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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탐방

특별기획 - (사)인간의 대지 이태복 이사장(전 보건복지부 장관)

관피아 부패척결 방안은 정부쇄신위원회를 대통령 직속으로 설치하는 것

[인터넷 대한뉴스]

 

 

 

 

 

아무도 밟지 않은 숲길에 누가 어떤 길을 만드느냐에 따라 국가의 역사도 개인의 인생도 달라진다. 이태복 이사장은 사회적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노동운동, 민주화운동의 길을 내고 복지, 환경, 경제 전문가로서 해법을 제시한 산 증인이다. 최근에는 정국 불안에 대하여 국민이 신뢰를 가질 수 있도록 관피아 부패척결을 외치고 있다. 구국의 시작은 법으로 보장된 정부쇄신위원회를 대통령 직속으로 설치하는 것이라고 정책네트워크 아이폴리시 창립기념 토론회에서 밝혔다.

 

대담 김원모 대기자 / 글 박혜숙

 

관행과 사고를 깨고 어려운 국민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 이태복

 

이태복 이사장은 1950년 충남 보령시 천북에서 출생했다. 그의 집안은 고려 말 충신 목은(牧隱) 이색(李嗇) 선생을 중시조로 하는 한산 이씨 문중으로, 영조 때 청백리로 유명한 호조판서 이태중(台重)의 7대손이다. 이 집안은 대대로 문한(文翰)의 전통이 강하고, 올곧은 선비, 우국충정의 지조, 축첩하지 않기로 유명하다.

 

어린 시절부터 토정 이지함 선생과 도산 안창호 선생을 삶의 사표로 삼고 살았다. 그들의 뜻을 알리고자 <조선의 슈퍼스타 토정 이지함>, <도산 안창호 평전>도 출판했다.

 

1966년 흥사단(도산 안창호 선생이 창립한 민족운동단체) 고등학생 서울아카데미 운동에 처음 참여했다. 1971년 대학 2학년 때 반독재 민주화운동으로 제적돼 강제 입영 되었으며 군 복무를 마친 뒤 용산시장의 지게꾼을 거쳐 구로, 부평, 포항, 부산 사상공단 등 어려운 사람들과 함께 현장에서 생활했다.

 

1981년 전두환 정권으로부터 탄압을 받아 수괴로 지목돼 사형 구형에 무기형을 언도받고 1평 남짓한 독방에서 7년 4개월 동안 옥고를 치렀다. 1986년 앰네스티 인터내셔널이 남아프리카의 만델라와 함께 ‘올해의 양심수'로 선정, 국제적인 석방운동을 전개했고, 윤보선 전 대통령과 김수환 추기경, 박형규 목사 등 각계 인사들의 석방노력으로 1988년 10월 석방되고 같은 해 12월 특별사면 복권되었다. 출소 후 다시 재판을 거쳐 무죄판결을 받았고 국가로부터 형사 배상받은 5억원가량은 5대거품빼기캠페인 때문에 지게 된 빚 3억여 원을 갚고 국민석유설립운동에 쓰였다. 그는 재야운동 시절에 장기표, 김근태와 더불어 민주인사 3인방으로 불렸다.

 

1990년대 복지문제에 관심을 갖고 빈자일등(貧者一燈) 캠페인을 비롯하여 1996년 무의탁 노인들을 돌보는 사회복지단체 ‘인간의 대지'를 만들어 본격적인 사회복지활동에 참여했다. 그 외 2001년 의약분업 유보를 재야에서 유일하게 주장했으며 이의 수습을 위해 청와대 복지노동수석으로 입각하여 공무원노동기본권, 비정규직 보호, 주5일제 도입, 의약분업 정착을 위한 정책마련, 복지제도의 내실화에 힘을 쏟았다. 2002년 보건복지부 장관에 취임하여 복지제도의 내실화, 건보재정의 안정화, 예방보건체계의 강화, 국민건강종합대책 촉진, 약가정책의 합리적 개선 등에 진력하고 장관 집무실에 야전침대를 놓고 생활해 ‘야전침대장관’으로 불렸다.

