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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산업현장 이종섭 교수

맞춤 양복 반세기 역사의 산실 명동 라이프어패럴


이탈리아 피렌체가 멋쟁이 남자들의 도시라면 한국에는 명동이 패션의 시작이자 중심지다. 명동에 있는 라이프어패럴 (주)리더무역은 지난 40년 동안 최고의 남자를 만드는 양복, 셔츠, 액세서리 등 이미지 설계로 남자의 멋과 품격을 높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래서 “라이프 옷 입어봤어!”라는 말이 장안의 화제다.



옷차림은 첫인상 좌우하는 또 다른 명함
어느 날 지인으로부터 라이프어패럴 이종섭 팀장이 대한민국산업현장교수에 위촉됐다는 반가운 소식을 듣게 됐다. 고용노동부 장관이 임명하는 산업현장 교수는 대한민국 미래를 밝히는 산업기술발전의 리더로서 중소기업, 대학교, 고등학교 등 현장에서 숙련된 기술력을 강화하고 문제점을 해결하며, 국가경쟁력을 높이는 중요한 역할자다. 테일러 인생 반세기뿐만 아니라 후학 양성의 새로운 포부는 무엇인지 궁금증이 일어 인터뷰를 요청했다.



이 교수는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1970년대 서울에는 명동, 남대문, 충무로 일대가 온통 양복점이었으며 덩달아 양복을 만드는 사람들 수입도 높았습니다” 며 오늘날 맞춤 양복이 점차 사라지는 현실이 아쉬운 속내를 드러냈다. 덧붙여 맞춤 양복은 본인이 입어보고 느끼고 자신의 멋스러움을 알아가는 장점이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라이프어패럴의 정근호 회장이 인터뷰 자리에 동석해 도움말과 이종섭 교수에 대한 속마음을 표현했다. 좀 더 깊은 내용은 박스 기사에서 다뤘다.





국제기능올림픽 금메달 수상으로 국위선양
국제기능올림픽대회는 21세 미만 젊은이들에게 근로의욕을 북돋아 주기 위해 1947년 스페인에서 처음 시작되었다. 우리나라는 1967년 국제기능올림픽대회에 각 부문 9명의 선수가 출전했는데, 양복 부문에서 첫 금메달을 딴 것을 시작으로 1983년까지 양복 부문에서만 12연패라는 놀라운 기록을 달성했다. 국제기능올림픽대회에 출전하기 위해서는 먼저 지방기능경기대회에서 1~3위 입상자를 선발하고, 다시 전국기능경기대회에서 우열을 가린 뒤 1등으로 선발된 선수가 국가대표가 되는 것이다.



이 교수는 1981년 미국에서 열린 제26회 국제기능올림픽대회의 양복 부문 금메달 수상자다. 그때 그의 나이 21세였으며 13세 때 이성우 양복점에서 견습생으로 시작해 9년 만에 이룬 쾌거였다. 국내에서 몇 천대 일의 경쟁을 뚫고, 이탈리아, 프랑스 등 세계 일류 몇 십개국과 경쟁을 벌여 금메달을 획득했다는 것은 개인의 영광을 넘어 대한민국을 국위선양한 의미가 크다. 한국에 도착해 목에 화환을 걸고 광화문에서 기능인의 사기를 드높이는 경축 오픈카퍼레이드가 펼쳐졌다. 이 교수가 당시를 회상하며 후일담을 들려줬다.



국제대회 출전 흥미진진한 숨은 뒷이야기
이 교수는 부산 출신 출전자와 맞붙었다. 1차 평가 때 7점 높게 이겼으며 2차 때 점수 차를 크게 벌리려고 부드러운 심지에 풀을 먹이는 꾀를 썼다가 제 꾀에 넘어가 감점을 받았다. 스승 이성우 선생님께 시키지도 않은 짓을 왜 했냐며 호된 꾸지람을 듣고, 벌로 까다로운 원단 10벌을 스타일대로 자르는 연습을 밤새워서 했다.



