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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칼럼] 교육에서의 ‘뉴 노멀’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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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재춘 한국교육개발원 원장

  학력
~ 1986  △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교육학과(B.A.)
~ 1988  △ 서울대학교 대학원 교육학과(M.A.)
~ 1996  △ 미국 University of California, Los Angeles 교육학과(Ph.D.)

주요 경력
OECD CERI(교육연구혁신센터) 운영위원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운영위원 및 교육분과위원회 위원장
교육부 정책자문위원회 학교교육개혁분과 위원장
제58대 교육부 차관
대통령비서실 교육문화수석실 교육비서관
세계교과서학회 아시아대표이사
영남대학교 교육학과 교수



얼마 전 이스라엘 예루살렘에서 개최된 ‘교육산업 정상회의’에 한국 대표로 참석한 적이 있다. 30여개국의 교육부 장·차관과 산업계 CEO들이 참석한 회의였다. 본 회의 하루 전 이스라엘 교육부 장관의 안내로 교육 현장을 방문하는 일정이 잡혀 있었다. 그 중 특히 인상적인 곳이 첫 번째 방문지였던 예시바(Yeshiva)였다. 예시바는 유대인들의 전통학교이다. 지금도 이스라엘의 10%가 넘는 학생들이 예시바에서 교육받고 있다. 둘씩 짝을 지어 질문과 답변을 주고받는 토론 중심의 교육 방법을 뜻하는 하브루타(Havruta)는 바로 예시바에서 유래한 교수법이다.

우리가 방문한 예시바에서는 1,000여명이 넘는 남학생들이 강당처럼 보이는 커다란 교실에서 수업하고 있었다. 교사가 강의하고 학생들은 듣는 일반적인 교실 풍경과는 달리, 예시바에서는 조그만 스탠딩 책상 주위에 2~3명의 학생들이 서서 토론에 열중하고 있었다. 하얀 와이셔츠 상의에 검은색 바지를 입은 1,000여명의 학생들로 가득찬 교실은 복장에서는 획일성이 느껴졌지만, 2~3명의 학생들이 두꺼운 탈무드 경전을 가운데 놓고 끝임없이 진행하는 토론은 하브루타의 진수를 보여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예시바에서 진행 중인 수업을 충격 속에서 보고 있던 차에 이스라엘 교육부 장관은 예시바 교육철학 중의 하나는 토론으로 시끄러운 가운데서 학생들은 정신을 집중하는 훈련을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예시바의 정신 집중 훈련은 흔히 도서관처럼 조용한 곳에서 한다는 통념과 대조된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으레 정신 집중은 조용한 곳에서 해야 잘 된다고 생각해 온 필자는 뭔지 모를 것으로 한 방 얻어맞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내가 지금까지 ‘거꾸로’ 알고 있었단 말인가?

요즘 전 세계 교육계에서 ‘거꾸로’가 유행이 되었다. ‘거꾸로 수업’(flipped learning)이 교육 개혁의 하나의 큰 흐름을 이루고 있다. 거꾸로 수업은 학교에서 강의를 듣고 집에서 문제풀이를 하는 등의 전통적인 수업 방법을 뒤집은 것이다. 집에서 인터넷 강의 등을 통해 개념 등을 학습하고 교실에서는 이를 적용한 문제 풀이나 토론 등 적극적인 협력 활동을 하는 수업방식이다. 이런 거꾸로 수업은 교사 중심 수업을 학생 중심 수업으로, 그리하여 학생들의 수동적인 수업 참여를 적극적인 수업 참여로 바꾸는 데 기여했다. 이런 연유로 거꾸로 수업은 개별 학생들에게 의미 있는 수업이 가능한 미래교육의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다.

사실 거꾸로 수업이라는 아이디어는 미국의 칸 아카데미(Kahn Academy)의 설립자 살만 칸으로부터 유래하였다. 보스턴에서 헤지펀드 분석가로 일하고 있었던 칸은 1,500마일 이상 떨어진 뉴 올린즈에 있는 조카들에게 인터넷을 통해 수학 등 학습을 도와주는 개인과외를 시작했다. 이처럼 조카들에게 시작했던 영상 개인과외가 상당한 효과가 있는 것으로 드러나자 칸은 자신의 개인과외 영상을 모두 인터넷에 공개했다. 교사들이 학교에서 칸의 영상을 활용하면서 거꾸로 수업이라는 아이디어가 출현했다. 교사들은 학생들에게 집에서 칸의 수업 영상을 보도록 숙제를 내준 다음, 학교에서는 집에서 보고 온 내용을 적용하거나 활용하는 문제풀이나 토론 등의 수업을 진행하였다. 이런 수업을 개념화한 것이 바로 거꾸로 수업이다.

대학에서 거꾸로 수업의 대표적인 사례를 올린 공대(Olin College of Engineering)에서 찾아볼 수 있다. 보스턴 교외에서 2002년에 개교한 올린 공대는 거꾸로 수업을 철저하게 실시하는 대학으로 유명하다. 대학 신입생들은 공대의 전통적인 기초과목으로 간주되는 수학이나 물리, 화학 등을 공부하는 대신 자신들의 관심에 근거하여 무엇을 만들 것인가를 고민한다. 즉, 1학년 내내 동료들과 함께 자신들이 관심있어 하는 프로젝트를 만들고 발전시킨다. 그런 다음, 2, 3학년 과정에서는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데 필요한 수학이나 물리 등의 관련 지식을 공부한다. 지식을 얻기 위한 공부가 아니라 프로젝트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공부를 한다. 올린 공대는 공학의 기초과목들을 먼저 공부한 다음 차후에 문제해결을 시도하는 전통적인 공대 수업 방식을 완전히 뒤집어 거꾸로 진행하고 있다. 이런 거꾸로 학습의 효과는 대단한 것으로  나타났다. 졸업생의 76% 이상이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보잉 등 세계 최고 기업에 취업하였으며, 13% 정도가 대학원에 진학하는 성과를 올렸다. 설립되지 15년도 안 된 초소규모 대학이 미국 공과대학 3위, 25대 신흥 아이비리그에 포함되는 성과를 또한 얻었다.  

교육에서 ‘거꾸로’의 중요성과 성과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학교나 대학이 속한 우리 삶의 맥락이 달라진 데 일차적인 이유가 있을 것이다. 1, 2차 산업 혁명 시기에는 안정적인 지식을 얻고, 그에 기반한 동일성을 확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가치였다. 그러나 3, 4차 산업혁명의 시기에는 다름과 차이의 인정, 변화와 혁신의 추구가 무엇보다도 중요한 가치가 되었다. 예전에는 안정된 지식, 동일한 지식을 소유한 교사 또는 교수가 학생들에게 그런 지식을 체계적으로 전달하는 것이 학교나 대학의 주된 과업이었다. 그러나 지식의 습득보다는 지식의 활용과 창조가 중요한 3,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다양성과 차이가 무엇보다 중요하며, 이러한 다양성과 차이가 서로 만나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것이 중요한 가치를 이룬다.

‘거꾸로’의 교훈은 기존의 노멀(Normal)은 더 이상 우리에게 노멀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다. 우리 삶의 환경과 맥락이 달라짐에 따라 우리에게는 새로운 노멀 즉 뉴 노멀(New Normal)이 요청된다. 교육에서 뉴 노멀은 어떤 것인가? 우리가 미래 교육을 탐색할 때 무엇보다 우선적으로 교육에서의 뉴 노멀은 무엇인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 교육에서 ‘올드 노멀’을 ‘뉴 노멀’로 바꾸는 작업, 교육의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한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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