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나전칠기는 약 천 년 전 고려 시대에 이미 세계 최고 수준에 도달했다고 한다. 『동국문헌비고(東國文獻備考)』에 기록된 내용에는 고려 문종 때 요나라에 선물로 보냈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최근 문재인 대통령은 외국 순방길에 한국의 전통공예나전칠기를 기념선물로 준비했다. 이를 계기로 나전칠기의 우수성과 전통공예에 대한 정부와 국민의 관심이 왜 중요한지 조명하는 기획을 마련했다. 전문가의 추천을 받아 디자인조선 이두은 대표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다. “문재인정부에 나전칠기 작품을 납품했다고 들었습니다”고 질문하자 “우리의 전통공예, 특히 나전칠기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리게 되어 기뻤습니다”며 새로 개발한 작품 ‘곤룡포’ 필통&명함꽂이를 선보였다. 한국의 전통미 현대적으로 새롭게 디자인 Q 디자인조선 명칭이 독특합니다. 간단히 소개해 주세요. A 한국의 전통적인 나전칠기공예의 기법을 그대로 재현하면서 전통문화와 이미지는 시대에 맞게 현대적으로 디자인하였고, 옛것과 현대가 조화를 이루는 것이 디자인조선이 추구하는 기업 정신입니다. 작품적 측면에서는 금속 표면 위에 엄선된 양질의 자개를 디자인에 따라 손으로 일일이 깎은 뒤 수놓아 공예예술품으로서 기품을
강산민요 망곔소리 충남보존회(회장 권정현) 현판봉안식이 지난 7월 27일 충남 당진시 원당동에서 있었다. 망곔소리는 조국의 강토(疆土)를 악보로 하고, 민족의 역사를 노래로 하여 우리 창(唱)으로 읊어내는 민요이다. 특히 망곔소리는 선소리타령과 달리 ‘천강(天降) 세행(世行) 전승(傳承) 승천(昇天)’ 즉 ‘와서 살다가 주고 간다’는 인생과정이 담긴 4대 성음으로 발걸음의 보박(步拍)에 맞춰 폭넓은 음률로 풀어낸다. 강산민요 망곔소리는 인문학 세계지도자 총령 하정효 선생이 발굴해 보존에 나서고 있다. 강산민요 망곔소리 충남보존회는 전국 최초로 제대로 조직을 갖추고 망곔소리 전승과 진흥에 나섰다. 이날 현판봉안식에는 지역 인사들이 대거 참석해 강산민요 망곔소리 충남보존회의 발전을 기원했다. 김홍장 당진시장, 홍기후 충남도의원, 정산영 당진시부의장, 양기림‧윤영수 시의원 등과 지인 및 회원들이 강산민요 망곔소리 충남보존회의 ‘흥 출발’을 축하했다. 김홍장 당진시장은 축사를 통해 “우리 전통 민요는 오랜 세월에 걸쳐 민족의 혼과 정서를 노래에 담아 전승”했다면서 “이제 강산민요를 가깝게 접하고 함께 즐길 수 있는 토대가 당진에서 시작됐다”고 밝혔다. 강
1992년 6월 리우환경정상회의 이후 에너지와 환경에 대한 공존경제개발방식이 중시되기 시작했다. 에너지 대량소비는 이산화탄소(CO2)를 배출하여 지구온난화의 원인이 된다. 우리나라도 몇 손가락에 꼽는 이산화탄소 배출국이 되었다. 에너지 소비를 줄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건설 전문가들은 창에 해답이 있다고 말한다. 건물의 얼굴 창문은 에너지절약의 주역 본지는 창이 집과 건물의 부속품이 아니라 에너지와 환경론적 측면에서 창의 기능을 탐구하는 기획을 마련, 여러 전문가의 추천으로 6000 곳 창호기업 가운데 최고의 리더로 꼽히는 (주)글로윈스를 선정했다. 이유는 창호업계 주역으로서 기술혁신을 통해 친환경 창호를 생산하며 대기업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우수 기업이기 때문이다. 또한 대학생 인턴 채용으로 청년실업 문제 해결에도 일조하고 있다. 박영배 회장과 김미숙 대표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다. 응할지 말지를 고민하기에 기자가 이렇게 설득했다. “글로윈스 가족들이 폭염 속에 전국을 누비며 비지땀을 흘리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글로윈스의 정신을 독자에게 알리면 발로 뛰는 직원들에게 힘이 되지 않겠습니까?”라는 말에 흔쾌히 수락했다. (주)글로윈스는 서울에 본사와 경기도 남
