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작품은 추사 김정희가 제주 유배시절 그린 난초 중 가장 유명한 것 중 하나이며 그의 아들 상우에게 그려서 보여주었다고 해서 ‘시우란 示佑蘭’이라고 불리는 묵란도이다. 지난 2014년 옥션경매에서 7억 4천만원에 낙찰됐다는 보도가 있었다. 또한 TV 진품명품에 출품돼 값어치가 10억원으로 추산되기도 했다. 작품 해설 寫蘭亦當作不欺心始 (사란역당작불기심시) 난초를 그림에 있어서도 마땅히 ‘자기 마음을 속이지 않음’에서 시작해야 한다. 즉 예술의 출발은 기교가 아니라 마음의 정직함이라는 뜻. 一撇葉一點瓣 (일별엽일점판) 잎 한 획, 꽃잎 한 점이라도. 즉 아주 작은 붓질 하나까지도 소홀히 하지 말라는 뜻. 內省不疾 (내성불질) 스스로 돌아보아 부끄럽지 않아야 한다. 즉 자기 양심에 거리낌이 없어야 한다는 뜻. 可以示人 (가이시인) 그렇게 한 뒤에야 남에게 보일 수 있다. 즉 스스로 떳떳해야 타인에게 내놓을 수 있다는 뜻. 十目所視(십목소시) 열 사람의 눈이 보고 十手所指 (십수소지) 열 사람의 손가락이 가리키니 其嚴乎 (기엄호) 그 엄중함이 얼마나 크겠는가. 즉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세상의 평가는 매우 엄중하다는 뜻. 雖此小藝 (수차소예) 비록 이것이 난초
“여성이 권리를 요구한 날이, 이제는 세상을 바꾸는 날이 되었다.” 매년 3월 8일, 전 세계는 보라색으로 물든다. 꽃다발과 축하 메시지, 거리의 행진과 강연, 그리고 SNS를 채우는 해시태그까지. 바로 세계 여성의 날(International Women’s Day)이다. 하지만 이 날은 단순한 기념일이 아니다. 1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이어진 ‘권리의 역사’이자,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평등의 과제’다. -거리에서 시작된 변화의 역사 세계 여성의 날의 뿌리는 20세기 초 노동운동에서 찾을 수 있다. 1908년 미국 뉴욕, 여성 노동자들은 열악한 노동환경 개선과 참정권을 요구하며 거리로 나섰다. 이들의 외침은 국제적인 움직임으로 확산됐고, 1910년 독일의 여성운동가 클라라 체트킨은 국제 회의에서 ‘세계 여성의 날’을 제안한다. 그 제안은 현실이 됐다. 1911년 유럽 여러 나라에서 첫 기념행사가 열렸고, 1975년에는 유엔이 공식 기념일로 채택하며 전 세계적 의미를 갖게 됐다. 이 날은 단순히 과거를 기리는 데 머물지 않는다. 매년 새로운 주제를 통해 지금 우리가 해결해야 할 문제를 환기한다. 세계 곳곳에서 여성의 사회 참여는 크게 늘어났지만, 여전히 해결
감기의 정식 명칭은 '감기 증후군'이라 하고, 호흡기계 급성염증을 말한다. 원인의 약 90% 이상이 바이러스이며 나머지는 세균감염에 의한 것이라고 한다. 단순히 춥다고 해서 감기에 걸리지는 않는다. 추워지면 감기바이러스가 더욱 활성화되기 때문에 감기를 일으키기 쉽다. 그런데 극한의 지역 남극에서는 감기에 걸리지 않는다는데 그 이유는 무엇일까. -97℃ 이상 최저기온을 기록한 적이 있는 남극에서는 감기의 원인인 바이러스나 균이 생식하지 못하고 사멸해버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남극에 장기간 체재하다가 귀국 후에 감기에 걸리는 것은 바이러스에 대한 저항력이 약해져서 감염에 쉽게 노출되어 감기에 걸린다고 한다. 감기에 걸렸을 때 열이 나는 이유는 저온에서 증식하기 쉬운 바이러스 활동을 발열로 억제하려 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체온은 보통 37℃ 전후를 유지하지만,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뇌의 시상하부에 있는 체온조절 중추가 체온을 높이도록 명령을 내린다. 거기에 따라 피부 표면의 땀샘을 닫거나 혈관을 수축하는 등 열의 방출을 억제해서 열을 가둔다. 발열을 통해 백혈구 활동을 촉진해서 면역력을 활성화하는 것이다. 열이 날 때 오한으로 몸이 떨리는 이유는 근육이 떨리면서 열을
