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대한뉴스] 김시산 자유기고가
인류의 역사는 종교의 역사라고 할 만큼 인간의 삶은 불가피하게 종교와 밀접한 관계를 갖는다. 사람은 매우 연약한 존재이기 때문에 어떤 초월적 능력을 의존하고자 하는 본능이 있다. 그래서 신(神)을 찾고 종교를 만든다. 사실상 중세와 근대사를 지배한 가장 막강한 힘은 기독교의 세력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기독교의 정치화
2천여 년 전 예수의 탄생과 그의 가르침으로 시작된 기독교는 전염병처럼 퍼져나가서 짧은 기간에 로마를 점령하였다. 이러한 현상을 매우 위협적인 요소로 판단한 로마의 황제들은 기독교인들을 박멸하고 교회를 소멸시키기 위하여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기독교인을 핍박하고 살해하였다.
네로, 베스파시안, 타이터스, 도미시안, 트라얀, 아우렐리우스, 막시미누스, 데시우스, 발레리안, 디오클레시안 등 10대에 걸친 황제들은 매우 잔인한 방법으로 기독교를 박해하였다. 로마의 원형극장(콜로세움)은 기독교 박해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건축물 중의 하나이다. 그러나 기독교 세력은 소멸되지 않았고, 심지어는 로마의 귀족들까지도 기독교에 귀의하는 기이한 현상이 일어나고 있었다.
이러한 현상을 보고 기가 막힌 전략으로 기독교를 타락시키고 정치와 연결하여 이교화(異敎化) 시키는 일에 성공한 사람이 바로 콘스탄틴 황제이다. 다시 말해서 기독교라는 종교를 이교에 물들게 하여 정치로 끌어들인 다음 기독교의 순수한 종교적 기능을 상실하게 만든 장본인은 로마의 콘스탄틴 황제이다. 그러니까 서기 313년 콘스탄틴 황제가 자신이 기독교로 개종하였다고 공언하면서 기독교에 자유를 허락한 것은 철저한 위장전술이었고 자신의 목적 달성을 위한 전략이었다.
콘스탄틴은 기독교 성직자들에게 군 복무 면제, 세금 면제 등 특혜를 제공하였고 그들의 의견을 존중해주고 권력을 부여하면서 정치에 끌어들였다. 그리하여 성직(聖職)은 매우 인기 있는 직종이 되었고 성직을 차지하기 위하여 온갖 부정한 일들을 하게 되었다. 권력과 정치의 맛을 보기 시작한 성직자들과 교회는 급속히 타락하게 되었고, 급기야 교회는 거대한 정치 세력으로 발전하였다.
서기 476년 서로마 제국이 망한 후, 로마가 상실한 정치적 세력을 교회가 이어받아 마침내 가톨릭교회가 정치와 종교를 통합하여 다스리는 시대가 열렸다. 그 시대를 역사에서는 종교 암흑시대라고 지칭하고 있으며 그런 세상이 천년 이상 계속되었다.
■ 정교분리 원칙
이러한 종교 암흑시대 말엽에, 유럽을 지배했던 그러한 종교적 분위기와 독실한 기독교인들에 대한 가톨릭의 박해를 더 이상 견디지 못하여 영국의 청교도들이 이주하여 세운 국가가 바로 미국이다. 미국은 수정헌법 1조에 정교분리를 천명하고 있으며,
대한민국 헌법 20조 2항에도 정교분리의 원칙을 규정하고 있다. 정교분리 원칙의 핵심은 국가가 어떤 특정 종교를 지지하거나 만들 수 없다는 것이고, 각 개인의 종교적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는 것이다. 이 법률을 좀 더 정당하게 정직하게 확대하여 해석하면, 국가가 어떤 특정한 종교를 지지할 수 없다면 종교도 어떤 특정한 정치적 정당을 지지하거나 정당을 만들어 정치적 활동을 하면 안 된다는 의미도 갖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정교 분리의 원칙이다.
정치적 정당이라고 하는 것은 언제나 상호간의 대립과 갈등과 충돌이 불가피한 것이기 때문에 종교가 어떤 특정한 정당의 정치적 이슈나 주장에 대하여 지지하거나 적대시하게 되면 정치적 정쟁에 휘말리게 되어 순수한 종교성을 상실하고 정치와 권력에 야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종교는 정치와 세속에 휘말려 세상의 권력을 쟁취하기 위하여 투쟁하는 정치적 집단으로 전락하게 된다.
