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06 (토)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월간구독신청

히스토리 - 교황

교황의 역사

[인터넷 대한뉴스]글 조애경 기자 | 사진 연합뉴스, 위키백과


로마가톨릭 제265대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지난달 공식 퇴임했다. ‘신의 대리자’로서 종신직으로 여겨왔던 교황이 ‘완전한 자유의지’로 물러나기는 1294년 첼레스티노 5세 이래 무려 719년 만의 일이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사태에 ‘교황’의 존재에 대해 세간의 궁금증이 커지고 있다. 세계 12억 가톨릭 신자들의 수장인 ‘교황’, 그는 누굴까.

 

베드로 후광, 신과 인간을 중재


교황은 기독교가 로마제국 전역으로 전파되던 시절 처음 등장했다. ‘교황(pope)’이란 용어는 라틴어로 아버지를 뜻하는 ‘파파(papa)’에서 유래했으며, 원래 이 칭호는 교회 내 여러 주교에게 통용되었다. 즉 초기 교회조직에서 교황은 로마 외에도 제국 곳곳에 설치된 주교구를 담당하는 고위 성직자 가운데 한 명에 불과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로마의 주교는 다른 주교들에 비해 우월한 지위와 명성을 확보했다.


교황은 예수의 수제자 사도 베드로의 직계 후계자이자 신과 인간을 중재하는 존재로 여겨진다. 로마교회는 베드로가 세운 교회이며, 로마의 주교는 베드로의 후계자라고 믿고 특별한 권위를 부여했던 것이다. 그리스도가 베드로에게 주었다는 천국의 열쇠를 상징하는 교황의 공식 문장은 베드로까지 소급하는 교황의 계보를 암시한다.

 

“너는 베드로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죽음의 힘도 감히 그것을 누르지 못할 것이다(성서 마테오복음 16장 18절).” 죽음에서 부활한 예수 그리스도를 대신해 초기 교회의 지도자가 된 것은 열두 사도의 맏형 격이던 시몬 베드로였다. 가톨릭에선 서기 67년 로마 황제 네로의 박해를 받아 거꾸로 십자가에 못박혀 순교한 그를 초대 교황으로 여긴다. 로마 대교구의 주교이자 바티칸 시국의 수반, 가톨릭 교회의 최고위 성직자인 교황은 ‘그리스도의 대리자’인 사도 베드로의 후계자인 셈이다.

 

교황 임명 과정, 부정부패 만연


2,000년 교황제 역사를 거쳐 간 교황은 총 264명으로 시대마다 교황을 둘러싼 크고 작은 일들이 있었다. 교황과 외부 권력 간의 긴장관계는 서양 역사의 중심적 논제이기도 하다. 특히 성직자를 임명하는 서임권은 교황과 국왕 양쪽 모두에게 중요한 문제였다. 11세기 교황 그레고리오 7세는 당시 신성로마제국 황제 하인리히 4세에게 있던 서임권을 뺏기 위해 개혁운동을 벌였다. 위협을 느낀 하인리히 4세는 교황의 지위를 박탈했고, 그레고리오 7세는 황제에 대한 파문으로 응수했다.

 

파문은 신자의 자격을 박탈하는 것으로 중세시대에는 사형선고나 다름없는 중벌이었다. 결국 하인리히 4세는 한겨울에 교황이 있는 카노사 성을 찾아가 맨발로 무릎을 꿇었다. 이것이 바로 유명한 ‘카노사의 굴욕’ 사건이다. 이 사건으로 교황의 권력은 막강해졌다. 절대권력을 가진 교황 임명 과정에서 부정부패와 갈등이 만연한 것은 어쩌면 예견된 일이었다.


추기경단이 교황을 선출할 투표권을 갖게 된 것은 11세기 중반으로, 공식 콘클라베가 처음으로 열린 것은 1241년이었다. 이후 하인리히 3세가 임명한 독일 출신 교황들은 로마 주교는 로마 출신으로 정하며, 여러 국가 출신으로 구성된 소규모 추기경단 가운데 교황을 선출하는 중세 콘클라베의 전통을 확립했다.


교황 선출 역사상 가장 논란이 된 인물은 성 첼레스티노 5세이다. 1294년 당시 85세인 성 첼레스티노 5세는 무능할뿐더러 정치인들의 입김에 이리저리 흔들렸다. 취임한 지 6개월이 안 된 시점에서 베네데토 카에타니 추기경의 끈질긴 문제 제기 끝에 성 첼레스티노 5세는 사임하고 베네데토 카에타니 추기경이 교황 보니파시오 8세가 됐다.


