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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탐방

(주)신동 김용구 회장

51%의 기적, 자원은 국력이다!

[인터넷 대한뉴스] 글 김윤옥

 

 

 

6월 15일부터 21일까지 박근혜 대통령의 중앙아시아 3개국 순방 길, 눈에 띄는 기업이 있었다. 중소기업인 (주)신동 김용구 회장은 중소기업중앙회 회장 , 제18대 국회의원을 역임하며 일찍부터 해외로 눈을 돌려 그 중 가장 중소기업에 수출 기회가 많은 우즈베키스탄을 선택했다. 김 회장은 동방예의지국 후손답게 정과 신뢰를 중히 여기는 마음으로 10여 년간 교류하고 있다. 그 나라 대통령과의 친분은 물론 많은 각료들과의 신뢰와 우정이 드디어 결실을 맺은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생산이 중단된 텅스텐 매장량이 엄청난 광산을 개발하는 합작회사(Uk-Kor Tungsten)를 만들고 끈질긴 노력과 지혜로 우즈베키스탄 역사상 유례가 없던 51% 지분으로 운영권까지 확보한 것이다.

 

 

특별기획

 

 

우즈베키스탄(이하 우즈벡) 순방 길에 동행한 여러 개의 기업 중, 정부와 기업이 힘을 합쳐 추진해 간다면 국익에 큰 도움이 될 만한 기업으로 (주)신동을 선정했다. 기업 대 기업이 아닌 국가 대 기업과의 협상, 그것도 중소기업이 우즈벡 정부를 상대로 의사결정권을 가진 1%를 얻어냈다는 것은 참 신선하며 귀감이 되는 일이다. 내가 뭐 기사거리냐며 한사코 만류하던 김 회장, 1%의 비결을 알려달라는 몇 차례의 요구에 취재에 응했다.

 

- 이번 순방의 성과는 무엇입니까

 

“순방 중인 17일 우즈베키스탄 수도 타슈켄트에서 우즈벡 국가지질광물자원위원회와 나보이주(州) 사우트바이 텅스텐 공동개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습니다. 2013년 5월 중소기업으로는 처음으로 우즈벡 국가와 한국의 중소기업이 그 나라의 광물자원을 개발하는 합작회사를 설립했습니다. 대기업은 명성과 풍부한 자금으로 해외에서 우리나라의 부존자원인 석유나 가스 등을 확보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만 중소기업으로서는 저희가 처음입니다. 6년 전부터 지금까지 탐사한 바에 의하면 매장량은 1,700만톤(WO3/0.57%)에 달하고 23년 간 채굴했을 때 텅스텐 값어치는 미화 20억 달러(약 2조원) 규모이며 그 외 금, 은, 몰리브덴 등의 부산물 가치는 5억 달러(약 5천억원)로 추정합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텅스텐은 생산이 중단된 금속광물로 전량 수입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과 이명박 대통령의 우즈벡 순방 때도 동행했었습니다만 이번 박근혜 대통령의 순방 성과는 어느 때보다도 두 나라간‘전략적 동반자’관계가 더욱 공고히 되고 양국의 신뢰가 높아졌다는 것입니다.”

 

- 텅스텐은 어떤 광물이며 주로 어디에 쓰이나요

 

“워낙 단단하고 3,400℃의 고열에서 녹는 금속이라 미·소 냉전 시대에는 주로 무기 제작에 쓰였으며 지금은 백열전구나 진공관의 필라멘트 같은 전기 분야와 다이아몬드 다음으로 강도가 좋아 기계공구 제작 등 산업용으로 사용되는 희유(稀有)금속입니다. 우리나라는 텅스텐을 연간 5천 톤 전량 수입해서 쓰고 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자원 확보 경쟁이 활발한 요즘 우즈벡과 사업이 예정대로 진행된다면 국제시세 변동에 상관없이 안정적으로 원자재를 확보할 수 있습니다. 2012년 국정감사 때 한국광물자원공사가 제출한 희유금속 비축량 자료를 보면 비축량이 목표치에 많이 부족한 것으로 나옵니다. 산업 근간의 광물 비축량이 적을수록 외풍에 많이 흔들릴 수 있습니다.”

 

 

 

우즈베키스탄과의 인연

 

우즈벡의 수도는 예전 중앙아시아 실크로드 교역의 중심지였던 타슈켄트다. 면적은 한반도의 2배이며 인구는 약 2천8백만명이다. 130여 소수민족 중, 1937년 소련 스탈린의 강제이주 정책에 의해 극동에서 생활 기반을 박탈당하고 중앙아시아로 이주한 고려인(당시 17만 명)이 있다. 고려인들은 한국인 특유의 부지런함과 끈기로 여름은 40도, 겨울은 영하 40도가 되는 척박한 땅에서 이주 전에 챙겨갔던 쌀종자를 재배해 농사에 성공했다.

