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대한뉴스]글·사진 이동현 기자
몇 해 전 많은 이들이 애송하는 시 ‘국화 옆에서’의 시인 서정주의 고향 고창군 돋음볕마을에서는 ‘국화 옆에서’를 주제로 마을 전체에 벽화를 그려놓고 국화축제를 개최한 바 있다. 색색의 국화꽃 그림과 시에 등장하는 ‘거울 앞에 선 내 누님’이며 마을사람들의 초상화를 마을의 담장과 지붕에 온통 그려놓고 축제를 벌인 것이다. 평범했던 농촌마을은 이내 아름다운 예술 마을로 변모했고, 시인의 체취와 시골마을의 정취를 느끼려는 많은 관광객이 모여들었다. 한적한 시골마을은 곧 활기가 넘쳤고, 이로 인해 주민들의 경제적 소득도 높아지는 일이 생겼다.
이렇듯 공공미술인 마을벽화는 마을을 아름답게 꾸미고, 시민들의 문화 향수권 신장과 주민 공동체를 향한 미술문화로 각광받고 있다. 과거 미술관에 위엄 있게 걸려있던 작품이 밖으로 나와, 세상과 만나고 사람들과 소통하면서 살아있는 생활 속의 미술로 발전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문화부는 2009년부터 올해까지 45억 원의 예산을 들여 마을미술프로젝트사업을 펼치는가 하면, 여러 지자체와 문화재단 등도 적극적으로 지원사업에 동참하는 추세다.
잿빛 담벼락에 화사한 벽화 그려 넣어
마을벽화는 대개 전문가 집단이 주도해 제작하지만 최근 들어 주민과 자원봉사자 등 시민들의 참여도 적극적으로 이루어진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이미 많은 마을벽화가 전국에서 제작됐다. 부산의 안창마을과 감천동 태극마을, 통영 동피랑마을, 경주 읍천항, 안성 복거마을, 군포 납덕골, 서울 망원동 등이 마을벽화로 유명하며, 인천의 북성동 청관, 창영동 책방거리, 십정동 열우물길 등도 소문이 나있다. 이들 마을은 최근 유명세를 타고 관광지로서 각광을 받기도 한다. 그 중에서도 통영 동피랑마을이나 부산 태극마을은 마을 전체를 소박한 그림과 중간 색상의 조화로운 채색으로 시각적 아름다움을 준 도시재생의 모범 사례로 꼽힌다.
서울에 몇 남지 않은 달동네 중 하나였던 홍제동 개미마을도 그 중의 하나이다. 대학생들이 이 마을에 찾아와 잿빛 담벼락에 화사한 벽화를 그려 넣으면서 작은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가을 햇살로 풍성한 개미마을을 찾았다.
3호선 홍제역 2번 출구에서 서대문 07번 마을버스를 타고 가다보면 화려한 벽화가 눈에 띈다. 중간쯤에 벽화가 보여 내린다면 가파른 언덕을 오르는 불편을 감수해야 하므로 버스로 종점까지 가서 천천히 걸어 내려오면서 마을을 구경하는 것이 좋다. 우선 버스종점에서 한눈에 보이는 서대문구가 아름다운 풍경을 자랑한다. 종점에는 정류장뿐 아니라 공용화장실도 있다. 개미마을엔 아직도 화장실이 없는 집들이 있다고 한다. 타임머신을 타고 1970년대로 돌아간 느낌이다. 잠시 숨을 골랐다면 개미마을을 천천히 둘러보도록 하자.
우선 개미마을은 인왕산 등산로 입구에 있는 마을로 서울의 몇 남지 않은 달동네 가운데 하나다. 개미마을의 공식 주소는 홍제3동 9-81. 마을 면적은 1만5,000평 정도이며 210여 가구에 420여 명의 주민들이 살고 있다. 개미마을은 6·25전쟁 이후 만들어졌다. 갈 곳이 마땅치 않은 사람들이 들어와 임시 거처로 천막을 두르고 살았다고 한다.