 

공직에서 물러난 이후에 5대운동본부&5대거품빼기범국민운동본부 상임대표를 맡아 기름값, 핸드폰 요금 등 5대거품빼기 캠페인을 전개하고 (사)인간의 대지 이사장으로 퇴직한 고위공직자의 모범이라는 봉사활동을 하며, 현재 마지막 봉사로 국민석유 설립운동을 하고 있다. 5대거품빼기운동본부태안기름띠제거 봉사활동을 활발히 벌여 2008년 국무총리상을 받기도 했다.

 

소년기, 청년기, 중년이 되어 현재까지 그가 겪어온 60여 년 세월 속에 태풍도 불고 구름도 끼고 소낙비도 맞았을 것이나 그에게서 ‘충·효, 도리, 나눔, 솔선수범’의 살아있는 정신을 엿보았고 그러한 정신이 후손들에게 귀감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인터뷰를 요청했다. 자세한 활동은 www.leetaebok.pe.kr 참조.

 

세월호 참사를 겪으면서 한국사회는 앞으로 세월호 전․후로 나누어야 한다는 말도 있는데, 어떻게 보시는지요?

 

안산과 팽목항에 조문을 다녀오면서 정신없이 달려온 지난 세월을 되돌아보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젊은 3백여 명의 생명을 단 한명도 구해내지 못했다는 자책감과 무기력감, 분노, 절망감이 침몰지점의 부표를 응시하게 됩니다. 이대로는 안 된다! 저 젊은 생명들이 우리에게 ‘집단유언’을 던지는 거구나. 한국사회를 철저하게 뜯어고치지 않고서는 선진국은커녕 ‘대한민국호’가 침몰하고 만다는 경고를 보낸 거다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2백여만 명 이상이 조문을 다녀갔으니 한국사회가 세월호 전후로 나뉠 것이라는 전망에 동의합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사과회견에서 관피아 척결과 사회안전과 3대 국정과제를 강조했는데, 청와대 수석과 장관을 지낸 입장에서 보면?

 

참 어려운 과제지요. 그 때의 경험에서 보면 교육개혁, 의약분업 같은 김대중 정부의 국정과제가 전부 실패했는데, 주로 관료들이 구체적인 교육과 의료현장의 조건에 근거해 계획을 세우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제가 보기에 고위관료조직이 변화된 한국사회의 ‘지형(地形)’을 과학적으로 인식할 능력을 상실한 채 오로지 출세와 탐욕에 물들어 있어서 국민들에게 봉사한다는 기본자세를 잃고 있었지요. 물론 열심히 일하는 공직자도 많아요. 그런데 중요 보직은 대개 관피아 그룹에게 장악돼있고 이들끼리 물려받고 있었는데 뿌리가 깊습니다. 10여 년 전에도 그랬는데, 지금은 어떻겠습니까

하지만, 국민을 위해 열심히 일하려는 관료들이 엄연히 존재하는 만큼, 부패관료들을 도려내면서 수십 년간의 적폐를 청산해 간다면 불가능한 일은 아닙니다.

 

 조금 다른 얘기가 됩니다만, 사회갈등과 분열이 심각해서 어떤 대통령도 대통령하기 어렵다는 얘기도 있는데요.

 

 사실이지요. 준비된 대통령이라는 평을 들었던 김대중 대통령도 새벽 2~3시에 전화해서 여러 현안문제에 대한 질문과 대책 마련을 지시했어요. 그 시간까지 잠을 못 이루고 풀리지 않는 국정과제 때문에 씨름을 하고 계셨던 것이지요. 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겁니다.

그런데 이런 문제는 고금(古今)이 같았던 것 같습니다. 오늘의 한국사회는 60~70년대와 다르게 질적, 양적으로 크게 변화했고, 사회구조와 집단도 다양화됐습니다. 모든 문제해결을 위해서는 전문적 식견과 헌신적인 노력이 필요한데 국정현안을 일차적으로 담당하고 있는 관료조직이 자신들의 이해관계에만 관심을 갖고 있기 때문에 한국사회가 20여 년간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고, 사회갈등만 심화되고 있는 거지요.

