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대한뉴스]글 김윤옥 기자 | 사진 서연덕, 모영준 기자
신랑 문장우·신부 이윤진 결혼식 주례를 맡다
본지 김원모 발행인의 아름다운 사람들(10)
본지 김원모 발행인의 아름다운 사람들(10)
편집기획자로서 본지 발행인에 대하여 글을 쓰는 것에 대해 여러 달을 고민했다. 고민 끝에 2011년 9월호부터 연재하기로 한 것은 본지 발행인과 실타래처럼 얽혀 있는 수많은 인물과 관련이 있다. 일화를 입증하는 인물들이 생존해 계실 때 글과 동영상으로 기록을 남겨야 한다는 사명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인간의 도리, 사람의 정, 행복에 대한 기준은 사람마다 천차만별이다.
하지만 본지 발행인이 걸어온 길을 보면 사람과 사람이 어떻게 배려하며 살아야 행복한 사회가 될지에 대한 길이 보인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학문, 배경과 같은 것을 의지해서 살아간다면 발행인은 그렇지 않다. 발행인은 가난했기에 부지런할 수밖에 없었고 외로웠기에 정직할 수밖에 없었다며 가난과 외로움이 오늘의 재산이 되었다고 한다. 또한 “내가 말과 행동이 다르다면 언제든지 지적해주소”라고 말한다. 직원들만 듣고 지나기에는 너무 귀한 인연들, 특별한 시선으로 다시 들여다본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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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결혼시즌이 다가오고 있다. 결혼을 준비하고 있는 선남선녀라면 발행인의 열 번째 인연을 주목해보자.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주례와 신랑 신부의 평범한 만남이지만, 그 이면에는 주례가 삶의 스승으로서 어떻게 길잡이를 하고 있는지 신랑 신부는 주례 말씀을 어떻게 실행하고 있는지 귀 기울여 들을 수 있는 일화를 소개한다.
주례(발행인)와 신랑(문장우)의 만남
신랑에게 물었다. 주례 선생님은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요? “어머니와 잘 아는 지인이어서 알게 되었습니다. 어머니는 주례 선생님과 한동안 서로 연락이 안 되었는데 돌이켜보니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발행인이라면 좋은 말씀을 많이 해주실 것 같다며 결혼을 앞두고 너희들이 한번 찾아가 보라고 하셨죠.” 옆에서 듣고 있던 발행인이 말을 꺼낸다. “신랑 어머니가 (주)M레코드사의 사장으로 재직 시 알게 되었죠. 한 십여 년 만에 찾아와 그동안 한 번도 잊은 일이 없다며 아들이 주례 선생님의 정신처럼 살아가기를 바란다고주례를 간곡히 부탁하더군요. 그렇게 만나게 되었습니다.”
주례가 신랑 신부에게 남기는 당부의 말
발행인은 신랑 신부를 미리 사무실로 불러 몇 가지 당부를 했다. “주례 말을 생활신조로 삼아 가슴에 담고 살아갈 수 있느냐?”고 묻자 신랑은 “예! 말씀하시는 대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라고 약속을 했다. 발행인은 신랑 신부가 결혼식 날까지 해야 할 몇 가지 숙제와 함께 결혼식 날 정신이 없어서 잘 못들을 수도 있는 주례말을 미리 건넸다. ‘부모님께 편지를 쓰고 또 부모님이 잘 잡수시는 간식은 무엇이며 취미는 무엇인지 알아보라.
직장에서는 맡은 바 직책에 맞도록 일을 하고 사람의 도리를 다해야 한다. 요즘은 친구를 수월하게들 사귀는 경향이 있는데 진정한 친구라면 우정은 깊게 사귀되 공과 사는 구별할 줄 알아야 한다. 친구가 어떤 실수를 했을 때 ‘네가 그럴 줄 몰랐다'며 돌아서지 말고 ‘이 친구가 왜 저러지'라는 마음을 갖고 정신적으로 문제가 생겼는지 병원에 데리고 가보라. 그러나 친구의 어떤 어려움에도 재정보증은 절대 서서는 안 된다.
