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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희완 칼럼] 지난 여름, 이순신과 교황 프란치스코의 두 열풍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다섯 가지

 오늘날 우리나라의 지도층은 그야말로 심각한 리더십의 위기를 맞고 있다. 특히 정치권에 대한 국민의 불신은 이제 폭발 직전에 와있다.‘정치는 4류다.’,‘국회를 해산해야 한다.’는 등의 비난이 연일 봇물 터지듯 쏟아지고 있다. 실제로 지난 5개월 동안 국회는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이전투구만 계속하면서 국민의 혈세를 축내고 있다. 5적(敵: 국회의원, 재벌 등) 시로 유명한 김지하 시인은“우리 정치는 한 마디로 철딱서니가 없다.”고 비판하면서,“너희들 정치는 정치(政治)가 아니라 치정  (癡情)이다.”고 일침을 가하고 있다.‘치정’이란 향락에 빠져 난잡해진 상태를 말한다. 이대로 간다면 우리에게 희망은 없다. 무슨 특단의 대안을 찾아야 한다.

  그 해답이 지난 8월에 두 개의 열풍으로 우리에게 주어졌다. 하나는‘이순신 신드롬’이고, 다른 하나는‘프란치스코 신드롬’이다. 두 열풍이 무더운 날씨만큼이나 한반도를 뜨겁게 달구었다.‘이순신 신드롬’을 불러일으킨 영화‘명량’은 국내 영화사상 최다 관객 동원과 최고 매출액을 달성했다고 한다. 그리고 4박 5일간 한국을 방문한 프란치스코 교황은‘교황 신드롬’의 차원을 넘어서‘교황 앓이’라는 신조어까지 생길 정도로 우리의 심금을 울려주었다. 이 두 열풍은 우연히 나타난 것이 아니라 하늘이 우리에게 내려준 축복이 아닌가 생각한다. 이로 인해 우리 사회의 지도층들이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국민적 공감대와 기대치가 한층 더 업그레이드되고, 또 일치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제 우리는 이 두 슈퍼스타에게서 무엇을 배워야 하고, 또 어떠한 리더십이 요구되고 있는가에 대해서 주의 깊게 주목해야 한다.
 
첫째, 역사를 바꾸는 대전략의 리더십을 배워야 한다
  이순신 장군은 외적(外敵)의 침략으로부터 나라를 살려낸 대전략가이었고, 프란치스코 교황은 인류의 공동선(共同善)을 이끄는 대전략가이다. 이순신 장군은 임진왜란 7년의 전쟁에서 23전 23승이라는 세계 해전사에서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신화를 거두었다. 당시 조선과 일본의 국내사정을 감안하면 정말 기적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류성룡도 징비록에서‘하늘이 도와서’라고 수없이 기록하고 있다. 임진왜란은 단순히 일본이 조선을 침략한 전쟁이 아니다. 조선이라는 나라가 존재하느냐, 없어지느냐 하는 조선왕조 최악의 전란이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조선 침략 목표는, 1차 침략 시는 조선을 점령한 후에 명나라로 진출하는 정명가도에 있었으나, 2차 침략(정유재란) 시는 조선의 경기, 충청, 전라, 경상 4도를 점령하는 것이었다.

