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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과 조선족은“감돌”이와“갑순”이다.

[인터넷 대한뉴스]  글 이건륭

 

부르네요 깊은 밤에 우는 저 새는 / 이역 땅에 홀로 남은 외로운 몸을

알아주어 우는거냐 몰라 우는거냐 / 기다리는 가슴속에 고동이 운다.

남쪽나라 십자성은 어머니의 얼굴 / …

 

 

 

술독을 빼려고 모처럼 찜질방으로 갔다. 마침 커다란 스크린에서 한국과 네덜란드의 축구경기가 중계되고 있었다. 약 20여 명 되는 사람들이 숨을 죽이고 구경하고 있는데 가끔 한국팀이 공격을 받으면 분위기가 술렁인다.“우, 저걸 어쩌나! 저걸….”나이가 듬직한 아낙네들이 가슴을 조이며 소리를 지른다.

“머저리(바보)같은 것들이 빨리 들어와 막지 않고 쯧쯧 저런 것도 축구라고….”아저씨들이 안타까워서 하는 욕이다. 분명 한국팀을 죽도록 응원하지만 생각처럼 잘 되어주지 않으니 욕이 앞선다.“조금 더 안쪽으로 뚫어라, 그렇지!”20대의 젊은이들은 왠지 네덜란드를 응원한다. 한국팀이 공격을 하면 별로 반응이 없다가도 네덜란드가 공격하면 곧 흥분한다.

 

왜 그럴까? 한국은 우리의 이웃이고 한국인은 분명 우리와 핏줄을 함께 한 민족인데 왜서 한국을 대하는 태도가 이처럼 다를까? 나이가 있는 사람들의 가슴에는 한국이 들어있다. 하지만 젊은 세대들의 가슴에는 분명 한국이 없었다. 어릴 때 할머니가 부르던 노래가 생각난다. 제목은 뭔지 모르겠으니 가사만은 어렴풋이 기억에 남는다.

 

할머니의 고향은 남쪽 충청도다. 할머니가 고향이 그리워 가끔씩 노래로 마음을 달래이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할머니의 노래에 끌려서인지 아니면 할머니가 외우던 고향 이야기가 가슴에 감동으로 서려서인지 자라면서 저도 모르게 남쪽이 고향이라고 의심하지 않았다.

아무렴 가문의 조상할아버지, 조상할머니들의 뼈가 묻혀있는 곳이 아닌가? 나뿐만아니라 우리 세대 사람들의 몸에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들려주던 남쪽 땅의 모습이 마냥 눈에 밟혀 운다. 그런 원인으로 축구에서마저 한국이 이기기를 죽도록 바란다.

 

사실 광복 후 수십 년을 이어오면서 한국에 대한 조선족의 이미지는 수시로 바뀌었다. 그러나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시대적 배경 때문인 것이다. 광복이 나면서 많은 사람들이 고향 남쪽으로 갔다. 하지만 사정으로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한 사람 또한 많았다. 그들과 그들의 후손들은 언젠가는 꼭 고향으로 돌아간다고 철석같이 믿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남북전쟁(6.25)이 일어나면서 그릇된 선전으로 남쪽에 대한 인상이 확 달라졌다.‘미제와 리승만 괴뢰도당들의 탄압’으로 백성들은 다리 밑에서 판잣집을 짓고 살아가고 처녀들은 모두 술집에 가서 노래를 부르고 몸을 파는 줄만 알았다. 거기에다 수만의 조선족 아들딸들이 전쟁에서 죽고 나니 한국은 그야말로‘원수의 나라’였고, 증오의 대상이었으며, 언젠가는 우리가 가서‘해방’을 시켜야 할 나라로 되어버렸다.

 

그 후 중국의 숙반운동과 십년대동란을 포함한 정치운동이 계속해서 기승을 부리자 정치운동에 신물이 난 사람들이 잠시 잊혔던 남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남쪽이 궁금했고 남쪽의 이야기에 귀가 솔깃해졌다. 십년대동란이 끝나고 사회가 평온해 질 무렵 ‘가요무대’ 복사테이프와 ‘흘러간 옛노래’카세트테이프가 민간에 돌려지면서 향수를 일렁이게 했다. 테이프를 서로 서로 돌리면서 보았다.

