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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8월 11일 밤 10시(한국시간), 우리별 1호는 아리안 4호 발사체에 실려 성공적으로 우주로 발사되었다. 가로 35.2cm, 세로 35.6cm, 높이 67cm의 육면체 모양인 이 위성은 고도 1,300km의 궤도에서 지구를 한 바퀴 도는 데 110분이 걸렸다. 원래 5년으로 계획되었던 임무 기간을 훨씬 넘어 총 12년간 지구와 교신을 이어갔고, 2004년에야 비로소 그 긴 여행을 마감했다. 우리별 1호의 주요 임무는 지구 표면 촬영, 음성자료와 화상정보 교신 등의 실험이었다. 비록 48.6kg에 불과한 작은 위성이었고, 해외 대학과의 공동 개발이었지만, 이 위성이 갖는 의미는 절대적이었다. 한국이 우주과학기술 불모지에서 벗어나 우주 개발의 첫 발을 내딛는 상징적인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별 1호의 성공으로 한국은 세계에서 22번째로 국적 위성을 보유한 국가가 되었다. 더 중요한 것은 이 경험을 바탕으로 독자적인 위성개발 능력을 확보해 나갈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었다는 점이다. 우리별 1호에 참여했던 연구진들은 귀국 후 KAIST 인공위성센터에서 국내 인공위성 기술 전파의 핵심 역할을 담당했다.
제1회 국전은 1949년 경복궁미술관에서 열렸다. 심사위원장 고희동을 중심으로 선전 출신작가들이 많이 참여해 대통령상은 유경채, 국무총리상은 서세옥이 받아 서양화 출품작이 압도하는 현상을 보였다. 제2회 국전은 6·25전쟁이 끝난 1953년에 열렸으며, 1959년까지는 전쟁으로 인해 참여율이 적었고 서양화가 대부분의 상을 차지했다. 출품작의 성향은 1960년대까지 구상양식이 주류를 이루었으며 1970년대에는 화단에서 비구상양식이 우세했으며 외국에서 공부하고 돌아온 작가들이 늘어나 국제전에 출품할 수 있는 기회가 넓어짐에 따라 국제전의 참여경력이 중시되고 주목을 받게 되었다. 한편 원로작가들의 사망·은퇴 등으로 심사위원에 세대교체가 이루어지면서 국전폐지론이 조성되어 1980년 제30회를 끝으로 국전은 막을 내렸다.
예비고사는 1969학년도(시험 실시는 1968년)부터 1981학년도(시험 실시는 1980년)까지 실시한 국가 주관 대학입학시험이었다. 학력고사(學力考査)는 대학입학 학력고사라고 불리는 교육제도로 1982학년도 대학입시[부터 1993학년도 대학입시까지 고등학교 졸업자를 대상으로 대학에서 공부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지 알아보기 위한 시험이다. 학력고사는 대학 입학을 위한 시험이었다
1954년 11월10일 서울시내에서 교통정리대회가 열리고 있다.
1964년 도쿄올림픽은 10월 10일부터 24일까지 열렸다. 대한민국은 17개 종목에 154명을 파견해 은메달 2개와 동메달 1개를 따냈다. 정신조가 권투, 장창선이 레슬링에서 은메달을 획득했고 김의태가 유도에서 동메달을 기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