  임진왜란을 연구하는 일본의 학자들도 임진왜란을 할지전쟁(割地戰爭: 명나라와 영토분할 전쟁)이라고 하고 있다. 이처럼 조선의 운명은 풍전등화 같았는데 이순신 장군의 전승으로 인해 전세를 역전시키고, 결국은 조일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와 같이 이순신 장군은 절대적인 군비 열세와 열악한 조건하에서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불굴의 리더십을 발휘하여 백척간두에 처한 나라를 구했던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일관된 메시지는 인류의 공동선과 사회정의를 이루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 지난해 3월 교황으로 선출된 후 첫 강론에서“우리가 행하는 모든 일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빠졌다면, 우리는 그저 정열적인 비정부기구(NGO)에 불과하다.”며, 청빈과 섬김의 기본(본질)으로 돌아가 가난한 자와 사회적 약자를 도우라고 강조하고 있으며, 본인 스스로도 그렇게 실천하고 있다. 그리고 세상의 평화를 위해서 세계 분쟁지역에 그의 행보를 집중하고 있으며, 현대 자본주의의 폐단인 경제적 불평등의 해소를 위해서도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지난해 11월‘교황의 권고’인『복음의 기쁨』에서“규제 없는 자본주의는 새로운 독재라고 규정하면서 가난한 자는 힘든 일을 하면서 박해를 받는다. 그런데 부자는 정의를 실천하지도 않으면서 갈채를 받는다.”고 비판하고 있다. 또 십계명의‘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을 현대에 맞게 고치면‘경제적 살인을 하지 말라’가 된다며“참된 형제애의 기본으로 돌아가자”고 권고하고 있다.

  그리고 사제와 정치인과 사회 지도층에 대해서는“사제는 양의 냄새가 나야 한다.”,“진정한 권력은 섬기는 것이다.”,“정치는 가장 높은 형태의 자선이다.”,“정의가 모든 정치의 목적이다.”,“정치인은 공동선을 위해 순교자와 같은 헌신을 해야 한다.”,“평화는 정의의 결과이다.”고 강론하고 있는 등 교황은 끊임없이 인류의 공동선과 사회정의를 위해 선지자적 행보를 계속하고 있다. 교황의 이러한 행보를 두고 차동엽 신부(『교황의 10가지-따봉』의 저자)는 교황은 사람의 마음을 여는‘무서운 전략가’라고 말하고 있다.

둘째, 아웃사이더(변방인)로서 승부사적 리더십을 배워야 한다
  이순신 장군은‘세상의 끝에서 찾은 조선의 해답’이었고, 프란치스코 교황은‘세상의 끝에서 찾은 바티칸의 해답’이다. 이순신 장군은 32세의 늦은 나이로 무과에 급제하여 주로 변방에서 육군 말단 무관으로 근무를 했다. 불의와 권력에 타협하지 않는 그의 올곧은 성격 때문에 여러 가지 모함과 부당한 상소와 탄핵으로, 총 22년간의 관직 생활을 하는 동안에 세 번의 파직과 두 번의 백의종군, 또 수차례의 계급강등, 심지어는 역적으로 몰려 모진 고문과 옥살이로 정말 죽기보다 힘든 수모와 치욕을 당하기도 했다.

  이와 같은 의로운 고난과 시련을 통해서 하늘은 나라를 구할 한 인물을 예비하고 있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14달 전에 당시 좌의정 겸 이조판서인 류성룡은 일본의 상황이 매우 심상치 않다는 점을 깨닫고 선조에게 간청해서, 1591년 2월 13일 정읍현감(종6품: 읍·면장)인 이순신을 전라좌수사(정3품)로 임명했다. 무려 7품계를 뛰어넘는 파격적인 인사라 반대파와 대간(臺諫)들은 전례가 없는 부당한 인사라고 끊임없이 탄핵을 건의했지만,‘하늘이 도와서’ 선조는 끝내 윤허하지 않았다. 드디어 이순신은 47세의 나이로 역사의 전면에 그 모습을 드러냈던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해 3월 비유럽권 출신으로는 1282년 만에, 또 남반구 출신, 남아메리카 출신, 예수회 출신으로는 역사상 최초로 제266대 로마 가톨릭교회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선출 직후 본인 자신도“콘클라베는 로마에 주교를 앉히는 건데, 추기경들이 저를 찾으려고 세상 끝으로 간 것 같습니다.”라고 말할 정도로, 프란치스코 교황은 위기에 처한 가톨릭교회의 개혁을 위해‘세상 끝에서 찾은 바티칸의 해답’이라는 미션을 띠고 있다. 당시 교황 선출을 위한 콘클라베 처음 회의에서는 아무도 그를 주목하지 않았다. 그러나 물이 새고 있는‘베드로호’를 구출하기 위해 추기경들은 변방에서‘아웃사이더’를 찾아내 개혁을 맡긴 것이다.