아무 것도 없는 동토의 땅에 내던져진 고려인은 땅굴 파고 움막을 지어 이주 생활을 시작하면서 목화농사가 주류였던 곳에 농작물 재배를 보급하고, 높은 교육열로 후손들을 사회지도층에도 진출하게 했다. 소수의 고려인들이 우즈벡에서 인정받는 이유다. 이 영향은 대한민국에도 우호적인 인상을 남겨 한국을 경제성장의 롤모델로 삼으며 카리모프 대통령은 무려 7번 한국을 다녀갔다. 우즈벡은 19세기 러시아 제국의 남하 정책에 의해 침략을 받아 러시아의 보호령이 되었고, 소련이 탄생한 직후인 1920년에 완전히 합병되었다가 1991년 12월 8일 독립했다.

그때 우즈베키스탄 공산당 서기장으로 있던 이슬람 카리모프가 우즈벡의 대통령이 되어 현재까지 23년 간 집권하고 있다. 그 당시 우즈벡은 소련의 정부 방침에 따라 비행선 제조업과 면화 재배가 주를 이룬 반면 생필품을 생산하는 산업기반 체계는 전혀 잡혀있지 않았으며 주식인 빵과 밀가루의 저장량은 오직 10~15일분 정도였다. 2천2백만 명의 생존문제가 달려 있었다. 더러 장기집권으로 인한 불만이 있지만 경제는 매년 8% 정도 성장하여 현재 GDP는 1,750달러(2012년 기준) 이며 우리나라와의 교역은 2013년 말 기준 수출 약 2조150억원, 수입 약 542억원을 기록하고 있다.

 

 

- 초기 진출 시 이야기를 해주세요

 

“중소기업중앙회(당시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 회장 자격으로 2004년 처음 방문했습니다. 우리나라를 롤모델로 생각하는 나라에서 서로 간에 윈·윈 할 수 있는 것이 많았습니다. 중소기업제품의 판로를 모색하던 연합회에는 광활한 시장이었으며 우즈벡 입장에서는 투자자도 유치하고 기술을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였죠. 서로 맞을 만한 기업을 소개해 주고「우즈베키스탄상의」명예고문으로 자문도 많이 해주었습니다. 지금은 한 400여 업체가 진출해 있습니다. 우리나라 제 3공화국 시절 국민들의 배고픔을 해결해주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그

당시 상황과 비슷했습니다. 경제성장을 주도하던 나라에 중소기업 사장들의 연합회 회장인 제가 가니 어느 정부 각료보다도 환대해 주었습니다. 그 때의 인연이 계속 유지되며 사업에 대한 많은 제의가 있었습니다. 거대한 항공산업관련 공장과 목화밭이 전부였던 곳에 사회기반시설 및 생활에 필요한 공장이 새로 들어서며 얼마나 좋은 기회가 많았겠습니까. 허나 저는 광산업을 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공인의 자격으로 그 나라를 방문했기에 각국의 정보를 공유해 사업 상 맞는 곳이 있으면 소개해주었습니다.”

 

외국 민간인에게 주는 최고의 우호훈장‘도스트릭(Dostlik)’수상

 

김 회장은 2011년 우즈벡 독립 20주년 기념식에서 도스트릭(Dostlik)훈장을 받았다.‘도스트릭’은‘우정’이란 뜻이며 외국인에게 주는 최고훈장으로 대통령이 제안해서 만든 권위 있는 상이다. 중기중앙회 22대 회장 재임(2004∼2007) 시부터 가스와 원유 같은 천연자원을 함께 개발하고 도로와 공항, 내륙공업단지 같은 거대한 사회기반시설 사업을 양국이 협력하는 데 기여하는 등 상호 이해와 다방면의 협력 증진에 기여한 공로로 이 상을 받았다. 당시 대한상공회의소 손경식 회장, 대한항공 조양호 회장과 동반 수상했다.

 

2013년 카리모프 대통령의 7번 째 방한

 

이명박 정부 말기 카리모프 대통령이 방한했다. 카리모프 대통령은 무엇보다도 고려인을 신뢰하고 사랑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가 타고 다니는 전용기도 고려인 인 사장이 직접 조종을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자유당 부패정권을 보다 못한 군부세력이 개입해 제3공화국을 건설하여 경제발전을 이루었듯이, 우즈벡의 카리모프 대통령은 독립주체세력으로 그 나라 실정과 문화에 맞는 정치를 하는 것이 외부에는 인권유린으로 비쳐질 수도 있다.

