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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시절 이 말을 기억하십니까-1960년대 유행어


21세기를 살고 있는 MZ세대들에게 1960년대는 어쩌면 그저 낯설거나 혹은 관심 밖의 시대일 수도 있겠다. 1960년대는 도시화, 산업화로 대변되는 시대다. 특히 1962년 국가가 주도했던 산업육성정책인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처음으로 실시되면서 농촌에 근거지를 두고 있던 사람들이 끊임없이 도시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광복 직후 서울의 인구는 80만명 정도였으나 1960년 서울의 인구는 240만명을 넘어서게 된다.

1960년대 이후 서울의 성장은 우리나라 도시화의 과정을 거의 지배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근대적인 의미에서 도시화가 우리 사회 전반에 걸쳐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 것도 1960년대 이후이다. 이때부터 우리나라에는 이촌향도(離村向都)의 물결이 밀어닥 치게 된다. 당시 자료에 따르면 도시인구의 비율은 1966년에 34%, 1970년에 41%로 늘었다. 1966~1970년 동안의 서울의 인구중가는 매년 평균 40만명 이상에 이르렀고 이는 우리나라 전 체 인구증가의 76%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재건운동의 유행으로 젊은 남녀 '재건데이트' 유행

1963년에는 시골 어린이가 배가 고파서 술도가의 술 찌꺼기를 얻어먹고 빨갛게 상기된 얼굴로 책상 앞에서 꾸벅거렸다 는 기사가 화제가 되어 '보릿고개' 를 실감케 했다. 또 농촌에서는 가을까지 기다릴 수가 없어 논에 있는 시퍼런 벼를 미리 팔아버린 적도 있었다. '입도선매(立稻先賣)' 라는 용어가 언론계에 등장하게 된 것도 이 때문이다. 그 시절 군사정부가 내걸었던 '재건' 이라는 말에서 '재건복' 이라는 말이 나오는가 하면 '재건합시다' 라는 인사말까지 등장하게 됐다. 또 이때 '재건운동' 이라고 하는 말이 유행하여 돈을 안 들이고 하는 젊은 남녀의 만남을 재건데이트' 라고 불렀다.

 

한일회담중 한국의 저자세에 대한 풍자로 구라치다

박정희 대통령이 적극 추진한 한일회담 때는 학생들의 반대가 심해 데모가 연일 계속됐는데 일본에 대하여 지나치게 '저자세' 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았다. 한국과 일본 간에 국교가 맺어짐에 따라 '구라친다' 가 거짓말하다의 뜻으로 쓰이게 됐다. '구라' '고라' 라고 하는 말에서 변한 말이다. 일본어에서 '고라' '이 자식, 이 놈' 하고 상대를 얕잡아 보는 말이다. 한일국교가 정상화되면 일본인에게 또다시 얕잡히게 될 것이라는 우려에서 나온 풍자인 것이다.

 

소 팔아 대학 보내 '우골탑' 애환

1960년대에는 사람들이 농촌을 떠나 도시로 올라갔기 때문에 사람들 사이에서는 '출세하려면 도시로, 대학으로' 라는 말이 나 돌았다. 대학 진학을 위해 과외가 성행했고 치맛바람이라고 하는 말이 말 그대로 바람을 일으켰다. 시골 청년들이 대학으로 몰리고 부모는 자식들의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 애지중지하던 소를 팔아야만 했다. 그래서 '상아탑' 이라고 하는 말이 '우골탑(牛骨 塔)' 이라는 말로 변하게 됐다. 또 이 시기에 '좋아하시네, 웃기지 마, 아더메치가 무슨 통뼈' 라고 하는 말이 유행하기도 했다. 아더메치는 '아니꼽고 더럽고 메스껍고 치사하다' 라는 말의 준말이었다. 가진 것 없는 서민들이 있는 자나 부조리한 현실을 풍자 한 말이라 하겠다.

주름살을 '인생 계급장

한편 대학생들의 속어로 1961년에는 주름살을 '인생 계급장' 이라고 불렀다. 군부가 판을 치는 세상이라 이마의 주름살을 군대의 계급장으로 비꼬았던 것이다. 이러한 말은 당시의 서민들 의 이맛살을 찌푸리게 한 고된 생활상을 반영한 것이다. 1962년에는 '무허가 건축형' 이라는 말이 등장했는데 얼굴이 못생긴 사람을 뜻하는 말이다. 당시는 무허가 건축이 성행하던 때였다. 이듬해인 1963년에는 소주에 콜라 탄 것을 '소크라테스', 막걸리에 사이다 탄 것을 '막사이사이' 라고 했는데 가난한 대학생들의 주머니 사정을 잘 표현해주는 말들이다.

 

생각이 둔한 사람 '형광등'

1964년에는 둔한 사람을 '형광등, 텔레비전' 이라고 지칭했다. 형광등이나 TV는 스위치를 넣어도 한참 있다가 환해지고 영상이 제대로 나온다고 하는 데서 나온 감각이 둔한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굴뚝' 이라고 하는 말도 둔한 사람의 뜻을 지닌다. 불을 땐 다음 한참 있어야 굴뚝에서 연기가 나온다고 하는 데서 연상되어 생긴 말이다. 1965년에 생겨난 말로는 애인이 있는데 또 다른 애인을 사귀는 것을 '지점을 낸다' 라고 했다. 이때 은행이나 제과점, 음식점 등이 앞 다투어 '분점' 이나 '지점' 을 낼 때였다. 지금까지 사귀던 애인은 '본점' 인 셈이고 다시 더 사귀는 애인은 '지점' 이 되는 셈이다. 1967년에는 맥주집을 '미장원' 이라 불렀다. 맥주를 마시면 신진대사가 활발해 안색이 좋아진다고 하는 데서 이러한 말이 생겼다. 맥주를 '보리주스' 라 했고 여대생들이 술집에 드나들기 시작했다. 1969년에는 '청춘의 깃발' 이란 말이 유행했는데 여자기숙사에 빨아 널어놓은 속내의를 뜻하는 말이었다. 당시 여자들이 '청춘의 깃발'을 치켜들고 남성에게 도전해 오고 있음을 보여 주는 말로서 여성의 권리신장에 대한 남성들의 두려운 심리가 표현된 말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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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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