3차 때 과제로 나온 도면이 바로 연습한 도면 일 줄이야. 첫날이 지나고 둘째 날, 상대 선수가 따라 할 것을 염려해 모든 과정을 거꾸로 했다. 그런데 상대 선수도 거꾸로 하는 것이 아닌가. 배탈 핑계로 화장실에 가서 1시간 늦게 와 감점받고, 다시 화장실에 가 30분 후 돌아와 보니 상대 선수가 깃을 자르고 있었다. 그렇게 복수 평가에서 상대 선수를 따돌린 이종섭 선수가 1등을 거머쥐었다.





남자를 멋진 신사로 만드는 진정한 테일러
이 교수는 전남 곡성에서 4남 1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1970년대는 산업화 물결을 타고 가정 형편이 어려운 농촌의 젊은이들이 대거 서울로 상경했다. 13세에 상경한 이종섭은 이성우 양복점에서 직공 견습생으로 심부름부터 시작해 기술을 익히기 시작했다.



이성우 양복점은 어떤 곳일까. 이성우 선생은 1952년 양복점을 개업했으며 기능올림픽 심사위원 역임, 대한민국에 맞춤 양복을 보급한 양복 역사의 1세대의 전설이다. 당시 양복은 잘 나가는 사람의 상징이었고, 양복 입고 고향을 찾는 사람은 동경의 대상이었다. 200~300만원 고가의 이성우 양복 한 벌 선물 받고 입어보는 것은 큰 자랑거리였다.



손재주가 얼마나 뛰어났던지 이성우 선생은 이 교수를 수제자로 삼았다. 이미 공장이 두 개나 있었지만, 가게 뒤에 새 공장을 만들 정도로 수제자를 아끼는 마음이 남달랐다. 한 사람의 몸에 맞게 치수를 재서 만드는 맞춤 양복은 한 치의 실수도 오차도 없어야 한다며 훈련은 혹독하기 이를 데 없었다.



테일러라 부르는 재단사는 양복 제작 기술자 가운데서 최고의 대우를 받는 전문가이며 능숙한 재단사가 되기까지는 통상 10년이 걸린다고 한다. 금메달 수상 후, 이 교수는 스승 이성우 선생과 함께 전국을 돌며 기술 강습회를 열고, 국가 성장의 밑거름이 되는 데 일조했다.



한편, 뜨거운 여름날 선풍기도 없는 교도소에서 재소자에게 양복 기술을 가르치는 봉사를 했다. 강사료는 다시 재소자들 야식비로 돌려줬다. 재소자들이 고맙다며 한 명당 한 점씩 나온 삼겹살을 모으고, 야쿠르트를 모아서 내놓자 오히려 고마움에 코끝이 시큰했다고 한다.



어떤 사형수는 상을 타면서 감형을 받고 훗날 결혼식까지 치른 일은 지금도 뿌듯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라이프어패럴에서 만난 부인 김은숙 여사에게 지면을 통해 이런 말을 전했다. 연애 시절 교도소 봉사로 바쁠 때 포도밭에서 저녁까지 혼자 기다리게 한 일이 많이 미안하고 고마웠다고 심경을 밝혔다.



글 박혜숙 / 사진 서연



이종섭 교수 프로필
국제기능올림픽대회 양복부문 금메달 수상(미국 제26회)
동탑산업훈장 수훈
지방 및 전국기능경기대회 심사위원
한국산업인력공단 양복산업기사
한국산업인력공단 양복직종 출제위원
맞춤양복협회 기술위원, 중앙위원, TAILORPIA 필자상
일학습병행제 전문위원
대한민국산업현장교수-고용노동부
라이프어패럴 팀장



박스기사


라이프어패럴 (주)리더무역 정근호 회장

맞춤 양복 ‘시스템 오더’ 방식, 맞춤 셔츠 ‘크노(CHNO)’ 기술 개발





라이프어패럴은 1979년 창립된 이래 지금까지 명맥이 끊이지 않고 명동에서 맞춤의 역사를 지속해나가고 있다. 고비도 많았다. 정근호 회장은 1980년 기성 양복이 본격적으로 등장하자 위기를 기회로 삼는 역발상으로 새로운 분야를 개척했다.



