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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70년 ! 이제 우리 모두는 각자에게 주어진 길에서 신명(身命)을 다 바쳐 세상의 빛이 되자

   
▲ 감사원 제5국 심의관, 감찰관, 제7국장, 제4국장국가청렴위원회 신고심사국장, 관리관(1급)미국 스탠퍼드대학교 객원연구원(반부패), 한양대학교 자치행정대학원 겸임교수

한 통의 편지가 불안에 떨고 있던 국민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었다
금년은 광복 70년이 되는 뜻 깊은 해이다. 그런데 아직도 우리 사회는 곳곳에서 빛을 찾지 못하고 어둠 속에서 허덕이고 있다. 그 근본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필자는 우리 사회의 부정부패와 왜곡된 민주의식, 또 정치권의 끝없는 탐욕과 무책임과 파벌주의에 가장 큰 원인이 있지 않나 생각한다. 무슨 사건만 터지면 지혜를 모아서 한마음으로 해결하려는 노력보다는 서로가 헐뜯고, 책임 떠넘기고, 다리 걸고, 비틀고, 온통 피투성이로 난장판이 되어버린다. 이것은 광복 70년을 맞는 대한민국의 성숙한 모습이 아니다. 이제 우리 모두는 이와 같은 일그러지고 추한 모습에서 벗어나야 한다. 우리들 각자에게 주어진 길에서 정직하게, 또 우직스럽게 신명을 다 바쳐야 한다. 그것이 우리 모두를 살리고 후손을 복되게 하는 길이 되는 것이다.

한 가지 모범사례가 있다. 지난 6월 메르스 사태로 온 나라가 공포의 분위기에 휩싸여 있을 때 천사같이 날아온 한 통의 편지가 있었다. 한림대학교 동탄성심병원 중환자실 책임간호사 김현아 씨의 편지였다. 이 한 통의 편지가 대한민국의 그 어떤 정치인도 하지 못한 희망과 용기를 국민에게 안겨주었다(물론 다른 많은 의료진들의 헌신과 수고도 있었다). 그 편지의 일부를 보면,“저는 전국을 뒤흔들고 있는 메르스라는 질병의 첫 사망자가 나온 한림대 동탄성심병원 중환자실 간호사입니다. 20년간 중환자를 돌보며 처음 느낀 두려움, 그리고 그 두려움조차 미안하고 죄송스럽던 시간들, 같은 공간에 있었다는 이유로 저는 격리 대상자가 됐지만 남은 중환자들을 돌봐야 했기에 코호트 격리라는 최후의 방법으로 매일 병원에 출근합니다. 며칠 전에는 한 환자의 보호자가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메르스 환자가 나왔으니 중환자실을, 더 나아가 병원을 폐쇄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호통을 듣는 순간, 참고 있던 서러움이 왈칵 밀려왔습니다. 온몸에 힘이 빠지며 무릎이 툭 꺾였습니다.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그래도 이 직업을 사랑하느냐고… 순간, 그동안 나를 바라보던 간절한 환자들의 눈빛들이 지나갑니다. 지금껏 그래왔듯 제 자리를 지키겠습니다. 최선을 다해 메르스가 내 환자에게 다가오지 못하도록 맨머리를 들이밀고 싸우겠습니다. 더 악착같이, 더 처절하게 저승사자를 물고 늘어지겠습니다. 저희들도 사람입니다. 차가운 시선과 꺼리는 몸짓 대신 힘주고 서 있는 두 발이 두려움에 뒷걸음치는 일이 없도록 용기를 불어넣어 주세요.”자기 환자를 살리기 위해 더 악착같이, 더 처절하게 저승사자를 물고 늘어지는 그런 자세와 정신, 그것이 오늘날 대한민국이 안고 있는 모든 문제에 대한 해답이 아닌가 생각된다. 아니 우리에게 주어진 지상명령과 같은 것이다.


