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6 (금)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월간구독신청

지방소식 - 연변뉴스

철면피한 일본

[인터넷 대한뉴스] 취재 이건륭 대한뉴스 길림성 지사장

 

 

 

일본이 중국대륙과 조선반도를 침략하여 중조 두 나라 인민들에게 저지를 만행은 실로 몸서리가 친다. 하지만 얼굴에 철갑을 두른 일본은 적반하장으로 중국대륙과 조선반도에 문명을 가져다주었다고 한다. 일본은 지어 위안부강제징용과 남경대학살마저도 없었던 일처럼 지껄인다. 고금중외에서 일본처럼 철면피한 나라를 찾아볼수 없다.

 

만약 미국이 히로시마와 나가사끼에 원자탄을 터뜨린 것을 두고 이는 일본에 평화와 문명을 가다준것이라고 하면 일본은 어떤 얼굴일가? 그러나 일본침략자들은 중국에서 원자탄을 터뜨린 것보다도 더욱 악랄하고 더욱 잔인한 만행을 저질렀다. 이 만행은 원동국제법정에 기소되지 않았기에 아베가 무근거한 사실이라고 게거품을 물지는 모르겠지만 만행에서 죽은 사람은 핵복사로 죽은 일본인보다도 많다. 바로 관동군소속 제731부대, 제100부대, 그리고 󰡐에이부대󰡑의 세균무기실험대상으로 죽은 사람들이다.

 

원폭에서 죽은 일본인은 21만이지만 중국에서 세군무기에 죽은 사람은 더욱 많다. 이는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다. 미국은 이씨이시로(石井四郎)를 포함한 731부대의 세균뮤기관련자들과 관련자료들을 삼키고 보호하여주었다. 맥아더는 8천여장의 세균무기배양 및 실험자료들을 4600만달러에 사들였다. 그리고 이씨이시로 등을 고급고문으로 모시고 미국서 세균무기를 계속하여 연구하게 했다. 그리하여 731세균부대의 진상이 오래동안 감추어져 있었다.

 

하지만 731부대, 100부대에서 직접 세균을 배양하고 실험한 범죄자 12명이 미처 도망을 가지 못하고 쏘련군에 체포되였다. 이들은 1949년 12월25일부터 30일까지 하바롭스크에서 비밀리에 심판을 받았다. 공판에서 731부대와 100부대의 근무자들이 진술한 내용을 보면 참으로 소름이 끼치며 눈물없이는 읽어내려갈수 없다. 일본침략자들이 중국에서 살상용세균을 배양하고 인체실험을 했다는 그 증거를 간략하여 소개한다. 전731부대에서 근무했던 륙군군의소장 가와마시 기요시의 바백자료다.

 

문: 당신은 어느 때에 제731부대에서 근무했는가?

답: 제731부대에서 1938년4월부터 1943년3월까지 근무했습니다.

 

문: 어떤 직위에 있었는가?

답: 일본륙군대신의 명령에 의해 제731부대에서 총무부장으로 있었고 제4부 부장 직위도 겸임했습니다. 그리고 제1부 부부장과 제3부 부장으로도 일했습니다.

 

문: 제731부대는 어느 때에 누구의 지시에 의해서 조직되였는가?

답: 제731부대는 일본황제의 칙령에 따라 1936년에 조직되였습니다.

칙령이 내렸을 때 역시 부대의 성원수와 건축물에 대한 지시도 있었습니다.

 

문: 부대의 유지비로 얼마의 금액이 지불되였는가?

답: 정확한 수자는 기억하지 못하나 1940년에 731부대의 유지비로 일화 1천만원이 지불되였던 것을 알고있습니다.

 

문: 부대의 성원수는 얼마나 되는가?

답: 황제의 칙령에 의하여 731부대와 그 지부들의 성원수를 약 3천명으로 정하였 던것으로 기억됩니다.

 

문: 제731부대는 무슨 일을 하였는지 그의 진실한 목적은 무엇인지 말하시요.

답: 731부대가 주로 세균무기에 대한 연구사업을 했습니다.

 

문: 제4부가 한달에 전염병균을 얼마나 번식시킬수 있었는가?

답: 제4부에 있는 생산능력과 모든 설비를 최대한으로 리용한다면 한달에 페스트균 300키로그람, 티푸스균 800에서 900키로그람, 탄저균 500에서 700키로그람, 코레라균 100키로그람을 생산할수가 있었습니다.

 

문: 실험은 어디에서 했는가?

