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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탐방

한국여성단체협의회 김정숙 회장

여성이 희망이다, 여성의 정치사회화를 실천한 우리나라 최초의 인물

   
▲ 김 회장은 아시아·태평양여성단체연합(FAWA) 회장이기도 하다.


2014년 여성의 권한은 어디까지 와 있을까? 많은 사람들이 비약적인 발전을 해왔다고 대답할 것이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아직도 여성의 사회참여를 막고 있는 현실들을 보게 된다면 대답을 망설이게 될 것이다. 경제적으로 우리보다 후진국들도 여성의 정치, 경제 참여비율이 높다. 이는 역설적으로 주요 현안에 밀려 여성의 문제가 도외시돼 왔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30년 이상‘여성 정치참여 확대’와‘여성의 역량강화를 위한 교육’에 힘써온 한국여성단체협의회(이하, 여협) 김정숙 회장을 만나 여성의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정치사회화 실천
 

  김정숙 회장은 본래 평범하게 은행과 남편의 병원에서 일하던 여성이었다. 그러다 국회의원 공천을 받아 1988년 여당 후보로 출마하게 됐는데, 지역구의 주민들, 특히 남성들의 불만이 터져 나오는 것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국회의원 선거에 나온 3명의 여성 후보자조차 용납하지 않은 이 사회로부터 여성의 권리가 침해받고 있고, 이를 개선해 나가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1989년 한국여성정치문화연구소를 설립하고 양성평등과 정치문화 개선을 위해 본격적인 행보에 들어가게 된다.


  평소 교육에 대한 관심이 많아 미국에서 교육행정학 박사학위를 받은 김 회장은 여성과 정치, 부모교육, 아동복지에 대한 강의와 활동들을 이어가면서 여성의 정치참여를 높이기 위해 노력했다. 연구소는 우리나라 여성정치인들의 산실로, 당시 여성정치인이 드물었던 시절 김 회장에게 여성의 정치참여를 배우며 정계에 입문한 여성정치인이 상당히 많았다. 현재에도 연구소에서는‘차세대 여성정치인 육성프로젝트’를 비롯해‘여대생이 꿈꾸는 바른 정치 캠페인’등 정치참여 사업을 진행하면서 여성정치인을 육성하고 있다. 아무리 강한 남자라도‘어머니’란 단어 앞에서 콧날이 시큰해질 수밖에 없듯이 여성의 위대함을 사회 곳곳에 모범되게 보여 부패하고 낡은 정치를 바꿔나가는 데 앞장서도록 유도하고 있다.


  김 회장의 왕성한 활동은 정무장관실 차관과 제14대~제16대 국회의원 시절로 이어지게 된다. 여성의 권리를 이야기하는 것은 단순히 남녀차별 등 남성을 이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남성을 존중하면서도 여성이 해야 하는 역할이 있기 때문에 서로 힘을 합쳐 우리 사회를 발전시켜 나가기 위해서다. 남녀가 물과 흙처럼 골고루 분포되어야 메마른 땅에서 생명이 자라듯이 섬세하고 따뜻한 시각으로 우리나라를 떠받쳐 나갈 수 있는 어머니와 같은 지도자가 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여성이 적극 개입해서 올바르게 설 수 있도록 노력하고, 불평등한 제도와 정책을 과감히 개선시키기 위해서는 스스로가 사회에 참여해 바꿔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 지난해 10월 코엑스에서 개최된 제48회 전국여성대회에서 박근혜 대통령과 당시 새누리당 황우여 대표 등 1,500명이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한국과 세계의 여성단체 수장으로


