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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문화 일반

[음악 기행]가슴으로 듣는 음악을 만든 루트비히 판 베토벤

   
▲ 베토벤 초상화

베토벤이 이미 청력을 완전히 상실한 시기에 완성된‘합창’교향곡은 1824년 5월 7일 빈의 케른트너 극장에서 베토벤의 지휘로 초연되었다. 연주가 끝나고 지휘대에서 관객을 등지고 서 있던 베토벤은 청중들의 열광적인 박수소리를 듣지 못해 인사를 못하고 그대로 서있었다. 그는 누군가 자신에게 알려주길 바랄 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옆에 있던 알토 가수 웅가르가 팔을 잡아 돌아보게 해주었다. 그가 돌아보자, 청력상실의 사실을 이미 알고 있는 청중들은 감격하여 눈물을 흘리며 더욱 열렬한 갈채를 보냈다고 한다. 연주가 끝나고 베토벤은“위대한 음악을 세상이 다 들었는데 나만 못 들었네.”이렇게 말을 했다. 들리지 않지만 예전 소리를 기억해내며 가슴으로 명곡을 작곡한 베토벤을 만나보자.

베토벤의 어린시절
  베토벤은 1770년 독일의 본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성인이 된 이후로는 거의 오스트리아 빈에서 살았다. 베토벤의 첫 음악 교사는 아버지 요한이었는데 베토벤의 음악적 재능은 어릴 때부터 두각을 나타내었고, 9살 나이에 공연을 할 수 있을 정도였다. 당시 음악신동인 모차르트의 명성을 알고 있던 아버지 요한은 모차르트처럼 아들을 신동으로 알리기 위해 나이까지 2살을 속여 가며 이를 이용해 돈을 벌려 했으나 큰 효과를 보지 못했다. 그렇지만 이 때문에 베토벤은 자신의 실제 나이를 2살 적게 알고 살았고 훨씬 후에야 자신의 실제 나이를 알게 되었다.

  흥행적 성공은 거두지 못했지만 아버지의 열성으로 그의 피아노 기술은 날로 발전했다. 8세 때부터 에덴, 파이퍼 등의 가르침을 받고, 11세 때 뛰어난 교사인 네페에게서 바하의 작품을 연구한 것이 그의 후기 음악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13세에 작품을 발표하기에 이르렀고, 궁정 악단에 근무하게 되었다.

 

   
▲ 오스트리아 바덴에 위치한 합창교향곡을 작곡한 집

모차르트를 만나기 위해 빈으로 여행을 떠난 베토벤
  1787년, 17살의 베토벤은 모차르트를 만나기 위해 오스트리아의 수도인 빈으로 여행을 떠났다. 그는 이미 본에서는 이름을 떨치고 있었지만 유명한 음악가들이 살고 있는 빈에서 좋은 음악을 접하고 싶은 마음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베토벤은 모차르트를 만나 즉흥곡을 연주했지만 모차르트는 외워온 곡이라며 탐탁치 않게 생각을 했다. 기분이 나빠진 베토벤은 모차르트에게 주제를 요청해 다시 즉흥연주를 했다. 그 즉흥곡을 듣고, 모차르트는 친구들이 모인 옆방으로 뛰어가 베토벤을 가리키며 "저 사내를 잘 지켜보게, 오래지 않아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고야 말 존재가 나타났다네." 이렇게 외쳤다.

