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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뉴스 문화-작곡가 브람스, 음악과 인생의 스승 슈만 그리고 사랑을 초월한 운명의 연인 클라라


(대한뉴스 조선영 기자)=브람스는 20세가 되던 해인 1853년 처음 슈만과 클라라 부부를 만나게 된다. 당시 슈만은 작곡가 겸 지휘자 그리고 ‘Die Neue Zeitschrift fur Musik(신음악지)’의 편집장이였다.

브람스는 자신의 음악적 능력을 높이 평가한 슈만 부부의 제자가 되어 함께 생활하게 되면서 14세의 연상이지만 피아니스트이자 슈만의 아내인 클라라를 사모하게 되었다. 슈만이 죽고 난 이후 이미 사랑하는 여인으로 마음속에 품은 스승의 아내와 가족을 돌보며 독신으로 살아간다.

같은 음악가이며 뛰어난 실력의 피아니스트 클라라를 위한 음악들로 사랑을 고백하지만 받아들여지지 않고 사랑의 열정을 음악적으로 승화시킨 그들의 음악 속에 담긴 순수한 사랑을 찾아 한번 떠나보자.

 

예전 독일 100마르크 화폐의 인물 피아니스트 클라라 슈만

당대의 거장 슈만과 브람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은 클라라는 1819년 유명한 피아노교수인 프리드리히 비크의 딸로 5세 때부터 피아노를 시작하여 9세 때 연주여행을 다닐 정도로 뛰어난 음악적 재능을 보였다.

아버지의 완강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아빠의 제자였던 작곡가 슈만과 결혼해 그의 예술적 동반자로 남편의 작품을 사람들에게 알리는 후원자로 또 직접 연주하는 피아니스트로의 삶을 살았다. 뛰어난 미모와 재능을 가졌던 클라라는 사랑을 통해 남편에게 작곡에 대한 영감을 주고, 그 곡을 연주로 표현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보여주었다. 훗날 남편 사후에도 슈만의 작품을 세상에 알리는 일에 자신의 남은 삶을 보내며 명 연주가로도 큰 명성을 얻게 되어 유로화 이전 독일 화폐의 인물로 남아있다.


낭만파 음악의 거장 슈만

19세기 음악계는 왕가와 귀족들을 위한 음악이었던 고전파음악에서 근대화, 산업혁명 등으로 중산층이 생겨나고 평민들이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는 여유가 생기면서 문학과 연결된 음악이 주인공이 되는 낭만파가 탄생하게 된다.

낭만파의 대표적 작곡가인 로베르트 알렉산더 슈만은 1810년 독일에서 태어났다.

7세 때 교회의 오르간 주자에게 음악의 기초를 배워 스스로 작곡을 할 정도로 음악에 소질이 있었다. 슈만의 모친은 아들이 음악을 하는 것이 맘에 들지 않아 라이프치히 대학에서 법률을 공부시키지만 계속 피아노를 치자 하이델베르크 대학으로 전학을 시키면서까지 반대를 한다. 하지만 슈만은 음악가의 길로 들어서고 너무나 연습에 열중한 나머지 손가락을 다쳐 연주자로서의 꿈은 좌절되지만 작곡, 지휘, 평론가로서의 명성을 얻는다.

30세 때 운명의 여인 클라라와 결혼을 하면서 그해에는 가곡 작곡의 꽃을 피우게 된다. 아내 클라라와의 사랑을 토대로 작곡한 슈만의 가곡들은 주로 시에 곡을 붙인 것으로, 이야기를 하듯 시를 낭독하는 빠르기로 그 시를 공감할 수 있는 분위기, 연주가가 표현하는 그 곡을 관중들이 함께 감동을 느낄 수 있게 하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다. 그리고 아내 클라라가 피아니스트여서 일까? 피아노가 반주의 의미보다는 마치 2중주를 하듯 서로 함께 속삭이는 뗄 수 없는 관계처럼 느껴진다. 가곡 작곡 후에는 교향곡을 작곡하기 시작했는데 교향곡1은 친구인 멘델스존의 지휘로 초연해 큰 성공을 거두기도 한다.

그 후로도 실내악과 오라토리오 작곡에 몰두하지만 안타깝게도 정신적인 이상이 오기 시작한다. 이때 브람스를 만나 그의 음악성에 깊은 감명을 받고 새로운 길이라는 브람스에 관한 글을 써 자신의 가장 사랑하는 애제자 브람스를 세상에 내놓게 된다. 클라라와 브람스의 보살핌에도 불구하고, 슈만은 라인강에 뛰어들며 자살을 시도하고, 그 후 정신병원에서 185647세로 생을 마감하게 된다.

사모의 정을 가슴에 묻고 평생을 홀로 지낸 브람스

슈만의 마지막까지를 곁에서 지킨 브람스는 1833년 함부르크에서 태어났다.

그의 가족 모두 음악과 관계하여 생계를 이어가는 집안으로, 그 또한 천재성을 가지고 있었다. 브람스는 20세 즈음 어느 연주회에서 바이올리니스트 레메니와 함께 연주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피아노가 반음이 낮게 조율된 것을 알고 즉흥적으로 조옮김을 하여 완벽하게 연주를 해 자신의 천재성을 알렸다. 이후 리스트와 슈만 등 대거장들의 인정을 받으며 자신의 창작곡들을 내놓기 시작한다.

슈만의 제자로 슈만의 집에서 함께 기거하는 동안 스승의 아내인 클라라에게 숙명적인 사랑을 느끼지만존경과 경애라는 표현으로피아노 소나타 작품2’를 클라라에게 헌정하며 가슴에 담는다. 슈만이 죽고 난 후 클라라와 슈만의 아이들을 보살피면서 종종 사랑의 감정을 표현하는 편지나 음악으로 고백하지만 클라라는 우정만을 강조하며 받아주지 않는다.

그녀의 뜻을 받아들여 브람스 또한 사모의 정을 가슴에 담고 40년간 그녀와 편지를 통해 마음의 위로를 받고 음악에 영감을 얻어 뛰어난 예술작품을 탄생시켜 독일 3B(바흐, 베토벤, 브람스)로 이름을 남기고 클라라가 77세로 생을 마감하자 나의 삶의 가장 아름다운 체험이요, 가장 위대한 자산이며 가장 고귀한 의미를 상실했다고 한탄하고 1년이 채 못 되어 그녀의 뒤를 따랐다.


기자 뒷말

슈만과 클라라, 그리고 브람스의 사랑은 클래식계에서 가장 유명한 이야기이며, 슈만과 브람스의 작품들 또한 클라라를 빼고는 말할 수 없을 정도이다. 정열의 사랑, 가슴 저리게 힘든 짝사랑, 계산적인 세속적 사랑, 존경의 사랑 등 사랑의 종류는 여러 가지일 것이다. 클라라가 40년간 자신만을 사랑하며 독신을 지키고 산 브람스의 사랑을 받아주지 않은 이유를 생각해본다. 그것은 그녀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슈만이 자신과의 사랑으로 작곡한 곡들을 계속 세상에 알리며 그 음악 속에서 슈만의 살아있을 때의 사랑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남편의 사랑을 존중하며 지켜낸 슈만의 미망인 클라라, 나중에 브람스는 그녀를 존경하는 사랑으로 가슴에 담아 두었을 것 같다. 우리가 언제일지는 모르지만 세상을 떠난 후에 남아있는 내 주위의 사람들이 나를 추억해 줄 수 있는 그 무엇인가를 만들며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며, 슈만의 가곡 헌정을 들으며 나를 한번 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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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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