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대한뉴스]글 박현 기자 | 사진 연합뉴스, 바른가정경제실천을 위한 시민연대
"무한한 열정과 끊임없는 노력이 성공의 열매를 여러분에게 가져다줄 것입니다.”, “이곳에서 꿈과 희망의 날개를 펴고 푸르른 미래를 향해 힘차게 달려갑시다.”, “우리에게는 온갖 역경과 장애물이 앞을 가로막고 있어도 충분히 헤쳐 나갈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입니다.”…(중략). 단상 앞의 강사가 열변을 토하고 있다. 고등학교 교실보다 다소 넓은 공간. 강사의 설명을 골똘히 듣거나 노트에 필기하는 수십 명의 젊은 남녀들.
그리고 관리자로 보이는 몇몇 사람들. 강사는 벽면 보드판에 간간이 ‘네트워크마케팅’, ‘수익 ○○% 지급’, ‘직급 수직 상승’ 등의 용어를 써가며 그곳에 앉아 있는 모두의 시선을 모은다. 1차 강의가 끝나갈 무렵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강사의 선창 아래 한쪽 팔 올렸다 내리기를 반복하며 구호를 외친다.
이곳은 바로 불법다단계(피라미드)판매업체의 회원교육장이다. 대부분 업체의 임원이나 최상위직급자가 이들을 교육시키는 강사를 맡는다. 지난 2006년 ‘JU사태’ 이후 주춤했던 불법다단계판매가 최근 다시 기승을 부리고 있다. 특히 이들 업체는 취업과 대학등록금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20대 젊은 층을 파고들며 세를 넓히고 있다.
단기간에 고수익 확신
기자는 지난달 서울 서초동의 업무시설 밀집지역에서 한 다단계업체 회원과 만나 업체활동과 취급제품 등에 대해 물어봤다. 20대 초반의 남성회원은 일을 시작한 지 3개월 가량 됐다고 말했지만 개인 신상이나 업체에 관한 구체적 사항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그 대신 하고 있는 사업과 관련된 내용에 대화의 많은 비중을 두었으며 성공에 대한 확신을 자주 내비쳤다.
그는 소속된 업체에서 주로 과일즙, 비타민류 등 건강보조식품과 비누, 샴푸, 치약 등 생활용품을 취급하고 있으며 이는 시중에서 판매되는 제품보다 효능이나 품질 면에서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우수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또 일정 금액 이상을 본인이 직접 구매하거나 타인에게 판매하면 업체로부터 직급을 부여받고 수당도 넉넉하게 받는다는 사실도 덧붙였다.
기자가 다단계업체에서 활동하다 피해를 입은 사람들의 이야기와는 많이 다른 것 같다고 지적하자 그는 “그 사람들 대다수가 일에 대한 애정과 어려움을 이겨내는 끈기가 없어 부정적으로 발언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일일이 귀담아 들을 필요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이어 기자가 최근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불법다단계업체의 문제점에 대해 언급하자 “소속업체는 합법적으로 등록돼 활동하고 있으며 일부 언론에서 거론되는 불법다단계와는 완전히 다르다”며 그 차별성을 강조했다. 그는 한발 더 나아가 기자에게 “우리 사업에 대해 관심이 많아 보이는데, 같이 한번 해볼 생각 없느냐”며 “지금 시작하면 약 6개월 뒤 500만~800만 원이 찍혀 있는 자신의 통장을 보고 스스로 놀라게 될 것”이라며 적극 권유하기도 했다.
헤어 나오기 힘든 불법다단계의 늪
불법다단계판매업체는 주로 서울 강남구, 서초구나 송파구 석촌동, 가락동에 몰려 있다. 우선 서울 강남권이라는 지역적 특수성이 지방대학생이나 지방 소재 젊은이들을 끌어들이는 데 수월하다. 또한 합법적으로 다단계사업을 펼치고 있는 업체들의 본사가 대부분 강남에 위치해 있어 이들과 쉽게 구별할 수 없게 하기 위한 의도로도 풀이된다. 최근 ‘거마대학생’이라는 신조어에서도 드러나듯 약 5,000명의 20대 대학생들이 불법다단계에 빠져 단체로 합숙을 하는 송파구 거여동과 마천동 일대 역시 서울 강남권에 속해 있으면서도 재개발 예정지라 방값이 비교적 저렴하다. 이 점이 이들 업체가 조직을 확장하는 데 여러모로 유리하다고 판단, 불법다단계사업의 기반으로 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기자는 거마 지역에서 1년간 활동하다가 손을 뗀 한 젊은이를 만나 그동안의 자초지종을 들어봤다. 김정환(27·가명) 씨는 지난해 한 지방대학을 졸업하고 취업 준비 중에 있던 어느 날 한동안 뜸했던 고교 동창에게 연락이 와 반가운 마음으로 통화하게 된 데서부터 불법다단계에 발을 들여놓게 됐다며 말문을 열었다.