한 편의 영화가 우리 공동체가 잊어버린 소중한 정체성을 일깨워 주었다
영화‘연평해전’이 개봉한 지 23일 만에 올해 한국영화 중 첫 500만 관객을 돌파했다고 한다. 영화‘명량’,‘국제시장’에 이어 흥행에도 대단한 성공을 보이고 있다. 특히, 대한민국의 미래 희망인 20대~30대 관객이 많다고 하니 정말 고무적인 현상이 아닐 수 없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연평해전은 2002년 6월 29일 오전 10시 25분 무렵, 대한민국이 온통 월드컵 열기(한국과 터키의 3,4위전 경기)로 열광하고 있을 때, 북한 경비정이 북방한계선을 넘어 와 우리 해군 고속정 참수리 357호를 향해 선제 기습공격을 자행하여 발생한 해전(海戰)이다. 우리 해군은 이에 맞서 싸워 이겼으나, 북한 경비정의 선제 기습공격으로 인해 선장 윤영하 소령을 비롯한 장병 6명이 숨지고 19명이 부상을 입었다. 고속정 참수리호도 바다에 수장되었다. 선제 기습공격을 자행한 북한군도 그날의 전투에서 13명의 사망자와 25명의 부상자를 내고 퇴각하였다.

우리 해군의 참수리호가 교전초기에 인적·물적 손실을 많이 입은 것은 비정상적인 교전규칙에 있었다. 우리 군 수뇌부는 피해를 입기 전에는 절대 사격을 먼저 하지 말고, 선체로 밀어내라는 교전규칙을 내렸기 때문이다. 그 이후에도 우리 정부와 군 당국은 이들 전사자와 부상당한 용사들에 대한 예우나 처우를 제대로 해주지 않았다. 해전의 명칭도‘연평해전’이 아니라‘서해교전’으로 불리다가 2008년에야 겨우‘제2연평해전’으로 그 명칭이 격상되었고, 금년에 와서야 제2연평해전을 치른 지 13년 만에 처음으로 국방부장관과 해군참모총장 등 각계 고위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추모식을 거행하였다. 이날 한민구 국방부장관은 공식적으로 승전기념일로 공포하였지만, 그들 희생자들에 대한 예우는 아직도 제대로 해결되지 않고 있다. 또한 그동안 유가족들이 겪은 피눈물 나는 고초도 이루 헤아릴 수가 없다. 당시 서해교전 전사자 추모본부대표를 맡고 있던 고 한상국 중사(금년 7월 10일 상사로 추서)의 부인 김종선(2008년 김한나로 개명) 씨는“전사자들의 명예회복을 위해 노력했는데 영 아니더라고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어요. 나라를 위해 간 분을 이렇게 홀대하는 것은 (나라가) 썩은 것 아닙니까?”라고 울부짖으며, 2005년 봄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다가 3년 후에 다시 돌아와 희생자들의 명예회복을 위해 계속 노력하고 있다.

그리고 지난 6월 24일 조선일보 1면과 25일 사설에는 제2연평해전에서 전사한 고 박동혁 병장의 어머니 이경진 씨와 인터뷰한 내용이 실려 있다. 이경진 씨는 인터뷰에서“(당시) 이쪽에서는 초상 치르고 오늘 죽을지 내일 죽을지 모르는 상황인데 대통령은 일본 축구장에 가서 빨간 넥타이를 하고 손뼉을 치고 있었습니다. (그 뒤) 다른 유족들도 그럴 텐데 저희 집은 축구를 안 봅니다. 우리는 대통령이 버린 군인의 부모라고 제가 그랬습니다. (당시 정부에서는) 기무사를 시켜서 저희를 미행하고 도청하고 감시했습니다. 제가 그들에게 그랬습니다. 내가 이 나라에 뭘 그렇게 잘못했느냐고. 세금 열심히 냈고 아들 낳아서 해군 보낸 죄밖에 없다고. 합당한 죄목을 붙여서 날 잡아가라고 했습니다.”정말 가슴이 저리는 절규가 아닐 수 없다. 또 부상자들의 현실은 어떠한가? 신체적 장애뿐 아니라‘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등 정신적 상처 때문에 취직도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제 우리는 그들을 우리 사회의 영웅으로 예우하고 기억해야 한다. 강렬한 카리스마로 제2연평해전을 승리로 이끈 고 윤영하 소령, 옆구리에 관통상을 당하여 내장이 다 나오는 상황에서도 끝까지 조타키를 놓지 않은 조타장 고 한상국 상사, 함포 방아쇠 당기다 백일된 딸 두고 산화한 고 조천형 중사, 포탄이 머리를 관통했어도 방아쇠를 꼭 쥔 채 전사한 고 황도현 중사, 전도 유망한 엔지니어로 기관총 응사하다 전사한 고 서후원 중사, 100개가 넘는 파편을  온몸에 맞고도 끝까지 임무를 다한 고 박동혁 병장, 이들 여섯 용사는 장한 대한의 아들이었다. 국가는 목숨을 바쳐 나라를 지킨 이들을 기리고 예우해야 한다. 그게 진정한 국가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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