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왕이 머무는 방은 ‘특별 난방 구역’
한반도 기온의 특색은 같은 위도에 있는 다른 지역보다 연교차가 커서 여름은 무덥고 겨울은 매섭게 추우며 추운 기간이 비교적 길었다. 매섭게 추운 겨울의 기후에 적응하고자 한반도의 전통 건축물에는 세계 어느 지역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온돌이 존재하였다. 다만 한반도 북부와 인접한 북방 지역, 고대의 만주와 연해주 일대에서 온돌 유례를 찾아볼 수 있는 난방 방식인 온돌이 분포했었다고 한다. 온돌의 구조는 방 바닥 밑에 고래(연기가 지나가는 통로)를 만들고, 아궁이에서 불을 피워 바닥을 데우는 방식이다. 요즘은 아파트 문화에 보일러가 보급되면서 전체적으로 집안이 따뜻하지만, 예전에는 손님이 오면 가장 뜨뜻한 아랫목에 모셨다.
조선 시대의 겨울은 길고 혹독했다. 난방 기술이 빈약했던 다른 나라와 달리, 조선의 백성과 궁궐은 겨울을 대비한 독창적인 난방 시스템 온돌을 잘 활용하였다. 궁궐에서도 온돌은 핵심 시설로 가장 따뜻해야 하는 곳은 당연히 왕의 방이었다. 왕이 추위를 타거나 병이 나면 나라의 일이 제대로 돌아가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궁궐 온돌의 특징은 열의 이동을 계산한 고래(굴뚝 통로) 설계, 방마다 독립된 아궁이 또는 연결식 아궁이였으며, 온도 유지 시간을 극대화하는 구들장 구조였다. 한겨울에는 왕과 왕실 가족의 생활 공간인 침전(침실), 대비전(대비의 거처), 대전(정치 공간) 등은 모두 대형 온돌 구조를 갖추고, 특히 대비나 왕의 침전이 있는 편전 지역의 온돌 점검이 강화되었다. 이는 조선 왕실의 겨울 건강 관리의 중요한 요소였다.
온돌이 고장나면 큰일
‘화척’과 ‘고래장’이라는 궁궐 온돌 전문가
궁궐 온돌은 단순 난방이 아니라 국가 시스템의 일부였다. 또한 궁궐의 온돌은 민가보다 훨씬 크고 복잡했기 때문에, 관리 인력도 체계적으로 운영되었고 따뜻한 온기를 오래 유지하는 것도 기술자들의 중요한 임무였다. 전문 인력 가운데 ‘화척(火尺)’은 아궁이에 불을 피우는 사람이며 그들은 불이 너무 세거나 약하지 않도록 조절했다. 또한 왕의 건강 상태에 따라 온도까지 조절하는 역할을 맡았다. ‘고래장’은 고래가 막히지 않도록 점검하고, 굴뚝이 잘 작동하는지 확인하며 문제가 생기면 즉시 수리했다. 고래가 막히면 연기가 왕의 거처로 들어와 유독가스와 산소 부족·화재 위험까지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고래장은 겨울철 ‘궁궐 안전의 핵심 직업’이었다.
궁궐 온돌 장작도 국가가 직접 관리
궁궐에서는 겨울이 오기 전 가장 큰 대비 작업 가운데 하나는 대규모 온돌 점검이었다. 이를 ‘겨울 대비 화도점고(火道點考)’라고 했다. 화재 예방을 위해 화도(불길이 통하는 통로)를 점검하는 전통적 안전 관리 절차를 의미한다. 점검 대상은 고래의 막힘 여부, 구들장 파손 여부, 아궁이의 처짐·균열, 굴뚝 기류 확인, 방 내부 바닥 온도 균형 체크이다. 관청 기록에는 “겨울을 맞아 대비전의 고래가 막혔으니 즉시 고래장을 불러 수리케 하라”와 같은 지시가 자주 등장한다. 온돌의 핵심은 연료 관리였다. 궁궐에서는 잘 말린 장작, 솔방울, 숯 등을 적절히 섞어 사용했다. 특히 왕의 침전은 가장 따뜻하게 연속 가열이 필요했기 때문에 장작의 규격부터 수분 함량까지 엄격히 관리했다. 왕이 병이 들었을 때는 평소보다 고온으로 설정해 ‘온돌 요법’처럼 쓰였다. 그 외 사정전·근정전 같은 정치 공간은 너무 따뜻하면 졸림·노곤함을 유발하기 때문에 일정 온도를 유지했다. 외곽 건물과 중요도가 낮은 건물은 필요시에만 온돌을 가동해 연료를 아끼는 부분 난방을 했다.
그 외 온돌의 사례는
온돌은 방바닥 아래에 구들장을 깔고, 아궁이에서 피운 불의 열기가 ‘고래’라 불리는 통로를 지나 방 전체로 은은히 퍼지게 하는 구조를 ‘전면 온돌’이라고 한다. 전면 온돌의 완성은 고려 말 혹은 조선 초기에 쓰인 『동문선』에 실린 <쌍청당기>나 <포천향교> 등 몇몇 기록에서 보이는, 건물 안에 돌 또는 욱실(燠따뜻할 욱, 室집 실)을 갖추었다는 내용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때의 돌이나 욱실은 실내 바닥 전부를 구들로 한 것이라고 추정된다. 고려 후기 문집인 『보한집』에는 어떤 승려가 불기 없는 방에서 수행하고 있을 때, 이를 측은하게 여긴 사람이 몰래 방에 불을 넣어 주자 승려가 밖에 나가 아궁이를 막고 다시 들어와 좌선하였다는 이야기가 실려 있다. 이러한 사례들은 온돌이 살림집과 궁궐에만 국한되지 않고, 향교에서 교관이 휴식하는 곳이나 군사들이 머무는 병영, 불교 사원에 이르기까지 널리 사용되었음을 보여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