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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일반

국제|9·11테러

10년 세월이 지나도 지워지지 않는 흔적

[인터넷 대한뉴스]글 김병헌 기자 | 사진 연합뉴스

 

전 세계는 아직도 테러 공포 진행형

 

지난 2001년 9월 11일 오전 8시 48분. 92명의 승객을 태운 아메리칸 항공 소속 AA11편이 미국 뉴욕의 세계무역센터(WTC) 북쪽 건물로 날아들었다. 이어 9시 3분엔 샌프란시스코발 유나이티드 항공 민항기가 남쪽 건물과 충돌했고, 30분 후에는 워싱턴DC의 펜타곤까지 무방비 상태로 테러 공격에 노출됐다. 미국의 심장부를 강타한 이 미증유 테러로 2,983명이 숨지고 수많은 시민들이 공포에 시달려야 했다. 초강대국인 미국의 자존심도 무참히 짓밟혔다. 진주만 공습 이후 역사상 최초로 미국 본토가 공격당하면서 충격에 휩싸였다.


그로부터 10년의 세월이 흘렀다. 하지만 지난 8월 미국 동부를 중심으로 발생한 강진에도 테러 공포부터 떠올리는 등 미국인들의 머릿속에선 10년 전 ‘9·11’의 악몽이 지워지지 않고 있다. 이렇듯 9·11 테러는 미국인들 사이에서 대공황 당시 검은 목요일, 일본의 진주만 공격, 케네디 대통령 암살,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 등과 함께 세기의 충격으로 각인돼 있으며, 미국 정부가 정치·경제·사회 전반을 판단하는데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 지난 10년간 9·11테러가 세상을 바꾼 것은 무엇이고, 그렇지 못한 것은 무엇일까.

 

경제적 후유증 3조2,280억 달러


지난 10년 동안 9·11테러는 미국에 적지 않은 경제적 비용을 초래했다. 무엇보다 9·11테러가 미국의 ‘테러와의 전쟁’을 촉발하면서 막대한 전쟁 비용을 유발했다. <뉴스위크>에 따르면 미국은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등에서 전쟁비용으로 2조6,000억 달러를 투입했다.


미국 정부는 직접적인 전쟁비용 외에도 국토안보부와 연방정보기관들의 안보관련 비용에 6,000억 달러 규모 재정을 투입했다. 모두 3조2,280억 달러에 달하는 직간접적인 비용을 들였다. 베트남 전쟁의 4배가 넘는 수준이다.


조지프 스티글리츠 미국 컬럼비아대 경제학과 교수는 2008년 ‘3조 달러 전쟁’이란 책에서 미국의 이라크 전쟁 수행비용을 계산한 결과 모두 3조 달러에 달한다고 밝혔다. 군사작전에 쓴 전비와 9·11테러 직후 창설된 국토안보부의 예산, 퇴역군인 보훈비 등 직간접 비용을 모두 합한 수치다.


미국 브라운대 산하 왓슨국제관계연구소는 이자비용까지 감안하면 대테러비용이 2020년에는 5조 달러에 육박할 것으로 전망했다. 막대한 전쟁비용을 지출한 결과 대규모 재정적자를 초래했다. 빌 클린턴 전임 정부에서 흑자 재정을 물려받은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은 대테러 전쟁과 함께 민심을 잡으려 감세정책마저 펼쳤다.


그 결과 부시 행정부가 집권한 8년 동안 국가부채는 6조4,000억 달러나 늘었다. 더욱이 부시 행정부 집권 말기에 발생한 금융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소요된 재정지출만 2조 달러나 된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는 재정적자를 완화하기 위해 요즘은 철군을 추진 중이다. 그렇다고 재정수지가 획기적으로 나아지기는 힘들 것으로 예상된다.

 

돈으로 맞바꿀 수 없는 인적 피해


경제적 비용보다 더 쓰라린 것은 인적 피해다. 지난 2001년 10월 아프가니스탄 공격이 시작된 후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 파견된 미군 수는 230만 명에 달한다. 이 중 전쟁에서 숨진 사람이 6,000명을 넘어섰다. 또 전역 군인들의 실업률은 현재 미국의 실업률 9.1%를 훨씬 웃도는 12.4%로 집계되고 있다.


앞서 추정된 전쟁 비용엔 부상당해 돌아온 재향군인들의 의료비나 연금 등은 포함돼 있지 않다. 전역군인 가운데 절반이 장애수당을 받고 있고, 60만 명 가까이가 상이용사 처우를 받아 이들에게 지급될 비용은 6,000억~9,000억 달러에 달한다. 게다가 무사 귀환한 전역군인들도 크고 작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시달리고 자살률도 급등했는데 이들 비용은 사실상 추산이 불가능하다.


금융위기 주범 취급 받은 월스트리트


세계 금융의 중심인 월스트리트도 격동의 세월을 보냈다. 9·11 테러로 무너진 세계무역센터 자리에서 가까운 맨해튼 남부의 월스트리트는 과거의 활기가 느껴지지 않는다고 현지인들은 말한다. 테러 이후 모건스탠리 등 많은 대형 금융기관이 중심부인 미드타운으로 거점을 옮겼고, 1792년에 설립돼 월스트리트를 상징해 온 뉴욕증권거래소(NYSE)는 독일 증권거래소에 사실상 넘어가게 됐다.

 

주택 버블 붕괴를 계기로 2008년 9월에는 대형 투자은행인 리먼 브러더스가 파산해 역사 속으로 사라졌고, 메릴린치는 대형은행인 뱅크오브아메리카에 흡수됐다. 레버리지에 의존해 모기지담보부증권 등으로 돈을 벌어온 투자은행의 비즈니스 모델이 월스트리트를 무덤으로 만든 것이다. 월스트리트는 ‘100년에 한번 올까 말까한’ 금융위기를 초래한 주범 취급을 받으며 여전히 미국민의 따가운 시선을 받고 있다.

