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대한뉴스] 박혜숙 기자 | 사진 김윤옥 기자
중국 지린성(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중심도시 옌지시(연길시)는 중국에서 자동차 보유율이 가장 높고 잘 사는 지역에 속한다. 시의 총인구 중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 조선족은 똑똑하고 부지런하며 정 많은 민족으로 중국 정부에 가장 충성스럽다고 널리 인정되고 있다. 연변항공승무학교 취재차 들른 그곳에서 우연한 기회에 조선족 4대 가족을 만나게 됐다. 현대 사회는 부모·자식 세대 사이가 점차 벌어지고 있는데… 그들의 삶 속에서 사람 사는 맛과 정에 이끌려 5월 31일~6월 3일까지 3박 4일 동안 뜻하지 않은 밀착 취재가 이뤄졌다.
연길에서 만난 한국적 정서들
원호준·이옥선 부부의 안내로 그들의 친정이 있는 고향집으로 향했다. 자동차가 연길 시내를 벗어나자 초록빛 융단을 펼쳐놓은 듯한 들판이 끝없이 펼쳐졌다. “우리나라 한산한 시골풍경과 똑같아요~”라고 일행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하자 원호준 씨가 넓은 들판을 가리키며 “주로 옥수수를 많이 심지요”라고 한다. “그렇게 많이 수확한 옥수수는 주로 어디에 쓰입니까?”, “가축 사료용과 공업원료, 자동차 연료 등 쓰이는 곳이 많습니다.”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는 가운데 어느새 고향집에 당도했다. “시원한 바람이 부니 조금 덜 더운 느낌이 들어요”라고 하자 “연길과 거리는 30분가량 떨어져 있지만 온도는 3~4도 차이 나지요”라며 집안으로 일행을 이끌었다.
원호준·이옥선 부부 마련한 1만 3,000여㎡ 농장
“아이고~ 어서 오세요” 아버지 이상주 씨가 고향의 눈빛에 웃음 띤 얼굴로 일행을 반겼다. 처음 왔지만, 이웃집에 놀러 온 듯 매우 친숙하다. “이쪽은 된장독, 저 뒤는 상추, 파 등 내가 농사짓는 텃밭이라오! 어때요? 좋죠?” 원호준·이옥선 부부가 마련한 1만 3,223㎡(4,000평) 규모의 농장과 집 안팎을 친정 부모가 돌본다고 한다.
그러는 사이 나물 뜯으러 뒷산에 올랐던 어머니 계영숙 씨가 땀을 닦지도 못한 채 방안으로 들어섰다. 딸 이옥선 씨가 말했다. “어머니, 또 산에 가셨어요? 아휴~ 힘든데 이제 그만 가세요”라며 아무리 말려도 명절 때 자식들과 친지들에게 말린 나물을 나눠주는 기쁨이 커 고집을 꺾지 않는다고 한다. 산나물들이 마당 한 쪽에 펼쳐졌다.
방금 따온 푸른 고사리, 삐득삐득 말린 고사리, 바짝 마른 취나물과 민들레, 밭에서 금방 캐온 더덕, 귀하다는 와송(기와에서 자라는 소나무), 떡에 고명으로 쓰면 맛있다는 늙은 호박 등. 기자의 눈을 의심케 할 정도로 한국과 비교할 수 없는 최고의 상품들이었다. “한국 가서 옆집과 나눠 드세요”라며 봉지 가득 나물들을 싸서 건넸다. “힘들게 따온 것을 다 주면 어떡합니까!”, “산에 가면 또 많아요.” 욕심 없는 자연의 웃음이 정다웠다.
8년 묵은 된장은 약
계속해서 장독대에서 막 퍼온 된장을 한번 찍어 먹어보라고 권했다. “8년 묵은 된장입니다. 약이지요. 배 아프고 염증 있는 사람이 먹으면 씻은 듯이 나아요.” 된장의 맛은 짜지 않고 달큼한 향이 입안을 감돌았다. “맛있는데요.”, “그러면 염증이 없다는 증거예요. 몸이 좀 안 좋은 사람은 씁쓸한 맛이 느껴집니다.”, “이것은 기운이 바짝 나는 산삼 된장입니다.”
일행 가운데 한 사람인 궁중요리연구가이며 발효공학박사 1호 한영용 교수가 8년 전 이곳을 찾았다고 한다. 콩이 좋고 탐스러워 몇 달을 머물면서 수십 단지를 담갔단다. 물이 좋아 맛이 달고 공기가 좋아 상온에서도 썩지 않는다. 또 이것저것 된장을 싸줬다. “귀한 건데 아깝지 않아요?”, “아깝긴요! 우리는 한민족 한 핏줄 아닙니까! 맛있게 드시면 됩니다.”
세계서 한민족 자손임을 뜻하는 일관된 호칭 있었으면
원호준·이옥선 부부는 단 한 번도 핏줄과 문화를 잊은 적이 없다고 한다. “10년 후, 100년 후 우리의 뿌리가 없어질까 걱정입니다. 북조선, 남조선으로 갈라졌어도 모두 단군의 자손이며 조선왕조 500년 동안 만들어진 역사 속에 ‘조선인'이라는 말이 생겨났습니다.”
이에 기자가 남한과 북한이 스포츠 경기를 하면 어느 쪽을 응원하겠느냐고 물었다. “우리는 한민족으로 남조선이든 북조선이든 다 소중합니다. 한국이 부유하고 스포츠 분야에서 1등 하는 것은 고맙지만, 우리는 ‘한국인'이 아닌 ‘조선족'으로 불립니다. 그러니 ‘조선'이라고 부르고 가까운 곳에 있는 북조선을 더 많이 응원하게 됩니다”라며 “정부 관계자들도 잘 알겠지만 지구촌 곳곳의 교포들이 세월이 가도 한 뿌리임을 알 수 있는 그런 호칭이 있었으면 합니다”라고 말했다.
