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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일반

한국YWCA연합회

우리나라 여성운동의 출발점

[인터넷 대한뉴스]

 

 

 

우리나라 근현대사 중 100년 가까이 활동을 하면서 우리나라의 역사와 사회, 문화 등 다방면에 걸쳐 개혁하고 발전시켜온 단체가 있다. 바로 우리에게 너무나 친숙한 이름, 한국YWCA연합회다. 올해로 92주년을 맞이하는 한국YWCA연합회는 어린이부터, 청소년, 대학생, 청년, 성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회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한국YWCA연합회의 지나온 발자취와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일제시대인 1922년 4월 20일 3인의 조선 여성 주도로 조선 여성의 인간다운 삶을 회복하고, 불우한 상황에 처한 온 국민과 특히 여성들의 각성을 촉구하기 위해 기독신앙에 입각한 조선여자기독교청년회연합회가 조직되면서 한국YWCA연합회의 역사가 시작된다.

조선 여성이 여성단체를 설립한 것은 우리나라 여성운동의 출발점으로 당시 봉건사회의 가부장적 억압과 일제 식민에 의한 억압이라는 다중적 고통으로부터 여성들을 해방시키겠다는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선언이었다고 볼 수 있다.

해방 이전까지 한국YWCA연합회의 활동을 크게 나눠보자면, 농촌계몽운동과 문맹퇴치운동, 조혼 및 공창폐지운동 등을 주도하게 된다. 1931년 당시 수원 샘골의 최용신을 YWCA교사로 파견하며 전개하였던 농촌계몽운동과 문맹퇴치운동은 지역운동과 여성리더십 개발 운동의 효시가 되었다. 조혼 및 공창폐지운동으로는 당시 어린 소녀들이 결혼을 구실로 엄청난 노동력 착취를 막기 위해 노력했으며, 1925년에 사회문제부를 설치하여 축첩․조혼문제 및 공창폐지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운동을 전개시켜 나간다. 이러한 노력으로 해방 이후 ‘공창제도등 폐지령’에 의해 폐지되었다.

이후 혼인 신고운동과 축첩 반대운동을 전개해, 당시 여자가 천대받는 것이 당연시되던 사회풍토 속에 버림받거나 고통 받는 여성들을 보호하기 위해 노력했는데, 이 운동은 세계YWCA와 유엔 여성지위향상위원회에도 보고되었다. 또한, 첩을 둔 국회의원들을 확인한 이후에 여성단체와 교회와 연합하여 “축첩자를 뽑지 말자”는 캠페인을 명동에서 벌였는데, 이는 당시 선거와 연결시킨 한국여성운동의 한 사건으로 1995년 윤락행위방지법, 2004년 성매매특별법 등의 모태가 되었다.

 

해방 전의 한국YWCA연합회 활동이 순탄한 건 아니었다. 창립 2년 후 세계YWCA에 가입했지만, 일본의 탄압으로 1941년부터 해방될 때까지 잠정적인 휴회에 들어간 적도 있다. 이러한 시련의 시기를 이겨낸 한국YWCA연합회는 1990년대까지 가족법 개정운동과 여성노동자인권운동, 소비자운동, 바른 삶 실천운동, 평화통일운동, 한 하늘 한 땅 운동 등을 전개하면서 활동의 폭을 넓혀 사회 전반으로 파고들게 된다. 한국YWCA연합회는 1953년부터 가족법 개정운동을 전개하면서 1957년 동성동본 불혼을 이끌어냈으나 관습을 깨는 수준에 머물렀다. 이후 여성단체들과 지속적인 운동을 펼친 결과, 2005년 호주제 폐지가 확정되면서 50년 동안 노력해 온 결실을 맺게 된다.

7, 80년대 경제발전으로 인해 여성노동자가 급격히 증가한 것만큼이나 차별 또한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이 시기 한국YWCA연합회는 차별받는 여성들을 위해 결혼 각서 폐지운동, 여성근로자 인권․복지 개선운동, 무료 직업안내소 운영, 탁아소 운영 등을 통해 여성들의 차별과 고통을 줄이고자 노력했다. 특히, 가사노동을 직업으로 인정받으면서 여성의 사회적 위치를 높였고, 남성들의 직업영역의 기술을 여성들에게 훈련시키는 데 기여하기도 했다. 이러한 한국YWCA연합회의 여성 직업훈련은 이후 종합적이고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여성경제활동 지원으로 이어졌다.

1970년대 이후 모든 여성단체들의 공통된 특징이 소비자운동을 전개하는 것으로서 한국YWCA연합회도 소비자운동을 환경운동과 연결하여 전개하였다. 환경오염 기업제품 사용 안하기, 환경오염 폐기물 수거, 음식물과 쓰레기종량제 운동, 합성세제 정량사용 캠페인 등을 전개하고, 아나바다 운동을 최초로 전개하면서 모든 국민들이 손쉽게 환경운동에 참여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바른 삶 실천 운동은 1990년대 사회 전반에 걸친 도덕적 해이와 공동체 해체를 극복하고자 전개된 생활운동으로, 남을 먼저 배려하는 공동체 정신을 회복하기 위한 기도운동과 바른 결혼문화 이루기 운동을 펼쳤다. 양성평등적인 결혼예식 갖기 등을 제시하면서 우리 사회에 정착하는 데에 힘써왔다.

평화통일운동은 1980년대부터 이어져 온 운동으로, 하루 속히 북한YWCA를 재건하자는 마음으로, 어린이 평화통일 교재 발간과 교육, 북한 어린이 분유보내기 운동, 탈북주민 지원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특히, 2010년 한국YWCA연합회가 제안한 북한 어린이와 여성의 인권 증진을 위한 결의문을 세계YWCA가 채택한 바 있다.

