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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일반

김원모 발행인의 아름다운 인연 - 23 유병철 언론인

언론계의 대부 유병철 씨와 발행인의 일화

[인터넷 대한뉴스] 글 조애경 기자  | 사진 안지형 기자

 

선망의 대상이 되는 직업 기자. 아이러니하게도 대부분 사람들은 기자를 실상과 동떨어진 왜곡된 모습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발행인과 유병철 연합뉴스TV 전무이사와의 만남을 들여다보면 막연한 환상과 화려한 이미지 뒤에 직업으로서의 기자를 마주할 수 있다.

 

 고수를 알아보다

 

지금으로부터 약 26년 전 두 사람은 경찰청 출입기자 신분으로 만났다. 발행인은 유 전무가 경희대학교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1984년 연합뉴스에 입사해 사회부 기자로 경찰청을 누비던 모습을 또렷하게 기억했다. 


“유 전무를 처음 봤을 때 여느 똑똑한 기자들과는 달리 지혜가 느껴졌어요. 이른 아침에 경찰서에 가면 슬리퍼를 끌고 다니면서 남의 시선은 잘 생각하지 않는 기자들이 태반인데, 늘 자세를 가다듬고 상대를 예우하며 어떠한 상황에도 흐트러지지 않는 유일한 기자가 있었죠. 그 사람이 바로 유병철 전무였어요. 화도 잘 안 내는 데다 일 처리가 똑 부러져서 단연 돋보인다 싶었는데 대검찰청에서 간사장으로     8년, 이후 경찰청에서도 5년을 간사장 했을 겁니다.”


칭찬이 무색했는지 유 전무가 말을 이었다. “과찬입니다. 당시 서울 시내에 31개 경찰서가 있었어요. 출입 기자라면 우리 사회의 크고 작은 일을 놓치지 않아야 했습니다. 밤낮없이 일하는 게 당연했죠. 그 상황에서 다른 사람보다 조금 더 긴장한 것뿐입니다. 기자라면 누구나 할 것 없이 특종에 허덕이며 기사를 쫓는데 발행인이야말로 여느 기자들과는 확실히 달랐습니다. 한 마디로 여유가 있었죠. 경찰 간부급과 교분을 쌓고 경찰들의 애로사항을 듣고 해결해주기도 했으니까요. 통상적으로 봐왔던 기자와는 달랐습니다. 후배들에게 좋은 말도 많이 해주는 좋은 선배라고 워낙 평판이 좋은데다, 간사장의 어려움을 먼저 읽고 대변인 역할도 자처했으니 같은 남자지만 참 멋있었습니다.”


처세법에 치중하기보다는 긍정적인 생각으로 긍정적인 현실을 만들어낸 발행인도, 현재 남부럽지 않은 위치에서도 상대의 강점을 멋있다고 인정하는 유 전무도 기자에게는 통 큰 대인으로 느껴졌다.


“간사장은 한 마디로 단체의 중심이고 우두머리입니다. 경찰청에 모인 기자 가운데에서도 각 언론사의 대표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발행인이 말했다. “주요 일간지와 3사 방송 기자만 기자로 취급받던 시절이었으니 기자라는 타이틀을 다는 순간 콧대가 높아지고 도도해지기 마련이죠. 이런 기자들의 마음을 모아 화합을 도모하는 역할은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닙니다. 특히 각종 제보나 민원, 사건·사고 등 잡다한 기삿거리가 모이는 곳이 바로 사회부이기 때문에 기자들의 까칠함이 타 부서에 밀리지 않거든요. 이런 상황에서 유 전무는 소통과 화합을 위해 늘 연구하고 노력했어요. 기본적으로 편견 없이 항상 눈과 귀를 열어두었죠. 똑똑한 친구들이니 자신을 믿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겠습니까. 유 전무의 탁월한 리더십은 기자들 간에 단단한 결집력을 만들어냈어요. 환상의 팀워크를 바탕으로 각자의 능력을 십분 발휘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낸 그가 범상치 않아 보일 수밖에요.”