▶맞춤 양복에 시스템 오더 방식 도입. 신체 사이즈별로 이미 제작해 놓은 300여개 패턴의 가봉 양복을 입고, 입은 사람의 신체 치수를 재면 맞춤이 끝나므로 따로 가봉이 필요하지 않다. 그래서 200~300만원 고가의 맞춤양복이 28~50만원의 대중적인 가격에 입을 수 있다는 것이 특징이고 장점이다.



▶와이셔츠에 주름 없는 ‘크노(CHNO)’ 기술 개발. 셔츠는 양복을 입었을 때 목깃과 소매 부분 한 뼘 정도만 보지만, 얼굴형을 돋보이게 하고 양복의 격을 살리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한다. 그런데 원단, 색감 등 아무리 좋은 셔츠도 주름이 잡힌다면 어떨까. 즉 크노기술이란, 셔츠의 어깨선, 뒷선, 몸통 옆 솔기 등 박음질 부분의 주름을 프레스기를 통해 눌러주어 주름을 매끈하게 펴주는 것이다.



크노기술은 우수성을 인정받아 프랑스 듀퐁사와 협약했으며 세계 무대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그동안 국내에서는 백화점에 입점해달라는 요구를 거절하고 청와대, 경찰청, 국방부, 공무원연금관리공단 등에 맞춤 제복을 저렴하게 제공했다. 이유는 백화점에 내야 하는 수수료만큼 저렴하게 공무원에게 혜택을 주려는 애국심의 발로였다.



맞춤 양복과 맞춤 셔츠의 살아있는 전설 정근호 회장은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등 전직 대통령 및 정부 주요 인사 및 유명인들, 3대가 찾아오는 일화 등 소개할 내용이 많다. 현재 문재인 정부에서 또다시 패션을 선보이고 있으며, 지면 관계상 다음 기회에 심층 취재를 기획해본다.



한편, 정근호 회장과 이종섭 교수의 뿌리는 이성우 양복점이다. 정 회장은 1969년, 이 교수는 1973년 각각 이성우 양복점에서 재단사 기술을 익히기 시작했다. 그러나 가는 길은 달랐다. 정 회장은 세계를 누비며 디자인을 공부하고 사업영역을 넓히는 기술을 개발했다. 이 교수는 이성우 양복점을 물려받고 대표를 맡아 맞춤 양복의 뿌리를 지켜나갔다.



그러던 어느 날 이성우 양복점이 사라질 위기에 처하게 됐다. 정 회장의 제안으로 이 교수가 라이프어패럴에 합류하게 된 계기다. 기자가 정 회장에게 이 교수는 어떤 사람이냐고 질문했다. “맞춤 양복의 뿌리를 지켜주는 이 교수는 한국의 보물입니다. 그가 계셔주셔서 고맙고 행복합니다. 옷을 입을 줄 안다는 것은 자기 몸에 맞게 멋스럽게 연출하는 의미가 크며 비싼 명품을 입는 것과 차원이 다릅니다”고 말했다.



한때 양복점 간판만 내걸면 손님이 밀려들었던 시절이 있었다. 명동과 충무로 일대에는 와이셔츠 맞춤가게가 250개 정도였는데 지금은 두 곳 정도에 불과하다고 한다. 라이프어패럴의 정근호 회장, 이종섭 교수 및 관계자들은 전통을 시대에 맞게 혁신을 시도하고 있었다. 맞춤 양복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뜻깊은 취재 현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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