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한국어머니배구연맹은 비영리 생활체육 단체이며 창립 목적은 어머니 생활 배구를 활성화하고 저변확대를 통하여 어머니들의 건강증진과 건전한 여가 활동, 국제 교류 등 사회참여를 통해 여성의 지위 향상에 있다. 단체에 소속된 사람은 지난날 국가대표, 실업선수로 활동했던 프로배구 선수들 및 전국 시·도 대표팀, 학교 자모팀, 일반 동호인팀, 동아리팀 등 전국 수 만여 명 어머니배구회원들이다.
역사는 1971년 출범하여 제1~3회는 ‘영부인컵’, 제4~6회는 ‘육영수여사컵’으로 명칭을 변경하여 진행, 1977년 ‘카네이션컵’으로 정착했다. 1994년 생활체육어머니배구연합회 창립, 2006년 (사)한국어머니배구연맹으로 등록했다.
주된 사업은 카네이션배 등 각종 어머니 배구대회 개최, 국제어머니 배구대회 개최 통한 국제교류, 찾아가는 어머니 배구 교실, 어머니 배구 지도자 양성과 심판 강습 등 저변확대 활성화, 저소득 자녀청소년 체육활동 나눔문화 확산, 특히 어버이날 어르신 카네이션꽃 달아주기 봉사활동은 많은 주목을 받았다.
2006년 5월 7일 배구연맹 회원들이 종로 파고다 공원에서 손수 만든 꽃을 들고나와 어르신들 가슴에 꽃을 달아주며 어버이 은혜를 되새겼다. 당시 일화 한 토막을 살펴보면 이렇다. 한 노부부가 “당신들은 누구요?”라며 물었다. 노부부는 어버이날 가슴에 꽃을 달아본 지가 10년이 넘었다고 했다. 할아버지가 입을 열었다. “자식 6남매 중 박사가 3명인데 아무도 찾아오지 않아요. 할머니가 사업하는 큰아들한테만 무조건 돈을 주라고 해서 다 줬더니 큰아들은 재산을 탕진하고 사업도 망해 행방불명이 되었어요. 그리고 다른 자식들은 큰아들이 자식이지 우리가 자식이냐며 몇 년째 소식이 없어요. 절대 눈 감을 때까지 자식들한테 돈 주지 말아요”라고 했다. 연맹은 손수 꽃을 만들어 봉사하고 대한뉴스에서는 빵과 우유 및 간식거리를 준비하여 십시일반 마음을 보탰던 하루였다.
오늘날 한국어머니배구연맹이 반석 위에 우뚝 서기까지는 박점희 명예회장의 발자취가 큰 밑거름이 되었다. 그는 한국 어머니배구를 탄생시킨 개척자, 여성의 사회 참여와 생활체육 발전에 헌신한 지도자이다. 대회는 중단 없이 이어져 2024년 기준 350회 이상 개최될 정도로 지속성과 영향력이 컸다. 특히 여성들이 가정에서 벗어나 건강과 교류, 사회 참여의 기회를 갖는 데 큰 역할을 했다.
1973년 제3회 영부인컵 어머니 배구대회에 어머니 선수로 참가하였고, 이때부터 시작하여 경기위원, 심판, 심판부장, 이사 등을 역임했다. 1994년에는 생활체육전국어머니배구연합회 창립 멤버로 2002년까지 실무 부회장으로 활동했다. 2003년부터 2024년까지 21년간 한국어머니배구연맹 회장을 맡았다. 배구와 맺은 인연은 선수로서 지도자로서 총 기간을 합하면 53년, 반세기 넘는 세월이다. 그 세월을 어떻게 짐작이나 할까. 조직이 어려우면 사비를 들여 2006년 한국어머니배구연맹을 비영리 사단법인 단체로 승격시켜 연맹의 위상을 높였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2007년 윤곡 체육대상 공로상을 수상했다.
일거수일투족 발자취를 다 기록할 수는 없지만 조직을 이끌면서 기억나는 일화 한 가지가 있다면 무엇인지 궁금했다. 그는 대한뉴스 김원모 발행인을 떠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언론사 사장님인데 내세우는 것도 없이 항상 있는 그대로이며 솔직하고 누구에게나 친근하게 대해주세요. 세월이 가도 말과 행동이 똑같고 한결같은 게 처음의 그 모습 그대로시죠. 이러면 어떨지 저러면 어떨지 좋은 아이디어를 많이 주시고 연맹을 운영하며 음으로 양으로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그리고 사실 운동선수들은 카네이션꽃 달아주기 행사는 미처 생각 못 했는데, 김원모 발행인께서 명칭이 카네이션 대회이나 전국 회원들이 직접 꽃을 만들어서 어버니이날 어르신들게 달아주면 어떠냐고 아이디어를 주셨습니다. 회원들이 각자 집에서 자식들과 직접 꽃을 만들었죠. 저희는 꽃만 만들고 제반 행사 준비는 대한뉴스에서 다하는 데 그 공을 항상 연맹에 돌려주시며 상대를 빛내주는 참 고마운 분이에요.”라고 말했다. 덧붙여 말을 이어 나갔다. “얼마나 고맙고 배울 점이 있으면 제 아들 주례를 부탁했겠어요. 연맹 오명임 전무도 아들 주례를 부탁했어요. 제 아들 결혼식 때는 참석한 아들 친구가 주례 선생님 말씀이 너무 좋다며 그 친구도 발행인께 주례를 부탁한 일도 있어요."라고 했다.
박점희 명예회장은 지금은 일선에서 한 걸음 물러나고 그 자리를 임경희 회장이 이끌어가고 있다. 하지만 언제나 뒤에서 후배들에게 정신적으로 버팀목이 되어주는 든든한 지원군이다.
가정의 달 맞아 지난 날 추억의 명장면들 속으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