  아직도 김 회장은 할 일이 많다. 정치인에서 여성단체의 수장으로 돌아와 여협을 이끌고 있지만, 사회의 구조적인 모습을 바꿔나가려는 의지만큼은 확연하다. 2009년부터 6년간 65개 단체, 5백만 회원을 둔 여협을 이끌어온 김 회장은 그 동안 조직을 안정화시키고 단체 수를 배가시켜 조직을 키워왔다. 그리고 청렴 심포지엄과 여성대회, 전국결의대회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과 사업 등을 통해 조직의 역량 강화에도 힘쓰고 있다. 여협은 지금까지 장관 및 국회의원 등 사회 지도층이 회장을 맡을 만큼 여성문제가 우리 사회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고 있고, 정부와 관련기관과의 협의시 이러한 문제가 반영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협의회라는 특성상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 회원 가입은 안 되지만, 희망하는 분야의 단체를 소개해 주면서 적극적으로 여성들이 활동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김 회장은 세계여성단체협의회(ICW) 수석부회장을 겸직하고 있다. 지난 1888년 세계여성협의회로 설립된 세계여성단체협의회는 최초의 여성 비정부기구로, 한 국가당 오직 하나의 단체만이 그 대표성을 인정받을 수 있는 각국 여성단체협의회들의 협의체다. 지난 10월 개막한 제21차 아시아·태평양여성단체연합(FAWA) 총회 및 국제심포지엄에서 서울선언을 채택했다. 우리나라도 여성문제가 갈 길이 멀긴 하지만, 세계 각지 여성문제가 심각한 곳이 더 많다. 이 부분 또한 김 회장이 가슴 아파하고, 더욱 관심을 갖게 한다. 취재를 전후로 계속 해외출장을 다니는 힘든 일정 속에서도 세계 여성문제가 풀어야 할 숙제가 많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김 회장은 여협 회장 임기가 끝난 이후에도 세계여성단체협의회와 아시아·태평양여성단체연합에 애정을 갖고 일하고 싶다는 의지를 밝혔다.


동등한 책임과 권리를 찾아가는 여성의 역량


  가정에서 남성이 집안의 기둥이라면 여성은 해와 같은 존재로 어둠을 밝혀주듯이, 안주인이 있는 가정과 없는 가정의 분위기가 다를 수밖에 없다. 여성은 가족의 건강과 아이들의 올바른 성장을 위해 집안 곳곳에 손이 가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로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노력하는 존재다. 이러한 역할은 우리 아이에게 필요한 것을 주려고 하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선함이 내재돼 있어 우리나라를 정화시키고 발전시키는 데 지대한 역할을 해왔다. 사회참여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나라가 떠안고 있는 무수히 많은 문제들 역시 여성의 따뜻한 손길을 거치게 되면 우리 사회도 더욱 발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직 여성의 정치참여와 사회참여가 선진국 수준만큼 올라가지 않았지만, 이렇게 여권이 신장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1959년에 설립돼 55년간 사회 전 분야에 걸쳐 문제제기와 발전을 위해 힘써온 여협의 활동이 있었기 때문이다. 여협은 우리 사회가 발전하기 위해 함께 지혜를 모으고 몸소 실천하면서 여성의 사회참여 확대에 앞장서 왔다. 이러한 노력은 단합한 여성계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 이후 추진될 사업에도 큰 동력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변화된 여성의 위상은 여성의 주체적인 사고로의 변화로 이어진다. 예전처럼 여성은 보호받아야 하는 존재가 아닌, 사회 주체로서 권리와 책임을 다하면서 의존하기 보다는 스스로 자립할 줄 아는 능동적인 여성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남성과 동등한 조건에서 능력을 발휘하고, 동등한 책임을 지며, 동등한 권리를 주장할 수 있도록 여성이 먼저 바뀌어야 한다고 밝혔다. 여성의 역량강화는 여협의 핵심사업으로, 양성 평등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능력이 있는 여성들이 서로의 경험을 공유하고, 남성들과 함께 우리 사회의 기본적인 문제부터 중요한 의사결정까지 가질 수 있도록 능동적인 역량을 키워가고 있다.
 

   
▲ 지난 2012년 서울에서 세계여성단체협의회(ICW) 총회를 개최했다. 김 회장은 ICW 수석부회장도 겸직하고 있다.