먹방 유튜버 쯔양이 방송에서 체중과 식비, 수입까지 공개해 화제가 되고 있다. 그는 키 약 161cm, 몸무게는 44~47kg 정도로 평소 대식가 이미지와 달리 마른 체형을 유지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음료까지 포함하면 많이 먹을 때는 10kg 정도 먹는다"며 "먹어도 몸무게가 금세 제자리로 돌아오고, 먹다가 오히려 몸무게가 내려가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쯔양은 "배달앱을 여러 개 쓰는데, 한 앱 기준으로 1년에 약 4400만원 정도 나왔다"며 "기본적으로 한 달 1000만원 이상이고, 먹방 한 끼에 300만원 이상 나오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그럼 이렇게 많이 먹는데 마른 체형을 유지하고 있는 이유가 뭘까 위의 중요한 역할은 운반된 음식물을 일시적으로 저장해서 죽처럼 부드러운 상태로 소화해 조금씩 소장으로 보내는 일이다. 위는 수축성이 큰 기관으로 최대 약 15배나 늘어난다. 성인의 경우에는 공복 중에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았을 때의 용량은 약 100mL로 야구공 정도의 크기지만, 가득 찼을 때는 크게 부풀어서 최대 1.5L 정도의 음식물을 축적할 수 있고, 꼭꼭 집어넣으면 더 팽창한다고 한다. 위의 위치는 가슴과 배의 경계에 있는 가로막보다 오른쪽 아래에
피부는 인체에서 가장 큰 장기이며 모든 장기를 포장지처럼 둘러싸고 있다. 외부의 다양한 자극으로부터 몸을 보호하고 혈관의 확장과 수축, 발한으로 인한 체온조절, 지방과 오래된 각질의 배출 등 다양한 기능이 있다. 온몸의 피부에서는 촉각을 느낀다. 일반 성인의 경우 면적은 약 1.6~2㎡ 정도이다. 우리 몸은 7년에 한 번씩 새로 바뀐다고 한다. 그중 피부는 한 달 정도 노력하면 피부 표피층을 부드럽고 매끄럽게 바꿀 수 있다. 진피의 시스템을 재구축하는 것은 약 3개월, 피부의 전반적인 톤이 개선되려면 약 7개월, 부분이 아닌 몸 전체를 다시 프로그래밍하는 데는 7년이라는 세월이 지나야 한다. 한편, 화장으로 인해 피부호흡을 못 하면 피부가 망가진다거나 몸에 금가루를 바른 퍼포먼스는 피부호흡이 어려워 단시간밖에 못 한다거나 하는 말이 있다. 정말 피부호흡을 못 하면 생명에 지장이 있을까. 과거 인간은 몸집이 커지면서 피부호흡으로 생명을 유지하기 어려워졌다. 대신 허파에 공기를 넣고 심장에서 온몸에 산소를 보내는 시스템으로 몸 구석구석까지 산소를 공급하게 되었다. 즉 사람은 피부호흡의 비율은 겨우 0.6%에 지나지 않고, 허파와 심장의 활동으로 온몸에 산소를 보
21세기를 살고 있는 MZ세대들에게 1960년대는 어쩌면 그저 낯설거나 혹은 관심 밖의 시대일 수도 있겠다. 1960년대는 도시화, 산업화로 대변되는 시대다. 특히 1962년 국가가 주도했던 산업육성정책인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처음으로 실시되면서 농촌에 근거지를 두고 있던 사람들이 끊임없이 도시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광복 직후 서울의 인구는 80만명 정도였으나 1960년 서울의 인구는 240만명을 넘어서게 된다. 1960년대 이후 서울의 성장은 우리나라 도시화의 과정을 거의 지배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근대적인 의미에서 도시화가 우리 사회 전반에 걸쳐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 것도 1960년대 이후이다. 이때부터 우리나라에는 이촌향도(離村向都)의 물결이 밀어닥 치게 된다. 당시 자료에 따르면 도시인구의 비율은 1966년에 34%, 1970년에 41%로 늘었다. 1966~1970년 동안의 서울의 인구중가는 매년 평균 40만명 이상에 이르렀고 이는 우리나라 전 체 인구증가의 76%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재건운동의 유행으로 젊은 남녀 '재건데이트' 유행 1963년에는 시골 어린이가 배가 고파서 술도가의 술 찌꺼기를 얻어먹고 빨갛게 상기된 얼굴로 책상 앞에서
손톱은 '케라틴'이라는 단단한 단백질로 이루어진 피부의 일종으로 손톱 뿌리에 있는 반달형의 손톱 기질로부터 만들어진다. 몸의 말단에 있고 말초혈관이 모여 있는데, 영양분 전달이 어려워서 영양 부족이나 건강에 따른 영향을 받기 쉽다. 손톱에 특징적인 변화가 생기는 질환도 있으므로 손톱 색깔과 상태에 따라서 자신의 건강 상태를 확인할 수 있다. 손톱에 생긴 가로줄은 건강이 나쁘거나 스트레스의 영향으로 손톱의 성장이 일시적으로 정체된 것을 나타낸다. 손톱은 하루에 0.1mm씩 자란다고 하므로 손톱 뿌리에서 줄까지 길이를 재보면, 건강이 나빠진 시기를 알 수 있다. 가는 세로선이 보일 때는 노화로 인한 것으로 딱히 걱정할 필요는 없지만, 손톱이 부서질 것처럼 세로선이 선명하게 보인다면 혈액 순환 장애일 가능성이 있다. 손톱 색깔이 변했을 때도 주의할 필요가 있다. 손톱이 하얗고 탁한 원인으로 가장 많은 것은 조백선(손톱 무좀)이지만, 손톱이 하얗고 탁하면서 불투명한 유리처럼 될 때는 만성적인 신장 장애나 간경변증이 아닌가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 손톱이 얇아지면서 가운데가 둥글게 패여 스푼처럼 된 스푼 손톱과 창백한 푸른빛일 때는 철 결핍성 빈혈, 보라색은 심장과
