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대한뉴스]글:김윤옥 기자 사진:최경미 기자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사람인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자기 이탈과 회기 속에 사람이 되어가는 존재인 것이다.
실상과 허구가 어우러진 마술사의 품에서 갑자기 날아오르는 비둘기, 관객은 와~! 라는 감탄사를 연발하며 속임수인 것을 알면서도 재미있어한다. 실상이 자연이요 끊임없이 변화하는 허구가 문화라면 자연과 문화의 근저를 생명자본주의로 풀어 진정한 재미를 선사하는 이어령 석학이다.
이 시대의 석학인 이어령 선생을 대담하며 말씀의 깊이를 알 수 있는 글을 쓰고 싶었으나 한계를 느끼며 이어령 선생의 저 깊은 우물 속 울림의 소리만을 적을 뿐이다.
워낙 언론 매체에 잘 알려진 분이라 굳이 인터뷰할 생각이 없었다. 우연히 이어령 선생님의 팔순을 기념하는 출판기념회 때의 모습을 전해 듣고는 꼭 만나 직접 말씀을 듣고 싶어 취재요청을 했으나 거절이었다. 정월대보름 달을 보며 선생님과 마주 앉아 인터뷰하는 장면을 새겨 넣었다. 그리고 다음날 한자 한자 글을 써내려갔다.
그간 취재한 사회어른에 대한 소개와 함께 편지를 비서실에 전했다. 비서실의 연락을 받는 순간 유레카!(대박) 였다. 행사 때면 의례히 있는 화환과 축의금을 받지 않고 출판기념회답게 입구에서 사인한 사람에게 책을 주었다. 이 기념회에 참석한 모든 사람이 귀빈이라며 내빈소개도 축사도 없었다. 행사의 본래 취지를 제대로 살리며 모든 문화인들이 마음을 내어 동참하는 공동체문화를 보여주었다. 이번 호 사회어른으로 모신 이유다.
제목-이어령 선생
1934년 충남 아산 출생. 부여고교와 서울대 국문과 졸업. 1960년대 기성 문단에 비평을 가한 칼럼 ‘우상의 파괴’는 당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염상섭의 소설 <표본실의 청개구리>에서 청개구리의 배를 가르자 김이 모락모락 났다는 표현에 대해 개구리는 냉혈동물이라 배를 갈라도 김이 나지 않는다고 반박하면서 이런 작품이 무슨 우리나라 최초의 자연주의 소설이냐고 했다.
어려서부터의 남다른 감성에 사물을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었던 이어령 선생은 모두가 그러려니 하고 무관심으로 대하는 것들에 혼을 불어넣는 작업을 했다. 문학평론가, 중앙·조선 등 중앙일간지의 논설위원, 88서울올림픽 개막식의 굴렁쇠소년 퍼포먼스기획, 초대 문화부장관, 2010 유네스코 세계문화예술교육대회 조직위원회위원장과 소설가, 극작가, 중국·일본문화연구, 교수 등 일생을 바쳐 한국 문화를 연구하고 발전시키고 후학을 양성한 창조문화의 개척자다. 글 쓰는 작업은 어두운 방 혼자 자신과 직면하는 지극히 외로우며 원시적인 수공업이라고 한다.
제목-출판기념회의 이모저모
-지난해 12월 15일 호암아트홀에서 열린 출판기념회의 의미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개인의 팔순이나 출판회 같았으면 그렇게 요란하게 할 필요가 없었죠. 문학만이 아니고 음악, 미술, 디자인, 학술 등 다양한 분야의 나와 관련된 사람들이 모여 함께 우리가 동행했던 과거를 되돌아보고, 앞날을 생각하는 그러한 축제였기 때문에 내가 한 것이었지. 많은 사람들이 와서 실내장식을 하고 우리나라의 소위 국보급 문화재인 명창 안숙선과 무용가 국수호, 사물놀이의 김덕수, 육완순 무용원의 춤 공연 등 지인들이 와서 같이 그날을 즐긴 겁니다.
-그날 준비한 도시락은요
도시락으로 대접을 한 것은 적어도 여기 온 사람들은 손님으로서 단체 획일주의가 아니라 한 명 한 명 대접한다는 뜻에서 도시락을 한 겁니다. 케이터링 같은 경우에는 200명이든 300명이든 서로 숟가락 하나 더 얹어 놓고 내 밥이 아닌 여러 사람의 밥을 먹지만, 도시락은 모두가 앉아서 자기 것을, 그것도 굉장히 디자인된 정성껏 땋은 실로 묶은 도시락을 가지고 퍼포먼스를 한 겁니다. 도시락 300개가 놓여있는 그 식장자체가 하나의 설치예술 공간처럼 되고 거기에 종이접기 전문가가 백 마리의 금붕어를 만들고 디자인 전문가들이 벽에다가 붙여 여태까지 보지 못한 장대한 실내 장식을 만들어 낸 거죠.
-동행자라는 말씀을 했습니다
이렇게 디자인라든가 음악, 미술, 춤 등 각계 전문가들이 와서 함께 축제를 벌인 것은 돈을 몇 십억 들여도 안 되는, 돈만으로는 할 수 없는 문화의 동행자들이 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모두가 나와 함께 동행자의 축제를 만들자는 것이었어요. 그렇기 때문에 누가 누구를 축하하는 축하가 아니고, 함께 축하하는 것이니까 화환을 받지 않았던 것이죠.