종교인들이 정치적 집단을 만들어 투쟁하거나 어떤 정치적 이슈를 가지고 국가와 대립하여 투쟁하는 것은 종교의 가르침을 저버리고 종교의 근본을 무너뜨리는 자기모순이다.
세계 3대 종교를 든다면 기독교, 이슬람교, 불교일 것이다. 그리고 기독교는 다시 천주교와 개신교로 분리된다. 이 종교들 가운데 천주교와 이슬람교는 국가와 종교가 하나로 움직이는 집단이다. 천주교의 본산인 바티칸은 엄연한 하나의 국가로 존재하면서 전 세계를 향하여 막강한 정치력을 행사한다. 또한 중동지역에는 정치적으로 다른 종교를 인정하지 않는 다수의 이슬람 국가들이 존재한다. 그래서 이슬람 국가들의 정치의 상당 부분은 종교와 관련이 있다.
■ 종교의 사회 참여
종교의 사회참여란 무엇인가? 어떤 사회문제에 대하여 정치적 활동을 하는 것인가? 민감한 정치적 이슈에 대하여 특정 종교 나름대로의 입장을 정리하여 그것을 관철하기 위해 투쟁하는 것인가? 아니면 사회정의를 실현하기 위하여 투쟁하는 것인가? 그렇다면 그 정의의 기준은 무엇인가?
종교적 가르침과 종교인들의 행위의 기준과 근원은 그들의 경전에서 나온다. 예를 들어 기독교 종교의 근원은 성경이다. 그리고 예수의 가르침이다.
예수는 정치적 발언이나 행동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국가에 대하여 바치는 세금에 대하여 질문을 받았을 때에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고 대답하면서 자신도 세금을 자진 납부하였다.
당시 로마의 황제를 시이저(가이사)라고 하였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바치라”고 한 것은 기독교인들에게 주는 매우 중요한 메시지이다. 성직자를 포함한 교회는 성실하게 세금을 납부할 것이며, 국가에 대한 의무를 충실히 이행하라는 메시지다.
기독교 신앙의 기초를 놓았던 사도 바울은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굴복하라”고 권면한다. 기독교인들 개인의 정치적 성향이나 주관은 모두 다르겠지만, 일단 성경의 원칙은 현재의 정치적 권세에 굴복하라는 것이다. 물론 국가의 요구가 성경의 원칙과 어긋날 때에는 굴복할 수 없겠지만, 그러한 경우에라도 무력투쟁이나 정부와의 충돌은 피해야 할 것이며, 최악의 경우에는 자신이 손실을 감수하고 순교하는 것이 기독교 신앙의 본질이다.
로마제국시대에 무수한 기독교인들이 억울하게 재판을 받고 사형을 당했지만, 제국에 대하여 무력투쟁은 하지 않았다.
진정한 의미에서 기독교의 사회참여는 부정부패 부조리에 저항하며 투쟁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나 교인들이 정의롭게 행동하며 진정한 사회봉사를 통해서 다른 사람의 행복과 국가의 번영에 기여하며 인간으로서 올바른 삶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정치적으로는 중립을 지키며 국민의 투표에 의해서 현재의 정권이 결정되면 현 정권의 정책을 존중하고 협력하여 국가 발전에 이바지하는 것이 건전한 기독교인의 자세다.
■ 결어
월남이 패망할 무렵 호지명은 기독교와 불교의 성직자들 중에서 “적색분자를 내세워 무정부상태의 사회혼란과 종교를 통해 신도들에게 미군을 내쫓고 월맹으로 통일해야 한다는 선전선동을 하게 했다.” 당시 미국은 월남의 민주화를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선동하는 사람들에 대하여 단호하게 대응을 할 수 없었다. 결국 월남은 민주화를 추진하다가 패망한 형국이 된 것이다.
민주화라는 미명하에 국가의 원수에 대하여 막말을 하며 사회질서를 문란하게 하는 사람들, 국가예산이 모자라 부채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복지를 내세우며 국민들과 정치적 흥정을 하는 오늘의 대한민국 현실을 보면 가슴이 아프다. 그리고 국가의 미래가 매우 염려된다. 사회와 국가의 질서회복이 시급하다. 그리고 현재의 이득보다는 국가미래의 유익을 계산할 줄 아는 정직하고 양심적인 정치인이 필요하다. 종교는 어서 속히 제 자리로 돌아와 사회와 국가의 정신적 가치를 창출하고 건전한 삶의 모델을 제시하는 일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것이다. ‘투쟁하는 종교’보다는 ‘보여주는 종교’가 필요하다.
본 기사의 전문은 대한뉴스 2014년 7월호(www.daehannews.kr)에 자세히 나와 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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