유병철 전무이사는 2011년 11월 연합뉴스TV 보도국장에 임명되어 개국작업을 직접 진두지휘했으며, 지난해 상무이사로 임원격인 보도본부장을 거쳐 올해 전무이사가 되었다. 2012년 보도본부장이었던 당시 중앙일보 김진 논설위원 겸 정치전문기자, KBS 김춘길 스포츠국장과 함께 경희언론인회가 뽑은 ‘2012 경희언론인상’ 수상자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단단한 기자는 거저 얻는 것이 아니다

 

한 줄의 진실을 찾기 위해 날카로운 매의 눈으로 현장을 누비는 기자들이 처음부터 단단했던 것은 아니다. 부단히 연습에 연습을 거듭한 결과 다부지고 당찬 기자가 된다.


사회부 기자는 더욱 혹독한 과정인 사스마리 과정을 거친다. ‘사스마리’는 경찰의 ‘찰’을 뜻하는 사스와 ‘회전’을 뜻하는 마와리가 합해진 일본어로 ‘경찰서를 돈다(출입한다)’는 뜻이다. 보통 서울시 경찰청에 출입하는 캡틴이라는 말의 줄임말인 ‘캡’이 사회면의 기획 취재를 지시하며 신참급 기자들의 사스마리 교육까지 책임을 진다.


후배들을 위해 선배로서 조언을 부탁하자 발행인이 먼저 입을 열었다. “사건의 원인을 파헤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일이 예사입니다. 막연히 동경해서 그렇지 사실 젊은 사람들에게 호감 가는 직업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젊은 사람들은 효율성을 많이 따지는데 일단 시간을 너무 많이 빼앗기니까요. 기자는 기다리는 직업이거든요. 특히 사건기자는 더 그래요. 파헤치고 남의 생각을 캐내야 하는 일이 다반사니 집에 상을 당해도 취재 중에는 자리를 비울 수 없습니다. 그만한 책임감과 끈기가 있어야 해요.”


유 전무도 덧붙였다. “형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경험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에 도제시스템을 적용하지만 지금은 옛날만큼 심하게는 안 해요. 만약 그렇게 한다면 막상 참아내는 사람이 많지 않을 거예요.”


왜 하고많은 장소 가운데서 경찰서를 돌아야 하는 걸까. 유 전무는 “경찰서는 사회의 모든 게 함축되어 있다”고 말했다. “살인, 강간, 교통사고 등 조서를 받고 처리하는 과정에서 기자들은 진실을 보는 안목이 길러집니다.   6개월간 거의 집에도 못 가요. 운 좋게 일주일치 속옷을 챙겨오기도 하지만 흰 속옷이 시커멓게 변하도록 속옷을 못 갈아입었던 사람이 태반인걸요. 경찰서에 왔다 갔다 하는 여기자들도 이곳에서만큼은 여자가 아니라 그냥 기자일 뿐입니다. 세수를 못 하는 것은 일도 아니고, 틈만 나면 남자들 사이에서 쪽잠을 자기 바쁠 정도였죠.”


훈련이 좀 심한 것 아니냐며 기자가 볼멘소리를 하자 유 전무가 대답했다. “그런가요. 그래도 이런 과정을 거쳐야 인정받으니 어쩔 수 있나요. 하루 평균 수면시간이 3시간 이내입니다. 가만히 있지를 못하게 계속 현장을 돌리는데 물론 힘들죠. 그런데 그런 친구들이 확실히 단단합니다. 실제 상황은 더 험악하거든요. 힘들긴 해도 경찰서는 통제된 상황이기 때문에 최대한 안전은 보장되어 있지만, 현장에 나오면 실제 상황입니다. 그러니 미리 당황하지 않고 거짓과 진실이 혼재된 곳에서 안목을 기르는 훈련을 하는 거죠. 선배들이라고 마냥 좋을 것 같으시죠? 절대 아니에요. 4시에 보고받기 위해서는 보고받는 사람도 깨어 있어야 하니 서로 고달플 수밖에요. 그래도 선배들은 이 과정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있기 때문에 절대 불평하지 않습니다”


이어 유 전무는 “경찰서는 군대로 치면 논산훈련소와 같아요. 훈련을 잘 받아야 자대배치가 잘 되는 법이죠. 캡틴이 보통 13명에서 20명 정도의 인원을 거느리고 팀을 이루는데, 정기자에 수습기자 3명씩이 붙어서 팀워크를 이룹니다. 훈련을 잘 받으면 정치부를 비롯한 각 부서에서 서로 데려가려고 난리에요. 그런데 막상 간절하게 원했던 기자가 되면 노력을 안 하고 편한 것만 추구하는데, 인생 공부는 꾸준히 해야 합니다.

