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허 서동진(小虛 徐東辰)
1900~1970 대한민국
1900~1970 대한민국
·작품명 : 꽃병 정물(6호)
·규 격 : 30cm x 40cm
·재 료 : 수채화
·제작년 : 미상
·규 격 : 30cm x 40cm
·재 료 : 수채화
·제작년 : 미상
수채화의 선구자. 대구광역시 출생으로 보통학교를 나온 뒤 독학으로 수채화를 공부하였으며, 대구의 양화운동을 주도하였다. 1920년대 중반부터 1930년대 중반까지 동인작품전을 주관하는 한편, 그림에 뜻을 둔 학도들의 모임인‘영과회(零科會)’,‘향토회(鄕土會) 등의 결성 주도하여 수채화의 보급과 지방미술의 발전에 많은 공헌을 하였다. 또한 이인성, 김용조를 비롯한 불우했던 후배들에게 많은 격려와 자극을 주는 등 미술 운동을 통한 민족의식의 고취와 후진양성에도 힘썼다.
서동진은 주로 대구일원의 거리와 마을을 수채화로 사생하였는데, 그는 당시 수채화는 유화와 비교하여 부수적인 기법이라 여기던 기존 인식에서 벗어나 중심 기법으로 다루어 발전시킨 작가였다. 대표작으로는「오후의 풍경」(1931년),「뒷골목」(1932년) 등이 있으며, 광복 후 1950년 대구화우회(大邱.友會) 창립에 참여하고 신문사 임원, 학원재단이사장 등을 지내다가, 1945년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서동진은 주로 대구일원의 거리와 마을을 수채화로 사생하였는데, 그는 당시 수채화는 유화와 비교하여 부수적인 기법이라 여기던 기존 인식에서 벗어나 중심 기법으로 다루어 발전시킨 작가였다. 대표작으로는「오후의 풍경」(1931년),「뒷골목」(1932년) 등이 있으며, 광복 후 1950년 대구화우회(大邱.友會) 창립에 참여하고 신문사 임원, 학원재단이사장 등을 지내다가, 1945년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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