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대한뉴스]글 이선아 기자 | 사진제공 연합뉴스
복날에 개를 먹는 풍습은 중국의 진나라 때 덕공이란 인물이 삼복 때 개를 잡아 사대문 안에서 제사를 지낸 데서 유래된 것이다. <동의보감>에는 ‘개고기는 오장을 편하게 하고, 장과 위를 튼튼하게 하며, 허리·무릎을 따뜻하게 해 기력을 증진한다’라고 나와 있으며, 고기가 귀했던 그 시절 더운 여름 기력을 보충하는 데 개고기만 한 게 없었다고 한다. 동물애호가들의 비난 속에서도 쉽게 사라지지 않는 보신탕. 찬반 의견을 떠나 보신탕이 전통적인 복날 음식이었다는 사실만은 부정할 수 없다.
조선 시대에는 계급을 막론하고 개고기를 즐긴 것으로 전해진다. 흔히 먹던 개고기 요리는 요즘은 ‘보신탕’이라 불리는 ‘개장국’인데 오늘날까지 그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개장국이 보신탕이라는 명칭으로 바뀐 것은 1942년 무렵. 한국전쟁 전에는 개장국과 보신탕이라는 명칭으로 섞어 쓰이다가 그 후 보신탕이라는 이름이 더 널리 사용됐다. 서민들이 즐겨 먹는 육개장이란 말이 개장국에서 유래한 걸로 미루어 보면 개장은 서민의 보편적인 음식이었던 셈이다.
개장국은 야만인 음식?
우리나라에서 개고기를 먹는 풍속에 대해 한때 국제적 비난이 쏟아지기도 했다. 프랑스 배우 브리지트 바르도는 ‘개고기를 먹는 것은 비문명적’이라고 대놓고 비난했을 정도. 하지만 인종이 다양한 만큼 세계의 음식문화도 다양하다. 원숭이 골, 송아지 태반요리, 말고기 내장, 심지어 곤충을 즐기는 민족도 많다. 1924년 7월 20일 자 동아일보에는 개고기를 먹는 비난에 대해 일침을 놓은 기사를 실었다.
‘서양 사람들은 사람 먹는 그릇에 음식을 담아서 개를 먹이고 한방에서 데리고 자기까지 하며 개를 할아범 위하듯 하니까 잡아먹을 리가 없습니다. 그렇기에 개 먹는 것은 야만의 습관이라고들 합니다. 저 이가 안 먹는다고 그렇게 말하는 것이겠지요.’
1955년 7월 31일 자 동아일보에서도 개장국 논란에 대해 목소리를 높였다. ‘유독 저만 깨끗하답시고 위생상 운운하며 코를 찡그리는 얼굴 허여멀건 양반들의 비웃는 몰골은 아귀같이 개뼈다귀에 빨려들 듯 포식하는 구당의 갈근거림보다 한층 밉살맞은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 기사에서는 ‘지렁이 냉면이니 창자 찌른 빵 얘기는 들어봤어도 개고기에 사람이 상했다는 말은 못 들었다’며 ‘개장국 먹건 말건 옳거니 그르거니 왈가왈부할 필요 없이 조용히 먹어주길 바란다’라고 개고기 논란을 종식하라고 당부했다.
수면제 바른 빵 먹이고 개 훔쳐
1970년대 들어 개도둑이 극성을 부렸다. 서울 시내의 개전문절도단만 10여 개 파가 넘었을 정도다. 개도둑들은 훔친 개를 주로 시내 보신탕집에 팔았다.
1971년 3월 11일 자 경향신문에는 ‘봄철 되자 늘어난 개도둑’이라는 제목으로 개전문절도단의 행태에 대해 서술했다.
‘지난 9일 북부경찰서에 검거된 토끼 박 파는 두목 박현괄 씨 밑에 일꾼 6명과 총판매책 권 모 씨, 그리고 2명의 운반 및 보관책 등 일당이 10명이나 되는 대규모 절도단. 지난 1년간 3백여 회에 5백여 마리나 훔쳐왔을 것으로 경찰은 보고 있으나 그중 피해자들이 경찰에 신고한 것은 단 10여 건밖에 안 된다. 두목 박 씨는 오래전에 개장사를 한 경험이 있고 개도둑을 시작한 지 10여 년째로 개전문가 사이에서는 널리 알려진 베테랑. 지난 69년 여름 경찰에 잡혔었으나 증거 불충분으로 풀려나오기도 했다.
일꾼들은 박 씨의 집에서 숙식을 하며 낮에는 시내를 맴돌며 고급개가 있는 집을 확인, 갖고 있던 빵이나 고기 등을 던져줘 낯을 익혀둔다. 이들의 활동시간은 통금이 끝나는 새벽 4~6시 사이. 낮에 얼굴을 익혀 놓은 개를 이때 쉽사리 접근해 밖으로 끌어낼 수 있는데 훈련받은 개는 짖어댈 염려가 있어 수면제를 섞거나 바른 빵, 고기를 먹여 잠들게 한 뒤 끌어낸다. 대개 하루 2, 3마리가 고작이지만 한 고급주택가를 몽땅 털 때도 많다. 이럴 경우에는 골목 어귀에 용달차나 짐차를 미리 대기시켜 놓았다가 한꺼번에 10여 마리를 훔쳐 두목 박 씨의 집이나 미리 계약해놓은 중간상인 집으로 옮긴다.’