 

나이가 어리다고, 경험이 없다고 두 손 놓고 있으면 안 돼요. 독서든 사람을 많이 만나든 간접체험을 통해 할 수 있는 경험을 앞당겨야 합니다. 멀티미디어가 요구되는 시대에 모든 분야를 접합시키려면 공부를 해야 해요. 예전에는 ‘무조건 현장에 가라’ 주의였지만 지금은 더 과학적이고 치밀해졌어요. 만약 목을 매달아 죽은 사람이 있다고 합시다.

 

이 사건이 타살인지 자살인지를 분별하기 위해 사건 현장에 가는 것은 차도 밀릴뿐더러 도착하고 나면 사건 현장이 다 처리되어 있을 겁니다. 그럴 때는 목매달아 죽은 사람은 혀가 나오니, 과학적인 지식 등 지혜롭게 다양한 방법을 동원해 사건에 접근하는 방법이 있다는 것도 알면 좋겠죠. 항상 피해자와 가해자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넓은 마음, 노력과 인내, 기자라면 이 단어들을 꼭 기억하시고 실천하십시오.” 


 마주할수록 단단해지는 인연

 

연합통신으로 불렸던 지금의 연합뉴스는 뉴스 도매상이다. 타 언론사에 보도 소스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언론 중의 언론이라고 부를 수 있다. 한국의 유일무이한 국가기간통신사로 가장 빠르고 정확한 뉴스를 전하는 연합뉴스의 주주는 중앙지와 지방지, 신문·방송 사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아우는 기자로 연합뉴스에 입문해 경영인이 된 보기 드문 케이스입니다. 저는 어디 가서도  자신 있게 유 전무야말로 언론계의 대부라고 말하고 다녀요.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 붕괴, 지존파 연쇄살인, 동대문구 화재폭발사건, 마포 도시가스 사건, 5공비리수사 등 유독 굵직한 사건을 많이 다루면서 깊으면서도 폭넓은 안목을 갖추었고, 기자로서 취재력과 필력까지 겸비한 실력파죠” 마치 자녀를 일류대학에 보낸 부모처럼 신이 나서 유 전무를 칭찬하던 발행인이 말을 이었다. 


“대한뉴스를 인수할 때 상황이 많이 어려웠는데, 아우가 빚을 내서 5,000만 원을 빌려주더군요. 덕분에 고비를 잘 넘길 수 있었어요.” 지금도 그렇지만 그런 거금을, 그것도 일간지도 중앙지도 3사 방송사의 기자도 아닌 전문지 기자에게 어떻게 중앙지의 간사장이 돈을 빌려 줄 수 있었을까. 경찰이든 검찰이든 기자든 서울 경찰청과 검찰청 출입은 누구나 꿈꾸는 선망의 대상이었다. 당시 관례가 이곳을 거쳐야 사회부 부장이 될 수 있었던 탓에 막강한 영향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기자는 어떤 이유에서 거금을 빌려주었는지 유 전무에게 물었다.


“형님과 오래 봐왔던 사이니 믿고 빌려드린 겁니다. 형님은 사업을 벌이고 장사하는 사람이 아니에요. 그동안 어떻게 살아왔는지 알고 있으니 믿음이 있었죠. 그래서 아내도 모르게 융자를 빼서 돈을 빌려주었습니다. 그런데 한편으로 의도와 상관없이 잘못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했었어요. 대한뉴스가 황금알을 낳는 닭은 아니었으니까요.