국가보훈처(처장 피우진)는 허봉익 육군 대위를 8월의 6.25 전쟁영웅으로 선정하였다. 허봉익 육군 대위는 안동전투에서 백병전 중 전사했다. 안동지구 전투는 1950년 6월 25일 625전쟁이 발발한 후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 방어선으로 철수하기 직전에 국군 제8사단과 수도사단 1연대가 안동지역에서 북한군 제12사단과 제8사단 소속 일부 병력의 침공을 4일간 저지한 방어전투이다. 7월 31일 새벽 북한군 제12사단은 전차를 선두로 대대적인 공격을 감행하였으며, 이 무렵 육군본부는 낙동강방어선 형성계획에 따라 7월 31일 24시를 기해 안동에서 철수하기로 결정하고 명령을 하달하였다. 이에 따라 제8사단은 낙동강전선으로 철수작전 진행 중 제16연대는 북한군 1개 연대와 치열한 접전을 벌이다가 철수명령을 뒤늦게 받았다. 이로 인해 연대는 북한군에게 포위되어 각개로 철수하였고, 포위망 돌파와 도하과정에서 연대병력 중 장교 21명과 병사 814명이 전사하거나 실종되는 손실을 입었다. 이 과정에서 제3대대 3중대장 허봉익 대위는 임전무퇴의 정신을 발휘하여 2개 소대 병력을 인솔하여 안동 점령을 기도하는 북한군 2개 대대 병력과 백병전을 전개하였다. 그가 지휘
국가보훈처(처장 피우진)는 광복회, 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김교헌(金敎獻, 1867. 7. 5.~1923. 11. 18.) 선생을 2018년 8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하였다고 밝혔다. 선생은 1867년 경기도 수원군 구포리에서 부친 김창희와 모친 풍양조씨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18세가 되던 해인 1885년 정시문과(庭試文科) 병과(丙科)에 급제했다. 1898년부터 독립협회에서 몸담기 시작했다. 독립협회 간부진들이 개혁내각 수립과 의회개설을 요구하다가 구속되자, 독립협회의 대표위원으로 만민공동회 운동을 전개하는 등 민중계몽에 앞장섰다. 1906년 동래부사에 임명되어 부산으로 내려갔다. 여기서 통감부의 비호 아래 일본인들이 한인들을 대상으로 경제적 침탈과 만행을 자행하는 것을 목격했다. 민족의식을 자각한 선생은 일본인들의 횡포를 제지하다가 통감부의 압력과 친일파 송병준의 모함을 받고 해직되었다. 한편, 1910년 한국이 일본에 강제병합 당하자 대종교에 입교했다. 1914년 신단실기(神壇實記) 와 신단민사(神壇民史) 를 저술하였다. 이 책은 단군을 중심으로 한 민족서사로서 망국이후 한국 국민들의 애국혼을 고취하였다. 1916년 9월 나철(羅喆)의 뒤를
이달의 과학기술인상 7월 수상자로 고려대학교 물리학과 박홍규 교수를 선정했다고 과학기술정보통신부(장관 유영민)와 한국연구재단(이사장 노정혜)은 밝혔다. 과기정통부와 연구재단은 박홍규 교수가 빛으로만 전류의 흐름을 효과적으로 제어하고 증폭시키는 나노선 트랜지스터를 개발해 기존의 복잡한 반도체 설계·제작 공정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 데 기여한 공로가 높이 평가되었다고 선정 배경을 설명했다. 트랜지스터의 동작 효율을 높이기 위해 나노 크기로 제작하거나 실리콘이 아닌 매우 얇은 두께의 새로운 물질을 사용하고, 빛을 쪼여 효과를 증대시키는 등 다양한 연구가 진행 중이다. 하지만 복잡한 공정과 낮은 수율로 인해 실제 상용화가 어려운 실정이다. 박홍규 교수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공성 실리콘 주위로 단결정 실리콘이 연결된 나노선 구조를 이용해 빛을 쪼여주는 것만으로 매우 큰 전류 증폭을 기대할 수 있는 새로운 개념의 나노선 트랜지스터를 개발했다. 전기신호가 아닌 빛으로만 트랜지스터의 전기적 특성을 제어하면 기존의 복잡한 반도체 공정 과정을 거치지 않고도 소자의 크기를 더욱 작게 제작하고 비용적·기술적 노력도 줄일 수 있다. 이와 함께 고성능 논리 회로, 민
‘아덴만의 영웅’ 이국종 아주대 의과대학 교수 겸 아주대병원 중증외상센터장이 해양경찰 홍보대사에 위촉됐다.해양경찰청(청장 조현배)은 7월 16일 오전 정부세종2청사에서 위촉식을 열고 이 교수를 해양경찰 홍보대사로 임명했다. 해양경찰은 해상과 섬 지역의 응급환자를 이송하는 해경의 임무와 중증외상환자 구조에 나서는 이 교수의 전문성이 부합하다고 판단해 홍보대사직을 의뢰했다.조 청장은 위촉식에서 이 교수에게 위촉장, 홍보대사증과 함께 해양경찰 정복, 항공복 등을 전달했다. 이 교수는 향후 3년 간 명예해양경찰 경정 계급으로, 해양구조를 위한 멘토 역할과 함께 국민에게 해양경찰의 우수 정책을 알리는 활동을 하게 된다. 위촉식에 이어 이 교수는 해양경찰청 직원 300명을 대상으로 ‘해양경찰 항공기 활용을 통한 중증 외상환자 구조·구급 방안’을 주제로 강연도 펼쳤다.