젓가락은 세계적으로 과학성이 입증된 동양문화다.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손재주가 좋기로 유명한데, 이는 한국, 일본, 중국 모두 젓가락을 사용하지만 우리나라만 쇠젓가락을 사용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고도의 기술을 요하는 쇠젓가락 덕분에 정교한 자동차 부품을 잘 만들고, 손톱만한 반도체 회로도 잘 만들어 IT, 반도체 부문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이렇게 우리나라 국민들의 손재주는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정교한 손재주가 필요한 곳은 많다. 우리가 아끼는 옷이나, 추억이 있는 옷, 여러 가지 사연으로 묵혀두거나 유행에 뒤처져 입지도 못하고 버리지도 못하고 옷장 속에 애물단지로 있는 경우가 있을 것이다. 이때 필요한 곳이 수선집이다. 1984년 양복점을 시작으로 20년의 양복디자이너의 경력을 가지고 남대문에서 제2의 명성을 알리며 10년째 옷수선을 통해 자신만의 브랜드를 완성하는, 서울 장안에서 가장 바느질을 잘하는 신의 손 오세준 사장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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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선사 오세준 |
기술을 배우려고 상경한 서울
충남 공주가 고향인 오세준 사장은 중학교 졸업 후 기술을 배워 돈을 벌기 위해 무조건 서울로 상경했다. 처음에는 안테나 만드는 기술을 배우기 시작했는데 단순한 기술보다는 자신만의 창작이 있는 기술을 배우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고 한다. 그래서 선택한 곳이 양복점이었다. 양복점에서 심부름을 하며 기능을 좀 배우다가 옷 만드는 일이 적성에 맞아 종로 2가의 양재학원에서 여성 패턴도 배우고 명동에 있는 양복점에서 재단하는 일을 5년 정도 수련했다.
드디어 팔래스호텔 안에 열게 된 양복점
열심히 배우고 경험을 쌓아 어느 정도 양복에 대한 자신감을 얻었다. 1984년, 26세 때 팔래스호텔 안에 양복점을 오픈하게 되었다. 명동의 양복점에서 옷을 맞추던 고객들이 찾아와 주었고 최형우 전 내무부장관, 서석재 전 총무처장관을 비롯한 많은 고위층과 인연을 맺어 솜씨를 인정받으며 그때 인연으로 서석재 장관은 결혼식 주례까지 서주었다. 좋은 색의 옷감이 새로 나오면 누구에게 잘 어울리겠다는 생각이 바로 날 정도로 고객의 취향을 잘 파악하고 있었고, 양복저고리를 벗었을 때 보이는 안감 색이나 단추하나까지 신경써서 옷을 만들었다. 주위사람들의 소개로 고객들이 점차 늘어났는데, 양복의 단가가 비싼 편이라 외상손님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수금을 가면 빚쟁이 취급받는 것이 힘들어질 때쯤 미국 취업이민을 하면 어떠냐는 제안이 들어와 준비를 시작했다. 그러나 내 나라를 떠난다는 것이 쉽지 않았고, 아내가 하던 즉석빵집을 도와주기 시작했다.
고객의 옷차림을 보고 시작하게 된 남대문 수선집
어느 날부터인가 빵집에 오는 손님들의 몸에 맞지 않는 옷이 보이기 시작했다.‘어깨를 좀 줄이면 보기 좋을텐데…’,‘허리가 들어가면 더 날씬해 보일텐데…’하는 생각이 들면서 다시 재봉틀을 만지게 되었다. 남대문에 양복점이 아닌 수선집을 차렸다.
남,여 옷 모두 재단을 배웠기 때문에 다른 수선집에 비해 잘한다는 소문이 금방 퍼졌다. 기본 패턴을 알고 명품 옷의 경우 포인트를 잘 알고 수선하기 때문에 밍크나 가죽옷, 양복, 명품니트류, 여성양장 등 고급 옷들도 많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고객이 원하는 것을 충분히 고려해 마음에 들게 해준다. 가장 기억에 남는 고객은 캐나다에 사는 교포인데 처음에 밍크를 전체 리폼했다고 한다. 그 다음부터 1년에 한 번씩 한국에 들어올 때마다 옷을 잔뜩 가져와 수선해 가고, 지인에게 소개해 단골을 많이 만들어 주었다며, 비행기 타고 오니 수선비를 다 받기도 미안하다며 웃는다. 그리고 수선은 옷을 뜯는 과정이 고도의 기술이라 양복리폼이 제일 힘든데 한 고객이 29벌을 한꺼번에 가져온 적도 있다고 한다.
‘내 눈이 정확한 자입니다’라고 말하는 남다른 눈썰미와 인내
열 번이고 스무 번이고 고객이 100% 만족할 때까지 수선해준다. 오 사장은 기술을 배우려면 끈기와 인내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옷을 수선하기 위해서는 먼저 정교하게 옷을 해체하는 작업이 아주 중요하다며, 조금만 방심을 해도 실수를 하게 된다고 인내가 필요한 작업이라고 했다. 또 수선할 옷을 입은 것만 봐도 손 볼 사이즈가 딱 보인다며 눈썰미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다.
취재후기
우리 사회에 직업은 다양하다. 넥타이를 맨 직업만이 전부가 아닌 것이다. 대학을 나와서 취직을 해도 연봉 4천만~5천만원을 받기란 어렵다는 것을 알 것이다. 오 사장은 후배들에게 제대로 2년만 배우면 이 직업이 4천만~5천만원의 연봉은 물론이고, 10년 경력이면 연봉 5천만~6천만원은 보장 된다고 말한다. 정년퇴직도 없고 그만두고 싶을 때까지 할 수 있는 이 기술을 배우고 싶은 사람이 찾아온다면 언제든 환영이라고 했다. 예로부터 화살을 만드는 사람은 사(死)와 연결되었다 하여 업을 짓는 것이라 했고, 옷을 만드는 사람은 몸을 보한다 하여 복을 짓는다고 했다. 오세준 사장은 신의 손으로 사람들이 남대문 한 모퉁이로 보따리에 옷을 싸서 가져오지만, 어디에서도 살 수 없는 명품브랜드로 만들어 가져가는 모습에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