 

여전히 위협적인 알 카에다


9·11테러로 인해 시작된 미국의 대테러 전쟁은 테러주범인 오사마 빈라덴을 지난 5월 1일 사살함으로써 절정에 달했다. 그러나 정작 서방 시민들이 느끼는 테러 공포가 완전히 가시지 않고 있다. 10년 새 네트워크망을 공고히 한 테러조직이 여전히 세력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5월 1일 빈 라덴이 미국 특수부대 네이비실에 의해 사살된 뒤 아이만 알자와히리가 알 카에다를 이끌고 있다. 알 카에다의 동맹인 탈레반 역시 8월 5일 아프간 동부에서 네이비실 팀이 탑승한 헬기를 격추, 38명을 살해하는 등 녹록치 않은 힘을 과시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알 카에다 같은 극단 무슬림 테러단체가 점조직 형태로 꾸려진 데다 강력한 정치·종교적 이념으로 뭉쳤기 때문에 지도자 몇 명이 제거되더라도 조직 기반이 휘청거리지는 않을 것이라고 분석한다. 북아프리카 등 알 카에다 지부들은 최근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 접경의 지도부와의 연계성을 줄이며 독자 행보를 보이고 있다. 서방의 집중 포화에도 견딜 수 있는 이유다.


또 알 카에다 외에 300여 개에 이르는 테러 조직들이 느슨한 연대를 유지하다 때때로 손잡고 테러를 자행하기도 한다. 테러단체들의 전략이 갈수록 교묘해지는 것도 미국 등의 고민거리다. 9·11 테러 10주년을 앞두고도 극단주의 세력의 공격을 차단하기 위해 미국 당국은 주요 시설물에 대한 경계수위를 높였다.

 

사라지지 않는 음모론


9·11 테러가 일어난 지 10년이 지났지만 음모론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미국 정부가 테러를 미리 알고 있으면서도 방조했거나 정부 일부 인사들이 테러를 계획했다는 주장이다. 9·11 이후 ‘테러와의 전쟁’에서 나타난 미국 정부의 진실하지 못한 태도가 음모론 확산에 역할을 했다.

음모론자는 세계무역센터 건물이 여객기와의 충격뿐 아니라 내부폭발에 의해 무너졌다고 주장한다. 건물붕괴 속도가 지나치게 빨랐다는 점으로 볼 때 전문가에 의해 폭탄이 미리 설치돼 있었다는 것이다. 미국 국방부 건물도 사실은 미사일 공격으로 훼손됐다는 게 음모론자의 주장이다. 이들은 펜실베이니아에 추락한 여객기는 요격된 것이란 주장도 펼친다.


음모론자는 세계 최강 미국 공군이 납치된 여객기 4대를 모두 놓친 점, 세계무역센터 인근 건물인 타워7이 급속도로 무너진 점, 유대인 희생자가 없는 점 등에 대해서도 의혹의 눈길을 보낸다. 증시 폭락 시점과 속도를 두고 공격을 미리 알고 있던 세력이 있었다는 주장도 편다. 미국 정부는 급기야 2009년 음모론을 반박하는 자료를 냈으나 음모론을 믿는 사람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이처럼 음모론이 힘을 잃지 않는 현상은 9·11의 충격이 그만큼 컸다는 방증이다.                                                  

 

9·11 테러 이후 10년간 벌어진 사건  

2001년 09월  알 카에다가 납치한 4대의 여객기, 세계무역센터와 펜타곤 충돌
2001년 10월 미국과 영국군, 아프가니스탄 공습 시작
2001년 11월 탈레반, 수도 카불서 퇴각
2001년 12월 오사마 빈 라덴과 탈레반 지도자 모하마드 오마르 도피
2001년 12월 국제평화유지군(ISAF), 아프간 카불지역에서 치안유지 임무 수행
2002년 10월 인도네시아 발리 쿠타 해변에 있는 한 나이트클럽 폭탄 테러
2003년 03월 미국, 대량살상무기(WMD)를 보유했다며 이라크 침공
2003년 08월 나토가 ISAF 지휘권 맡으면서 다국적군 주둔지역과 병력 확대
2003년 12월 도피 중이던 이라크 대통령 사담 후세인 체포
2004년 03월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연쇄 폭탄 테러 발생
2005년 07월  영국 런던에서 폭탄 테러 발생
2006년 07월  인도 뭄바이 기차역과 통근 열차에서 7건의 연쇄폭탄 테러 발생
2006년 10월 스리랑카서 타밀 반군(LTTE)의 자살 폭탄 테러 발생
2006년 12월 사담 후세인 사형
2007년 10월 파키스탄서 차량 폭발 사건 발생
2008년 11월  인도 뭄바이에서 자동무기와 수류탄으로 무장한 세력의    테러 공격
2009년 02월  오바마 대통령, 1만7,000명의 아프간 전투 및 지원 병력   증파승인
2009년 06월 미국 해병대 첫 파병, 1만 명 아프간 주둔
2009년 08월 이라크 바그다드의 재무부, 외무부 청사 인근 폭탄테러
2009년 10월 한 달 동안 58명의 미군이 사망
2009년 12월 오바마 대통령, 새 아프간전쟁 전략 발표
2010년 05월  이라크 힐라 등 지역서 폭탄테러
2010년 05월 알 카에다의 아프가니스탄 사령관인 무스타파 아부           알 야지드 사망
2011년 05월 오바마 대통령, 빈 라덴 사살 발표

 

 

본 기사의 전문은 대한뉴스 2011년 10월호(www.daehannews.kr)에 자세히 나와 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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