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이나 생일 때 온 가족들이 모이면 아이들 덕분에 집안에 웃음이 넘친다. 갓난쟁이의 옹알이에도 웃으며 박수를 치고 TV에 나오는 연예인을 흉내 내는 손자, 손녀, 조카들을 보며 어른들은 새로 힘을 얻게 된다. 예전 어느 애니메이션에 아이들 웃음소리를 모아 에너지를 만드는 이야기가 있었다. 이것이 현실이라면 우리 아이들이 얼마나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를 상상하며 어린이날을 재조명해보자.
국제아동인권 선언보다 앞선 우리나라의 어린이날 선언
천도교 3대 교주이자, 3.1운동의 중심에 있었던 독립운동가 손병희 선생의 사위인 소파 방정환은 1922년 어린이들의 인권의식과 민족정신을 기를 목적으로 색동회를 조직했다. 이 단체가 1923년 5월 1일‘어린이날’을 선언하게 된 중심에 있었고, 우리나라의 어린이날 선언이 1924년 제네바 국제연합협의회에서 채택된 국제아동인권선언보다 더 앞섰다는 것 또한 자랑할 만하다. 그러나 1937년 일본은 어린이날 기념식 및 행사를 항일운동의 하나로 지정해 모든 행사를 금지시키고 어린이날을 폐지했다.
1946년 5월 5일, 해방 이후 수만명의 어린이가 태극기를 흔들며 맞이한 어린이날
서울의 휘문중학교 교정에서 일본의 억압 속에 10년이나 잃어버리고 있었던 어린이날 기념행사가 수만명의 어린이가 참여한 가운데 열렸다. 이날 기념식을 치르며 어린이날이 5월 5일로 날짜가 확정되었다. 그리고 창경궁에도 많은 어린이들이 가족들과 함께‘어린이야유회’에 참석해 즐거운 한때를 보냈다고 한다.
다시 보는 어린이날 큰잔치
1947년, 1948년 어린이날 기념식은 창경궁에서 기념식을 하고 서울운동장에서 초등학생 체육제전을 열었다. 우리나라 정부수립 후 처음 맞은 1949년 어린이날에는 처음 어린이날 우표를 발행했고 서울의 초등학생, 유치원생 16만명에게 과자 1봉지씩을 주었다고 한다. 이후 한국전쟁과 이후 몇 년간은 기념식만 조촐하게 치러졌고 1967년부터는 종로부터 시청까지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캐릭터 등의 가장행렬이 인기를 끌었다. 1973년에 법정기념일로 지정되었고 1975년에 공휴일로 지정되어 지금까지 가족과 함께 즐겁게 노는 날이 되었다.
기자 뒷말
요즘 우리 아이들은 밖에서 뛰어 놀기보다는 TV나 인터넷, 게임 등을 하며 지내고 어린이날에 바라는 선물도 아주 고가의 제품들이 많다. 물론 과자 한 봉지에 너무 좋아하던 예전 우리와 비교할 수는 없지만 어린이들의 순수함이 점차 사라지는 것이 안타깝다. 내 아이에게 부족함 없이 해주고 싶은 것은 모든 부모의 바람일 것이다. 그러나 물질적으로 보여주는 사랑보다는 내 아이에게 관심 어린 따뜻한 말 한마디와 마음을 담은 카드나 편지로 돈이 많아도 살 수 없는 것들을 선물해 보는 것이 어떨까? 작은 것에서부터 감사하는 마음을 우리 어른들부터 보여준다면 아직 물들지 않은 우리아이들의 순수함을 다시 찾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