보증보험과 같은 다른 길로 안내하는 지혜로운 친구가 될 것을 주문했다. ‘남편은 기둥, 아내는 해'라고 한다. 기둥이 튼튼하면 집이 무너지지 않는 것처럼 남편의 정신이 꿋꿋해야 하고 해가 비치지 않는 곳은 곰팡이가 피는 것처럼 아내는 집안의 해가 되어 시댁과 친정 그리고 친지들까지 모든 곳을 골고루 비추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요즘 젊은 엄마들은 자식을 열심히 잘 키우지만 보호가 지나쳐 아이가 커서는 자기 밖에 모르게 된다. 자식이 네 발로 기어 다닐 때부터 지혜를 가르쳐라. 지혜는 커서 배우는 것이 아니다. 대가족 시대는 가족들 품에서 옮겨 다니면서 배려와 나눔을 배웠고 그런 점이 지혜가 되어 훗날 큰 지도자의 면모를 갖추는 첫걸음이 되었다. 말을 하면서부터는 지식을 가르쳐라. 오늘 이 시간(주례와 만남) 이후로 힘들고 걱정되는 일들은 부모에게 말하지 말고 주례와 상의하라고 했다. 부모가 해결해 줄 수 없는 것들을 안겨드리는 것은 자식으로서 불효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주례와의 약속을 지키는 신랑 신부의 남다른 점
결혼식 후 신랑 신부는 주례의 당부를 생활 속에서 지키기 시작했다. 신랑에게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물었다. “스승의 날이면 주례 아버님께(주례 맡은 인연으로 발행인을 아버님이라 부른다)편지를 씁니다. 그리고 첫 아이 출산 때 몇 월 며칠 몇 시에 태어나면 좋을지 여쭤보았습니다”라며 계속해서 말을 잇는다. “서영(4), 지수(2) 두 딸의 이름도 지어주셨죠. 그래서 고마운 마음을 전하려고 봉투에 몇 십만원의 돈을 담아서 아버님을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아버님이 약간 당황하시더니 돈을 안 받는다고 하시는 거예요.” 깜짝 놀라 멈칫하며 “왜요”하고 되묻자 발행인은 “에비, 에미야~미안하구나. 이 돈은 내가 받아야 할 것이 아니라 한국역술인협회 백운산 회장님에게 인사를 해라. 부끄럽지만 바른대로 이야기 해 줄게. 이름 여섯 가지 가운데 세 가지는 내가 지었고 세 가지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용하다는 백운산 회장님이 지었는데 너희들이 지금 쓰고 있는 아기 이름이 바로 백운산 회장님이 지은 것이다.
그러니 그분께 드리는 것이 맞지”라고 했다. 신랑 신부는“몰랐습니다. 알겠습니다”하고 다음날 백운산 회장을 찾아가 답례를 드리자 백운산 회장은 ‘안 그래도 되는데…'라며 굉장히 반가워하며 기념사진을 찍자고 하였다. 신랑 신부는 사회 큰 어른과 또 하나의 인연을 맺게 된 것이다. 백운산 회장은 발행인에게 전화를 걸어 “아니~ 이름은 내가 아우님께 선물한 것인데 어떻게 이 돈을 나한테 가져오게 했습니까!”라며 주변에서 좋은 인연을 보게 되어서 고맙다는 말을 남겼다. 발행인은 신랑 신부에게 삶에 있어서 스승은 세 군데에서 만날 수 있다고 강조를 한다.
세 군데 스승, 주례의 말을 삶의 길잡이로 삼는다면
발행인에게 “학교 선생이 스승 아닙니까?”라고 하자 발행인은 “그것은 학문적인 스승이죠”라며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첫째는 나를 낳아주신 부모가 스승이다. 부모가 몸을 던져가면서 보이는 자식에 대한 사랑과 한 말씀 한 말씀은 어떤 신앙 못지않은 가르침을 주기에 첫 번째 스승이다. 둘째는 각자가 믿는 신앙이다. 어떤 종교든 전파하는 사람의 모습을 보지 말고 신앙 속의 교리를 잘 지킨다면 그것이 스승이다.
만약 신앙이 없다면 자연의 이치를 가르침으로 따르면 될 것이다. 셋째는 주례가 스승이 되어야 한다. 기자는 발행인에게 “주례가 어떻게 스승이 됩니까?”라고 의아해했다. 발행인은 말한다. “혼인 때는 정신이 없어서 주례말을 까맣게 잊기도 합니다. 그러나 주례말을 경청하여 70~80%를 가슴에 새기고 행동으로 옮긴다면 그 사람은 사회 어느 곳에서 무엇을 해도 실패가 없을 것입니다. 경청해서 새긴다는 것은 어떤 것을 해도 헛되지 않은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라고 한다.
기자는 발행인에게 “주례는 어떤 생각을 가져야 합니까?”라고 물었다. 발행인은 “글쎄요! 다는 모르겠습니다만, 결혼은 어른이 되는 귀하고 참 귀한 날인데 수월하게 주례를 봐서야 되겠습니까. 등산에 비유해볼까요. 신랑 신부는 아직까지 한 번도 등산을 해보지 않은 초보자라면, 주례는 신랑 신부가 무탈하게 정상을 오르는데 오솔길로 안내하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요즘 들어 주례를 돈으로 사기도 하고 주변에 잘 보이기 위해 높은 분을 세우는 것 같습니다. 한 번 더 생각해서 주인공들이 노을이 다할 때까지 살아가는 데 길잡이가 될 만한 인연이 주례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라고 한다.