우리나라 경부고속도로 건설 시 얼마나 많은 야당 인사들이 드러누워 반대를 했던가. 허나 세월이 흐른 지금은 경부고속도로 건설이 경제발전의 물꼬였다는 데 아무도 이의를 달지 않는다. 대통령 방한을 맞아 주한 우즈벡 대사는 17년 째 한국에서 근무하며 오랜 친분 관계인 김 용구 회장에게 도움을 청한다. 대통령께서 오시니 좋은 프로그램이 없겠느냐는 거였다. 이에 김 회장은 개인 비용을 들여 만찬을 하고 사진집을 선물했다. 이런 좋은 유대관계가 오늘날 한국기업의 진출 교두보가 된 것은 아닐까.

 

“그간 중기중앙회 회장으로 국회의원으로 우즈벡에서 환대도 많이 받고 국가 간 사업도 활발히 진행하며 인간적으로 내 집안에 귀한 손님이 오는 것 같았습니다. 그 분이 기뻐할 일이 무엇이며 국익을 위해 방한하니 어떤 것을 기획할까 궁리 많이 했습니다. 대사와도 상의하여 한국과의 경제협력이 가장 중요한 사안이라 조용히 제가 아는 경제인 몇 분을 초대하는 자리를 마련했는데 어떻게 소문이 났는지 롯데호텔의 200석이 모자랐습니다.

그리고 귀한 시간을 내서 행사에 참여하는 만큼 그 나라의 문화를 알리기 위해 대사관에서는 행사장 곳곳에 우즈벡 그림을 걸었습니다. 선물로는 비용과 노력이 들더라도 여태까지 받아보지 못했을 카리모프 대통령의 사진집을 준비했습니다. 대통령은 본인의 기념집을 만들어주니 좋고 우즈벡에 관심있어 만찬에 참석한 한국의 경제인들에게는 그 나라 실상을 아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역시 사진집은 예상대로 반응이 좋았습니다. 우즈벡에 진출하려는 한국 기업인들이 선물로 가져가면 현지인들이 어떻게 자기네 나라 대통령 사진집을 만들어 가져오느냐며 반가워했답니다. 아주 보람 있는 일이었습니다.”

 

 

 

 

합작회사(Uk-Kor Tungsten) 설립

 

- 어떻게 합작회사를 설립하게 되었는지요

 

“사실은 그간 여러 사업 제의가 많았습니다만 아무 사업이나 욕심내서 되겠습니까? 웬만한 것은 다른 기업에 소개를 하거나 연결해 주었는데, 어느 날 제가 잘 알고 관심있는 자원개발을 이야기하기에 귀가 솔깃하기도 하고 국가에 꼭 필요한 사업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허나 처음에는 이미 다른 곳에서 손을 댄 광산을 제안하기에 거절하니 다시 사우트바이 지역을 권했습니다. 이 지역은 이미 소련과 우즈벡 정부에서 1980년부터 20여 년간 146,000m를 시추탐사하여 텅스텐 매장량이 충분한 경제가치가 있는 곳이라고 판명된 곳입니다. 대한민국의 (주)신동에서는 2008년 사업을 구상하고 2010년부터 돌다리도 두들겨보고 가라고 사우트바이 지역 확인시추 탐사실시를 했습니다. 2013년 예비타당성 조사가 완료된 시점에 합작회사를 설립한 것입니다. 2004년부터 우즈벡과 정을 주고받으며 중소기업도 성실하게 꾸준히 노력하니 이런 좋은 결과가 있습니다. 또한 고려인이라 불리며 타지에서 부지런하고 성실하게 황무지를 개간하며 살길을 개척한, 우즈벡에 좋은 이미지를 남긴 선조들 덕이기도 합니다.

 

김 회장은 경북 안동이 고향이며 성균관대 법률학과를 졸업했다. 중소기업과 관련하여 50년 이상 한 분야에 매진해 오고 있다. 중소기업을 손수 일구며 자원의 소중함을 알아, 20년 전 석회석광산을 인수해 (주)신동 회장으로 있다. (주)신동은 광산개발에서 제품생산까지 전 공정을 자체적으로 하며, 임직원 70여 명에 년 매출이 200억원이 넘는다. 주요 경력을 보면 대한광업협동조합 이사장, 제22대 중소기업중앙회 회장, 제18대 국회의원을 하며 일자리창출및중소기업경쟁력강화특위 위원장, 중소기업진흥회 회장 등 중소기업 분야 요직을 두루 거쳤다.「중소기업이 흥해야 한국이 산다」,「김용구4.0시대 중소기업이야기 9988」책도 냈다.