1378년에도 성직자 출신이 아닌 인물을 교황으로 선출하는 실험이 또 한 번 시행됐다. 로마 가톨릭 교황청의 자리를 로마에서 아비뇽으로 옮겨 프랑스 출신 교황 7명이 교황 자리에 오른 이른바 ‘아비뇽 유수’가 끝난 시점에서 로마 시민은 이탈리아 출신 교황을 추대하라고 요구했다. 겁에 질린 추기경 16명은 어쩔 수 없이 우르바노 6세를 교황으로 선출했다. 그는 뛰어난 행정력을 보였지만 반대세력을 견제하고자 지지 세력을 멀리하고 추기경 5명을 살해한 것으로 알려진다.

 

교황의 절대 권력


제266대 교황으로 선출된 프란치스코     1세는 1936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이탈리아 출신 철도노동자 가정의 5남매 중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대주교 직에 오른 뒤에도 운전기사를 따로 두지 않는 청빈한 생활로 잘 알려진 그는 자신의 교황명으로 청빈과 겸손으로 널리 알려진 이탈리아 아시시의 성인 프란치스코를 택해 눈길을 끌었다. 검소함이 배어 있어도 새 교황이 갖게 되는 절대 권력은 어마어마하다. 


교황이 되면 구체적으로 교령을 승인·재가·정지시킬 수 있고, 시복·시성(諡福·諡聖)을 할 수 있다. 주교를 임명하고 추기경을 지명하는 일, 교구를 설정·관리·변경·정지하는 일, 교구장을 보좌하도록 보좌 주교를 선임하는 일 등도 교황의 역할이다. 교회 재산 관리, 공의회 소집·주재·폐회, 가톨릭 축일 지정, 교회법 도입·변경·폐지, 청문회 개최 등도 할 수 있다.

 

교회 안의 모든 법령은 교황의 승인을 받아야 하고 교황은 협의를 거치지 않고도 교회 안의 규정을 바꿀 수 있다. 인간이 하는 재판은 받지 않기 때문에 법정에 소환되지 않을 권한을 가진다. 한편 교황이 되면 당장 자신의 이름, 이전의 국적, 시민권을 버려야 한다. 일주일에 1번씩 고해 사제에게 자신의 죄를 고백해야 한다. 1929년 라테란 협정의 체결로 교황은 바티칸 시국의 원수직과 전 세계 가톨릭의 수장직을 겸하게 됐다. 


비밀 추기경 회의 콘클라베


교황의 역사에서 선출임명권을 갖는 추기경단 비밀회의를 ‘콘클라베’라고 한다. 콘클라베에 참석하는 추기경단은 규정에 따라 80세 미만의 추기경만이 참석할 수 있다. 콘클라베가 시작되면 추기경단은 외부와 격리된 채 새 교황 선출을 위해 회의를 거듭하며 무기명 투표로 3분의 2 이상의 득표자가 나올 때까지 진행된다. 성당 굴뚝에서 흰 연기가 피어오르면 교황이 선출됨을 의미하며, 검은 연기는 선출 실패를 상징한다.

 

교황 황금옥새 ‘어부의 반지’


새 교황이 즉위하면 반드시 얻게 되는 물건이 있다. 바로 ‘어부의 반지’(Fisherman’s Ring, 페스카토리오)라 불리는 교황 반지다. 금으로 만들어졌으며, 물고기를 들고 있는 베드로상(像)과 교황명이 새겨져 있다. 교황이 어부의 반지를 끼게 된 것은 어부였던 베드로가 죽은 뒤 초대 교황으로 추서된 데서 비롯됐다. 교황들은 모두 베드로의 후계자로 여겨진다. 베네딕토 16세의 공식 사임 후 ‘어부의 반지’는 은망치로 파기됐다.

 

 

본 기사의 전문은 대한뉴스 2013년 4월호(www.daehannews.kr)에 자세히 나와 있으며 

교보문고, 영풍문고, MBC(내), 반디앤 루니스, 테크노 마트 프라임 문고를 비롯

전국 지사 및 지국에서 구입할 수 있습니다

 

- 보기 쉬운 뉴스 인터넷대한뉴스(www.idhn.co.kr) -

- 저작권자 인터넷대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