분만을 하는 여성이 있다면 탯줄을 직접 손으로 잘라야 할 때도 있다.
이러한 점 때문에 초창기 스튜어디스는 간호사 출신이 많았다. 1930년 에 미국 유나이티드 항공의 전신인 보잉 항공수송회사가 최초의 여성 스튜어디스 제도를 도입했다. 당시 미국 아이오와 출신의 간호사 엘런 처치가 세계 최초로 스튜어디스가 됐다. 원래의 꿈은 조종사였다. 항공사에 조종사가 되고 싶다는 편지를 보냈으나 계속 거절당하자 새로운 제안을 내놨다. 간호사가 함께 타면 승객들이 안심할 것이니 객실 승무원으로 써달라고 했다. 열정에 감동한 항공사가 한 달 시범 조건으로 채용했다. 승객들은 베레모와 망토 차림 여승무원의 등장에 열광했고 이후 항공사들이 앞다퉈 여승무원을 고용하기 시작했다. 당시 여승무원 채용 조건은 이랬다. 간호사 자격증 소지자, 25세 이하 독신, 키 162㎝ 이하, 몸무게 52㎏ 이하였다. 비행기가 작아 몸집 큰 여성은 곤란했다. 유럽 항공사들은 유니폼으로 아예 간호사 복장을 입혔다. 그러나 스튜어디스는 정작 본인의 건강을 잘 챙기기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늘 하늘에 떠서 일을 하다 보니 디스크에 걸리거나 위염과 기관지염을 비롯해 불임이 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