? 주례와 신랑 신부의 인연, 왜 소중한가
발행인은 그동안 주례를 맡았던 한 신랑 신부와 이런 일도 있었다. 어느 날 신랑 아버지로부터 전화가 걸려와 며느리가 직장에서 퇴출 대상이 되어 큰일 났다며 상의를 해왔다. 당시에 신랑은 서울에서 직장을 다녔고 신부는 부산에서 근무하며 주말 부부로 생활을 하고 있었다. 발행인은 생각 끝에 주례를 섰던 결혼식 사진을 들고 부산까지 내려가 신부의 직장 오너를 만나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선처를 부탁했다. 그러자 직장 오너는 잠깐 멈칫했다가 참 귀한 일이라며 자기 자식의 주례도 서달라는 농담을 건넸다. 그러면서 노력해 보자고 했다. 얼마 후 신부는 서울로 발령이 나 신랑 신부가 함께 살 수 있는 전화위복의 기회가 되었다. 주례의 사진 한 장이 얼마나 큰 신뢰와 용기를 주는지 엿볼 수 있는 장면이다.
열 번째 인연을 통해 본 남다른 것들
기자는 신랑 신부를 점심시간을 통해 잠깐 만나게 되었다. 두 사람은 동아제약에 근무하면서 인연이 되어 2008년도에 결혼했다. “주례는 어떤 분인가요?”라고 묻자 부부는 “저희들이 많이 부족하지만, 주례아버님과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면서 듣는 좋은 말씀이 자신을 다스리는 잣대가 되어 항상 가슴에 새기며 열심히 살아가고 있습니다”라고 입을 모은다. 부부의 얼굴에서 서로 사랑하고 아끼는 눈빛이 역력해 보는 사람도 저절로 미소를 짓게 만든다. 발행인의 열 번째 인연이 전하는 것에 대해 되짚어 보았다.
주례는 신랑 신부를 미리 불러서 부모님의 간식거리를 알아 효를 실천하게 하고, 자식을 낳으면 지혜와 지식을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지 지침을 주고, 친구를 깊게 사귀되 공과 사를 구별할 줄 아는 그런 삶의 지혜를 신랑 신부에게 주었다. 부모와 신앙, 그리고 주례를 스승으로 삼는 철학도 남달랐다. 신랑 신부는 주례사를 몸으로 새겨 사람의 도리를 실천하는 모습에서 훗날 미래의 훌륭한 지도자가 될 것이 엿보인다.
인연 취재를 마치며 단지 결혼식장에서 좋은 말씀을 들려주는 주례가 아니라 새로운 인생의 전환을 맞는 젊은이들에게 생활에서 몸소 실천해야 할 가르침을 주고 또 살면서 생기는 어려움까지 몸소 나서서 해결해주시려는 발행인의 모습을 보며 다시 한 번 더 인연의 소중함을 배울 수 있었다.
하객의 눈물
결혼식 주례를 끝내고 발행인이 예식장 밖으로 나가자 50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녀 다섯 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중 한 분이 눈시울을 적시면서 말을 걸었다. 조금 전 주례사를 듣고 시골 80세 노모에게 전화를 걸어 “어머님께서 진짜 좋아하시는 간식이 무엇입니까?” 물었더니 청천벽력과 같은 대답이 들렸다.
“나는 일본 찹쌀 모찌를 가장 좋아한다.” “아니! 어머님께서는 고구마를 좋아하시지 않습니까.” “아니다! 나는 고구마를 가장 싫어한단다.” 아들은 어릴 때 식사 끼니때마다 어머니께서 밥은 드시지 않고 쌀에 얹어 삶은 고구마만 드시는 것을 기억하고는 어머니가 고구마를 매우 좋아하시는 것으로만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장년이 된 후 기회가 있을 때마다 맛 좋은 고구마를 골라 시골 어머님께 보내 드렸던 것이다.
17세 때 일본에서 부모와 떨어져 혼자 귀국해 결혼한 어머니는 찌든 가난 속에서 외아들을 키우느라 쌀밥은커녕 고구마로 연명해 왔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것이다. 어머니가 ‘일본 찹쌀 모찌'를 먹고 싶어 한 까닭은 어렸을 때 일본에서 부모님이 사다준 그 달콤하고 졸깃졸깃한 맛을 잊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던 것이다. 오십 평생을 살면서 어머니가 어떤 음식을 좋아하는지 조차 몰랐던 것이다. 부모는 자녀들의 식성을 잘 알아서 챙겨주지만 자식들은 부모의 식성에 대해서는 무관심한 것이 일반적이다.
“주례 선생님! 정말 감사합니다. 참으로 무심한 자식이었습니다. 이제야 어머니께 작은 효도라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말을 듣고 발행인도 놀랐다. 하객들이 주례사를 귀담아들을 것으로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또한 얼마나 멋진 인연인가.
본 기사의 전문은 대한뉴스 2012년 8월호(www.daehannews.kr)에 자세히 나와 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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