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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문화 일반

장인정신이 깃든 최상의 공예술

덴마크 왕실의 자부심

[인터넷 대한뉴스]글 조애경 기자 | 자료협조 한국 로얄 코펜하겐


세계 최고의 도자기(porcelain)로 꼽히는 로얄 코펜하겐(Royal Copenhagen)은 여전히 많은 이들의 가슴을 설레게 한다. 1775년 덴마크 왕실의 후원으로 탄생한 이후 덴마크를 비롯한 유럽 각국의 왕실은 로얄 코펜하겐을 공식석상의 식기로 사용하고 있으며, 셀린 디온, 엘튼 존, 오프라 윈프리, 농구황제 마이클 조던 등 세계의 유명인사들 또한 로얄 코펜하겐의 마니아를 자청한다. 접시 하나를 만드는데 장인의 붓질이 1,197번이나 필요한 까다로운 제품. 그러나 수백 년 전부터 내려온 블루컬러의 채색은 시간이 갈수록 우리에게 더욱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위대한 탄생


도자기를 생산할 수 있다는 것으로 강대국인지 아닌지가 결정되기도 했던 시기. 18세기 자기공장들은 그 나라의 문화와 기술 수준을 나타내는 상징이었다. 이런 일화도 있다. 작센 왕국의 황제 아우구스투스 2세는 독일 남부 도시인 마이센의 고성 알브레히츠에 연금술사인 요한 프리드리히 뵈트거와 화학자였던 치른하우스를 감금하고 자기를 개발할 것을 명령한 것. 이 둘은 3년 동안 수만 번의 실험 끝에 슈네베르크에서 가져온 고령토를 사용해 1710년쯤 처음으로 자기를 만들어냈다.


로얄 코펜하겐이 된 초기의 ‘Royal Danish Porcelain Manufactory’는 광물학의 전문가였던 약제사 프란츠 하인리히 뮬러의 실험결과로 설립됐다. 1774년에 뮬러는 Danish Porcelain Factory에 출자할 잠재적 투자자들을 초청했지만, 그들은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덴마크의 줄리안 마리 왕비와 그녀의 아들이자 왕세자인 프레데릭이 공동 출자를 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주주의 대부분이 왕족으로 구성되면서, 곧 Royal Danish Porcelain Manufactory라는 이름으로 1775년 5월 1일 정식으로 발족한 것이다. 사업은 약 100년 동안 덴마크의 왕족에 의해 운영되다 1868년 민간사업으로 전환되었으나 여전히 덴마크 왕실의 이름과 특권을 보유하고 있다.


1882년부터 1884년에는 Aluminia faience factory와 합병되어 코펜하겐의 중심부에서 프레데릭스베르로 옮겨졌다. 그리고 젊은 아트 디렉터가 임명되었다. 그는 화가이자 건축가였던 아놀드 크로그로, 언더글레이즈 페인팅에 관심이 많았다. 크로그는 공장의 대표 라인인 블루 플루티드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는 임무를 맡았고, 유약 아래에 그림을 그리는 새로운 기법으로 풍경을 사실적으로 묘사했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새 자기는 1889년 파리에서 열린 World Exhibition에 전시되는 것은 물론, 공장을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만들어주었다. 덴마크의 두 번째 도자기 공장 빙 앤 그론달이 1853년 문을 열었고, 두 공장이 1987년 합병되면서 드디어 로얄 코펜하겐이 탄생하게 되었다.


 

본 기사의 전문은 대한뉴스 2011년 11월호(www.daehannews.kr)에 자세히 나와 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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