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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화(敦化)와 정각사(正覺寺)

[인터넷 대한뉴스]

 

발해의 도읍 동모산을 돌아보고 정각사로 왔다. 정각사(正.寺)는 돈화시에서 약 3km쯤 떨어진 륙정산 기슭에 자리 잡고 있다. 륙정산에 가면 묵석으로 건설한 웅장한 산문이 먼저 시야에 들어온다. 산문 벽에는 련꽃과 룡, 봉황이 아름답게 새겨져 있고, 력대 유명시인들의 시도 새겨져 있다.

 

산문 벽에서 돈화(敦化)라는 지명유래를 찾았다. 돈화는 중용 제30장에서 따왔다. 중용에는 .如天地之无不持戟,无不覆.。比如四.之.行,如日月之代明。万物.育而不相害,道.行而不相悖。小德流川,大德敦化。此天地之所以.大也라는 말이 있다.

 

공자의 덕을 가송한 것인데“공자의 덕은 하늘과 땅이 만물을 받들어 감싸주듯 지극히 두터우며, 사계절이 반복되고, 해와 달이 번갈아가며, 밝은 것처럼 지극히 순리적이다. 만물이 함께 자라되 서로 해롭지 아니하고, 도가 함께 행하여도 서로 어긋나지 않는 것과 같다. 작은 덕은 시냇물 흐르듯 하고, 큰 덕은 모든 것을 돈독하게 감화시킨다.”여기에서 돈독할 돈(敦)자와 감화할 화(化)자를 따왔다.

돈화는 바로 두텁게 교화를 이룬다는 뜻으로 풀이하면 된다. 이렇듯 좋은 이름을 가진 돈화이기에 해동성국 발해가 태어났고, 청나라를 세운 누르하치를 잉태했을지도 모른다.

 

륙정산 입구에서 1㎞쯤 가면 정각사에 이른다. 정각사는 동북에서 가장 큰 절이고, 국내에서 가장 큰 여승도장이다. 정각사는 불성대사(佛性大.)가 세운 사찰인데, 1993년 5월에 착공하여 1996년 5월에 준공되었다. 정각사의 전신은 워낙 번화한 중심가에 있었는데, 약 백년 전인 청조 말년에 세워졌다. 정각사의 주지들로는 유공(惟空), 존국(尊.), 흥운 등이 있었다.

 

1945년, 소련 홍군들이 돈화에 들어왔다. 그때 일본인들(백성)은 전쟁에서 지게 되자 오갈 데가 없고 먹을 것도 없어 부득이 정각사에서 스님들의 구제를 받으며 마음을 의탁했다. 소련 홍군들은 정각사에 일본인들이 많은 것을 보고 정각사가 일본인의 사찰이라고 오해했다.

그리하여 사찰의 물건을 숟가락 하나 남기지 않고 몽땅 걷어갔다. 사찰의 소유로 되어있던 소 한 마리도 찾아내어 잡아먹었다. 사찰의 운이 기울었다고 생각한 불성스님과 비구니들은 눈물을 머금고 하나 둘 떠나갔다. 사찰에는 잡초가 우거졌다. 그 후 주인 없는 사찰은 학교로 개조되고, 주위에 주택들이 마구 들어서면서 정각사는 모습을 잃어갔다.

 

불성스님은 흥운스님의 제자였다. 정각사가 몰락하자 불성스님도 봇짐을 싸고 장춘, 강서, 마카오, 홍콩을 돌다가 나중에 캐나다로 건너가 열심히 독경한다. 그러던 1975년에 미국 뉴욕으로 가서 정착한다. 1979년 중국 불교협회 회장 조박초가 미국을 방문했다. 그런데 미국 불교계에서는 조박초를 사회주의 나라의 벼슬아치라고 푸대접했다. 하지만 불성스님만은 꺼리지 않고 반갑게 맞아주었다. 불성스님은 조박초를 만난 것으로 하여‘대륙분자'라는 딱지를 달고 불교계에서 소외되었다.

 

1980년 중국의 개혁개방은 봄바람을 타고 불교계에 불어왔다. 사찰이 우후죽순마냥 들어섰다. 워낙 동방의 불교대국이요 불교문화가 깊이 뿌리를 내린 중국이기에 세계 불교계의 눈길은 자연히 중국에 초점을 맞추었다. 조박초는 미국 불교계에서 가장 이름난 10명의 대사를 중국에 초청했는데, 그 중 한 명이 불성스님이다. 불성스님이 중국에 오자 조박초와 중국 불교계는 그를 따듯하게 접대했다. 불성스님은 돈화에 와서 자기의 스승 흥운스님을 찾았다. 수십년 만에 다시 만난 스승과 제자는 서로 붙들고 눈물을 쏟았다.

 

“스님, 제자가 돈화에 부처님의 집을 크게 짓겠습니다.”불성스님이 스승에게 말했다.“암, 그래야지.” 간신히 생명의 끈을 잡고 있던 홍운스님이 마지막 힘을 모으며 말했다.

 

미국에 돌아간 후 불성스님은 돈화에 사찰을 지으려고 아껴먹고 아껴쓰면서 돈을 모았다. 그는 주일마다 집에서 음식을 차리고 불자들을 모셨다. 불자들은 스님의 꿈을 알고 있는지라 예배값이며 향값이며 소식값을 아낌없이 내놓았다. 이리하여 돈을 모은 불성스님은 마침내 돈화시 륙정산에 사찰을 짓게 되었다.

 

정각사는 불탄성지(佛..地)와 산문, 사천왕전, 대웅보전, 관음전, 장경루, 종루, 북루로 이루어졌다. 산문은 높이가 15m쯤 되어 보이고, 정면에는 정각사라는 편액이 돋아있다. 불탄성지 옆에는 커다란 돌비석이 있다. 비석에는 력대 스님의 계보와 정각사 건축과정을 새겨 넣었다. 천왕전에는 미륵불을 모셨고, 대웅전에는 석가모니불과 아미타불과 약사여래불을 모셨다.

정각사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대웅전 앞에 있는 월대이다. 월대 란간은 청석으로 조각했는데, 가운데의 묵옥(검은색 옥)으로 조각한 룡은 힘차게 꿈틀거리며 정각사의 기운을 과시하는 듯 했다. 량측 계단은 고궁의 태화전 계단과 아주 흡사했다. 대웅전 앞에 여덟 개의 한백옥반룡주는 사찰의 기둥으로서는 처음 보는 것이다. 물론 보아온 사찰이 별로 없지만.

 

관음전의 건물은 독특하게 륙각형으로 되어 있다. 설명을 보면 륙각형은 륙정산을 상징한다고 했다. 그리고 정자마다에는 비인(.人)이 각기 4명이 있다. 24절기를 뜻하는데, 아마 관음보살이 사시장철 시시각각 중생을 굽어보고 살핀다는 뜻으로 해석하면 될 것 같다. 룡흥지지(..之地)라 일컫는 돈화, 금상첨화라 할까? 거기에 정각사가 있어 돈화는 이제 상서로운 기운만 차고 넘칠 것이다.

 

 

 

 

 

본 기사의 전문은 대한뉴스 2014년 9월호(www.daehannews.kr)에 자세히 나와 있으며 

교보문고, 영풍문고를 비롯하여 전국 지사·지국에서 구입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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