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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늬우스를 보며 꿈을 키운 백영훈 원장

『압록강은 흐른다』의 저자 이미륵의 도움을 받다

대한늬우스를 보며 꿈을 키운 백영훈 원장
『압록강은 흐른다』의 저자 이미륵의 도움을 받다

   
 

한국산업개발연구원 백영훈 원장에게 12월은 아주 의미가 많은 달이다. 1961년 12월 11일은 정래혁 장관과 함께 차관 도입을 위해 서독을 방문했다. 1963년 12월 22일은 파독 광부 1진 123명이 독일에 파견된 날이다.

1964년 12월 5일은 박정희 대통령이 서독을 방문한지 50주년이 되는 날이다. 당시 중앙대 교수였던 백 원장은 서독 방문 때마다 통역관으로 대동했다. 파독 광부·간호사는 우리나라 경제발전의 초석을 이루었다. 그 일이 성사되기까지 백방으로 뛴 사람이 백 원장이다. 1961년부터 현재까지 백 원장은 경제발전의 현역으로 있다. 백 원장의 기억에 의존한 이야기를 듣고 쓰는 일화다.

글  김윤옥

   
▲ 백영훈
한국산업개발연구원 원장
제9대, 제10대 국회의원
한국질서경제학회 회장

대한늬우스
“대한늬우스를 보며 이승만 대통령의 국비장학유학생 모집 사실을 알았고 지원하게 됐지. 16대 1인데 내가 뽑혀 서독 유학을 가게 된 거야. 영화보다는 뉴스를 접하러 영화관에 가곤했어.”1945년부터 1994년 12월 종영될 때까지 극장에서 본영화 시작 전에 방영되던 대한늬우스는 국내외 소식을 알 수 있는 유일한 통로였던 적이 있었다. 이런 연유로 백 원장의 대한뉴스 사랑 또한 지극하다.

독일 유학 길
당시는 비행장이 여의도에 있었다. 기독교 신앙이 극진했던 백 원장의 어머니는 늘 기도로 하루를 시작하는 분이었다. 공항에 배웅 나온 어머니는 어디서 구했는지 1달러짜리 지폐 몇 장을 아들 손에 쥐어 주었다. 비행기에서 나오는 식사는 대금을 받을까봐 모두 사양하고 그 1달러로 경유지 홍콩에서 산 바나나로 허기를 채우며 서독으로 갔다. 전쟁 끝나고 모두가 헐벗고 굶주리던 시절의 이야기다.

지금 학생들이 당연히 접하는 사전조차 그 시절에는 없었다. 고등학교 때 배운 독어실력으로 박사과정공부는 너무 벅찼다. 그러나 조국과는 판이하게 다른 서독의 잘사는 모습을 보며 얼른 공부를 마치고 고국에 돌아가려는 일념으로 밤새워 공부하는 날이 부지기수였다. 그러한 노력 덕분인지 3년 반 만에 그것도 대학교수가 될 수 있는 최고등급의 박사학위를 받았다. (당시 서독에는 박사 학위에 등급이 있었다.)

  백 원장이 이렇게 빨리 학위를 받을 수 있었던 데는 동료 학생들의 도움이 많았다. 그들은 동방에 있는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온 백 원장에게 대단한 호의를 보였다. 그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 1964년 12월 8일 서독 수상을 접견한 박정희 대통령과 백영훈 통역관

이미륵 선생(1899~1950)의 도움으로
“너 <압록강은 흐른다>책 봤어?” 도리어 서독학생들이 백 원장에게 물었다. 당시 서독의 베스트셀러였던 이미륵 선생의 <압록강은 흐른다>책을 읽은 서독 학생들은 조선시대 대가집 풍습과 전통문화, 그리고 동양의 사상을 접하며 한국에서 온 백 원장에게 호감을 가진 것이다. 고인의 저서가 낯선 땅 타국에서 외롭고 힘든 유학생활을 하던 백 원장에게 그 누구보다도 큰 힘이 되었던 것이다.

  황해도 혜주 태생인 이미륵 선생은 경성의학전문학교에서 의학을 공부하다가 3·1운동에 가담한 뒤 일본 경찰을 피해 중국 상해를 거쳐 1920년 독일로 망명했다. 1928년 뮌헨대학교에서 생물학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활동하다 1946년 자전소설 <압록강은 흐른다>를 발표했다. 이 책은 서독 문단과 언론의 집중조명을 받으며‘독일어로 쓰인 올해 최고의 책’에 선정되었다. 1950년 서독에서 위암으로 타계했으며 1963년 독립운동공로로 대통령 표창과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나가며
  이미륵 선생의 애국정신이 백 원장에게 이어져 오늘에 이르렀다고 본다. 이것이 한 민족이요 우리의 역사인 것이다. 다음 호에는 서독차관을 받으러 가며 있었던 일화를 소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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