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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직자의 세금


 
요즘 성직자의 납세문제가 논란이 되고 있다. 성직자의 납세문제가 제기된 것은 약 50년 전의 일이다. 1968년 7월 2일에 국세청장이 성직자에게도 갑종 근로소득세를 부과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그러나 종교계의 반발이 심하고 성직자의 수입을 정확하게 파악하기가 쉽지 않아 실효를 거두지 못한 채 종결되었다.
 
■ 콘스탄틴 황제의 성직자 면제제도 
성직자가 누구의 지시로 왜 세금을 내지 않았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가 없다. 역사를 더듬어 올라가면 로마의 콘스탄틴 황제 시대에 그러한 관행이 만들어진 것으로 나타난다. 313년 로마의 콘스탄틴 황제가 그 동안 박해에 시달리던 기독교에 대하여 자유를 선포하고 자신도 기독교인이 되었음을 공언하면서 기독교를 국가의 종교로 장려하였다. 아울러 기독교 성직자들에게 많은 특혜를 주기 시작하였다. 병역의무 면제, 세금면제 등 파격적인 혜택을 부여했다.
 
당시 로마에 왕성했던 또 다른 종교는 태양신을 주신(主神)으로 하는 미트라 종교였다. 황제의 그러한 정치적 종교적 행보에 영향을 받은 미트라 종교의 사제들이 기독교로 개종하는 일들이 시작되었고, 그들을 따라서 많은 평신도가 기독교로 개종하게 되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서 기독교 안에 이교도(異敎徒)들이 섞여들어 온 것이 결국은 기독교의 세속화와 타락을 가속화시켰고, 그러한 풍토와 배경 속에서 마침내 교권과 정권을 동시에 행사하는 로마교회의 역사가 시작된 것이다. 그러니까 엄격히 말하면, 중세역사 에서 일천년 이상 계속된 종교암흑시대의 문을 연 것은 세금 면제를 비롯한 성직자들에게 주어진 특혜와 무관하지 않은 것이다. 종교가 금전문제나 정치적 문제에 연루되면 타락하고 부패하게 되는 것은 역사적 교훈이기도 하다.
 
■ 성직자 세금이 이중과세인가 
성직자 세금에 대한 종교계의 의견은 성직자 세금은 이중과세라는 것이다. 신도들이 이미 세금을 낸 자유로운 재정의 일부를 헌금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헌금으로 사례비를 받는 돈에 또 세금을 부과하면 동일한 수입원에 대하여 이중으로 세금을 낸다는 이론이다. 얼핏 들으면 그럴 듯하지만, 기독교에서 시행하는 십일조의 원리를 적용해 보면 쉽게 정리될 수 있을 것이다. 부모가 이미 십일조를 낸 재정에서 자녀들에게 용돈을 주었을 경우, 자녀들은 십일조를 내지 않아도 되는가? 기독교 상식으로 보아서, 자녀들 에게 어릴 때부터 십일조 헌금교육을 하는 것은 일반적인 일이다. 자녀가 부모에게 받은 돈을 자녀의 개인적인 소득으로 보는 개념이다. 그렇다면, 신도들이 이미 세금을 낸 재정에서 헌금한 돈으로 성직자의 사례비를 받았다 할지라도 그것은 성직자 개인의 소득이 되는 것이다.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이 법에는 물론 세법도 포함된다. 성직자들은 이미 제정된 국가의 법을 존중하고 철저하게 준수하는 본을 보여야 마땅한 지도자들이다. 도로를 비롯한 국가의 모든 공공시설물은 세금으로 만들어지고 세금으로 유지된다. 세금을 낸 국민이 그러한 시설물 들을 당당하게 사용할 권리가 있는 것이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세금을 내지 않으면 그러한 시설물들을 사용할 권리가 없다는 말이다.
 
■ 세금에 대한 예수의 입장 
신약성서 마태복음 22장에 보면 아주 간략하게 세금 이야기가 나온다. 바리새인들이 예수의 약점을 잡기 위하여 여러 가지 시도와 노력을 하던 중 어느 날 이러한 질문을 던진다. “당신의 생각에는 어떠한지 우리에게 이르소서 가이사에게 세를 바치는 것이 가하니이까 불가하니이까”. 아마 세금을 낼 필요가 없다고 대답하면 ‘탈세주장자’로 로마에 고소하려고 그러한 질문을 했는지도 모른다. 예수는 그들 에게 국가에서 발행하는 화폐(동전)를 보여 달라고 하였다. 그 동전에는 당시 로마 황제(가이사, 혹은 시저)의 형상이 새겨져있었다.
 
