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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문화 일반

名車列傳|폭스바겐

국민차에서 출발한 유럽 최대의 자동차 왕국

[인터넷 대한뉴스]글 김병헌 기자 | 사진 폭스바겐


 

아우디 비롯해 체코의 슈코다, 스페인의 세아트 거느려


독일 말로 국민차를 뜻하는 폭스바겐(Volkswagen)의 역사는 1933년에 시작되었다. 독일 제3제국의 총통이 된 히틀러가 대중의 지지를 얻기 위해 추진한 소형차 개발 프로젝트가 회사명으로 자리잡은 것이다. 이후 80여 년이 지난 지금 폭스바겐은 유럽 최대의 자동차 메이커로 거듭났다. 자회사 아우디를 비롯해 체코의 슈코다, 스페인의 세아트 등을 거느리고 멕시코, 브라질, 중국, 스페인, 체코 등지에서 10여 개의 공장을 돌리고 있다.

 

포르쉐가 설계한 국민차


폭스바겐이 만든 차는 비틀이다. 전 국민이 오토바이 값으로 자동차를 탈 수 있는 시대를 열겠다는 히틀러의 공약이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비틀을 잉태했다. 비틀의 총안은 독일 슈투트가르트에서 자동차 설계사무소를 운영하던 페르디난트 포르쉐에게 맡겨졌다. 히틀러는 어른 두 명과 어린이 세 명이 탈 수 있고 1리터로 14.5km 이상 달릴 수 있으며, 값은 1,000마르크 이하인 차를 만들어 달라고 주문하면서 둥그런 모양을 직접 그려서 제안했다.

 

이를 기초로 뒤 엔진, 뒷바퀴굴림 타임의 프로토타입이 1935년 등장했고, 1938년 볼프스부르크에 공장이 들어섰다. 기공식에 참석한 히틀러는 국민차에 카데프(KdF, Kraft der Frede의 머릿글자로 ‘기쁨의 힘’이라는 뜻)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 차는 당시 선풍적인 인기 속에 33만 대가 예약되었으나 39년 2차대전이 터지면서 양산되지 못했다.


공장에서 조립 중이던 국민차는 급히 군용차로 변경되어 독일군과 나치 친위대를 태우고 전장을 누볐다. 2차대전을 배경으로 한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퀴벨바겐과 슈빔바겐 등이 그것이다. 전쟁이 끝날 무렵 볼프스부르크 시가지와 공장은 폐허가 되었으나 전후 영국군에 의해 시설 일부가 복구되어 1945년 6월 첫 차가 생산되었다. 공랭식 수평대향 4기통 1.1리터 25마력 엔진을 뒤에 얹고 뒷바퀴를 굴리는 방식이었다.


폭스바겐은 재정적인 어려움 때문에 한때 미국 메이커와 합병을 원했으나 GM, 포드 등이 이익이 남지 않는다고 외면했다. 그러던 폭스바겐이 해마다 생산대수를 늘리며 독일 재건의 견인차 구실을 해냈고, 1950년대 중반 이후로는 독일 귀환 병사들이 갖고 들러온 차를 통해 미국에서도 폭스바겐 붐이 일었다. 1959년 유럽 메이커로는 처음으로 미국에서 100만 대 생산을 돌파했다.


비틀의 판매호조에 힘입은 폭스바겐은 1969년 아우토유니온(아우디의 전신)을 합병하고, 이어 72년에는 1,500만7,034대의 비틀을 생산함으로써 포드 T형의 단일차종 최고 생산기록을 깼다. 비틀의 높은 인기를 이용한 개조모델도 선보였다. 55년에 나온 카르만 기아가 대표적인 예이다. 61년에는 1.5리터 엔진을 얹은 VW1500을 내놓았고, 65년 패스트백 타입의 1600도 선보였다. 이 시기에 만든 마이크로버스는 요즘의 미니밴 구실을 하면서 유럽과 미국의 레저문화를 이끌었다.


1978년 폭스바겐은 강화된 안전기준 및 배기규정 때문에 비틀을 단종했다. 1,652만5,500대째가 마지막 모델. 30년 넘게 같은 모양을 유지한 비틀은 메커니즘과 편의성을 끊임없이 개선해 단종 당시에는 초기 모델과 똑같은 것이 한 가지도 없었다. 구형 비틀은 96년까지 브라질에서 계속 생산되었다.

 

럭셔리카 페이톤과 고급 SUV 투아렉 선보여


한편 폭스바겐은 비틀이 단종된 지 20년 만인 1998년 뉴 비틀을 발표해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남미에서 생산되어 미국 시장에서 인기리에 팔리고 있는 뉴 비틀은 현대적인 메커니즘에 복고풍 디자인을 쓴, 가장 성공적인 레트로 모빌로 꼽힌다.

폭스바겐은 1970년대 들어 비틀을 대신할 수 있는 합리적인 모델을 만들었다. 파사트(73년)와 골프(74년)가 그것. 특히 쥬지아로가 디자인한 골프는 ‘앞바퀴굴림 해치백’이라는 소형차의 기준을 만들어내면서 비틀 못지않은 인기를 누볐다. 뒤를 이어 시로코, 폴로, 제타 같은 소형차를 차례로 발표해 가짓수를 늘렸다. 또 창사 50주년을 맞는 1988년에는 3세대 파사트를 선보였다. 이날을 기념하기 위해 볼프스부르크 자동차박물관에는 13만4,000여 명의 근로자가 사인한 파사트 설룬이 전시되어 있다.


1980년대 들어 글로벌화를 본격 추진한 폭스바겐은 세아트(1982년), 슈코다(1990년)를 인수해 4개의 자회사로 구성된 유럽 최대의 메이커로 떠올렸다. 흔들림 없는 소형차 왕국이 건설되자 피에히 회장은 또 고급 대형차와 스포츠카 제작에 눈을 돌리고 기업 사냥에 들어갔다. 1998년 5월 영국 롤스로이스와 이태리의 람보르기니를 사들였고(롤스로이스는 다시 BMW에 넘어가 벤틀리의 상표권만 갖고 있다) 2001년에는 폭스바겐 배지를 단 최고급 세단 페이톤을 내놓았다. 이 차는 W12 6.0리터 420마력 엔진과 호화장비로 무장해 벤츠 S클래스와 경쟁한다. 2002년에는 포르쉐와 공동개발한 고급 SUV 투아렉을 발표해 풀 라인업을 완성했다.


폭스바겐은 자동차 이름에 바람의 이름을 붙이는 것을 선호하는 브랜드다. 골프, 제타, 파사트 등이 모두 바람의 이름이다. 폭스바겐은 2006년 폴로 블루모션(Polo Bluemotion)을 시작으로 친환경 브랜드 블루모션을 론칭했다. 2010년형 폴로 블루모션은 1리터당 30.3km(유럽기준)로 세계에서 가장 연비가 높은 차가 됐다.                                                  

 

 

본 기사의 전문은 대한뉴스 2012년 1월호(www.daehannews.kr)에 자세히 나와 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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