 

그러면 어떻게 하면 될까요?

 

제가 보기에 국정과제를 해결할 전문적 식견과 헌신적인 태도를 갖고 있는 인물들을 사회 각계에서 발탁해 배치하고, 이들이 중앙부처를 담당해 대통령이 제시한 국정과제를 꼼꼼히 점검하고, 이를 수행할 실천적인 관료들을 전진배치 시키면서 관료주의와 부처이기주의에 찌들어 있는 공직풍토를 국민을 위해 헌신할 조직으로 쇄신할 법령을 정비해가는 것입니다. 관피아 척결에 대한 저항도 만만치 않을 것인데 대통령의 의지가 확고하다면 얼마든지 장악해갈 수 있을 것입니다. 지난 5월 중순경, 저는 그 구체적 방안을 관피아 척결세미나에서도 발표한 바 있습니다.

이태복 전 장관님을 잘 모르는 분들은 그저 민주화인사이거나 아주 보수적인 분들은 좌경인물로 보기도 하는데, 그런 평을 들으면 어떻습니까?

 

참 씁쓸하지요. 우리 사회의 여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앞장서 일해 왔는데, 이념대립의 후유증이 오래간다고 생각합니다. 이념이나 지역감정 등의 대립을 극복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공리공론을 싫어합니다. 국보법 폐지, 사학법 개정보다 더 중요한 것은 민생안정이라고 생각했고,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갈수록 힘들어지고 있는 국민생활을 안정시키고 국정과제를 시급히 달성하는 일이 무엇보다 시급합니다.

 

왜 그렇지요?

 

그건 시간이 없기 때문입니다. 대한민국은 예나 지금이나 주변 강국에 둘러싸여 있어요. 특히 치열한 국제경쟁을 하고 있는 실정인데, 우리가 20여 년 제자리걸음을 하면서 국제경쟁력을 거의 상실했어요. 불과 30~40개 품목에서만 앞서가고 있는데 이것도 2~3년 안에 추월당하게 될 것입니다. 몇 개 대기업과 극소수의 몇몇 강소기업을 빼면 한국경제의 미래는 암담합니다.

 

박근혜 정부의 역사적 책무가 막중하다는 뜻이군요?

 

그렇습니다. 김대중 정부는 IMF위기극복에 정신이 없었고, 노무현 정부는 탄핵 등 정치사회적 갈등이 폭발하면서 휘청거렸고, 이명박 정부는 촛불시위 등으로 리더십이 무너졌습니다. 지금 박근혜 정부도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위기와 기회를 동시에 맞고 있지요. 국민들의 염원에 부응해 관피아 척결 등을 하면서 외국의 추격을 따돌리는 국정과제를 성공적으로 수행한다면 역사적 평가를 받을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민심은 냉혹해질 것이고, 정치사회적 갈등은 심각해질 것입니다.

 

관피아 척결과 민생문제 해결이 요체인데, 그 방안을 말씀해주신다면...

 

그동안 헛발질한 민생대책을 보면 정말 답답합니다. 먼 데서 찾을 것도 없어요. 한국의 산업은 소재부품을 조립해 수출하는 구조인데, 이 규모가 연간 1,200억 달러나 돼요. 그 절반 600억, 약 60조만 국내조달하면 됩니다. 그런데 작업은 중ㅇ소기업 스스로 할 수 없어요. 돈과 기술이 없으니까요. 기술력은 외국의 은퇴 노동력을 수입해오면 되고, 자금은 대통령이 관심을 가지면 해결할 수 있어요. 그러면 40~50만 명의 일자리를 만들 수 있고, 이는 내수시장을 활성화시킬 수 있을 겁니다. 중소기업 기술개발회의를 대통령이 직접 주재하는 거지요.

 

 그런 진단을 하고 있으면서 왜 정치에는 뛰어들지 않습니까?