그는 “그 친구가 서울 강남의 한 회사에 입사하게 됐는데, 그 회사에서 추가로 인턴사원을 뽑는다며 이왕이면 고등학교 때 같이 공부하고 우정을 나눈 친구를 소개하고 싶어 연락했다며 가능한 빨리 올라와 면접을 보라는 말까지 남겨 며칠 후 바로 서울로 올라갔다”고 말했다. 그러나 업체 담당자와의 면접에서 그 회사가 다단계업체라는 것을 눈치 채고 소개해준 친구에게 심한 배신감을 느꼈다는 김 씨는 그 친구와 담당자의 거듭되는 설득과 일자리를 얻지 못한 상황에서 결국 그 업체의 하부 판매원으로 가입하게 됐다고 말을 이었다.
그는 “옥매트, 화장품, 건강식품 등을 취급하는 업체였는데, 상위직급자가 말하길 정식회원으로 가입하려면 제품 300여만 원 어치를 한꺼번에 구매해야 한다고 해 당장 돈이 없다고 하자 그러면 회사와 제휴를 맺은 금융업체를 통해 부족한 자금을 대출 받아 구매하기를 재촉했다”고 언급했다. 이어 “대출 서류에 서명하기를 주저했더니 그가 ‘꾸준히 일하면 몇 달 후 매달 수백만 원에서 1,000만 원 이상을 벌 수 있는데 이 정도 투자도 못하느냐’고 면박을 주기까지 해 결국 30%가 훨씬 넘는 고금리 대출을 받고 말았다”라고 말했다.
이후 김씨는 업체 임원이나 상위직급자들이 “이 사업은 중간유통단계를 거치지 않아 단기간에 수익이 불어나는 대박사업”이라며 반복된 교육, 면담을 통해 날마다 강조, 세뇌하다시피 해 이성적 판단을 마비시킨다고 지적했다. 또 이들은 투철한 마인드를 정립하기 위해서라며 다른 회원들과 강제로 합숙을 시키고 수시로 감시, 전화사용이나 TV시청 등도 철저하게 통제한다는 것도 밝혔다.
김씨는 “우여곡절 끝에 몇 달 전 이 일에서 손을 뗐지만 1,000만 원이 넘는 빚은 고스란히 남아 현재도 원금과 이자를 갚는 데 골몰하고 있으며 더 이상 자신과 같은 피해자가 나오지 않기를 고대한다”며 이야기를 마무리지었다.
사람 장사에 치중
불법다단계판매업체는 일확천금과 대박의 허상을 극대화한다. 누구나 사업에 몰두하면 이른바 골드, 에머랄드, 마스터, 다이아몬드 등으로 불리는 직급을 단기간에 순차적으로 밟아 상승하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것이다. 직급이 올라갈수록 하부 판매원의 수익 일부를 수당으로 가져가게 돼 월 500만 원에서 1,000만 원은 거뜬히 벌 수 있다고 선전한다.
그러나 겉보기와는 달리 불법다단계판매의 본질은 ‘사람 장사’다. 각 회원마다 더욱 많은 사람들을 자신의 하부 조직원으로 끌어들여 제품 판매를 확장하고 대출 건수를 늘게 하는 것이 핵심이다. 또한 이들 업체가 취급하는 물품은 고품질, 고품격을 표방한다는 설명과는 달리 성분이나 효능 면에서 조악하기 짝이 없는 수준으로 제조된 것이 대부분이다.
그런데도 이들 다단계업체들은 이러한 제품에 작게는 3~4배, 많게는 8~10배나 되는 터무니없는 이윤을 붙여 시중에서 판매되는 제품과는 질적으로 차별화되고 특별한 물질이나 효능이 첨가돼 희소가치가 있는 명품으로 포장한다.
지난 2006년 25만 명의 피해자와 2조 원 규모의 피해금액을 발생시킨 ‘JU사태’, 2009년 5만 명의 피해자와 4조 원의 손실을 가져온 ‘리브’ 사건 등 국내의 대표적인 불법다단계사기사건의 충격은 지금도 많은 이들을 피눈물과 한숨 속에 멍들게 하고 있다.
그 파장이 채 가시기도 전에 더 나은 미래를 꿈꾸며 내일을 향해 달려가야 할 젊은 영혼들이 자신들의 희망을 담보로 불법다단계의 덫에 걸려 헤매는 일은 더 이상 없어야 할 것이다. 특히 청년실업과 대학등록금 등 당면한 사회문제에 대해 사회구성원들의 지속적인 관심과 당국의 합리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한걸음 더 나아가 불법다단계판매의 배경이 되고 있는 우리 사회의 물질만능주의와 배금주의 사조에 대해 우리 모두 깊이 생각하고 고민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
본 기사의 전문은 대한뉴스 2011년 12월호(www.daehannews.kr)에 자세히 나와 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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