하이든의 제자 베토벤                     
  베토벤은 모차르트에게 음악을 배우고 싶었지만 일찍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그럴 수가 없었다. 그래서 모차르트의 스승이기도 했던 하이든에게 작곡을 배웠다. 하이든이 런던에서 본으로 여행을 와서 잠시 쉬고 있을 때 그는 하이든을 찾아가서 재능을 인정받았고, 얼마 후 빈으로 다시 건너가 하이든에게 수많은 레슨을 받았으나 하이든에게는 아주 말 안 듣는 골치 아픈 제자였다. 숙제를 잘 해오지 않던 베토벤은 어느 날 곡을 제출했는데 하이든의 마음에 들었던 것이다. 그래서 하이든은 베토벤의 스승에게 편지를 보내게 되었다. 그런데‘그 곡은 내가 가르칠 때 만든 곡이오’라고 답장이 와 하이든이 베토벤을 내쫓았다는 재미있는 일화도 전해진다.
  그 후 베토벤은 당시 빈에서 뛰어난 이론가로 통하던 베르거에게 가르침을 받고, 모차르트의 연적으로 알려진 살리에리에게 성악곡 작곡을 배웠다.

연주여행을 다니며 인기를 누렸으나 청력상실이 시작된 베토벤
  1796년 26살의 베토벤은 모차르트의 연주 여행처럼 중부 유럽의 문화 중심지를 순회하였다. 프라하, 드레스덴, 라이프치히, 베를린을 방문했고 작곡과 공연 활동으로 환영받았다. 그는 프라하에서 가장 오래 머물렀는데 리히노브스키 가문의 인맥 덕분에 그는 도시에 오기도 전에 이미 명성이 높았다. 베를린에서는 첼로 소나타를 작곡하여 첼로를 연주하는 음악 애호가인 왕 프리드리히 빌헬름 2세에게 헌정하였다. 그 보답으로 왕은 베토벤에게 금화가 가득 든 코담뱃갑을 주었다. 이렇게 그가 연주 여행으로 명성도 얻었지만 돈도 많이 벌었다.

  베토벤은 1797년, 27세 이후 거의 빈에서 살았다. 그는 여름과 가을마다 심각한 질병에 시달리며 자신의 청력에 문제가 있음을 알게 되었지만 작곡과 연주를 계속하였다. 하지만 다음해 다시 프라하로 여행할 때, 청력이 점차 약해지면서 결국 연주 여행 자체를 포기하게 되었다.

베토벤의 사랑
  베토벤은 일생 동안 결혼생활을 하지 않았지만 수많은 여인과 연모의 정을 키웠다. 베토벤이 죽은 뒤 유품 속에서‘불멸의 연인에게’라고 적힌 연애편지 3통이 나왔다.‘불멸의 연인’이 누구일까에 대해서는 추측이 난무해 영화까지 만들어졌다. 프랑스혁명 직후‘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시대정신이 유럽을 휩쓸 무렵, 베토벤은 평민 출신임에도 귀족들과 대등한 관계를 맺었다. 그러나 결정적 순간에 귀족인 여인들은 그에게 등을 돌렸다.

  또한 베토벤은 자신에게 적극적으로 구애하는 여성들에 대해서는 뚜렷한 이유 없이 거부하기도 했다. 결혼까지는 못했지만 가장 사랑했던 여인은 요제피네였다. 그녀는 베토벤과 1799년 빈에서 처음 만났으나 어머니에 의해서 26세 연상의 다임 백작과 결혼하게 되었다. 결혼생활은 행복하지 못했고 베토벤은 계속 요제피네 근처에 머물면서 음악 수업을 했다. 그녀의 남편이 죽은 사실을 알고 베토벤이 다시 구애했지만 그녀는 그가 좋은 아빠가 되지 못할 것 같다며 다시 거절했다. 그 후 요제피네는 42세의 젊은 나이에 죽고 말았다. 그녀가 죽고 나자 사람들은 베토벤의 사랑을 받아들였다면 행복했을 것이라 말하며 그의 불멸의 연인이라고 이야기했다고 한다.

