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5 (목)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월간구독신청

아까운 친일파

   
▲ 한국자치발전연구원 원장,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민주평통자문회의 상임위원

한 나라가 위기를 당했을 때, 위기를 극복하여 나라를 구하고자 하는 충성파와 애국자가 있는가 하면, 개인적 호신과 이익을 위해 자기 나라를 배반하는 반역자나 부역자도 생겨나게 된다. 독일의 히틀러와 같은 희대의 독재자가 지배하는 프랑스나 폴란드에도 이에 동조하여 벼슬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던 것이다. 우리나라 역사에 있어 이와 같은 비극적 사태가 일어난 것은 아마 일제 지배하에 있었던 지난 36년간이었다고 할 수 있다.

친일파라는 족속이 있다. 일제 식민시대 일본 정책에 동조하여 반민족적 행위를 한 무리들을 일컫는다. 일본의 지배하에 있을 때, 한반도 민족의 행태를 보면 크게 세 가지 유형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는 극히 소수이지만 국내외서 독립을 위해 헌신하고 있는 독립운동가들이고, 둘째는 이보다는 훨씬 더 많은 숫자로서 일본에 동조하고 협력하고 있는 친일파들이며, 셋째는 시키는 대로 따르며 그저 생업에만 열심히 종사하는 평범한 일반 백성들로서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부류이다. 친일파의 경우에도 몇 가지로 분류할 수 있으니, 적극파와 소극파, 시종일관파와 후기가담파, 관료파와 지식인파, 신념파와 시류파 등이 그것이다.

우리나라 민족문제연구소에서 편찬한『친일인명사전』에 보면 좀 아깝다고 생각되는 사람이 몇 명 포함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현대사에 있어 우리나라에 귀한 업적을 많이 남겼고, 일제의 강요에 오래도록 버티다가 끝에 가서 할 수 없이 지조를 꺾은 지성인에 속하는 사람들이다.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을 이기고 중국과 동남아 및 태평양으로 진출하면서 국내에서는 한국말을 폐지하고 창씨개명을 단행하는 등의 상황을 보면서 일본제국은 영원하고 한국독립은 요원하다는 판단을 하는 지식인이 많았을 것이다. 순간의 판단이 평생을 좌우하게 되고 길이 역사에 오점을 남기게 된 것이다.

육당(六堂) 최남선(崔南善, 1890~1957)은 역사가이자 문학가로서 종합월간지인『소년』을 위시하여『새별』과『청춘』, 그리고 신문『시대일보』 등을 창간하여 국민계몽에 앞장섰으며, 무엇보다‘3·1독립선언서’의 초안을 작성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러던 그가 후에는 반민족행위자로 돌아섰다. 춘원(春園) 이광수(李光洙, 1892~?)는 소설가로서『무정』,『사랑』,『흙』,『원효대사』,『이차돈의 사』,『마의태자』,『돌베개』,『꿈』,『나』 등의 소설과 수필을 써서 우리나라 현대 소설의 이정표를 세웠다. 그는 한때 상해임시정부에서 활약하기도 하고, 동아일보 및 조선일보에서 근무하기도 하였다. 그러던 그가 태평양전쟁 발발후부터 일본에의 충성과 학도들의 입대를 독려하는 유세를 전국 곳곳에서 행하였다. 또 한 사람 홍난파(洪蘭坡, 1900~1940)는 작곡가이자 제금가(提琴家)인 음악가로서 서울음악협회를 창립하고 YMCA를 중심으로 음악분야의 선구적 공로가 지대하였다. 작곡한 노래로는 한국인의 정서에 맞는‘봉선화’,‘고향의 봄’,‘성불사의 밤’,‘낮에 나온 반달’,‘퐁당퐁당’ 등 다수가 있다. 그 역시 만년에 이르러 일제를 미화하고 찬양하는 노래의 작곡을 지으면서 친일의 대열에 들어섰던 것이다.

예를 든 세 사람 가운데 홍난파는 해방 전에 작고했으므로 다행이었으나 최남선과 이광수 같은 분은 해방된 조국의 하늘 아래서 많은 고통을 당하며 살았다. 특히 이광수는 조선조에 태어나 대한제국을 거쳐 일제 식민치하에서 수학하고 활동했으며, 해방과 함께 미군정과 대한민국을 잠시 경험한 뒤 6·25동란과 함께 납북되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살다가 작고한 참으로 파란만장하고 비참한 생애였다고 할 수 있다. 이들 모두의 생애와 활동 및 공과를 함께 생각하면 단순한 친일파라고만 매도하기에는 아깝다는 마음을 금할 수 없게 한다.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