제목-한국인의 쏠림현상
남이 하는 대로가 아닌 이어령 선생만이 할 수 있는 독특한 출판기념회를 보며 물었다.
- 갓길이라는 언어 등 많은 분야 문화의 창조자인데 한국의 쏠림현상과 냄비현상을 어떻게 보는지요
우리 민족은 극단적인 두 개의 성향이 하나로 합쳐진 데 있어요. 말 타고 달리던 몽골족 기마민족이 백제 신라로 오면서 농경민으로 급속히 변화한 민족이며 이렇게 유목민인 기마족이 농경민으로 완전히 정착한 예는 전 세계적으로 찾아보기 힘듭니다.
그래서 우리문화를 농경문화라고 하지만 그 밑에 깔려있는 것은 기마민족의 특성, 항상 우리의 핏속에는 억압되어 있는 넓은 초원을 말 타고 달리던 기상과 또 끝없이 밖으로 나가려는 그런 방랑적인 요소들이 약 이천년 가까운 동안 농경문화를 하면서 억압되어 있었던 거죠. 그래서 개인이든 집단이든 어려움이 닥치면 그 같은 다이나믹한 역동성이 발휘되고 우리도 깜짝 놀랄만한 활력을 보이는 겁니다.
이것을 나는 몽고반점 제국군이라는 말로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 빨리빨리의 기마족과 천천히 쉬엄쉬엄이란 농경족으로 마치 자동차의 액셀과 브레이크 문화가 결합된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이 두 개가 어긋나면 거의 파멸에 가까울 정도의 부정적인 힘으로 나타나고 이것이 잘 어울리면 그동안 우리가 쌓아왔던 민주화와 경제적인 그 산업화와 같은 힘이 생겨나는 것이죠.
지금까지는 그게 잘 어울려 극단적으로 투쟁하면서도 잘 어울리게 할 수 있는 중용의 힘이 있었는데 요즘 들어서는 한쪽으로 너무 쏠리는 사회적 갈등, 서로 분리되는 거 그리고 개인과 집단의 이기주의 등 그 동안 잘 되어왔던 중용의 미가 사라져 참을성도 없어지고 빈곤도 절대빈곤에서 상대빈곤으로 가니까 상실감은 더 커지는 이런 모순 속에 있어요.
한반도 5천년 역사 중 요즘은 농사로 치면 결실을 맺는 때이고 유목으로 보면 새끼를 낳는 산고의 고통을 치른다고 봅니다. 정말 이제는 우리가 이제까지 살아온 방식이 아니고, 우리가 살 수 있는 환경을 우리 아들과 손자들에게 물려줄 수 있었을 때 우리들이 지금까지 고생해 온 것이 보람이 될 것입니다.
삶과 죽음
뜬금없이 가장 묻고 싶은 것을 물었다.
-죽음은 모두가 감수해야 하는 것입니다. 죽음을 생각하면 어떤 것이 연상되는지요.
캄캄한 어둠속 개구리들이 막 울어댈 때 돌을 던지면 일순간 조용해졌다가 다시 울어댈 때 또 돌을 던지면 조용해져요. 막 울어대다가 일순에 멈추는 그 정적의 놀라움 속에는 어떤 삶이 죽음에 직면하는 것 같은 고요가 있죠. 어려서부터 죽음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어요.
자다가 갑자기 일어나 엄마가 돌아가시면 어쩌나하는 걱정에 주무시는 엄마 코 밑에 손도 대보고... 인간은 결국 죽는 존재이고, 우리가 무엇을 하든 결국은 영원한 것이 없는 순간 속에 살아가는 삶이 어린마음에도 너무 두렵고 억울했어요. 그래서 ‘뭔가 흔적을 남겨야겠다. 뭔가 말을 해야겠다’ 하고 지내온 것이 글이 되고 대학 강단에서 내 생각을 펼치는 그러한 삶을 살아온 거죠.
즉 죽음은 사실상 우리에게는 생명인 것입니다. 죽음은 영원히 체험 할 수 없지만, 자기 생을 통해서 죽음의 실체를 조금씩 배워가는 것이며 가까운 이들의 죽음을 통해 학습되어 간다고 말할 수 있겠죠. 사람의 의식은 끊임없는 자기이탈과 회기를 통해 성장합니다. 언젠간 우리가 죽게 된다는 사실, 아주 평범하고, 영원한 누구나 피할 수 없는 이 진리를 조금이라도 가슴속에 새기면 이보다 세상은 좀 더 아름답고, 좀 더 평화로울 겁니다.
취재 후기
1시간의 인터뷰, 이어령 선생님의 얼굴에는 웃음이 없었으며 기자가 끼어들 여지도 없었지만 선생님의 거침없는 심연의 말씀은 안개가 낀 듯 뿌옇던 나의 정신세계를 아침이슬같이 맑게 만들어주었다. 한정된 지면에 미처 못쓴 이야기들은 다음을 기약하며 문화부문에 있어서 국민이 주는 훈장이 있다면 이어령 선생님에게 국민의 이름으로 ‘대한민국 문화의 영원한 금메달’을 드리고 싶다.
본 기사의 전문은 대한뉴스 2014년 3월호(www.daehannews.kr)에 자세히 나와 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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