셋째, 오직 백성과 이웃을 위하는 섬김의 리더십을 배워야 한다
  이순신 장군은 전쟁하는 이유를 나라와 백성의 안위에서 찾았고, 프란치스코 교황은 모든 사제와 정치인, 또 권력자(지도층)의 기본을 사람을 섬기는 데 두고 있다. 영화‘명량’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준 메시지는 절대적인 군비 열세에도 불구하고 전쟁을 준비하고 있는 이순신 장군에게 아들 회는“임금은 아버님의 목숨까지 거두려고 했는데, 아버님은 왜 싸우려 하시는 겁니까?”라고 묻자, 이순신 장군은“의리다. 무릇 장수된 자의 의리는 충을 쫓아야 하고, 그 충은 백성을 향해야 한다.”고 했으며, 또 명량해전에서의 기적적인 승리를‘천행(天幸)’이라고 하면서 그것은 회오리 바다가 아니라 위기에서 자신을 구해준 백성이었다고 말할 정도로 장군은 언제나 백성과 함께 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관심은 언제나 사회적 약자들과 함께 하는 데 있다. 지난 3월 즉위식 미사에서도 가장 먼저“모든 인류들, 특히 가난하고, 힘없고, 보잘 것 없는 이들을 따뜻한 애정으로 감싸야 한다.”고 강조하면서,“교회는 거리로 나가 가난한 자를 도우라.”, “교회는 상처받은 사람들이 모이는 야전병원이 되어야 한다.”고 실천을 독려하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지도자인 교황 자신도 항상 낮은 자세로 가난하고 약한 자를 섬기는데 모범을 보이고 있다. 지난번 한국방문 시에도 교황은 우리나라 사제들에게“진정으로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로해주는 사목자가 되어 달라.”고 당부하는 등 교회와 사제의 역할을 재정립하고 있다.

넷째,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용기의 리더십을 배워야 한다
  이순신 장군은 전쟁에서 두려움을 가장 큰 적으로 보았고, 프란치스코 교황은 교회와 사회개혁의 원동력을 용기에서 찾고 있다. 47세에 전라좌수사가 된 이순신 장군은 안팎으로 상당한 심리적 압박을 받고 있었다. 드라마‘불멸의 이순신’에서 보면 전운은 감돌고 군비는 턱없이 부족한 가운데 과연 적들과 싸워 이겨낼 수 있을까 하는 장군의 고뇌를 일기에 적고 있는데, ‘매일 밤 나는 그 바다가, 그 바다를 쓸고 오는 바람이, 그 파도가 적선으로 화하여 조선으로 밀려오는 꿈을 꾼다. 가위눌려 잠을 깨고 나면 좀처럼 잠들 수 없다.’라고. 장군의 고독했던 심정을 엿볼 수 있다.