이 교수는 “바다에서 매일 실전과 같은 임무를 수행하는 조직이 바로 해양경찰”이라며 “제복의 무게를 잘 알고 있다. 책임감을 갖고 해경과 함께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속옷’하면 떠오는 것은? 부끄러움, 창피함, 야함 등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속옷을 입는 이유는 예민한 피부를 겉옷으로부터 보호해 주고, 생식기를 보호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최근 복식 연구자들은 오늘날 속옷은 잘 입으면 스타일을 완성하는 또 다른 패션의상이라고 평가한다. 이에 본지는 겉옷의 형태를 완벽하게 만들어 주는 속옷의 세계에 대한 기획을 마련, 직접 체험자 추천으로 (주)더블유케이 위드코리아 기능성 속옷 탈리아를 첫 번째 순서로 초대했다. 탈리아 탄생 히스토리 6.13 전국동시지방선거로 국민의 관심이 쏠리던 날, 기자는 겉옷 속에 가려져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지 못하는 속옷의 화려하고 아름다운 세계를 찾아 서초구 방배아크로타워에 있는 (주)더블유케이 위드코리아의 오재희 대표를 만났다. 주변 지인이 기능성 속옷 탈리아에 대한 자부심이 크다며 여러 차례 권하여서 인터뷰를 요청하게 되었다고 말하자, 오 대표가 반갑게 맞이했다. 그는 91년부터 여성 의류에 몸담은 패션 선두주자다. 기능성 속옷 브랜드 탈리아의 전신은 화려한 고급 여성복 브랜드 OJE다. 백화점에 입점해 유행을 선도했다. 그러던 중 우연한 기회에 지인의 간곡한 부탁으로 보정속옷을
김영기 이사장이 취임 100일을 맞았다. 3월 12일 공단 제2대 이사장으로 취임한 김 이사장은 지난 100일 동안 승강기 안전 패러다임 변화에 주력하며, 4차 산업혁명시대에 걸맞은 소통강화와 조직원 역량강화, 리더십 향상을 강조해왔다. 특히, 김 이사장은 취임과 함께 조직 안전화에 큰 노력을 기울였다. 그 결과, 공단은 이른 시일 내 정상궤도를 되찾아 국내 유일의 승강기 안전 전문기관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이에 본지는 취임 100일의 소회와 향후 계획 등에 대해 들어봤다. -취임 100일을 맞는 소회가 있다면 무엇인가. 엊그제 이사장으로 취임식을 한 거 같은데 벌써 100일이 지났다니 ‘세월이 유수 같다’는 말을 새삼 실감한다. 지난 100일간 조직을 안정화하고 새로운 패러다임의 승강기 안전문화 정착의 토대를 마련하기 위해 애써왔다. 다행히 공단 구성원들이 기대 이상의 역량과 긍정적인 마인드를 갖추고 있어 기관장의 경영철학을 쉽게 이해하고 계획을 구체화하고 원활하게 업무를 수행할 수 있었다. 100일간 공단 구성원들과 호흡을 맞추었다면, 지금부터는 서로의 힘을 합쳐 공단이 국내를 뛰어넘어 세계 최고수준의 안전 전문기관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최선
국가보훈처(처장 피우진)는 광복회, 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연미당(延薇堂, 1908.7.15.~1981.1.1.) 선생을 2018년 7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하였다고 밝혔다. 선생은 1908년 7월 북간도 용정해관에서 근무하던 연병환(延秉煥)과 김정숙 사이에서 태어났다. 부친 연병환은 북간도 청년들이 1919년 3월 3일 만세운동을 전개하자 배후에서 이를 지원하다 체포되어 2개월간의 옥고를 치른 후 상하이로 망명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공립학교인 인성학교(人成學校)를 졸업한 선생은 1927년 7월 청년 독립운동가 엄항섭과 결혼했다. 결혼 이후 선생은 남편 엄항섭을 내조하며, 자녀들의 교육과 나아가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역할을 맡았다. 이와 같은 삶은 당시 독립운동가를 남편으로 둔 여성들의 일반적인 생활방식이었다. 나라를 잃은 여성들은 가장으로서의 삶과 함께 독립투사로서의 삶도 요구 받았다. 1927년 11월 상해에서 결성된 중국본부한인청년동맹에 참여하기 시작한 선생은 상해여자청년동맹에서도 활동했다. 선생이 여기에 투신한 이유는 여성들의 독립운동 참여 독려와 역량을 결집시키기 위해서였다. 1932년 4월 29일 윤봉길의사가 상하이 홍구공원에서 의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