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에 무심코 사용하는 속담이 무의식중에 사고와 행동의 혁신을 저해할 수 있다면? 국내의 한 그룹이 이색캠페인으로 임직원들을 대상으로 세계화 시대에 맞지 않는 속담 10여 가지를 선정한 바 있다. 블랙리스트로 선별해 사용 금지 캠페인까지 안내한 10가지 속담, 과연 어떤 것이 있을까.
세상은 역발상의 지혜를 원한다
프랑스의 철학자 파스칼은 ‘사람은 생각하는 갈대다’라는 말을 남겼다. 사람은 갈대처럼 연약한 존재지만, 생각하는 힘이 있기에 위대하다는 뜻이다. 실제로 전 세계적으로 불황을 겪을 때마다 이를 타파하기 위한 경영패러다임으로 떠오르는 것이 역발상이다. 국내 유수의 기업 역시 그 어느 때보다도 적극적으로 발상의 전환을 시도하고 있으며 실제로 과감한 역발상으로 위기를 극복하는 사례들도 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역발상을 저해하는 것이 있으니 바로 고정관념과 습관이다. 특히 평소에 별생각 없이 사용하는 속담은 선조의 지혜가 담겨있지만 은근히 시대를 역행하는 사상을 쉽게 발견할 수도 있다.
상식으로 받아들이던 사고, 이젠 불편해
21세기 글로벌 시대에 맞지 않는 속담 10선 가운데 1위로 꼽힌 속담은 ‘아는 것은 병이요, 모르는 것은 약’이라는 속담이다. 삼국지에 나오는 식자우환(識字憂患)을 떠올리면 의미가 더욱 명확해지는데, 글자를 아는 것이 오히려 걱정을 끼친다는 말로 너무 많이 알고 있어서 쓸데없는 걱정도 그만큼 많다는 뜻이다.
이 속담이 시대에 부적합한 것으로 뽑힌 이유는 정보화·지식화 사회로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적인 배경에서 찾을 수 있다. 무엇을 안다는 것은 행할 힘이 있고, 그 힘으로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사상은 오히려 ‘아는 것이 힘이고, 모르면 바보’라는 신개념을 만들어 냈다.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라’라는 속담은 모든 일에 특히 조심하여 후환이 없도록
하라는 뜻으로 ‘신중’을 강조한 말이다. 하지만 너무 조심하다 보면 좋은 기회를 놓칠수도 있다. 아무 때나 돌다리를 두드리면 못 건널 수도 있다는 것. 글로벌 시대는 지나친 신중보다 불도저처럼 밀고 나가는 적극적인 행동력이 성공 가능성을 높일 수도 있다.
가장 논쟁의 대상으로 꼽힌 것은 단연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는 속담이다. 여성차별과 남존여비 사상을 드러내 여성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든 이 속담은 가정에서 아내가 남편을 제쳐 놓고 떠들고 간섭하면 집안일이 잘 안된다는 뜻이다.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는 속담이 있(었)다. ‘있(었)다’라고 쓰는 데는 까닭이 있다. 100년 전쯤 이 속담은 제법 그럴듯하게 들렸을 것이다. 남성 중심 사회인 조선시대에 여성은 인격적 대접을 받기 어려웠다. 정치는 남성들의 전유물이었다. 남성들이 정치하는 데 대해 여성들이 이러쿵저러쿵 말을 섞지 말라는 뜻이다. 집안에서 남성보다 여성이 더 권위 있게 행동하려 했다간 집안을 제대로 이끌어 갈 수 없다는 말이었다. 여성을 억압하는 대표적인 속담이다. 이 속담을 10~20년 전쯤에 물색없이 들먹였다간 눈총깨나 받았을 것이다. 요즘은 이 속담 전체를 말하기는커녕 ‘암탉’이라는 말조차 조심스레 해야 한다. 이제 이 속담은 있다고도 없다고도 하기 어렵게 됐다. 세상이 그만큼 변했다는 뜻이고 상대적으로 여성들의 지위가 그만큼 높아졌다는 뜻이다. 이 속담 탓에 상당한 기간 동안 여성들이 고개를 숙이고 살았을지 누가 알겠는가. 어릴 때부터 이 속담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여성들이 과연 성인이 되어서도 자아를 실현하며 제 목소리를 낼 수 있었겠는가. 하지만 종횡무진 활약하는 이상적인 여성상이 주목받고, 각종 미디어나 언론매체에서 자주 접하게 되는 대다수의 성공 실화 주인공도 여성들로 장식되면서 이제 이 속담은 ‘암탉이 울면 황금알을 낳는다’로 바뀌고 있다.