청력을 완전히 상실하게 된 베토벤

   
▲ 독일 본의 우체국 광장에 위치한 베토벤 동상


  그는 심각한 귀울음 증세를 보여 음악을 감지하기 어렵게 되었으며, 대화도 피하게 되었다. 1801년에 베토벤은 친구들에게 편지를 보내어 자신의 증상을 설명하고, 이로 인해 음악 활동과 사회 생활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알렸다. 시간이 지나면서 청력 상실은 심해졌다. 왜 청력을 잃었는지는 근래에 밝혀졌는데 베토벤이 죽은 다음날 한 어린 음악가가 그의 머리카락을 잘라 가져갔다고 한다. 그는 베토벤의 머리카락을 죽을 때까지 잘 보관했으며 대대로 가보로 물려주었다. 2차 세계대전 때 이 물품은 행방이 묘연해졌으나 이것이 1994년 런던 소더비 경매소에서 세상에 공개되었다. 아르곤 국립연구소에서 베토벤의 머리카락을 분석한 결과 일반인의 100배가 넘는 납수치가 나타나 베토벤이 평생 겪은 육체적 고통과 청력상실의 직접적인 원인이 납중독임이 밝혀졌다.

대표적인 작품 교향곡 제3번 ‘영웅’
  베토벤은 처음에 나폴레옹이야말로 자유정신, 인간 해방의 기수로서 세기의 영웅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곡의 표제를‘나폴레옹’이라고 달았으나 그가 전쟁에 너무나 치중을 하자 실망한 나머지 나중에‘영웅’으로 표제를 바꾸었다.
  이 작품에서는 그의 감정을 나타내는 독창적이고도 강한 개성의 힘과 균형 있는 양식으로 진실한 도덕성을 표현했으며, 베토벤도 마지막 교향곡 제9번‘합창’이 완성될 때까지는 이 곡이 가장 좋은 작품인 것으로 말하고 있었다.

교향곡 제5번 ‘운명’
  베토벤의 교향곡 중 최고의 걸작으로 사랑을 받는 작품이다. 제목은 도입부분의 유명한‘빠바바밤’하는 이 리듬을 베토벤이 제자에게‘운명은 이렇게 문을 두드리며 찾아온다.’라고 말한 것 때문에 만들어졌다. 1803년부터 1808년 사이에 완성되어 로브코비쯔 후작과 라주모프스키 백작에게 헌정되었으며, 1808년 12월 22일에 자신의 지휘로 빈극장에서‘전원 교향곡’,‘합창 환상곡’과 더불어 초연되었다.

교향곡 제9번 ‘합창’
  대관현악, 4성의 독창, 4성의 합창을 위해 작곡되었으며 베토벤은 1793년 고향인 본에 있을 때부터 이미 이 곡의 작품을 구상해 왔는데, 거의 30여 년에 걸쳐 완성시켜 1824년 초연했다.

 

   
▲ 빈 중앙묘지에 위치한 베토벤 무덤

거장 베토벤의 죽음
  베토벤은 1827년 3월 26일에 세상을 떠났다. 불과 5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베토벤은 생의 마지막을 병마와 싸우며 보냈다. 그러면서도 베토벤은 그의 후기에 속한 위대한 작품들을 바로 이 시기에 완성하였다. 베토벤의 장례식은 1827년 3월 29일 알저그룬트의 교구교회에서 거행되었고 이어 빈의 중앙묘지에 안장되었다. 장례 행렬이 지나갈 때에 2만의 시민들이 연도에 나와 베토벤의 마지막 가는 길을 지켜보았다.

기자 뒷말
  천재는 없다. 모든 것은 노력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닐까? 귀가 들리지 않기 시작했을 때 베토벤은 자살을 결심하고 유서까지 썼다. 그러나 아침에 자신을 깨우는 새소리를 들었다. 가슴 속의 귀로 들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베토벤은 이 시련을 이겨내기로 마음을 먹고 수많은 명곡들을 탄생시켰다. 그리고 그는 음악의 신이라는 최고의 찬사를 선물로 받았다. 그의 음악에서는 많은 고통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꼭 빠지지 않고 함께 나오는 것은 희망을 느낄 수 있는 기쁨의 소리이다. 지금 이 시간, 기자는 그의 음악을 들으며 내가 평범하게 살 수 있음에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