당시엔 ‘인디언촌’이라고 불렸다. 옹기종기 모여 있는 천막이 서부영화에 나오는 인디언마을 같기도 하고, 인디언처럼 소리 지르고 다니는 사람이 많기도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하지만 주민들은 ‘인디언촌’이라는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래서일까. 지난 1983년 ‘개미마을’이라는 정식 이름이 생겼다. 주민들이 열심히 생활하는 모습이 부지런한 개미를 닮았다는 이유에서다.
서대문구와 금호건설이 2009년부터 성균관대 등 5개 대학 미술전공 학생들과 함께 5가지의 주제로 51가지 그림을 그리면서 회색마을의 분위기가 산뜻하게 바뀌었다. 칙칙하던 마을의 변화에 놀란 많은 사람들이 입소문을 내기 시작했고 곧 사진에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는 유명한 출사 코스가 되었다.
미술학도의 아름다운 마음이 어우러진 곳
마을입구부터 어지럽게 들어선 슬레이트 지붕의 집들이 불안해 보인다. 대부분 40~50년 이상 된 집들로 입구에서 올려다 본 마을은 마치 성곽을 닮았다. 산 아래로 삐져나온 커다란 바위 위에 집이 아슬아슬하게 걸터앉아 있기도 하고, 바위 사이로 골목이 구불구불 나 있다. 대문이 바위 사이에 나 있는 집도 있다. 마을의 구조는 의외로 간단하다. 마을 가운데를 가로지르는 큰길이 나 있다. 길 이름은 한마루길. 길 양 옆으로 작은 골목이 가지를 친다.
개미마을에는 계단이 참 많다. 모든 계단은 높고 가파르고 길다. 아래에서 올려다보면 어디서 끝이 나는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다. 계단 하나가 한 번도 끊이지 않고 끝까지 올라가는 경우도 있다. 그 높은 계단을 노인들은 몇 번이나 다리를 쉬어가며 집으로 향하는 모습에 마음이 찡해지기도 한다.
계단뿐만 아니라 낙서로 가득했던 개미마을의 벽도 변했다. 하늘색, 노란색, 초록색으로 옷을 갈아입었고, 그 위에 강아지가 뛰어놀고, 빨간 꽃이 피고, 노란 나비가 날아들었다. 아이 키만 한 낮은 담장에, 좁은 계단에, 아슬아슬 판자를 세워 만든 마을 슈퍼마켓에 꽃이 피고 창문이 생겨났다. 어떤 집 벽에는 알록달록한 물고기들이 유유자적 헤엄을 치고 있다. 오르기 힘든 가파른 계단 위에는 ‘조금만 더 힘 내’라는 위안의 말이 적혀 있다. 높은 계단을 오를 때 힘을 내라는 말인지, 아니면 고단한 일상에 지친 개미마을 사람들에게 힘을 내라는 말인지는 알 길이 없지만, 개미마을 사람들은 그 글귀를 보며 힘을 내서 오늘도 한 발 한 발 계단을 오른다.
개미마을의 담벼락에 칠한 페인트는 비를 맞고 뜨거운 햇살을 견디며 빛이 바래기 시작했지만, 그것은 또 그 나름대로 개미마을과 어우러지며 특유의 풍경을 자아내고 있다. 아직도 서민의 고단한 삶이 그대로 남아 있는 곳이지만 칙칙한 마을을 환하게 바꾸고자 한 젊은 미술학도들의 아름다운 마음이 어우러진 이곳은 서울에서 제일 예쁘고 따듯한 공간으로 거듭나고 있다. 물질적으로 풍요롭지 않아도 넉넉한 인심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 그들을 향한 따듯한 관심은 낡고 오래된 것을 하나의 역사로 바꾸어 놓았다. 낡은 것은 모두 허물고 버려야 한다는 잘못된 편견을 아름답게 바꾼 개미마을의 변화가 더욱 반가운 이유다.
본 기사의 전문은 대한뉴스 2011년 12월호(www.daehannews.kr)에 자세히 나와 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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