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대한뉴스] 글 김준호 기자 | 사진제공 종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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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주원씨 시중공계 중앙종친회 원대연 회장 |
원주원씨는 주나라 문왕의 9남으로 위국을 봉건한 강숙의 후손이 원현을 다스렸는데, 그 지명을 따 성을 원씨로 하사받았다. 이후 643년 당 태종이 고구려에서 도와 예에 능한 학사를 보내줄 것을 요청한 화답으로 8학사를 보내게 되는데, 그 학사 중 한 분이 원주원씨의 시조인 원경이다. 원경은 고구려와 당나라간 국교회복에도 노력하여 공을 세우고, 신라에서도 그 영향력을 발휘하여 교화에 힘쓰게 된다.
이처럼 원주원씨는 시조 원경의 자손인 것은 분명하나, 기록이 분명하지 않아 중시조를 달리하는 3계파로 나눠져 있어 시중공계 중앙종친회 원대연 회장의 안타까움이 더해가고 있다. 원주원씨의 3계파를 보면, 운곡계는 고구려 보장왕 때 문하시중 평장사를 지낸 원경의 후손으로 현재 약 15%를 차지하고 있고, 원성백계는 고려 개국 벽상공신으로 병부령을 지낸 원극유의 후손으로 현재 약 20~25%를 차지하고 있으며, 시중공계는 고려 신종 때 우시랑을 지낸 원익겸의 후손으로 약 60~65%를 차지하고 있다.
원주원씨 후손들은 통일신라시대에도 영향을 많이 미쳤으나, 고려에 들어서 개국 벽상공신으로 병부령을 지낸 원극유와 문하시중을 지낸 원홍필 등 많은 인재를 배출했다. 조선시대에는 문과에 급제한 인원만 59명으로, 인조반정 때 공신으로 좌상을 지낸 원두표와 그 고손자인 우상을 지낸 원인손 등 재상 2명과 판서 6명을 포함해 대사헌 등 수많은 문무관을 배출했으며, 좌상 원두표의 손자인 원몽린은 효종의 딸인 숙경공주와 혼인을 했다.
이 후손들 중 우선, 운곡 원천석과 원호의 행적을 보면 원주원씨가 충의와 의절의 집안임을 알 수 있다. 운곡 원천석은 태종 이방원의 스승으로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건국하자 한탄하며 치악산에 들어가 초근목피로 일생을 보내면서도 민생과 나라를 위해 바르고 정의로운 말을 아끼지 않았다. 태종이 이런 스승을 모시고자 직접 치악산까지 왔으나 원천석이 이를 피하게 됐고, 이때 일화로 지금까지 남아있는 유적이 치악산 뒤편의 노구소와 태종이 쉬었던 바위인 태종대가 있다. 1972년에 부산기념물로 지정된 태종대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 역사적인 숨결 자체가 다른 곳이다.
또한, 생육신 중 한 분인 관란 원호는 단종이 영월 청령포 외딴 섬에 유배되자 맞은편 서쪽에 움막을 짓고 그 이름을 관란재라 했다. 원호는 단종이 죽을 때까지 멀리서나마 단종에게 문안을 드리며 먹을거리를 구해 바가지에 담아 단종이 있는 강가로 떠내려 보냈다고 한다. 단종이 죽은 후에는 삼년상을 치렀고, 세조가 불러도 응하지 않았으며, 평생 단종만을 그리워했다. 강원도는 이 두 분의 충절을 도의 얼(정신)로 정하고 기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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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간공 관란 영정 |
한편, 2004년 종친회에 희소식이 찾아들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TV 대하사극‘불멸의 이순신’이었는데, 이 드라마 속에서 원균의 생애가 다시 재조명되었기 때문이다. 그 동안 원균은 이순신을 모함해 삼도수군통제사에 오르고 조선 수군을 전멸시키는 전형적인 인물로 교과서에 등장했다.
이순신이 智將이라면, 원균은 勇將이라는 측면에서 싸우는 방법이나 임진왜란 첫 승전을 알린‘옥포파왜병장’등을 두고 갈등이 있었으나, 그도 엄연한 조선 최고의 장수였다. 이를 뒷받침하는 것이‘임진왜란 공신녹권’에 보면 일등공신 첫째에 이순신, 둘째에 권율, 셋째에 원균을 거명하고 있어 그의 공적을 미뤄 짐작할 수 있다. 다만, 역사서를 편찬하면서 이순신을 미화하고, 70년대 말 박정희 정권에서 3대 사적지 사업을 진행하면서 원균을 치욕스럽게 평가 절하해 오늘날에 이르고 말았다. 지금까지 억울한 평가를 받아온 원균은 임진왜란 당시 왜군에게 목이 베어 가묘의 형태로 현재 평택에 사당과 묘가 있다.
