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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긴 밤이 가르쳐 주는 것, 동지

동지는 종교와 무관한 민간 풍속이며 우리의 문화다

(대한뉴스 유경호 논설위원장)=동지는 1년 가운데 밤이 가장 길고 낮이 가장 짧은 날이다. 달력 위의 하루에 불과하지만, 이 날이 주는 상징은 결코 가볍지 않다. 예부터 우리 조상들은 동지를 작은 설이라 불렀다. 해가 다시 길어지기 시작하는 날, 어둠의 끝에서 빛의 시작을 보았기 때문이다.

  1. 어릴 적 기억 속의 동지는 붉은 팥죽 냄새로 먼저 다가온다. 팥죽은 단순한 계절 음식이 아니었다. 붉은색이 잡귀를 물리친다고 믿었던 민간 신앙에서 비롯돼, 집안의 문설주와 장독대, 방 구석구석에 팥죽을 놓으며 한 해의 액운을 막고 가족의 안녕을 빌었다. 지금으로 치면 일종의 ‘마음의 방역’이자 공동체의 의식이었다.

동지팥죽에 들어가는 새알심에도 의미가 담겨 있다. 나이를 상징하는 둥근 새알심을 가족 수만큼 넣어 먹으며, 한 살을 더 먹고 무사히 새해를 맞이하길 기원했다. 그래서 예전에는 동지에 팥죽을 먹어야 진짜 나이를 먹는다는 말도 있었다. 음식 하나에도 시간과 삶을 존중하던 태도가 배어 있었다.

2025년 동지는 애동지, 팥죽 대신 팥떡을 먹던 날

동지에도 종류가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바로 ‘애동지’다. 애동지는 음력으로 동지가 초순에 드는 해를 말한다.  ‘애(兒)’ 자가 붙은 이유는 이 날이 어린아이와 관련된 날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예부터 애동지에는 팥죽을 쑤지 않았다. 팥죽의 강한 기운이 아이들에게는 해롭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대신 팥떡이나 수수떡을 만들어 나누어 먹었다. 붉은 팥의 액막이 의미는 살리되, 아이들에게 부담이 없도록 부드럽게 바꾼 지혜였다. 민간의 풍속이지만, 그 속에는 어린 생명을 향한 세심한 배려가 담겨 있다.

그래서 애동지는 ‘아이를 먼저 생각하는 동지’였다. 집안에 아이가 있으면 문설주에 팥죽을 바르지 않았고, 아이 이름을 부르며 무탈하기를 빌었다. 지금으로 치면 공동체가 함께 참여하는 가장 소박한 형태의 안전 기원 의식이었다.

 

동지는 끝이 아닌 시작

동지는 절망의 끝이 아니라 전환의 시작이다. 가장 어두운 순간에 이미 빛은 방향을 바꾼다. 그래서 동지는 늘 인간의 삶을 닮아 있다. 인생에서도 가장 힘든 시기가 지나야 비로소 다시 걸어갈 힘이 생긴다. 깊은 밤이 있어야 새벽의 가치가 분명해지는 법이다.

요즘 사회를 돌아보면, 많은 이들이 체감하는 현실은 여전히 춥고 길다. 경기의 그늘, 불안정한 일자리, 노후에 대한 걱정은 특히 시니어 세대와 청년 세대를 동시에 압박하고 있다. 그러나 동지가 주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오늘이 가장 길다면, 내일은 분명 조금 더 밝아진다는 사실이다. 변화는 늘 눈에 띄지 않게 시작된다.

동지는 기다림의 미덕을 일깨운다. 조급함 대신 인내를, 포기 대신 준비를 선택하라는 조용한 조언이다. 팥죽 한 그릇에 담긴 것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서로의 안녕을 비는 마음과 시간을 견뎌온 지혜였다.

해마다 동지는 어김없이 찾아온다. 인간이 무엇을 하든, 자연은 자신의 리듬을 잃지 않는다. 그 꾸준함 앞에서 우리는 다시 배운다. 삶이 힘들수록 계절을 믿고, 하루를 버티며, 다음을 준비해야 한다는 것을.

동지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이 겨울은 견딜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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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경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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