중국 내 한인 동포는 ‘조선족', 러시아 ‘고려인', 미국은 ‘한인' 등 뿌리는 같아도 시대와 나라와 지역에 따라 명칭이 다르다. 조선족은 국적이 중국이어서 한국을 찾아가면 외국인에 속하고, 정작 살고 있는 중국에서는 소수민족 가운데 하나로 본토의 한족과는 차별대우를 받는다고 한다. 그래도 다른 소수민족과 어떻게 조화롭게 사느냐 하는 지혜가 뛰어나고 경제와 문화를 발전시켰다.
독립운동가 후손들, 지금은 연변을 알리는 개인 사절단
연변조선족자치주는 1890~1940년 사이 한국인이 이주하여 개척한 곳으로 북간도라고 불렀다. 일제강점기에는 독립운동의 근거지였다. 조선족은 가난과 일제의 탄압에 맞서 이곳으로 이주한 이들의 3세 또는 4세들이다. 한국어에 매우 능통하고 한민족의 뿌리와 풍습을 지키고 있어 또 다른 한국인이나 마찬가지다. 또한 우리 민족의 성실과 근면, 희생정신을 발휘해 해외에서 유일한 자치주인 연변조선족자치주를 탄생시켰다.
원호준, 이옥선 부부가 말한다. “이곳은 60~70%가 독립운동가의 후손들입니다. 저희 할아버지도 그중의 한 사람입니다. 윗세대는 굉장히 힘들어도 큰 꿈을 가지고 이민을 와 삶을 개척한 지가 어느덧 100년 가까이 되고 있습니다. 부모님의 땀과 노력의 대가가 있어서 자손들이 잘살고 있지요. 그리고 중국 한족들도 조선족이 이만큼 살게 이해해주고 함께 해줘 고맙게 생각합니다”라며 부모님께서 항상 강조하는 말씀이 있다고 한다. “한국서 돈을 벌어와 잘사는 사람도 있고, 관리를 못 해서 어려운 사람도 있다. 한국은 할아버지, 할머니의 고향이며 핏줄이라는 것을 잊지 말고 한국 사람들에게 친척처럼 잘해주라고 하십니다.”
원호준·이옥선 부부 남다른 기업가 정신
원호준 씨는 전기매트 도·소매, 이옥선 씨는 트랜디니트 도·소매 업체의 사장이다. 중국 전체에 수십 개의 매장을 가진 중소기업가다. 그들은 유행에 따라 금방금방 업종을 바꾸지 않고 한 가지 업종으로 10여 년 이상 꾸준히 하고 있어 고객과 공장 양쪽에서 인정받고 있다. 다른 업체들은 물건을 납품받아 팔지만, 이옥선 사장은 직접 디자인을 창작하고 공장에 위탁하여 제품을 생산한다. 남다른 상도정신으로 물건이 남아도 반품시키지 않고 단골들에게 선물하는 재치로 마음과 정을 나누고 돈보다 더 큰 사람을 재산으로 불리고 있다.
오늘이 있기까지 부부는 항상 옆에서 때로는 동업자로 때로는 소비자 입장에서 조언을 해주며 변치 않는 한결같은 모습에 서로 감사하다고 말한다. 슬하에 남매를 두고 있으며 딸은 소학교(우리나라 초등학교) 5년이며 총학생회장을 맡고 있다고 한다. 자식에게 가르치는 특별한 교육이 있느냐고 물었다. “효도하는 것을 가르치기보다 부모가 하는 것을 보고 자식이 배우는 것이 옳지 않습니까!”라고 짧게 말했다.
취재 에필로그
기자는 밀착 취재하며 참 미안하고 부끄럽고 감사했다. 미안한 것은 조선족이 우리와 관계없는 중국 사람으로 생각한 것이다. 부끄러운 것은 아무리 우리나라가 부유해졌다고 효성과 가족 간의 화목, 음식 등 공동체 문화를 조금씩 잃어가는 점이 그랬다. 감사한 것은 한국 사람들에게 이런저런 서운함이 있어도 원망하지 않고 한국이 잘 사니까 조선족에게 도움이 크다고 말하는 깊은 마음 씀씀이다. 이번 취재를 계기로 앞으로 한국에 나와 있는 조선족은 독립투사들의 후손이고 우리의 핏줄임을 다시 한 번 상기해 보자. 한국을 찾는 2~3세들이 모국을 가슴에 담고 한국의 위상을 올릴 수 있게 우리 모두가 밑거름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한편, 연길 시내는 간판에 반드시 한국어로 된 표기가 있었고 한국어로만 거래하는 것이 가능하며, 음식점에서 제공하는 김치는 서울보다 더 맛있었다. 그리고 취재단 일행은 연길시에서 1시간 거리에 있는 도문시를 가게 됐다. 중국과 북한의 변경지역인 두만강 광장 나루터에서 배를 타고 한 바퀴 돌았다. 회전하기 위하여 북쪽으로 뱃머리를 틀자 엔진 소리가 ‘따다다~따다다~' 힘들어하던 것이 남쪽으로 향하자 힘들이지 않고 흐르는 물결 따라 순항을 하기 시작했다. 일행들은 불과 20m 지척에 군복 차림의 북한 군인들을 보면서 한 핏줄임에 가슴이 뭉클했다.
본 기사의 전문은 대한뉴스 2013년 7월호(www.daehannews.kr)에 자세히 나와 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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