강명진 여사와의 사이에 1남 2녀를 두었다. 강 여사는 호적이 국가지정문화재 사적 제497호인 이화장(서울특별시 종로구 이화동 1번지)이다. 8·15광복 직후 이승만 박사가 미국생활을 청산하고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 거처할 집이 없자 당시 갑부였던 강 여사의 할아버지께서 그 집을 기증한 것이다. 아들 김형중은 자원하여 강원도 정선군 신동면 탄광 현장에서 2년 간 몸으로 겪으며 수업을 마치고 본사에서 아버지의 가업을 잇고 있다. 김 회장은 초등학교 졸업 후 객지로 나와 바쁜 일상 속에도 고향의 향수를 간직하다 뿔뿔이 흩어져 있던 조상의 묘를 모두 고향인 안동, 광산 김씨 문중 선산에 모셨다. 가문 중의 으뜸은 효요 뿌리를 잊지 않는 것인데 엄마 품속처럼 받아주는 종친회에 감사를 드리며 늦게나마 후손의 도리를 한 것 같아 기쁘다는 김 회장이다.

 

- 중소기업중앙회 회장과 국회의원을 하며 보람 있었던 일은

 

“중기회원이 270만 여명인데 부도가 나면 모든 것이 하루아침에 다 날아가 노숙자가 아닌 노숙자가 되는 것을 보며 회원들의 폐업과 불의의 사고에 대비한 일종의 사회안전망 구축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습니다. 저축이나 보험과 달리 공제금을 법으로 보호받아 사업이 망해도 그간 부은 공제금은 보장받을 수 있는 작업을 했습니다. 이것이 다음 대에서 미래의 생활안정자금을 보장하는‘노란우산공제회’로 탄생한 것입니다. 사업 하는 사람은 알겠지만, 어려움이 닥쳤을 때 숨을 쉴 수 있는 숨통을 만들어 재기할 기회를 갖게 만든 것입니다. 18대 국회의원일 때는 법 개정을 통하여, 회원 자격을 개방해 많은 중소단체가 조합회원으로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했습니다. 또한 상암동에 DMC(Digital Media Center:디지털 케이블 방송 및 멀티미디어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건립을 위한 부지확보도 의미 있는 일이었습니다.”

 

- 가장 기뻤던 일이 있다면

 

“중소기업으로 우즈벡 국가와 합작회사를 설립하고 51% 운영권을 확보했을 때입니다. 우즈벡 측에서는 정부가 수립된 후 타국 기업에 50% 이상 지분을 준 적이 없기에 정부에서 무척 고민을 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절친한 아지모프 제1 부총리도 반대했습니다. 1% 때문에 정말 많은 협상과 좋은 제의가 있었지만 양보할 수 없어서 설득에 설득을 했습니다. 이 일은 나에게도 중요하지만 앞으로 국가 간의 선례가 될 수 있기에 1% 대한민국 자존심의 명운을 걸었습니다. 근 10여 년간 그들과 쌓은 우정과 신뢰가 헛되지 않은 것 같아 더욱 기뻤습니다.”

 

취재 후기

 

한국산업개발연구원 백영훈 박사님을 뵙고 박근혜 대통령의 중앙아시아 순방에 관한 대화를 하던 중 김용구 회장에 대한 말씀을 들었다. 대통령의 해외순방이 우리나라 기업에 어떤 도움을 주는지 기사를 기획하며 (주)신동에 관심을 가졌던 기자로서는 여간 반가운 일이 아니었다. 백 박사님은 덧붙여 말씀하기를“그 분은 내가 존경하는 분이요”라고 해 조금은 의아했다. 그간 만나 뵈며 누구를 존경한다는 말씀은 거의 못 들어봤기 때문이다. 취재를 마치며 조금은 이해가 되었다. 김 용구 회장의 더불어 살려는 삶과 나라를 생각하는 마음이 평생 국가의 경제발전을 도모하는 백 박사님의 마음을 움직인 것이다.「김용구 4.0시대 중소기업이야기 9988」책에 보면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관계를 부잣집 혼사에 빗댄 김 회장의 아주 절묘한 이런 구절이 있다.‘부잣집에서 혼사가 있을 때 혼자서 다 장만해 손님을 초대하는 것과 마을의 김서방 박서방에게 일감을 주어 정성스레 같이 혼사를 준비하며 마을잔치로 승화하는 것 중 어느 것이 더 좋은가.’대한민국 여기저기서 마을 잔치가 많이 열리길 기대해 본다.

 

 

 

 

 

 

 

 

 

본 기사의 전문은 대한뉴스 2014년 8월호(www.daehannews.kr)에 자세히 나와 있으며 

교보문고, 영풍문고를 비롯하여 전국 지사·지국에서 구입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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