그리고 원호는 재상을 지낸 원두표의 할아버지로 임진왜란 당시 여주에서 의병을 일으킨 장본인으로 원균과 함께 누란의 위기에 빠진 조선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았다. 이와 같이 원주원씨 후손 중 문관은 충의와 의절을, 무관은 나라가 어려울 때 의연히 자리를 떨치고 일어나 국난에 빠진 나라를 구하기 위해 노력한 충신들이 많다.
오늘날 후손들을 보면, 정재계 인물들이 주를 이루는데, 해방 이후 초대 경제기획원 장관과 농림장관을 지낸 원용석 장관, 내무장관과 국정원장을 지낸 원세훈 장관, 최근 국회의원에서 제주도지사가 된 원희룡 도지사, 원내대표를 지낸 원혜영 국회의원, 원성백계 원균의 후손인 원유철 국회의원, 그리고 농협 이사장과 국회의원을 지낸 전임 종친회장인 원철희 회장을 꼽을 수 있다. 기업인으로는 삼성생명과 중앙일보사장을 지낸 원종훈,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생활문화부문 사장을 지낸 원대연 한국패션협회장,신영증권 원종석 사장과 (주)혜인 원경희 회장, 재해보험회사인 코리안리 원종규 사장, 미래 엔지리어링 원종석 사장, 메리츠금융그룹 원명수 부회장, (주)에이스종합건설 원수연 회장, 삼성카드 원기찬 사장 등이 있다.
원주원씨는 3개의 계파로 나눠져 있어 85~86년 족보 통합본을 시도했으나 반대에 막혀 완전한 통합을 이루지는 못했다. 이후 오랫동안 종친회 사업이 부진해오다 종친 원로들이 모여 활성화시킬 방도를 고민하다가 당시 으뜸회를 이끌어 오던 원철희 전임 회장과 원대연 회장에게 위기에 처해 있는 종친회를 재건시켜주도록 요청한 결과 원철희 전임 회장이 2007년부터 종친회를 맡아 종친회를 재정비하고, 30년 만에 족보사업을 재추진했다.
으뜸회는 3계를 초월한 모든 원씨를 아우르는 친목모임으로, 20여 년 전 관계·산업계 저명인사들이 주축이 돼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이후 2013년에 취임한 원대연 회장은 종친회가 상시적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운영위원회를 만들어 종친회 재정을 담당하며, 종친회의 제반 중요사항을 결정하고 있다. 현재 종친회 활성화를 목표로 4가지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먼저, 종친회의 네트워크를 재정비 및 강화해 소통이 더욱 원활하게 하고, 운영위원을 지속 확대해 종친회 사업을 보다 건실하고 탄력적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리고 선조들의 유적탐방과 세미나 등을 통해 후손들이 조상의 얼을 느끼고 되새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지난 4월 처음으로 선영이 있는 원주, 여주의 묘역과 사적지를 탐방하였고, 하반기에는 평택에 있는 원균 장군의 묘역을 탐방할 계획이다. 반응이 너무 좋아 지속적으로 매년 실시할 예정이다. 마지막으로‘자랑스러운 종친회상’을 마련해 학계, 정·관계, 문화계, 산업계 등의 명망 있는 분들을 선정·포상함으로써 종친회의 폭 넓은 인재발굴과 친목강화를 적극 추진하려 하고 있다.
원대연 회장은 요즘 젊은이들이 생기가 넘치고 자유분방하지만, 어른에 대한 예의가 예전에 비해 많이 부족한 거 같다고 말하면서 본인도 언젠가는 결혼을 하고 아이의 부모가 되면 자신의 아이에게 자신의 뿌리를 설명해 줘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종친회는‘구태의연한 명사’가 아니라‘자신의 뿌리를 찾아가는 명사’이자 자신을 세상에 나게 한 조상들을 가끔 숙연히 생각하게끔 만들어주는 모태공간으로 여겨 주기를 바라는 생각을 전했다.
본 기사의 전문은 대한뉴스 2014년 8월호(www.daehannews.kr)에 자세히 나와 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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