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대한뉴스] 글 조선영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아리랑은 한국인이라면 자연스레 흘러나오는 노래이다.
가슴속에 맺힌 한을 울부짖으며 슬프게 부르기도 하고 흥이 나서 부르기도 한다.
우리민족의 힘든 나날들 속에 모두 아리랑을 부르며 서로를 지켜왔고 일하다가 지칠때, 고향생각이 날 때도 아리랑을 부르며 위안을 삼기도 한다. 그리고 남북한이 하나가 될 때 서로 어깨동무를 하고 부르는 아리랑은 진정 우리의 노래다.
인사동 쌈지길 플래시몹 ‘This is Arirang'
얼마 전 youtube 를 통해 인사동 쌈지길 플래시몹 ‘This is Arirang' 을 보았다.
플래시몹이란 미리 정한 장소에 모여 아주 짧은 시간 약속한 행동을 하고 바로 흩어진다는 신조어이다. 한 외국인이 세계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아리랑을 한국 방문지 어디에서도 심지어 관광의 거리인 인사동에서도 들어 볼 수 없었다는 이야기를 한국인 대학생 친구에게 했다고 한다. 그 한국인 친구는 그 말에 인사동 거리에서 아리랑을 연주해보자는 의견을 친구들에게 전해 하나 둘씩 모여 만들었다고 한다.
2013년 3월 1일 인사동 쌈지길
한 여대생이 인사동 쌈지길 중앙에 서서 바이올린으로 아리랑을 연주하기 시작하고 주변에서 비올라, 첼로, 목관이 합류하고 지휘자도 보인다. 그리고 쌈지길 건물 2층에서는 관중들 사이에 금관악기 연주자들과 한복을 입은 수십명의 합창단들이 등장해 아리랑을 부르고 온 관중들이 함께 애국가로 끝을 맺는다.
이때 현장에서 구경했던 사람들은 자신들이 1919년 3월1일에 거리로 뛰쳐나온 독립운동가같았고 지금까지 가장 아름다운 아리랑과 애국가였다고 말한다. 우리 젊은이들이 보여준 이 영상은 조회수 150만건을 넘었다.
이렇게 아리랑은 우리를 하나로 모으는 힘이 있다.
아리랑의 탄생
아리랑의 기원과 발생의 시기는 천년 신라의 멸망을 아쉬워하는 뜻이 담겨 있는 아리령 고개를 나타낸다는 신라 시대때 부터 대원군이 경복궁을 중건할 무렵 전국에서 징발된 부역꾼이 고향에 두고 온 연인을 그리워하면서 부른 것이라는 흥선대원군 때까지의 설등 여러이야기들이 있고 각각이 타상성도 있지만 딱히 이것이다 단정하기 어려운 이유는 문헌에 기록되어온 노래가 아니고 만든 사람이 정확히 있는 것도 아닌 입에서 입으로 전해온 노래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역마다 그 지역을 대표하는 아리랑이 있고 조금씩 다른 모습을 가지고 있다. 이렇게 지역마다 다른 모습의 아리랑이 지금 우리에게 불리는 누구나 부르는 아리랑의 모습이 되고 기록할 악보가 만들어진 것은 1926년 우리나라 영화감독 나운규의 무성영화‘아리랑’의 영화주제곡으로 편곡되고 부터이다.
무성영화 나운규의 아리랑
무성영화 아리랑이 제작,상영될 때의 사회적 환경은 일본이 만주침략의 계획 속에 우리민족정신과 문화말살정책을 펴던 시기로 우리의 예술가들은 그것을 간직하기위한 소설, 영화 음악등의 작품들을 창작하던 시기이기도 하다. 무성영화 아리랑도 그 속에서 탄생하게 된다. 영화 아리랑의 내용은 주인공 영진이 3.1 운동에 가담하여 일본군에 체포돼 고문 끝에 고향으로 돌아오게 된다.
고향에서 친일파지주의 소작을 하며 사는데 그 지주의 아들은 영진의 여동생 영희를 좋아하고 영희는 오빠의 친구인 윤형구를 사랑한다. 마을의 잔치가 있던 어느 날 친일파 지주의 아들이 영희를 범하려 하고 연인 윤형구와 싸움을 하게 된다. 그 현장에 있던 오빠 영진은 들고 있던 낫으로 지주의 아들을 죽이고 경찰에 체포되어 가며 ‘여러분 울지마십시오 나는 지금 이 조선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머리가 이상해져 사람을 죽였습니다...... 여러분 울지마십시오 내가 사랑하던 아리랑을 불러주십시오’ 라고 일제치하에 우리민족이 겪은 울분과 고통을 대변하듯 말하는 대목에서 아리랑이 불리워진다. -조선 민요 아리랑
이 영화는 1926년 10월1일 우리나라사람이 유일하게 경영하던 극장 단성사에서 개봉했는데 개봉 첫날부터 인산인해를 이루고 전국으로 상영되었다고 한다.
영화를 보며 감동에 벅차서 목놓아 우는 사람들, 아리랑을 합창하는 사람들, 조선독립만세를 외치는 사람들등 관객들이 받은 감동은 이루말 할 수 없었다고 한다.
이렇게 영화를 통해 전국으로 퍼진 아리랑은 지금의 아리랑과 가장 유사한 것으로 남과북 모두가 부르고 스포츠에서 단일팀이 구성되면 부르는 우리민족의 제2의 애국가가 된 것이다.
아리랑 환상곡
아리랑 환상곡은 세계적으로 널리 연주되는 관현악곡 아리랑으로 1976년 북한의 작곡가 최성환이 작곡한 것이다. 2008년 뉴욕필하모니 오케스트라의 평양공연에서 아리랑 환상곡을 앙코르곡으로 공연이 마무리될 때 처음부터 경직되어있던 북한 관객의 굳은 얼굴이 풀어져 있고 기립박수와 무대를 쉽게 떠나지 못하던 지휘자와 단원들의 모습을 실황을 통해 볼 수 있었다.
이렇게 음악은 언제 어디서나 하나가 될 수 있는 위대한 힘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아리랑은 우리민족의 한민족임을 의미하는 노래이기도 하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그들이 서로 하나가 된 것처럼 우리도 하나가 되어 어깨동무하며 아리랑을 함께 부를 날을 기대해본다.
본 기사의 전문은 대한뉴스 2014년 6월호(www.daehannews.kr)에 자세히 나와 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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