그 그림을 보며 이번에는 예수가 그들에게 질문하였다. “이 형상과 글이 뉘 것이냐”?“ 가이사의 것입니다.” 그때 예수의 대답은 아주 명료하였다. “그런즉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예수의 약점을 잡으려고 아주 묘한 질문을 가지고 왔던 바리새인들은 더는 할 말을 잃고 그 자리를 떠나갔다. 기독교의창시자인 예수도 국가의 세금을 내는 것을 인정하였다. 어떤 면에서 종교개혁 이후 기독교의 종주국이라고 할 만큼 기독교가 주류를 이루고 있는 미국에서도 성직자의 세금은 매우 당연한 것으로 인식되고 있으며 성직자의 면세는 존재하지 않는다.
 
한국에서도 일부 성직자들은 세금을 내고 있다. 천주교 신부들은 1994년부터 자진하여 세금을 내고 있다. 불교의 조계종도소득세를내고있는것으로알려져있다. 다른 성직자 중에서도 자발적으로 수입을 신고하고 세금을 내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개신교 중에서는, 교단 본부에서 목사의 봉급을 일괄 지급하는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가 개인의 봉급에서 원천징수하여 세금을 내고 있다. 이들은 국가에서 1968년에 처음으로 성직자 세금에 대하여 거론하기 이전인 1965년부터 세금을 내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 종교계와 정부가 한 발씩 양보해야  
종교인 과세문제와 관련하여 개신교에서는 지난 9월 29일 쉐라톤서울팔래스호텔에서 주요 교단 총회장과 총무들이 모여서 ‘종교인 과세 대책 특별회의’를 열었다. 회의 결과, 정부가 마련한 종교인 과세 ‘세부 기준안’을 거부하기로 하였다. 그러한 결정의 첫 번째 이유는, 종교인 과세 세부 기준안의 내용을 검토해보면 성직자 개인에 대한 과세를 넘어 종교단체(교회)에 대한 전반적인 과세로 확대되어 있다는 것이고, 둘째는 다른 종교의 경우 과세항목을 2~3 가지로 한정하고 있으나 기독교에 대해서는 격려금, 사택 공과금, 이사비, 선교비 등 수십 가지 항목에 대하여 과세를 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교회는 내부적으로 매우 큰 혼란이 일어날 것이고, 교인들과 목회자들간에 신뢰와 감사의 표시로 전달되는 소액의 금전마저 세금을 부과할 수 있는 대상이 되어 그 수입의 출처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과세를 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국가 차원에서 어떤 법을 제정하거나 정책을 수립할 때에는 지속적으로 실현 가능한 것이어야 한다. 길거리에 침 뱉을 때, 담배꽁초 버릴 때, 애완견의 분뇨를 내버려 둘 때등 다양한 경우에 벌금을 부과하는 법은 있지만, 그 법에 따라서 벌금을 낸 사람이 과연 대한민국에 몇 명이나 있을까? 실효성이 없는 법을 만들어 놓은 것이다. 성직자 수입에 대한 과세범위를 너무 세분화해놓으면, 그것을 제대로 파악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에 결국 성직자 세금 자체가 유명무실하게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래서 성직자는 납세의 의무를 당연한 국민의 의무로 받아들여서 기본적인 수입을 자발적으로 양심적으로 신고하여 합당한 세금을 내는 것을 원칙으로 해야 할 것이며, 정부는 성직자의 수입원을 파악한 다음, 지속적으로 세금을 징수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이치에 맞는 과세기준을 정하여, 피차간에 수용할 수 있는 합의점을 찾아야 할 것이다.
 
종교인에 대한 과세문제로 정부와 교계가 함께 홍역을 치르고 있는 이 시점에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중요한 문제가 있는데, 그것은 정교분리(政敎分離)의 원칙이다. 교회는 정치에 깊이 관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고, 정부는 교회에 대하여 간섭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기독교 정신에 입각하면 교회는 정치적 중립을 유지하면서 현재의 정권에 순응하는 것이 상식이다. 물론 사회 정화를 위하여 의견을 내고 다양한 활동을 통해서 국민의 도덕적, 영적 수준을 함양하고, 불우하고 가난한 이웃들에게 자선을 하는 것은 합당한 일이다. 그러나 어떤 활동이나 의견도 정치적 운동으로 비화해서는 안 된다.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에게 복종하라”(신약성서 로마서 13:1)는 것이 성서의 가르침이다.
 
글 김시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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