한 하늘 한 땅 운동은 최근 다문화 가정의 증가로 결혼이민여성의 인권보호 및 정착지원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한글과 한국문화를 가르치는 것은 물론 가정폭력, 성폭력으로부터 보호하도록 지원하고, 직종개발 및 훈련을 통해 경제적 자립을 지원하고 있다. 특히, 결혼이민여성들의 소그룹 공동체 활동을 지원을 통해 자립을 유도하고, 다문화청소년 교육과 지원활동은 다문화 시대를 대비하고 있다.

최근 들어 한국YWCA연합회는 청(소)년 회원의 협의체 운영을 통해 전체 YWCA 의사결정에 청소년 대표가 참여하도록 하고 있으며, 가치지향의 소그룹 공동체 운동인 YWCA생명사랑공동체운동(민들레 운동)을 통해 여성들이 지역사회를 변화시키고, 먹을거리, 교육, 환경, 주민자치와 참여, 성인지 예산, 돌봄노동의 사회화, 생활협동운동 등 지역사회에서의 여성 리더십을 성장시켜 나가고 있다.

 

이렇게 우리 사회 변화를 주도해 온 한국YWCA연합회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있다. 바로 故 조아라 회장과 차경애 회장이 그 주역이다.

 

조 회장은 광주YWCA 창설에 깊이 관여한 스승과의 인연으로 자연스럽게 한국YWCA연합회와 연을 맺게 된다. 기독교 장로의 딸로 태어난 조 회장은 1922년 창립 후 광주YWCA에서 기독교 신앙 안에서 여성운동을 꿈꾸었지만 1938년 폐쇄될 때 옥고를 치루는 등 험난한 삶을 살다가 1945년 해방되던 해, 한국YWCA연합회에서의 본격적인 활동이 시작된다.

해방 후 광주 YWCA의 재건으로 광주 YWCA운동은 여성의 애국운동, 기독교 생활화 운동, 여성 자질향상 교육운동, 민주정치 안정을 위한 여성의 참여운동 등을 펼쳐나가면서, 광주 YWCA 여성들의 활동 원동력이 되었다. 조 회장이 활동한 광주YWCA는 지방 최초 가정법률상담소 개소, 신용협동조합 결성, 농촌사업 그리고 소비자운동으로 여성들의 능동적인 참여를 유도해 헌신적인 봉사능력을 발휘하게 하는 한편, 호남여숙과 성빈여사 설립, 별빛학교 개설, 계명여사 설립 등 소외된 이웃의 참된 친구로 다가선다.

회장 재임 때, 조 회장은 긴급조치 위반 수감자들을 위한 목요기도회를 시발점으로 민중기독운동을 발전시켜 나가는 매개체 역할을 하고, 광주민주화항쟁의 소용돌이에서 광주로 되돌아가 수습대책위원회에 참여하여 6개월간의 옥고를 치기도 했다. 조 회장은 1992년 남북여성토론회에 한국 여성계 대표로 참석하는 등 이후에도 봉사에 몸 바쳐오다가 2003년 소천 후 국민훈장 무궁화장이 추서되었다.

 

조 회장이 한국YWCA연합회의 초기부터 일해온 대표적인 인물이라면, 차경애 회장은 현재 한국YWCA연합회를 이끌어가는 인물이다. 차 회장은 1967년부터 실무자로 30년, 자원봉사자로 15년 이상 봉사하고 있다. 차 회장은 한국YWCA연합회 간사로 시작하여 줄곧 공보출판위원회, 프로그램부, 기획위원회, 지방위원회, 직업개발위원회 부장 등 실무자로 일하다 실무자로서는 처음 회장에 선출되었다.

회장 취임 후 청소년리더십 개발을 중점운동으로 정하고 청소년 활동을 적극적으로 장려해 온 차 회장은 ‘키다리학교’(청소년 토요대안학교), 다문화 청소년, 북한이탈 청소년 프로그램, 청소년 금융리더십 함양 프로그램 그리고 학교폭력문제 에도 깊은 관심을 갖고 효과적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또한, 창립 90주년 행사가 단순한 행사에 그치지 않고, 앞으로 100주년을 맞이하는 평화순례의 길이 되길 바라며, ‘핵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그리스도연대’ 활동에 여러 기독교단체가 참여, 핵에 대한 위험을 회원이나 지도자에게 알리고 대안운동으로 에너지 운동을 펼 것을 촉구하는 등 연대활동도 활발히 이어지고 있다.

한국YWCA연합회는 90주년 사업으로 한국여성지도자상을 수여, 영화 ‘사랑을 말하다’ 제작, 100명의 멘토와 멘티를 일대일로 연결하는 ‘숲 프로젝트’, 어린이들과 함께 나무심기운동, 통일을 위한 여성 리더십 키우기 사업, 여성폭력을 주제로 30여 개국이 참가한 국제지도력훈련(ITI), 대추운동(대잇기추진운동) 등을 추진하고 있다.

차 회장은 한국YWCA연합회에서 일할 수 있었던 것은 종교 덕분에 다른 사람을 섬기는 일에 헌신할 수 있었고, 열심히 일하는 자원봉사자들에 대한 감사의 말도 잊지 않았다. 또한, 한국YWCA연합회가 기독교 기관으로서 사회를 변화시키고 지역사회를 변화시키는 데 앞장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제는 통일을 위한 사업에 기독교 기관과 교회들이 협력할 것을 당부하며, 자신도 은퇴 후 통일을 위한 일에 헌신할 것이라고 계획을 밝혔다.

 

 

 

 

 

본 기사의 전문은 대한뉴스 2014년 5월호(www.daehannews.kr)에 자세히 나와 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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