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철 건강관리법
김영섭(백운당한의원 원장)
얼마 전에 철쭉을 보러 산에 올랐는데 어느 결에 푸르른 신록에 싸여 그 꽃빛은 사라지고 작열하는 태양의 한여름 속에 있다.
모두가 금년 여름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 한번쯤은 생각해 보았으리라. 젊은이들은 여름휴가계획으로 마음이 들뜰 것이고, 주부들은 가족들의 여름 옷가지들을 챙기며 건강을 걱정하게 될 것이다. 그런가 하면 남성들은 천렵 생각에 벌써부터 군침을 삼키고 있을 것이다.
태양의 계절, 젊음의 계절, 정열과 사랑의 계절, 여름이 어느새 우리를 유혹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해야 뜨거운 여름한철을 아무런 탈 없이 건강하게 지낼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이다. 예전에는 여름철에 발생하는 질병으로 그저 뜨거운 햇볕에 노출되어 일어나는 일사병이나 음식물을 잘못 먹어 발생하는 배앓이 또는 식중독 등이 대표적인 하절기 질환이었다.
그러나 생활이 점점 풍족해지고 냉방기의 발달로 인하여 가정이나 사무실 등에서도 시원하게 여름을 보낼 수 있게 되었다. 심지어 한여름 내내 땀 한 방울 흘리지 않고 가을을 맞이하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이다.
하지만 이러한 과도한 냉방시스템은 자칫 사람들의 건강에 나쁜 영향을 주기도 한다. 실제로 우리속담에 “여름감기는 개도 안 걸린다”는 말이 있지만 요즈음은 여름철 감기로 고생하는 사람들이 수없이 많이 발생하고 있으며, 그밖에도 과도한 온도차로 인한 피부질환이나, 기관지질환, 관절염, 심지어 급격한 온도 차이를 보이는 환절기에 많이 발생하던 중풍 등도 많이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또 하절기에는 누구나 경험해보는 무력감과 권태감 짜증 등이 쉽게 발생한다. 어느 통계에 보면 친구나 부부간의 사소한 언쟁 또는 다툼이 여름에 더욱 많이 발생한다고 한다.
이것은 습도의 상승으로 인한 불쾌지수의 탓도 있겠지만 정신건강관리가 부족한데서 오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또한 더위와 갈증을 이기지 못하여 찬 음식과 음료 등을 과식 과음하므로 인하여 하절기의병을 더욱 깊게 하기도 한다.
지나친 냉방으로 인한 병을 흔히 냉방병이라고 하지만 한방에서는 반대로 서병(暑病)이라고도 하는데, 서병은 신체가 외기의 서열(暑熱)에 노출되면 서독(暑毒)이 구치(口齒)를 통해 침입하여 상화(相火)의 심포락(心包絡)을 상하게 하므로 발생하는 것이다. 즉, 더위가 입과 치아를 통하여 들어가 명치부위 속에 머물면서 발병하는 것이다.
가벼운 증상으로는 두통과 인후가 붓고 진땀이 나면서 전신 피로와 권태감으로 온몸이 나른하며 식욕이 떨어지고 만성감기증상과 함께 객담이 생긴다.
심할 때는 안면에 때가 끼고 땀이 나면서 미열이 발생한다. 등은 오히려 춥고 때로는 갈증이 대단히 심하면서 원기가 떨어지고 모발이 곤두서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급성일 경우 위 부위가 쥐어뜯는 듯 아프고 설사와 구토를 동반하며 근육경련이 일어나 장염으로 발전하는데 흔히 말하는 더위병이다.
장염은 장관의 활동이 심하게 되어 배가 골골하며 팽만하고 복통이 있는데 쑤시는 듯한 아픔까지 여러 가지 증상이 있다. 다만 염증이 소장에만 있을 때는 반드시 설사를 한다고 말할 수는 없고 소화되지 않은 연변이 점액과 함께 섞여 나온다.
소변양이 줄고 배뇨 후에는 등이 으슥하고 때로 손발이 아주 차가와 지는가 하면 혼수가 올 수 도 있다.
이런 하절기 질환은 예방과 관리가 매우 중요하다. 주로 하절기에는 양기(陽氣)가 외부로 발산되어 뱃속이 허냉해지므로 노인과 유아는 물론 중년들도 특히 습기가 많고 차가운 곳에서 잠을 잔다거나 날음식과 찬음식의 섭취를 삼가야 한다.
서독이 입과 치아를 통하여 침입하므로 갈증이 난다하여 시원한 물을 단숨에 들이키지 말고 먼저 한 모금 입에 물고 양치를 하듯 입안을 적시고 뱉어낸 후 다시 서서히 마시는 습관을 가져야 할 것이다.
예전에 우리의 어머님들은 낮에 물을 받아서 햇볕아래 두었다가 그 물로 세수는 물론 등물을 해 주셨다. 무더운 여름날 갑자기 냉수로 세면을 하게 되면 시력을 손상하게 될 뿐 아니라 안면신경의 마비 등을 불러 올 수도 있는 것이다. 어머님의 지혜로움이 돋보이는 부분이기도 하다.
여름철은 또 사람의 정신이 쉬 피로해지므로 심화(心火)는 왕성하고 신수(腎水)는 허손되는 시기이다. 때문에 방로를 삼가하고 ‘신기환’이나 ‘익기보신’탕 등으로 신수를 원활하게 해주고 기력(氣力)과 정력(精力)의 보양에 더욱 신경써야 할 것이다.
이전에는 천렵이라고 하면 강이나 개울 등 현지에서 직접 잡아 장만한 물고기나 아니면 닭 몇 마리 잡는 것으로 만족하곤 했었다. 그러나 요즘 몇 년 사이 천렵이라고 하면 으래 보신탕(犬湯)을 떠올리고 여성들 사이에서도 이제는 드러내놓고 즐기는 층이 많아지는 추세이다.
개고기는 한방에서도 온성이며 양기를 씩씩하게 해주는 음식으로 전해오고는 있지만 모든 사람에게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다. 허증의 남자는 삼가 하여야 하며 마늘과 함께 먹는 것도 금해야 한다.
또 근래에 들어 우리 고유음식이라고 옻닭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 졌는데 이 역시 속이 냉한 사람들에게는 효과가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는 오히려 역효과를 낼뿐 아니라 자칫 옻독이 안으로 퍼질 경우 큰일을 당할 수도 있으므로 먼저 자신의 체질을 파악하고 그에 맞는 음식으로 섭생하여야 할 것이다.
우리 주위에 독성이 없으면서도 몸을 보해 줄 수 있는 음식물이나 약재 등은 얼마든지 있다. 일테면 옻처럼 독성이 있는 것보다는 건재약국에서 구할 수 있는 황기를 닭과 함께 고아서 먹으면 여름철 스테미너식으로 손색이 없고, 굳이 육류만이 아니더라도 허로에 지치고 갈증을 동반하기 쉬운 여름철 마(山藥)나 생맥산(生麥散) 등의 처방으로 기력을 도울 수 있는 것이다.
식생활이 윤택해 지면서 사람들의 영양상태도 매우 좋아졌다. 때문에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몸에 좋다고 해서 무조건 먹기보다는 이제부터는 자신에게 해로운 음식이 무엇인가를 간파하고 가려먹을 줄 아는 것이 여름철 건강을 지키는 지혜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