 

어느 정도의 위험은 부담했지만, 사람이 더 중요하니까요. 기준의 차이는 있겠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대한뉴스는 성공했다고 생각합니다. 내년이면 벌써 대한뉴스가 20주년을 맞는데 그동안 직원들 월급 한 번 밀린 적이 없잖아요. 저도 400명의 직원과 함께 일하는 경영인이지만 직원들이 모르는, 공유할 수도 없는 경영자의 애로사항은 있기 마련인데 그런 점에서 형님이 참 존경스럽습니다.”


유 전무가 말을 이었다. “사실 형님은 이 세상에서 만나기 흔치 않은 분이세요. 인생관이나 세계관이 남다른 측면이 있죠. 흔들리지 않게 원칙을 고수하면서도, 상대로 하여금 삶의 여유를 느끼게끔 융통성을 발휘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잖아요. 그렇다고 궁색하거나 세속적이지도 않고 모든 사람이 형님처럼 살 수 는 없겠지만, 존재만으로도 주변이 행복 바이러스로 기분 좋게 물들 수 있는 멋진 분입니다.”


 타인에게 마음 기울이기

 

발행인을 아는 것 자체로 인생이 윤택해졌다는 유 전무는 발행인이 도리와 처세에 대해서 배울 수 있는 교과서 같은 분이라는 말을 빼놓지 않았다.


“글쎄요. 뽐내거나 자신을 위대하게 보이려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성실하게 살아가는 자세가 중요한 것 같아요. 훌륭한 듯 보이려고 애쓰는 것은 오히려 무기력한 사람이라는 것을 입증하는 것과 같죠. 특히 형님은 훨씬 나이가 어린 사람에게도 먼저 가서 인사를 하세요. 인사는 마음의 문을 여는 노크라고 생각하는데, 상쾌하고 기분 좋게 인사하는 모습에서 인간성이 느껴지더라고요. 제가 너무 소소한가요.”


멋쩍게 웃는 유 전무를 바라보던 발행인이 말했다. “마음을 멀리 쓴 만큼 내 마음이 넓어지더라고요. 사실 아우처럼 저를 너무 과대평가해주는 분들이 있어서 자세를 바로잡을 때가 많아요. 언론의 대부가 형님이라고 부르는데 내가 잘못하면 누가되지 않겠습니까. 저도 사람인지라 힘들고 지칠 때가 있는데 그럴 때마다 빈말인지는 모르겠지만 ‘형님 잘 할 수 있습니다.’ ‘존경합니다.’하는 소리를 들으면 늘 조심하게 되더라고요.

 

사실 언론인이라고 다 같은 언론인은 아닙니다. 아우는 정통 언론인이고 전 부족한 게 많아요. 아우를 보면서 항상 간접적으로 배우는 게 많습니다. 아우는 일반 공무원으로 들어와서 장관이 된 거고, 경찰로 따지면 순경에서 청장이 된 것과 마찬가지에요. 그만큼 얼마나 남보다 노력하고 공부했겠습니까.

 

언론에 종사하면서 자유언론의 수호를 위해 열정을 쏟은 장한 기록들은 현직 언론인은 물론이고 앞으로 언론에 종사하기를 희망하는 후진들에게 강한 일깨움이 될거라 확신합니다. 격변하는 현대사를 취재하고 기록하는 과정에서 쏟아낸 그의 열정이 또 올곧은 기개와 소신이 이제와 얘기하지만 알 권리가 있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참 고맙습니다.”


우리는 살면서 무수한 난관을 만난다. 극심한 생존경쟁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몸을 내던져야 할 때도 있고, 자신을 끊임없이 채찍질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누군가는 이런 각박한 세상에도 삶을 성공으로 이끌어주는 ‘행복의 법칙’이 있다고 말한다. 행복한 삶을 살았던 혹은 현재 행복한 삶을 사는 사람에게 행복한 지혜를 빌리는 것이 그것이다.


힘에 부치는 고단한 삶 속에서도 애정 어린 관심으로 타인에게 마음을 기울여 행복한 지혜를 나누는 발행인. 사라져가는 것들을 찾아내고, 잊혀 가는 것들을 끄집어내 계속해서 감동의 판을 만들어 내는 발행인의 다음 인연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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