 

저는 저에게 주어진 책무를 몸을 바쳐 노력하는 편이지, ‘정치적인 것’하고는 거리가 먼 타입입니다. 김대중, 김영삼 두 분 대통령께서 선거 때마다 정치권유를 하셨는데, 제가 사양했던 건 제가 정치에 어울리지 못한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죠. 민생문제가 갈수록 심각해지고 외국에 추월당하는 위기감 때문에 출마권유를 받았을 때는 그럴 마음도 있었는데, 정치헌금을 바라거나 예의를 모른다고 봐서 선거에 나가지 않았어요. 지난 대선 때는 문제인 후보진영에서 윤후덕 전 의원이 찾아와서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아달라는 부탁을 해왔는데 사양했지요. 정치와 저는 인연이 없었던 거지요.

 

이제 재야 3인방으로 알려진 김근태, 장기표, 이태복 세 분 가운데 김근태 의원은 돌아가셨고, 장기표 선생은 정치판에서 실패를 거듭했는데, 이태복 전 장관님은 정치판에 가지 않고, 복지와 민생문제 해결을 위해 애쓰고 계신데, 앞으로 어떻게 하실 계획이신지?

 

 마지막 봉사활동을 하고 있지요. 지금 하고 있는 200원 싼 기름을 공급하는 일이 구체화되면 저는 고향에 내려가 책을 읽고 농사도 조금 짓고 살 생각입니다. 민사보상도 받게 되어 있어서, 힘들어하는 국민들께는 죄송하지만, 저도 그만 쉬고 싶습니다. 하지만 세월호의 못 다 핀 젊은 영혼들이 남긴 ‘집단 유언’이 마음에 걸립니다. 요새 어떻게 풀까? 하고 끙끙대고 있습니다.

 

어려운 일이 있거나 소통을 하고 싶을 때 어떤 분들과 만남을 갖고 계십니까?

 

요즘은 국민석유 일에 집중하고 있다 보니, 많은 분들을 만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정진태 전 국방부장관님(함참의장)과 이우재 전 마사회 회장님(윤봉길 의사 월진회 회장), 송창달 여의도연구소 고문님도 자주 만나고, 김수환 추기경님과 김승훈 신부님은 돌아가시기 전까지는 늘 자주 뵙고 말씀을 나누었죠. 박형규 목사님도 그러시고... 자승 총무원 스님은 인간의 대지 이사로서 함께 복지활동을 거들은 바 있으시고, 염수정 추기경님은 명동성당에서 노조와 시민단체들이 농성을 할 때 정부와 협상하게 되면 교무사무처장 신부님으로서 중재역할도 함께 하셨지요.

 

·효 및 관피아 척결 등 일화 몇가지

 

이태복 이사장은 보건복지부 장관 시절 몇 차례 단호한 조치를 취한 일이 있다. 장애인정책국의 문제점과 관련하여 수차례 제보가 들어와 감사관을 시켜 조사했으나 별문제가 없다는 보고를 해서 그대로 방치하면 도저히 부패 고리를 끊을 수 없다고 생각해 직위해제조치를 내렸다. 또 제약마피아와 관련된 주무국장이 약가 거품빼기정책을 사사건건 반대해 그 역시 인사조처하고 업계로부터 활동비 명목으로 돈을 받아온 자도 경고성 문책조치를 내렸다. 초기에는 이들의 관피아 네트워크가 음해성 투서를 해서 어려웠으나 열심히 일하는 공직자들을 발탁하여 주요 보직에 배치하고, 장관 봉급을 털어 격려하면서 부처역량을 현안문제 해결에 집중시켰다. 당시 다른 장관들은 나의 이런 과감한 조치를 부러워했다. 관피아 척결을 단행했던 것이다.

 

그에게 사형을 구형했던 안강민 검사와는 출감 후 오랜 시간 인연을 이어가는 사이가 됐다. 하루는 안 검사가 아들을 대동하고 식사자리에 나타났다. 학생운동 노동운동을 주도했던 이태복 이사장에게 대학생인 자기 아들을 잘 타일러 달라며 덕담을 청했다.

