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대한뉴스]
참다운 생명이란 자신을 아끼고 충실하게 하는 데에서 유지되고 존속할 수 있다.
“국가를 다스리거나 생명을 보존하거나 크고 작은 모든 일을 막론하고
가장 중요한 것은 낭비와 사치를 줄이는 ‘아낌’의 원리다.
‘아낌’ 이야말로 덕을 쌓는 첫걸음인 것이다.
검소는 도를 따르는 첩경
‘治人事天(치인사천)에, 莫若嗇(막약색)이니라. 夫唯嗇(부유색)을, 是謂早服(시위조복)이니, 早服(조복)을 謂之重積德(위지중적덕)이니라. 重積德則無不極(중적덕즉무불극)하고, 無不極則莫知其極(무불극즉막지기극)하고, 莫知其極(막지기극)이면, 可以有國(가이유국)이니, 有國之母(유국지모)는, 可以長久(가이장구)니라. 是謂深根固底(시위심근고저)요 長生久視之道(장생구시지도)니라.
사람을 다스리고 하늘을 섬김에, 아끼는 것처럼 좋은 것이 없다. 대저 오로지 아끼는 것, 이를 일러 일찍 준비함이라 하니, 일찍 준비함을, 이를 일러 덕을 거듭 쌓는다고 한다. 덕을 거듭 쌓으면 이기지 못함이 없고, 이기지 못함이 없으면 아무도 그 끝을 알지 못하고, 아무도 그 끝을 알지 못하면, 이로서 나라를 가질 수 있으니, 나라를 가지는 어미는, 이로서 길고 오래간다. 이를 일러 근본과 뿌리를 깊고 튼튼하게 함이요, 길이 살고 오래 보는 길이라 한다.’
노자의 무위자연 철학과 이를 실천하는 ‘아낌(嗇)’ 원리 사이의 관계를 간결하고 명료하게 설명한 것이다. 화려한 문명을 과시하는 도시의 생활은 사치를 삶의 목표로 삼고 낭비를 지고의 가치로 여긴다. 하지만 자연에 의존하며 소박하게 살아가는 농촌의 삶이란 절약과 내핍(耐乏)을 생활의 원리로 삼는다. ‘색(嗇)’은 원래 곡식을 거두어들인다는 뜻이다. 거기에서 아끼고 쓰지 않는다는 의미가 파생되어 낭비를 적게 한다, 필요치 않은 것을 없앤다, 검소하다 등의 뜻을 가지게 되었다.
노자는 이런 농촌생활이라는 현실적 기반 위에서 아낌, 즉 ‘색’의 정치철학으로 성인의 무위정치를 구체화시킨다. 또한 그것은 낭비와 사치를 배격하는 검소함의 중시, 그리고 모든 인위적이고 가식적인 문명의 잉여를 잘라내 버리는 소박함의 강조였다. 그리하여 쓸데없는 잉여를 덜고 또 덜며 낭비와 사치를 없애고 욕망과 충동을 줄이는 것이다.
따라서 크게는 국가의 통치를 유지하는 것에서 작게는 생명의 장구함을 유지하는 것에 이르기까지 모두 이 ‘아낌’이라는 원리를 떠날 수 없으며, 모두 이 ‘색(嗇)’의 원리에 따라 행동해야 한다. 이처럼 ‘아낌’이란 사람을 다스리거나 하늘에 대함에 있어서 무엇보다 중요한 원칙이다. 오로지 아낄 수 있어야만 덕을 두터이 축적할 수 있으며, 그 경우 우리는 헤아릴 수 없는 생명력과 역량을 지니게 된다. 그러므로 이 원리를 깨닫고 실천하는 것만이 진정하게 오래 살 수 있는 길이라고 노자는 말하고 있다. 오직 한결같이 검소하기만 한 것, 우리는 이것을 빨리 도에 따르고 복종하는 것, 또는 불의의 사태에 앞서 미리 준비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또한, 빨리 도에 따르고 일찍 준비하는 것을 우리는 덕을 거듭 쌓아 부단히 축적하는 일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렇게 덕을 거듭해서 쌓는 사람은 자신의 생명력과 가능성을 허비하거나 남용하는 일이 없다. 그러므로 그는 생명력과 가능성이 충만하여 어떤 일이라도 충분히 감당할 수 있고 이룩하지 못하는 일이 없다. 이처럼 이룩하지 못하는 것이 없다면, 그러한 사람은 마치 그 한계를 알 수 없는 근원적인 무위자연의 도처럼 무궁한 가능성을 지니고 무한한 역량을 갖는 것이다.
이렇게 무궁한 가능성과 무한한 역량을 지녀서 한계를 알 수 없는 사람은 국가를 보호하고 유지하는 책임을 감당할 수 있다. 그는 국가를 보호하고 유지하는 근본원칙 즉 아낌의 원리를 깨닫고 실천하기 때문에 어떤 곤경과 난관도 극복한다. 그리하여 국가를 오래도록 보존할 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노자의 철학이 단순한 관념의 유희가 아니라, 현실의 생활조건을 항상 주도면밀하게 고려하며 실제생활에 강력하고 지속적으로 대처하려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노자가 제시한 ‘아낌(嗇)’이란 개념은 재물의 아낌이 아니라 오히려 정신적인 아낌에 더 중점을 두고 있다. ‘아낌’은 바로 역량을 배양하고 축적하며, 기초를 탄탄하게 간직하고 생명력을 충실히 하는 것이다. 이러한 노자의 소박한 생각은 기술의 눈부신 발전과 오용에 의해 자원을 낭비하고 자연을 파괴하며 자신의 존재 기반인 생태계조차 부정하는 오늘의 현대문명에게 던지는 근본적인 경고이며, 새로운 충고이자 대안이 될 것이다.
지금 우리가 욕망과 충동에 의해 마음대로 허비하는 자원과 자연이란 결국 미래의 세대, 즉 우리의 후손을 위한 유산이다. 따라서 우리의 산업과 문명은 그들에게 부채를 지고 있는 것이다. 인류가 참으로 ‘장생구시(長生久視)’하고자 한다면 이제까지 지녀 왔던 삶의 방식을 반성하고 검토해야만 할 것이다. 노자가 말했듯이 참다운 생명이란 다름 아닌 자신을 아끼고 충실하게 하는 데에서 유지되고 존속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본 기사의 전문은 대한뉴스 2014년 6월호(www.daehannews.kr)에 자세히 나와 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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