관습에 젖은 타성? 잘라버리는 게 상책
‘오르지 못할 나무는 쳐다보지도 말라’는 속담은 자신의 주제와 분수를 알고 현실에 맞게 살라는 의미로 자신의 한계를 미리 정하고 포기하는 의지박약의 태도를 내포하고 있어 4위로 선정됐다. 5위는 괜히 나서서 일을 망치기보다 차라리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지켜만 보는 것이 낫다는 뜻의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간다’는 속담이 차지했다. 8위로 꼽힌 ‘모난 돌이 정 맞는다’와 비슷한 의미로 은연중에 침묵을 강요하는 이 속담은 차라리 침묵하고 있으면 품위도 있어 보이고 함부로 입을 놀려 혀를 베이는 낭패를 당하지 않는다는 치밀한 계산이 숨어 있다. 얄팍한 꼼수도 밉상이지만, 조직 내에서의 침묵은 단지 소통의 부재를 넘어 조직이 침몰할 수도 있는 만큼 조직사회에서는 특히 독이 된다는 반응이다.
비슷한 의미의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속담은 한층 심층적인 의미가 있다. 이 속담은 성격이 너그럽지 못하면 대인 관계가 원만할 수 없다거나 혹은 너무 뛰어난 사람은 남에게 미움을 받기 쉬움을 이르는 말로 남과 다르거나 낫기 때문에 수용 받지 못하고 거부당한다는 뜻이다. 윗사람이 근엄하게 말할 때 불쑥불쑥 질문을 던지지 말라는 말이다. 시키는 말에 이의를 제기하다가는 자칫 쥐도 새도 모르게 죽는 수가 있다며 은연중 협박하는 것 같다. 이 속담은 독재정권 하에서 민주화 운동을 하는 청년들에게 부모 세대가 자주 해주던 말이다. 이 속담을 듣고 자란 사람이 자기주장, 자기 의견, 자기 논리, 자기 생각을 갖고 살기란 얼마나 어려울까. 하지만 ‘모난 돌’이 주목받는 시대인 만큼 이 속담 역시 금지해야 할 속담 리스트에 올랐다.
실제로 경영학계 이단아로 자주 언급되는 고어(Gore & Associates)라는 회사는 등산복 등에 많이 활용되는 상품으로 고어-텍스(Gore-Tex)를 주 상품으로 매년 10% 이상의 성장을 계속하고 있다. 이 회사는 일반 기업들과 달리 직급, 직책, 작업지시가 일절 없다. 자율성과 다양성을 최고의 모토로 삼는 창업자, 빌 고어의 의지가 반영됐기 때문이다. 창업 전 듀풍에서 일하던 시절, 빌 고어는 사람들이 조직의 위계적 질서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대화를 나누는 유일한 순간이 동료끼리 승용차를 함께 타는 카풀(Car Pool)을 할 때란 사실을 발견했다. 그는 카풀 시간의 에너지와 아이디어를 근무 시간까지 확장하자는 생각에서 직급과 직책을 없애고 직원들에게 다양한 업무를 동시에 경험케 했다. 이러한 자율성과 다양성을 최우선으로 하는 경영철학의 바탕 위에서 고어사는 매년 가장 일하고 싶은 직장, 가장 창의적인 직장 조사에서 선두권을 놓치지 않고 있다. 과거에는 ‘모난 돌이 정 맞는다’, ‘튀지 말고 지켜보다가 앞에 사람 따라가라’ 가 우리가 배운 삶의 모범 처신이었지만, 이제는 모난 돌에 대해서도 관대하게 지켜봐 주는 사회가 되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