국회의원 대선거구제 도입을 통한 여성의 정치참여 확대


  이러한 역량강화는 곧바로 여성의 사회참여와 의사결정으로 이어지게 되는데, 이는 남성과 여성이 평등하게 사회를 개혁해 나가는 것을 의미한다. 김 회장은 기존의 사회질서대로 해서는 우리 사회가 바뀔 수 없고, 결국 사람이 바뀌어야 우리 사회가 바뀔 수 있다고 강조한다. 여성은 선천적으로 부패와 거리가 멀기 때문에 부정·부패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여성이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기업의 경우에도 여성임원 비율을 높여 생산성을 높이도록 해야 하는데, 다우존스의 연구에 의하면 벤처기업 가운데 남성보다 여성 CEO 기업의 성공률이 두 배에 달한다고 한다. 외국의 경우 40%까지 여성임원의 참여를 보장하고 있고, 실제로 이와 같은 정책이 긍정적인 효과를 내고 있다고 한다. 정치 역시 마찬가지다. 현재의 국회의원들로는 지역갈등, 다양한 사회갈등 문제를 풀기가 힘들 수밖에 없다. 외국에서는 여성의 정치참여 할당비율을 법적으로 보장하고 있어 환경과 건강, 교육 등 다양한 분야에 있어서 여성의 관점으로 보다 생산적이고 선진적인 방안들을 창출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제도적인 장치가 시급한 대목이다.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갈등의 해법으로 국회의원 소선거구제 폐지와 대선거구제 도입을 들었다. 현재의 소선거구제는 승자독식의 방식으로, 본인이 속해 있는 지역발전만을 위하는 이기주의와 부정선거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상존하는 문제가 있다. 선거구당 10~30만명의 소선거구제에서 가능한 부정선거가 100만명 이상의 대선거구제로 바뀌게 된다면 부정선거 자체가 어렵게 되고, 입후보자들 스스로 공정한 선거를 준비하게 된다는 것이다.


  또한 대선거구제의 도입은 여성의 사회참여와 의사결정에도 큰 활로를 확보하는 계기를 마련할 수도 있다. 스웨덴의 경우 나라 전체를 29개의 선거구로 나눠 대선거구제로 운영하고 있는데, 1선거구당 한 사람이 아닌 다수가 당선이 되고, 여성을 50% 공천하도록 돼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 역시 현재 여성의 정치참여를 50%까지 점차적으로 유도해서 사회갈등을 해결하고 양성이 평등한 사회로 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요즘 김 회장의 고민은 정치분야 여성참여 확대에서 경제분야 기업 여자임원 확대 쪽으로 옮겨가고 있다. 정치분야는 사회적인 여론이 조성돼 있어 할당제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옮겨가면 되지만, 경제분야의 여성임원 참여는 지극히 초보적인 수준에 그치고 있기 때문이다.

   
▲ 김정숙 회장의 가장 큰 버팀목인 남편 한성병원 조광열 원장과 아들 의학전문대학원생 조성수


내 인생과 여협의 숨은 조력자들에게 감사를


  이 지면을 빌어 김정숙 회장은 자신의 인생과 여협의 숨은 조력자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고 했다. 가장 먼저, 선거 때와 한국여성정치문화연구소를 개소할 때, 그리고 인생의 고비마다 사재를 털어 도와주고 조언을 해준 남편 한성병원 조광열 원장과, 인생 느지막에 얻게 돼 훌륭히 자라 의학전문대학원에 다니고 있는 아들 조성수에게 본인의 인생에 있어 줘서 고맙다고 전했다.


  그리고 가족법 폐지 등 여성계의 예민한 현안이 있을 때마다 주저하지 않고 달려 나온 5백만 여성 동지들과 65개 단체회장의 협조가 아니었다면 오늘날 여협의 발전도 장담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대통령을 만들어 내는 데 우리 여성계가 하나로 뭉쳐 이룩한 성과는 회원들의 열과 성의가 뒷받침했기 때문이다. 이들이 있어 든든하게 회장직을 수행할 수 있었다는 감사의 말을 전했다.


  취재를 마치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본인이 아니면 안 된다는 식으로 자리에 연연하는 사회 풍토에서 김 회장은 퇴임 후 편안한 노후생활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아무런 욕심도 없이 자리를 내려놓는 모습도 아름답지만, 30년 넘게 여성계와 우리나라를 위해 사심 없이 일해 온 김 회장 같은 인물이야말로 우리 사회에 남아 소신 있게 정치와 사회가 더욱 발전할 수 있도록 일해 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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