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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뷰티/건강/맛집

해외 탐방 - 중국 시안

70만명 피땀 흘린 진시황릉 병마용갱 큰 관광자원

[인터넷 대한뉴스]글 김윤옥 기자 | 사진 시안 취재단 
 
 
본지에서는 한국에 주재하고 있는 세계 각국 대사들을 만나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그 나라의 문화 등 이모저모에 대해 들어보는 해외 탐방 순례를 기획했다. 첫 번째는 한·중 수교 20주년을 맞아 중국 산시성(陝西省,섬서성)의 성도 시안(西安,서안)을 직접 찾았다.

인천공항에서 3시간 거리에 있는 시안은 그리스 아테네, 이탈리아 로마, 이집트 카이로와 함께 세계 4대 고도이며 우리나라에서는 당나라의 수도 장안으로 더욱 잘 알려진 곳이다. 20세기 최고의 고고학적 발견, 세계 8대 기적이라고 불리는 ‘진시황릉 병마용갱’은 37년 여 동안 총 70만 명의 피땀으로 만든 세계 최고의 개인 무덤이지만, 2,200년의 세월이 흘러 후손들에게는 중국을 대표하는 관광자원이다. 동·서 문명을 잇는 실크로드의 기점, 사람 냄새 물씬 나는 회족거리 등 역사, 문화, 자연의 시간 여행을 떠나보자. 내용은 워낙 방대하여 1, 2부로 나눠 게재한다. 
 
 
 
땅 위의 세상을 옮긴 ‘진시황릉과 병마용갱’
 
진시황

기원전 259년에 태어나 13세에 즉위, 22세에 나라를 다스리기 시작해 중국 역사상 최초 스스로 황제라 칭하며 불로장생을 꿈꿨으나 49세에 병사했다. 기원전 221년 전국시대 6국 한·위·조·초·연·제나라를 멸망시키고 하나로 통일했다. 그 후 만리장성을 쌓고 도량형과 문자를 통일시켰으며 분서갱유로 사상을 통제했고 아방궁과 같은 대규모 토목공사로 백성의 원성을 사기도 했다. 오늘날 차이나라는 말은 진(秦)나라 이름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그의 공로와 과실에 대해서는 지금도 의견이 분분하나 그가 남긴 업적은 영원히 기록되어 자손만대의 번창을 알리는 또 다른 시작이 되고 있다. 그중 진시황릉과 병마용갱을 살펴보자.
 
진시황릉

한 대의 역사가 반고는 ‘한서’의 유향전(劉向傳)에서 이렇게 기록했다. “진시황은 여산의 언덕에 묻혔다. 아래로는 3층의 지하를 막고, 위로는 3개의 봉분을 세웠는데 그 높이가 50여 길에 둘레가 5리 남짓이었다. 석곽으로는 아궁을 만들고 사람의 기름으로 등불을 만들고 수은으로 강과 바다를 만들고 황금으로 올빼미와 기러기를 만들었다. 항우는 무덤의 궁실을 불태웠고 그곳에 간 사람들은 무덤을 모두 파헤쳤다. 그 후 목동이 양을 잃어버린 일이 있었다. 양이 무덤 구멍으로 들어가자 목동은 불을 들고 양을 찾다가 불이 붙어 관곡을 태우고 말았다.” 이러한 역사적 기록에 대해서도 갑론을박 논쟁이 많지만, 병마용이 파손된 것을 보면 항우가 무기를 훔쳐간 것은 분명하다는 설이 압도적이다.
198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위치는 시안에서 36km 떨어진 임동현 동쪽에 있다. 병마용갱 박물관에 도착하기 직전에 보이는 낮은 야산이 바로 진시황릉이다. 그것을 재현해 놓은 모형 지하궁전을 통해 어마어마한 규모를 짐작해보자. 