  그리고 영화‘명량’에서 보면 전투를 앞두고 병사들은 두려움에 떨고 있고, 수하 장수들도‘이 싸움은 절대 불가하다.’고 맹렬히 반대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이순신 장군은 아들 회에게“두려움이 문제다. 만일 이 두려움을 용기로 바꿀 수만 있다면, 그 용기는 백배 천배의 큰 용기로 배가 되어 나타날 것이다.”라고 말하자, 아들 회는“어떻게 저들의 두려움은 용기로 바꿀 수 있단 말입니까?”라고 되물었다. 그때 장군이 밝힌 임전(臨戰)의 비결은“내가 죽어야겠지!”였다. 그러한 장군의‘필사즉생(必死卽生: 죽고자 하면 산다)’의 담대한 정신이 명량해전에서 기적적인 승리를 이끌 수 있었던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즉위명으로‘프란치스코’라는 이름을 사용한 최초의 교황이다. 이것은 13세기 초 청빈한 삶과‘빈자(貧者)의 아버지’로 존경을 받았던‘프란치스코 성인’의 길을 따르겠다는 용기에서 나온 것으로, 그 이름 자체에서부터 강력한 개혁을 예고하고 있다. 교황은 취임 후 첫 미사에서“꼬라지오 아반티(Coraggio Avanti: 용기를 가지고 앞으로)”를 강조했으며, 이후 가는 곳마다‘용기’를 강조하고 있다. 지난번 한국방문시‘제6회 아시아 청년대회’폐막 미사에서도 청년들에게“여러분, 절대 두려워하지 마세요. 용기를 가지고 앞으로!”라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교황 자신도 과단성 있게 가톨릭교회를 개혁하고 있는데, 특히 암살의 위험을 무릅쓰고 역대 교황 최초로 마피아를 파문했으며, 돈세탁 혐의에 휩싸인 바티칸 은행의 경영진을 바꾸고, 계좌 1600개를 폐쇄하는 등 획기적으로 가톨릭의 치부를 도려내고 있다.

다섯째, 자신을 버려 세상을 구하는 자기희생적 리더십을 배워야 한다
  이순신 장군은 자신이 죽어서 나라를 구했고, 프란치스코 교황은 자신을 내려놓아 세상의 본이 되고 있다. 노량해전 이전에 이순신 장군은 모든 전투에서 승리했음에도“나는 나라를 욕되게 했다. 오직 한번 죽는 일만 남았다.”고 자주 말했다고 한다. 노량해전은 이전의 전투와는 성격이 다른 전투였다. 일본군은 1598년 8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사망으로 조선에서 철수하기로 결정을 했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노량해전은 퇴각하는 일본군의 퇴로만 열어주면 굳이 싸우지 않아도 될 전투였다. 그리고 명나라 장수 진린도 일본군으로부터 뇌물을 받고 퇴로를 열어주자고 이순신 장군을 회유했다. 그러나 이순신 장군은“우리 땅에 침범한 일본군은 한명도 살려둘 수 없다.”고 강력하게 반대하면서 노량 앞바다에서 최후의 결전을 벌인 것이다. 이 전투에서 조선 수군이 크게 승리하였으나 이순신 장군은 적이 쏜 총탄에 맞아 1598년 11월 19일 54세의 나이로 전사했다. 장군을 발탁하고 천거한 위대한 재상 류성룡이 영의정에서 파직된 그 다음 날 새벽이었다. 장군이 남긴 마지막 말은“전투가 급하니 나의 죽음을 알리지 말라(戰方急 愼勿言我死).”였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전통적으로 교황에게 주어지는 의전이나 격식과 관례, 특권 등을 모두 포기하고, 언제나 낮은 데로 다가간다. 방이 12개나 된다는 교황관저에 기거하지 않고, 게스트 하우스에 묵고 있으며, 차량도 방탄차를 타지 않고 오래된 중형 중고차를 타는 등 탈권위 행보를 계속하고 있다. 방탄차를 타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는“나는 나이가 많아 잃을 게 많지 않다. 삶과 죽음은 운명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했다. 지난번 한국방문 시에도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가장 작은 차를 타고, 비서도 없이 낡은 가방을 직접 들고 다니는 모습에서 많은 사람들이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한다. 이처럼 권력자(지도층)가 자신을 내려놓을 때 사람들은 오히려 그를 높이고, 또 신뢰하고 따르는 것이다.

  인도의 시성(詩聖) 타고르와 근대 독일의 영지주의자 루돌프 슈타이너를 비롯하여 세계의 많은 지성들이 우리 민족을 빛의 민족이고, 예지의 민족이고, 성배(聖杯)의 민족이라고 칭송하고 있다. 우리의 지도자들이 그러한 민족사적 소명감을 자각하고, 이순신 장군과 프란치스코 교황과 같은 진정성 있는 리더십을 발휘할 때 비로소 대한민국이 세상의 등불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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