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29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취임 후 처음으로 영수회담을 열었다. 22대 총선 참패 이후 '국정 쇄신'을 약속한 윤 대통령이 야당과의 협치에 전향적으로 나선 것으로 평가된다. 두 사람의 회동이 성사된다면 취임 이후 700여 일 만이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국정 난맥상의 핵심 원인이었던 야당과의 소통 부족 문제가 해소될지 주목된다.
윤 대통령은 지난 19일 이 대표에 전화해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에서 만나자"고 제안했다.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 회동을 먼저 제안한 것은 취임 후 이번이 처음이다. 이 대표는 2022년 8월 당대표 취임 직후부터 수차례 양자 회담을 제안해왔지만 윤 대통령은 그때마다 거절했다.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 간 공식 회동이 가장 늦게 성사된 김영삼 전 대통령(110일)때를 훨씬 넘기면서 '불통' 지적이 꾸준히 제기됐다.
이 대표는 윤 대통령 제안에 대해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가급적 빠른 시일 내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강선우 민주당 대변인이 전했다.
윤 대통령의 이번 회동 제안은 전격적이다. 두 사람은 그동안 이 대표의 당대표 취임을 계기로 통화했을 뿐, 다수의 국가 행사에서 만나더라도 악수하는 데 그쳤다. 지난 2월 KBS와의 신년 대담에서 '이 대표와 단독회담을 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윤 대통령은 "저 역시도 정당 지도부와 충분히 만날 용의가 있다"면서도 "영수회담이라고 한다면 여당의 지도부를 대통령이 무시하는 게 될 수 있다"고 했었다. 대통령이 여당 총재를 겸했던 때와 여건이 달라진 만큼 야당 대표와의 단독 회담은 부담스럽다는 뜻을 내비쳤다. 그러나 이 같은 기존 입장을 선회해 양자 회동을 전격 제안한 것이다. 이 같은 전격적인 입장 변화는 영수회담에서 가시적인 성과가 도출되지 않더라도 회동 자체만으로 국정 전환점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윤 대통령이 결단한 것으로 보인다. 윤 대통령의 총선 이후 지지율이 각종 여론조사에서 20%대로 떨어진 것으로 나타난 가운데, 국면 전환을 꾀하려는 차원으로 평가하고 있다.
역대 영수회담
박정희 5회, 전두환 1회, 노태우 2회, 김영삼 2회, 김대중 8회, 노무현 2회, 이명박 3회, 박근혜 0회, 문재인 1회
양자 회동을 계기로 얼어붙은 여야 관계에 훈풍이 불지 주목된다. 우리나라 최초의 영수 회담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1965년 7월 20일 박순천 민중당 대표최고위원과 만나 임시국회를 소집하고, 한·일 협정 비준안과 베트남전쟁 파병 동의안을 다루기로 합의했다. 역대 영수회담은 대통령이 여당 총재를 겸임했던 시절만 해도 꽉 막힌 정국을 타개할 최후의 카드였다. 그러나 당정이 분리됐던 노무현 전 대통령 이후부터는 영수회담에서 별다른 성과 없이 마무리되는 경우가 다수였다. 영수회담이 가장 빈번했던 정권은 김대중 전 대통령 시절로, 총 8차례 이뤄졌다.
특히 이회창 당시 한나라당 총재와는 7차례 성사됐는데, 2000년에는 의약분업을 위한 약사법 개정에 합의하는 등 성과도 있었다. 하지만 이후 이뤄진 영수회담은 횟수도, 성과도 저조했다.
2005년 노무현 전 대통령은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에게 대연정을 제안했지만, 거부당하며 성과 없이 막을 내렸고 박근혜 전 대통령 시절에는 한 차례도 성사되지 못했다. 가장 최근에 이뤄진 영수회담은 지난 2018년 문재인 전 대통령과 홍준표 당시 자유한국당 대표 간 만남이었는데 남북정상회담 의제와 추경, 김기식 금융감독원장 해임 문제 등이 다뤄졌고 서로의 입장차만 확인된 자리였다는 평가가 많았다. 윤석열 정권 3년 차에 들어 성사되는 첫 영수회담은 과연 어떤 성과를 낼 수 있을지, 또 향후에도 양자 회동이 수시로 이뤄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면서 협치에 대한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