가상 지하궁전

중국의 유명한 역사가 사마천은 ‘사기’에 이렇게 썼다. “온 나라에서 끌려온 70만 명이 세 군데나 지하수가 흐르는 곳까지 파 들어가 무덤을 만들었다. 지하수는 무덤 안 지하도시를 흐르는 황허와 양쯔강이 되었으며 궁궐은 온갖 금붙이와 보물이 가득했고, 황제의 관 둘레는 구리를 녹여 둘렀으며 구리벽을 뚫고 들어가는 사람에게는 화살 세례를 퍼부었다. 인어기름으로 만든 초가 황제의 영생을 밝히며 꺼지지 않고 탔다.”

전설처럼 전해지는 가상 지하궁전을 둘러보니 대단한 위용이 느껴진다. 지하 4층까지 있으며 4층 중앙에 관을 안치했다. 살아있을 때처럼 음식을 먹고 옷을 갈아입고 잠을 자고 생활할 수 있도록 별도의 편전을 만들었다. 지형은 서쪽을 배경으로 동쪽을 바라보는 형상에 직사각형 모양이다. 능문은 모두 3개, 성벽은 두 겹, 동을 녹여 돌 틈을 막고 수은으로 만든 강과 바다가 흐른다. 갖가지 동물들과 궁인들도 보인다. 진시황은 살아생전 삶을 즐기기 위해 아방궁을 지었고, 죽은 후를 위해서는 거대한 능과 지하 궁전을 만들었다. 이집트에 피라미드가 있다면 진시황릉을 동방의 피라미드라고 부른다. 

병마용갱

1974년 우물을 파던 농부에 의해 땅 속에서 깨진 인형 조각이 우연히 발견되면서 병마용갱의 발굴이 시작됐다. 병마용의 ‘용’은 인형이란 뜻. 병마용갱은 진시황릉에서 동쪽으로 1.5km 떨어진 곳에 만들었다. 왜 그랬을까. 당시 진나라 외에 여섯 개(한·위·조·초·연·제) 나라가 모두 동쪽에 있었기 때문에 진시황은 사후에도 쳐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고 한다. 
 
    1호갱은 전투부대, 길이 230m, 너비 62m에 군사 8,000여 명, 말과 전차가 늘어서 있다. 인형이 38줄, 갱도 11개, 둑 10개. 1976년도에 발견된 2호갱은 혼합부대로 길이 96m, 너비 84m로 1호갱의 절반 크기이며 미발굴 상태다. 3호갱은 아주 작은 규모이며 나무전차와 점을 친 흔적으로 보이는 사슴뿔과 같은 동물의 뼈와 머리 없는 인형이 있는 것으로 보아 지휘부로 추정한다.

병마용은 키 172~178cm, 몸무게 100~200kg, 손에는 무기를 들고 머리에는 투구를 쓰지 않은 채 위풍당당 용맹하게 서 있다. 조각을 일일이 찾아서 맞추는 복원 시간은 약 7~8개월 걸린다. 화살을 쏠 준비가 된 병사, 전차를 모는 병사, 풍채 좋은 장군 등 계급과 출신에 따라 인형마다 머릿결과 손금, 표정이 생생하고 제각각 모습도 달라 마치 살아 움직이는 듯하다. 채색도 분명했으나 발굴 후 습도와 온도 차이로 시간이 지나자 탈색됐다. 4호갱은 만들려다 만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영화관에서는 시황제가 중국을 통일하고 병마용을 만들어 현대에 발견되기까지의 영상을 360도 스크린으로 관람할 수 있다.
 
 

회족거리, 고씨장원, 종루·고루 등   볼거리 다양

회족거리는 중국 최대 이슬람교도 집단인 회족들이 운영하는 야시장 거리다. 회족은 이슬람 교리에 따라 돼지고기를 먹지 않기 때문에 이곳에서는 돼지고기 요리를 찾아볼 수 없고 양고기 요리가 주를 이루며 말린 과일이나 각종 꼬치, 전병 등 중국식으로 요리된 이슬람 스타일의 음식을 맛볼 수 있다.