답: 실험은 감옥내에서 했습니다. 감옥외에는 산사람들에게 실험을 하는 특별실험실 장도 있었습니다. 감옥에서 200명내지 300명을 수용하기로 예산되였지만 실제로 400명을 수용했습니다. 1년에 400명내지 600명의 ‘마루다(통나무)’를 압송하여왔습니다.

 

문: 전염병에 전염된 사람을 감옥에서 치료를 했는가?

답: 치료를 했습니다. 치료를 한 다음에는 또 다른 실험에 리용했습니다. 731부대 감옥에 같히운 사람은 죽지 않을수 없었습니다. 내가 근무한 기간에는 살아나간 사람이 없었습니다.

 

문: 실험대상은 어느 민족의 사람들인가?

답: 주로 중국인과 만주인 소수의 러시아인이였습니다.

 

12명의 피소자들을 심문하면서 아래와 같은 사실들이 드러났다.

1. 세균을 배양하고 세균무기를 실험하는 과정에서 헤아릴수 없는 실험을 했는데 가장 큰 실험은 중국 남부에서 이루어졌다. 731부대에서는 세균폭탄을 제조한후 비행기에 싣고 남경. 녕파, 무한, 동정호일대에다 투하했다. 당지의 소식통들에서는 전염병이 확산되여 임명피해가 엄중했다고 밝혔지만 일본침략자들의 소행인줄은 몰랐다. 또 몽골과 하라얼 등지방의 강과 호수 그리고 우물에 세균을 넣어 당시에 전염병이 확산되게 했다.

 

2. 731부대에서는 빵, 과자, 과일, 과일즙에 균을 주사하여 중국인 포로수용소나 백성들에게 마치 은혜를 베푸는것처럼 나누어주어 전염되게 했다.

 

3. 동상, 매독, 미란성(糜烂性瓦斯)피부병치료제를 개발하기 위하여 수많은 실험을 했다. 엄동성한에 사람을 밖으로 내몰아 손이나 팔을 물에 잠그게 하고 “땡땡”소리가 나도록 얼구게 했다. 여성에게는 매독균을 주사하였다. 실험대상들은 모두가 죽었다.

 

4. 731부대는 할빈시 평방에, 100부대는 장춘시의 맹가툰에 그리고 그외의 작은 지부들은 목단강, 림구, 하라얼, 손오, 대련 등 지역에 있었다. 남경일대에는 “에이부대”가 있어 세균무기를 실험했다.

 

5. 진술에 의하면 중국남부지방에서 약 20만에 달하는 사람들이 전염되여 죽었고 731부대의 실험용으로 “마루다(실험대상들을 통나무라고 불렀다.)”가 6천여명이 죽었다. 그외 밝혀지지 않은 수자도 있다. 6. 731부대에 압송된 실험대상들은 러시아첩자와 항일련군, 민족주의자, 그리고 사형수들이다. 731부대에 들어오면 모두 이름이 없다. 이름을 알수도 없다. 그냥 번호로만 통한다. 그리하여 죽은자 즉 “마루다”의 이름을 아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심문과정에서 실험대상들의 이름이 나왔는데 옹군 몇명뿐이다.

 

독일 전 총리는 1970년에 폴란드 바르샤바의 유태인위령탑 앞에서 무릎을 꿇고 애도를 표시한바 있다. 하지만 력대의 일본수상중 그 누가 중국이나 한국 아니면 진주항에 있는 위령탑에 애도를 표시한적 있었던가?

 

세계는 그릇 작은 일본이기에 그 수상들이 조난자의 위령탑에 애도를 하지 않는것쯤은 리해를 한다. 그러나 살인마들의 위패가 있는 神社에 參拜를 하는것을 바라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는 저들의 침략과 저지른 만행을 긍정하고 가송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만약 독일 수상들이 히틀러에게 위령제를 지내였다면 어떻게 될가? 마찬가지로 神社에 참배하는 것은 히틀러에게 위령제를 지내는 것과 같은 성질이다.

 

 

 

 

 

 

 

본 기사의 전문은 대한뉴스 2014년 4월호(www.daehannews.kr)에 자세히 나와 있으며 

교보문고, 영풍문고, MBC(내), 반디앤 루니스, 테크노 마트 프라임 문고를 비롯

전국 지사 및 지국에서 구입할 수 있습니다

 

- 보기 쉬운 뉴스 인터넷대한뉴스(www.idhn.co.kr) -

- 저작권자 인터넷대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