 

“그쪽은 따듯하고 사는 멋도 있는데….” “그런 소릴 하지도 마오. 언제 또 박살이 나자고 조심하게나.” 정치운동에 겁을 먹은 사람들의 걱정이다. 그러나 고향에 대한 그리움은 억압으로 지워지지 않는다. 어떤 ‘선구자’들은 홍콩이나 대만을 거쳐 한국에 다녀왔다. 사람들은 놀라운 눈길로 바라본다. 그들이 돌아와서 하는 왈: “고향이 몰라보게 달라졌습데. 우리보다 더욱 잘 삽데….” “그런데 내가 가니깐 경찰들이 뒤를 따라다니더구만, 간첩인줄 알고. 돌아오니깐 여기서도 은근히 뒤를 캐는 게 으시시 합데.”

 

초기에 한국과 중국에서 조선족들을 조금씩 경계했다. 조선족이 처한 지리적 위치와 민족성 때문이다 그래서 “디아스포라의 비극”이라고 서러워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 후 중한수교가 이루어지면서 한국이 한 걸음 가깝게 다가왔다. 잃었던 고향을 찾은 기분이었다. 이젠 한국이‘원수의 나라’,‘해방의 대상’이 아닌 수시로 나들이를 할 수 있는 고향으로 다가왔다. 그런데 가슴 아프게도 정작 고향에 가야 했을 할머니와 어머니세대는 모두 돌아갔다.“한국은 부지런히 일만 하면 잘 사는 나랍데.”,“한국은 문명하고 밝은 나라입꾸마.”,“한국에도 좋은 사람이 많다이.”

 

한국에 대한 조선족의 평가이다. 한국이 어쩌고저쩌고 해도 한국이 있었기에 조선족의 삶의 질이 확실하게 제고되었고 조선족들의 문명수준도 확실하게 높아졌다. 한국인은 ‘남조선새끼들’도 아니고 ‘한국놈’도 아닌, ‘겨레’로, ‘형제’로 대접받고 있다. “저 집은 아들내외가 한국에 갔다 오더니만 부자가 되었다니깐” “쥐구멍에 볕이 든다더니 한국 덕에 살았구먼….” 조선족들은 한국나들이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인다. 아니 한국행을‘비단의 길’로 알고 있다. 연길의 부동산산업이 흥청망청하는 것도 은행에 돈이 철철 넘쳐나는 것도 고향집 같은 한국의 따뜻한 배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그 감사를 느낄 줄 아는 사람들은 누가 뭐라 해도 오직 한국만을 응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젊은 세대들에게는 한국은 그냥 일본, 미국, 대만, 베트남과 같은 주변 나라일 뿐이다. 왜 그럴까? 첫째로 그것은 젊은 세대들의 시야가 넓어졌기 때문이다. 젊은 세대의 눈길은 한국에만 멎지 않고 더욱 광활한 나라로 달리고 있다. 둘째, 그들은 한국을 깊이 알지 못하는 소수인의 부정적인 소문을 믿는다.“ 한국에서 살면 너무 스트레스를 받아 피곤하다. 제발 공부를 잘해서 나처럼 한국에서 노예로 살지 말라.”는 부모들의 이야기가 가슴에 박힌 것이다. 셋째, 중국의 문화와 정에 깊이 물들었다. 그래서 중국인의 사유방식과 중국인의 시각으로 한국을 판단한다. 넷째, 이주민의 5세대, 6세대들이라 한국에 정을 들일만한 계기가 없다.

 

젊은 세대들이 네덜란드보다 한국을 응원하고 한국을 품을 수 있는 이벤트가 필요한 때가 아닌가 한다. 조상의 숨결을 느낄 수 있도록 참된 이벤트를 마련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허심탄회하게 말하면 한국은 머나먼 이웃 나라가 아니다. 한국은 어릴 때 익숙히 들어오던‘배나무집 순복이네’,‘우물집 김서방네’와 같은 존재이며, 한국인과 조선족은‘갑돌이’와‘갑순이’처럼 서로 사랑하면서도 말 못하는 존재이다.

 

 

 

 

 

본 기사의 전문은 대한뉴스 2014년 8월호(www.daehannews.kr)에 자세히 나와 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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