고씨장원은 8대 동안 장원급제를 배출한 고씨 집안의 반가이다. 명·청 시기의 건축예술과 전통문화 등을 감상할 수 있다.
종루, 고루는 시내 중심부에 있다. 종루에는 종이, 고루에는 북이 있어 낮에는 종을, 밤에는 북을 쳐서 시간을 알려주었다. 지진이 일어났을 때 북이 파괴되어 현재 고루에는 북이 없다.
 
섬서성 시안의 특징

시안은 3,000여 년의 역사를 지닌 고도로 문화, 정치, 경제의 중심지, 실크로드의 출발지였으며 진(秦), 한(漢), 당(唐) 등 13개 왕조의 도읍으로 당나라 때 인구가 이미 150만 명에 이르는 세계적인 대도시였다. 오늘날 시안은 도시 전체가 박물관이라고 할 정도로 유적과 유물이 풍부한 중국 최대 관광도시다. 관광도시이기는 하나 화장실에는 화장지가 없는 곳이 많다. 청결 상태도 불량하며 공중화장실은 문이 없는 곳도 있다.
 
버스는 에어컨과 난방이 안 되는 차는 요금이 1위안, 시설이 좋은 차는 2위안이다. 연평균 기온 13.3℃, 연평균 강수량 604mm로 우리나라 장마철 한 시간쯤 쏟아지는 양보다 적다. 그래서 시안 사람들은 비 내리는 것을 무척 반긴다. 시안의 특징 몇 가지를 간추려 봤다. 집을 지을 때 건물의 절반은 높이를 낮춰서 빗물을 받도록 했다.
 
칼국수의 국수 가닥(너비가 2cm)은 허리띠로도 쓴다. 또 식량이 풍부해 처녀가 외지로 시집가지 않는다, 전병이 가마솥 뚜껑만 하다 등 여러 가지가 있다. 주변에 바다가 없는 관계로 시안 사람들은 우리나라 제주도로 와 신혼여행을 즐긴다고 한다. 
 
현지인이 말하는 시안 방문 시 주의사항

시안 셴양 국제공항에 내리자 가이드가 일행을 반갑게 맞이했다. 자신을 한국인 3세라고 소개하며 먼저 당부의 말들을 꺼내 놓는다. 소매치기가 많으니 가방은 꼭 앞으로 메고 스마트폰은 전화를 걸고 있어도 낚아채가니 조심하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그렇게 주의를 했어도 큰일이 벌어졌다. 일행 중 한 사람이 신용카드가 든 지갑을 소매치기 당했다. 다행히 함께 있던 일행이 현장을 목격하고 조용히 소매치기범을 뒤따라가 강한 눈빛과 무언의 행동으로 소란피우지 않고 지갑을 돌려받았다. 자칫 큰 소란은 인명을 해칠 우려가 있었기 때문에 한국인의 기지를 발휘해 위기를 넘긴 것이다. 아마도 그 소매치기범은 훔친 것을 도로 빼앗기는 평생 잊지 못할 경험을 했으리라.
 
가이드는 말한다. 시안에서는 ‘한국’ 하면 ‘깨끗한 나라, 잘사는 나라, 인정 많은 나라’라고 여기는데 중국 내 다른 지역에서는 별로 좋게 생각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런저런 사고를 치고 중국을 도피처로 삼기 때문이다. 외국을 나가면 이름을 묻기 전에 어느나라 사람인지부터 먼저 묻는다. 각자가 개인 외교사절단이라는 자부심을 품고 행동해야 한다.                                                  
산시성 시안

인구 : 약 850만 명
면적 : 10,108㎢
시차 : -1시간(우리나라와 비교해)
화폐 : 위안(元, Yuan)
현재 : 상공업·관광도시
진시황릉

세계 8대 기적
37년간 70만 명 인력 동원
높이 120m, 내성 4km, 외성 6km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
 

병마용 총  8,000구
키          172~178cm
몸무게     100~200kg
복원 시간  약 7~8개월
 
 
 
 
본 기사의 전문은 대한뉴스 2012년 10월호(www.daehannews.kr)에 자세히 나와 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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