안 검사의 아들에게 우리 때는 시위하고 감옥 가고 공장생활 하는 것이 정의로운 일이었지만, 민주화가 진전되고 있는 90년대는 상황이 달라졌다. 전문적 식견으로 사회에 봉사해야 할 시기이니 한 분야를 택해 한국 최고의 전문가가 되라고 충고했다. 박종철 고문사건으로 잘 알려진 이근안 경감 등 고문팀으로부터 2개월간 물고문, 전기고문 등 온갖 끔찍한 고문을 당해 씨앗을 생산하지 못하게 됐다. 이태복 이사장은 죽음의 문턱에서 지난날을 되돌아보니 부모님에게 잘못한 것만 떠올랐다며 비록 원수 같은 사람이지만 조건 없이 무조건 용서해야 한다는 회심(悔心)을 겪고 힘들게 용서하는 마음을 갖게 됐다.

 

남들보다 결혼이 한참 늦었다. 자식이 없어서인지 욕심도 없다고 한다. 부인 심복자 교수는 남편이 하루도 빼놓지 않고 부모님께 아침저녁으로 문안 인사를 드릴만큼 효자라고 말한다. 아버지 이순구 옹은 선비집안의 가풍을 이어 면장을 지냈으며 외할아버지 이병장 옹은 부면장을 지낸 후 징용피해와 좌우대립을 원만하게 풀어나가 마을 입구에 송덕비가 세워질 정도로 인품과 학식이 높았다. 어머니 이정숙 여사는 아들의 일을 계기로 민주화가족협의회 초대회장을 지냈으며 양심수 석방과 인권회복을 위해 활동하였다.

 

 

청와대 수석 시절의 일이다. 기자들이 사진을 찍으면서 머리가 희다고 염색하는 것이 어떠냐고 말하자 그는 아버지에게 물어보겠다고 답했다. “아버지, 염색해도 되겠습니까?”라고 여쭙자 아버지는 “글쎄, 구태여 염색할 필요가 있느냐”라고 말했다. 염색하는 것까지 허락을 구할 정도였으니 김대중 대통령도 아버지 말씀을 듣고 그대로 둬도 좋다고 말해서 굳이 염색은 하지 않았다. 흰머리는 그만의 트레이드마크가 되었다.

청와대에서 발급한 카드가 있어도 나랏돈을 함부로 쓰면 안 된다며 개인카드를 써서 월급에 비해 카드값이 많이 나와서 대통령이 별도로 활동비를 가끔 지원해줬다. KBS 아침마당에 출연했을 때의 일이다. 녹화 전에 부인 심복자 교수가 툭 내뱉은 ‘아내의 발을 닦아주는 남편’이라는 말을 이금희 앵커가 공개하는 바람에 세상에 알려졌다. 전국에서 남편들이 아내들에게 시달림을 받기도 했다는 후문이다. 이휘호 영부인도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취재후기, 개척보다 열배로 힘든 관피아 척결

 

돌산을 개척하려면 돌을 골라내고 나무도 베어내어 땅을 고른 후 3~5년이면 곡식을 수확할 수 있다. 반대로 토질은 좋은데 아카시아 뿌리가 어디서 시작됐는지도 모를 만큼 사방으로 얽혀있어 이것을 뽑아내려면 얼마나 힘든가. 그래서 개척보다 열 배로 힘든 게 관피아 척결일 것이다. 후손을 위해 깨끗한 토질을 물려줘야 하는 것처럼 정부는 관피아 척결로 대한민국 혁명을 시작해야 할 것이다.

 

그러려면 국민을 비롯하여 여·야 정치인은 나라를 위해 힘을 모아야 하고 정부 각 부처 담당자는 본인 스스로를 돌이켜보아 내가 그 고리를 치료할 수 있으면 치료하고 아니면 물러나 비켜주면서 동참하는 마음을 갖자. 국민이 뽑은 대통령은 국민이 지켜주고 정부가 뽑은 공무원은 소신껏 일할 수 있도록 정부가 도와주고 여·야는 생각이 다르다고 하여 편 가르기를 하지 말고 생각의 다른 점을 나라의 발전을 위해서 펼쳐야 할 것이다.

 

 

 

 

 

 

 

본 기사의 전문은 대한뉴스 2014년 7월호(www.daehannews.kr)에 자세히 나와 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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