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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시절 기억하십니까?- 전화교환원

신종 직업은 새로운 시대의 변화를 틈타 새롭게 생겨나고 또 오래된 직업은 사라지기도 한다.


(대한뉴스 안상훈 기자)=과거에는 전화 교환수를 통하지 않으면 전화를 걸거나 받을 수 없었다.

전화교환원이라는 직업은 우리나라에 전화가 들어오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우리나라에 전화가 들어온 것은 1902320일에 대한제국 통신원에서 지금의 서울인 한성과 인천 사이에 전화를 임시로 설치하면서부터다.

  

당시 전화는 전화를 걸면 통화하고 싶은 사람과 바로 연결되는 방식이 아니었다. 자석식이라고 해서 전화기의 핸들을 돌리면 교환원이 나오는 것과 공전식이라고 해서 전화기를 들면 교환원이 나오는 방식이었다. 이 둘 모두 중간에서 전화를 연결해줘야 하는 사람이 필요했다. 이 일을 직업적으로 하는 사람들이 바로 전화교환원이었다.

 

1971년이 되자 전화교환원 없이 전화를 건 사람이 직접 다이얼을 돌려서 상대방과 통화할 수 있는 자동식 전화가 개통되었다. 이후 자동식 전화의 출현과 더불어 1987년 이루어진 전국자동교환망의 완성으로 전화교환원 없이 전화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이로 인해 전화교환원이라는 직업은 사라지게 됐다.

 

그 시절 전화사업이 시작된 초기의 전화교환원은 대부분 남성이었으나 1920년대 이후에 여성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그 이유는 고객을 응대할 때 밝고 명랑하며 친절해야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당시 전화교환원이 되려면 보통학교를 졸업해야 하고, 여러 사람의 목소리를 구분하려면 청각이 예민해야 했다. 목소리도 명랑해야 했기 때문에 나이도 15살에서 20살 초반이 대부분이었다. 1969년대 전화교환원의 근무시간과 업무량은 보통 오전 9시반부터 오후 4시반까지 정도 근무를 했고, 교환원 한명 당 하루에 200여명 정도의 고객을 응대했다

출처-여주시립폰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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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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