우리나라에는 차가 언제 들어왔을까? 차의 유래와 관련하여 자생설, 수로왕비 전래설, 대렴 전래설 등 여러 가지가 있다. 그중 국내외에서 널리 알려진 설은 대렴 전래설이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828년(신라 흥덕왕 3)에 당나라에 사신으로 갔던 대렴이 당의 문종황제로부터 차를 대접받고, 귀국길에 차 종자를 가지고 와서 왕께 드렸더니 지리산에 심으라고 했다는 기록이 있다. 차를 일컫는 명칭에는 ‘차’와 ‘다’가 섞여서 사용된다. ‘차’는 본래 중국 북부의 음(音)인데 ‘다’는 중국 남북조시대의 남조의 오(吳)나라의 음이다. 우리나라에는 중국 화북 지역의 ‘차’와 ‘다’가 들어와서 지금 둘다 사용되고 있다. 차는 예로부터 다양한 민간요법으로 내려와 생활문화 속에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으며 우리 몸을 다스리는 데 많은 도움을 준다. 선옥죽차는 다양한 품종의 둥굴레 중에서도 향미 및 약효가 뛰어난 용둥굴레를 이용해 만든 차이다.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둥굴레차와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용둥굴레의 꽃은 5~6월에 피며 잎겨드랑이에 2개씩 달리는 데 2개의 포에 싸여 있다. 봄에 올라오는 새순은 죽순과 비슷한 모습이다. 뿌리를 재료로 차로 만드는데 뿌
명절을 맞아 고마운 마음을 전달하는 선물을 준비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선물은 받는 사람의 대상이 누구인지에 따라 선물을 선택한 사람의 센스를 돋보이게도 하고, 받는 사람의 품격도 높여준다. 선물은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의 기쁨이 같으면 그 기쁨은 두 배가 될 것이다. 간혹 체면을 앞세워서 어떤 선물이 좋은지 묻지도 못하고, 선물을 받고도 싫은지 좋은지 표현 못 하는 때도 있다. 명절에는 선물하는 이의 배려가 더욱 돋보일 수 있게, 선물하는 의미를 한 번 더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 그래서 선물의 의미와 선물 잘 주는 노하우를 살펴봤다. 선물의 의미 선물의 사전적 의미는 ‘남에게 어떤 물건 따위를 선사함 또는 그 물건’으로 정의된다. 일상에서 말하는 선물은 물건에 대한 정의를 넘어 그것을 전달하기까지 이루어지는 모든 과정과 행위까지 포함하는 개념이다. 예를 들어 생일을 맞은 어떤 사람에게 케이크를 선물한다고 생각해보자. 먼저 선물을 해야겠다는 마음이 생겼다. 어떤 종류가 좋을까 고민하게 된다. 그리고 제과점으로 직접 가서 여러 종류 중에서 하나를 고른다. 지갑을 열고 값을 치르며 경제적 지출이 생겼다. 그것을 조심스럽게 들고 선물을 받을 주인공에게
설이 다가오면 집집마다 상 위에 오르는 음식의 무게만큼이나 마음의 무게도 달라진다. 떡국 한 그릇을 올리며 조상을 떠올리는 시간, 우리는 그것을 흔히 ‘차례’라 부른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묻는다. 차례와 제사는 무엇이 다른가. 두 의례는 모두 조상을 기리는 전통이라는 점에서 뿌리는 같다. 그러나 그 성격과 맥락은 분명히 구분된다. 차례는 명절에 올리는 절기 제례다. 설과 추석, 계절의 문턱에서 후손이 조상께 안부를 묻고 감사의 뜻을 전하는 의식이다. 특정 한 분만을 모신다기보다 집안의 여러 조상을 함께 기리는 경우가 많다. 형식도 비교적 간소하다. 설 차례상에 떡국이 오르는 이유는 단순한 음식의 문제가 아니다. 새해를 맞는 공동체의 의지를 조상과 나누겠다는 상징이다. 차례는 추모라기보다 ‘인사’에 가깝다. 반면 제사는 고인의 기일에 올리는 의례다. 시간도 명절 아침이 아니라 기일 밤이나 전날 밤이 전통이다. 대상 역시 특정 고인이다. 절차와 상차림도 차례보다 엄격하다. 홍동백서, 좌포우혜 같은 진설 원칙이 강조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제사는 공동체의 축제적 성격보다 한 인물의 삶을 기억하고 기리는 추모의 성격이 강하다. 분위기 또한 보다 경건하다. 요컨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