보신탕 금지에 ‘위장간판’ 성행
1980년대 들어 보신탕은 혐오식품 대열에 합류한다. 1984년 3월부터 서울시에서는 보신탕, 뱀탕, 개소주, 토룡탕(지렁이탕) 등 혐오감을 주는 업소의 영업행위를 금지했다. 서울에서 열리는 각종 국제대회에 대비, 위생업소 질서 확립방안의 하나로 일반인들에게 혐오감을 주는 업소를 정비하려는 조치였다. 1984년 9월에는 전국으로 확대됐으며 위반업소에 대해 식품위생법시행령에 따라 처벌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당시 당국에서 금지조치 이유로 내세운 것은 88올림픽이다. 사람과 가장 가까운 동물인 개를 잡아먹는 것이 문명인으로서 외국인들에게 어떻게 비치겠느냐는 것이었다. 이에 대한 반론도 거셌다. 보신탕은 뱀탕, 토룡탕과 달리 삼국시대부터 전해 내려온 민간 토속음식이며 우리 입맛에 맞는 영양보충 식품이라는 주장이었다. 이 같은 여론을 의식한 당국은 88올림픽 때까지만 보신탕 금지조치를 단행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보신탕이 금지된 지 1년 만인 1985년 보신탕집들은 위장간판을 내걸고 어엿하게 장사를 했다.
1985년 9월 6일 자 경향신문에는 ‘보신탕 금지 1년 후’에 대해 조명했다. ‘서울 강남구 파레스 호텔 뒤편 주택가 골목 아담한 2층 양옥집. 이 가정집 안방과 건넛방에선 넥타이를 풀어헤친 중년 신사 10여 명이 식탁 위의 갖은 양념을 놓고 땀을 뻘뻘 흘리며 고기를 맛있게 먹고 있다. 언뜻 주인집에서 집들이 잔치를 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들이 열심히 먹고 있는 고기는 바로 ‘금지된 보신탕’이며, 이 집은 가정집이 아니라 보신탕집이다. 이 집에는 간판이 없다.
현재 주택가에 침투한 1백여 곳과 오리탕, 영양탕, 삼계탕 등의 ‘위장간판’을 내걸고 영업하는 식당을 합치면 서울에만도 2백여 곳으로 추산된다. 폐쇄조치 당시 320여 업소였던 점을 감안하면 불과 1년 만에 엄청난 회복세를 보이고 있는 셈. 단골들은 “외국인 눈치 보느라 오랫동안 먹어온 보신탕을 못 먹게 하다니 어림없다. 계속 열심히 먹겠다”며 기염을 토했다.’
북한 ‘단고기’ 아직도 인기
북한에는 ‘오뉴월에는 보신탕 국물이 발등에 떨어져도 약이다’란 속담이 있을 정도. 여유 있는 집에서는 개를 통째로 사서 직접 요리해 먹고, ‘복날에 단고기(개고기)를 먹어야 더위를 피한다’라는 믿음이 있어 아무리 가계가 어려워도 복날 단고기장(보신탕) 한 그릇은 꼭 먹는다고 한다.
1994년 5월 1일 자 동아일보에 ‘귀순 유학생의 북한 이야기 단고기’에는 이에 대해 자세히 나와 있다.
‘서울살이를 하면서 보니 여자들이 개고기를 먹는 것을 무슨 흠이나 되는 양 굉장히 창피해 하며 먹지 않는 것을 보았다. 그러나 북한에서는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모든 주민이 아주 자랑스럽게 즐겨 먹는다. 북한에서도 이전에는 개고기라고 불렀으나 개고기를 먹지 않는 외국인들이 ‘개장집’이라고 쓴 간판을 보고 북한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진다고 하여 그 후부터는 ‘단고기’라고 부르도록 국가적인 조치가 취해졌다. ‘개장집’이라는 간판이 ‘단고기집’으로 바뀌었으며 평양 중심가와 같이 외국인들이 자주 다니는 곳에서는 영업을 못하도록 했다.
북한에서 개를 기르는 용도는 고기 외에 가죽을 얻기 위해서다. 소비재가 귀한 북한에서는 사람들이 고기보다 가죽을 더 중요하게 여기므로 남한과 같이 개를 잡을 때 개털을 불에 그슬려 개 가죽을 다 못쓰게 하는 것은 상상할 수가 없다.’
본 기사의 전문은 대한뉴스 2013년 8월호(www.daehannews.kr)에 자세히 나와 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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