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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아름다움을 펼친다

과 꽃과
나 지금 궁서체야.’라고 하면 왠지 진지하게 읽어야 할 것 같다. 왜냐하면 궁서체니까. 언제부턴가‘진지함’을 드러내는 말로 사용되고 있는 이 문장은 디자인의 영역이 이제 문자에까지 미쳐있음을 잘 드러낸다.

언어학자 소쉬르는 기호를 기표와 기의의 결합으로 정의했고, 대표적인 기호에는 문자가 있다.

예를 들어, ‘꽃’이라는 문자가 있을 때,‘암술과 수술, 그리고 그를 둘러싼 고운 빛깔의 꽃잎들’을 떠올리게 되는데. 이렇게 문자에 담긴 의미가 기의라면,‘ㄲ’,‘ㅗ’,‘ㅊ’으로 구성된‘꽃’이라는 문자 형태는 기표이다. 그러므로 기의에 의미가 포함된 것은 당연하고, 기표는 의미를 포함하지 않는다.

그런데 문자에 디자인이 들어가면 기표에서도 어떤 의미가 전달된다. 굵고 거칠게 쓴 글자‘꽃’은 강렬하고 화려한 꽃같고, 가늘고 부드럽게 쓴 글자‘꽃’은 이름 모를 작은 꽃같다.

한 한글서예가는“‘꽃’이라는 글자를 수백번 썼는데 모두가 느낌이 다르더군요. 수백 송이의 꽃을 피워낸 것처럼 말이죠.”라고 했다. 문자의 디자인은 분명히 어떤 미묘한 느낌을 준다.


한글 디자인 발전사
디지털 시대에 아날로그적 감성을 담아낸다는 장점을 안고 한글 캘리그라피가 인기를 얻고 있다. 캘리그라피(손으로 그린 그림문자)라는 말은 2002년부터 언론에 오르내리기 시작했지만, 사실 그 이전에도‘한글 서예’나,‘예쁜 손글씨’등의 형태로 존재했다.

예전에는 한글로 프린트 된 상품에 대해 어색하거나 세련되지 않다는 인식을 가진 사람들이 많았는데, 요즘에는 한글 캘리그라피로 장식된 상품에서 알파벳이 프린트된 것에서와는 다른‘우아하거나 해학적인’우리만의 감성을 찾아 높이 평가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래서 각종 물건, 드라마나 영화 제목, 브랜드명, 간판 등 글자가 필요한 여러 곳에서 한글 캘리그라피가 인기를 끌고 있고, 나아가 작품으로서 다양한 전시가 이루어질 정도로 점점 더 예술적인 면모를 갖추어가고 있다.

서울시는 2011년부터 본격적으로 한글을 하나의 문화콘텐츠로서 개발하는 데 초점을 맞추었고, 2012년에는 광화문 광장과 경복궁, 세종문화회관, 주시경 집터를 쭉 이어‘한글가온길’을 조성했다.

이곳을 따라 가면‘아이쿠 의자’도 만날 수 있고,‘사랑’이라는 글자의 자모를 변형하여 만든 조각도 만날 수 있다. 올해 7월부터 시작된 대학생들의 모임‘한글 유랑단 1기’는 10월 9일 한글날까지 국내외에서 한글의 디자인적 가치를 알리는 활동을 한다.

이제 한글은 과학성과 실용성에 머물지 않고 그 아름다움을 펼치려 한다.

‘보기 좋은 떡이 맛도 좋다.’라는 말을 보면 선조들도 보다 예쁜 것을 좋아했나보다. 세종대왕이 타임머신을 타고 2014년 어느 날로 떨어져, 한글가온길을 걷는다면 어떤 마음일까? 글자체가 마음에 들 수도,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반포 초기 천대받던 한글이 요리조리 쓰이고, 대한민국 백성뿐만 아니라 외국인도 한글을 즐기고 있는 것을 보면 분명히 흐뭇한 마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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