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03 (수)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월간구독신청

추천기사

그때를 아십니까? 자유와 희망을 노래하던 금지곡의 추억

'긴 더 밤 고운 지새우고 풀잎마다 맺힌 진주보다 더 고운 아침이슬처럼...'

이 노래는 지금도 대중들 사이에 종종 불리는 가요 '아침이슬' 가사의 앞부분이다. 김민기가 작사. 작곡하고 양희은이 불렀던 이 노래는 친근한 멜로디와 서정적인 가사로 1971년 발표 당시 많은 이들의 인기와 관심을 끌었다. 그런데 4년 뒤 당국에 의해 '시의에 맞지 않는다' 는 석연치 않은 이유로 방송부 적격 판정을 받아 금지곡 목록에 오르는 일이 발생했다.

그 이면에는 노래 가사보다는 작곡자 김민기의 언행이 권력층의 눈 밖에 났기 때문이라는 소문이 파다했다. 지금처럼 표현의 자유가 신장되고 민주화가 진척돼 가는 상황 아래에서는 쉽사리 이해가 가지 않는 사실이지만 과거 우리에게는 그런 암울한 시대가 있었다.

'왜색' 이유로 '동백아가씨' 금지곡 낙인

정부 수립 후 이미 대중가요심의제도가 마련됐었지만 본격적으로 금지곡이 양산된 때는 19615 · 16 군사정변 이후였다. 당시 권력층은 건전한 국민정서의 함양과 명랑한 사회분위기 조성, 공공질서 문란과 퇴폐풍 조 조장 방지, 청소년 선도 등을 명분으로 대중음악에 대한 강도 높은 심의를 전개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는 권력층에 대한 풍자와 비판을 차단하고 통제를 강화하기 위한 검열의 성격이 더욱 짙었다. 또한 금지사유에서도 왜색, 창법 · 가사 저속, 퇴폐. 허무. 비탄·불신감 조장, 불건전, 품위 없음, 방송 부적격 등의 자의적 해석이 가능한 모호한 기준을 내세워 심의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리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 '왜색' 이라는 이유로 금지된 대표적인 노래는 이미자의 '동백아가씨' 이다. 왜색은 당시 국내 트로트 가요의 가 일본 엔카풍 의 음계를 활용한 것을 지적하며 나온 말이다. 이 노래는 1964년 신성일 · 엄앵란 주연 의 영화 '동백아가씨' 의 주제가로서 표면적인 이유보다는 정치적인 이유에 의해 발표 1년 만에 금지곡으로 묶인 사례다.

1965년 한 · 일회담에 이어 취해진 국교 정상화 조치가 많은 국민들의 저항과 반일감정을 불러일으키자 공화당 정권은 이를 해소시키고 여론몰이의 도구로 삼기 위한 방편으로 이 곡을 금지곡으로 규정했다. 이미자 씨는 이 과정에서 경쟁 음반회사의 입김도 작용했었다고 훗날 회고하기도 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이 노래를 즐겨들었으며 심지어 이미자 씨를 청와대로 불러 공연할 때마다 신청했다는 후문이다. 특히 해금되기도 전인 19795월에 일본 후쿠다 총리의 방한을 기념하는 청와대 만찬장에서도 이 노래를 부르게 해 가수가 내심 어리둥절함을 느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70년대 청년문화 대두 속 금지곡 늘어 10월 유신을 전후로 한 1970년대는 누구보다도 청년들에게 갑갑하고 우울한 시기였다. 정치적·사회적으로 권력층은 통제의 강도를 더욱 높여갔다. 그러나 포크 음악과 그룹사운드로 대변되는 록음악은 새로움과 자유에 갈증을 느끼던 청년들에게 순식간에 퍼져나갔다. 한대수, 김민기를 위시한 포크 싱어들과 밴드들은 노래로 청년들의 목마름을 해소시켰다. 이들의 노래는 남녀 간의 사랑보다는 은유적이지만 사회 현실에 대한 발언과 자기 성찰을 담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경제성장의 목표 속에 국민들에게 한층 진취적인 기상을 요구했던 당시 정부에게는 이러한 노래가 곱게 비쳤을 리 없었다.

결국 1975'긴급조치 9' 에 의해 공연활동정화대책이 발표되고 국내 대중 가요 222곡 등이 금지곡으로 묶이는 초유의 사태가 일어났다.


신중현의 '미인' 

이 노래는 독특한 리듬과 멜로디, 개성적인 연주를 핵심으로 한 국내 록음악의 선구적 작품이다. 그러나 이 노래는 '한 번 보고 두 번 보고 자꾸만 보고 싶네' 라는 가사 서두 부분이 '자꾸만 하고 싶네' 라는 일각의 가사 바꾸기로 인해 성적 상상력을 불러일으킨다는 이유를 주로 하여 가사 저속과 퇴폐 판정을 받아 금지곡으로 지정됐다.

그러나 실상은 3선 개헌과 유신으로 공화당 정권의 장기집권을 빗대 대학가에서 풍자적으로 불렸던 것이 그 이유였다


자의적 기준의 금지 사유 남발

그건 너 / 이장희

이장희의 '그건 너' 는 사랑에 대한 허무함을 표현한 노래로 그 허무함의 원인이 사랑을 배신한 상대방에게 있음을 반복해 강조했다. 그러나 이 노래는 70년대 유신에 대한 괴로움이 집권 자인 '바로 너' 때문이라고 해석돼 퇴폐와 가사 저속이라는 다소 동떨어진 이유로 금지됐다.

 

왜 불러 / 송창식

송창식의 '왜 불러' 1975년 개봉한 하길종 감독의 영화 '바보들의 행진' 에 삽입된 곡이다. 영화 속에서 주인공이 장발 단속에 쫓기는 장면의 배경음악으로 쓰였는데 경찰 단속에 저항하고 나아가 정부 정책에 반발하는 것으로 해석돼 방송부적격으로 금지된 사례다.


김민기 작사 · 작곡의 '늙은 군인의 노래

평생을 군에서 복무하다 전역한 한 직업군인의 나라 사랑을 담은 곡인데, 현역 군인의 사기 저하를 우려한 국방부의 협조 요청에 의해 가사 불건전이라는 사유로 금지곡이 됐다. 이 노래는 이후 80년대 대학가 운동권에서 '투사의 노래' 라는 제목으로 개사돼 불 리기도 했다.

 

창작과 표현의 자유 되새겨 볼 필요

19876 · 29선언과 88서울올림픽으로 대중음악에도 해빙의 기운이 스며들었다. 심의 기준이 완화되면서 금지곡으로 묶였던 상당수의 대중가요와 팝송이 해금됐으며 이는 1993년 김영삼정 부가 들어선 이후에도 지속됐다. 더욱이 음반의 사전심의제도의 존폐를 둘러싼 논란은 1996년 헌법재판소의 사전심의 위헌 판결로 표현의 자유는 폭넓게 확대됐다. 60,70년대 정치적 . 사회적 으로 암울한 시기에 한줄기 빛과 같은 대중가요들이 빛을 발했다. 그러나 권력층에 의해 상당수의 노래들이 금지곡으로 낙인 찍히는 비극을 맞았다. 이제는 그 노래들 대부분이 금지에서 풀려 우리가 부담없이 청취할 수 있게 됐다.

참조도서 <한국 금지곡의 사회사>

 

프로필 사진
신의섭 기자

'정직,정론,정필'의 대한뉴스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