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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위안부 협상 24년만에 극적 타결

일본 10억엔 출연, 위안부 지원재단 설립

12.jpg▲ 일본 기시다 후미오 외무상이 지난달 28일 서울 종로구 도렴동 외교 청사에서 열린 공동기자회견에서 일본군 위안부 협상 최종 타결을 발표한 뒤 양국 국기를 향해 목례를 하는 동안 윤병세 외교장관(오른쪽)이 안내하고 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지난달 28일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마음으로부터의 사죄와 반성의 마음을 표시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지난 1991년 첫 증언이 나온 지 24년만에 타결됐다. 한일 양국은 일본 정부가 10억엔의 예산을 출연해 한국에 위안부 지원재단을 설립하고 위안부 할머니들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사업을 시행하기로 했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무상은 지난달 28일 서울 외교부 청사에서 열린 양국 외무장관 회담에서 이와 같은 내용으로 기나긴 협상을 매듭지었다. 외무장관 회담 후 양국 외무장관은 공동기자회견을 열고 회담 결과를 발표했다. 

공동기자회견에서 기시다 외무상은 “아베 내각총리대신은 일본국 내각 총리대신으로서 많은 고통을 겪고 심신에 걸쳐 치유하기 어려운 상처를 입은 모든 분에 대한 마음으로부터의 사죄와 반성의 마음을 표명한다.”며, “위안부 문제는 당시 군의 관여하에 다수 여성의 명예와 존엄에 깊은 상처를 입힌 문제로써 이러한 관점에서 일본 정부는 책임을 통감한다.”고 밝히면서 일본 정부의 책임을 인정했다. 이어 “위안부는 여성 명예와 존엄에 깊은 상처”라며 “위안부 문제의 책임을 통감한다.”고 밝혔다. 일본 정부가 가토담화와 고노담화 등을 통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인정, 사죄와 반성의 뜻을 표명한 적은 있지만 일본 정부의 책임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하지만 양국은 논란이 일고 있는 소녀상 문제에 대해서는 “정부가 언급할 사안이 아니다.”라고 발표했다.

2.jpg▲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지난달 28일 일본군 위안부 문제협상 타결 직후 도쿄 총리관저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위안부 피해자 지원을 위한 위안부 지원재단에 일본 정부가 10억엔 규모의 예산을 출연하기로 한 것은 과거 ‘여성을 위한 아시아평화국민기금’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없애기 위해 양국이 타협한 방안으로 보인다. 과거 일본 정부는 ‘여성을 위한 아시아평화국민기금’을 설립해 위안부 피해자 지원에 나섰지만, 국내 위안부 관련단체가 법적 책임을 인정하지 않는 ‘인도적 지원’은 반대한다는 입장을 표명한 바 있다. 피해자 보상도 과거 일본 정부 예산에 의한 의료비 지원 등 인도적 조치에 국한됐으나 이번 합의안은 ‘피해자들의 명예와 존엄 회복 및 마음의 상처 치유금’등이 포함됐다는 점에서 진일보한 것으로 평가됐다. 다만, 구체적인 법적 책임이 명시되지 않아 일본이 인도적인 조치 및 도의적인 책임이라고 할 경우 또 다시 논란에 휩싸일 수 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1991년 8월 14일 故 김학순 할머니가 위안부 피해 사실을 처음으로 증언하면서 알려지기 시작했고, 같은 해 12월 김 할머니 등 위안부 피해자 3명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제소를 했다. 이듬해 1월 일본 가토 관방장관이 일본군이 관여한 사실을 공식 인정했고 1월 미야자와 일본 총리가 방한해 위안부 문제를 사죄했다. 1993년 3월 김영삼 당시 대통령은 철저한 진상규명을 촉구한 결과, 8월 ‘고노 관방장관 담화’가 발표됐다. 또, 1994년도 고교일본사 교과서에는 ‘위안부’내용이 기술됐으며, 8월 무라야마 당시 총리는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사죄 담화문을 발표했다.

하지만 1995년 7월 일본은 ‘여성을 위한 아시아평화국민기금’을 설립했지만 위안부 단체들은 보상금 성격의 기금 설립 반대성명을 발표했다. 특히, 1997년 1월부터 우익세력을 중심으로 교과서에 위안부 기술 삭제를 요구하는 위안부 부정 움직임이 강화된다. 그 결과 2001년 4월 새 교과서가 검정을 통과했고 2006년에는 일본 중학교 교과서 본문에서 위안부 기술이 삭제됐다. 2014년 일본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은 원고 패소 판결이 확정됐다. 하지만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은 지속돼 2007년 7월 미국 하원 본회의에서는 위안부 문제 책임 인정과 공식 사죄를 요구하는 결의안이 채택됐다. 2011년 8월 헌법재판소의 결정으로 정부는 일본에 위안부 배상청구권 관련 외교협의를 요청했다.
 
그러나 아베 정부는 위안부 문제를 부정하기 시작했다. 이후 2014년 1월, 2007년에 통과된 위안부 결의안(2007년) 준수 촉구안이 美 상·하원을 모두 통과하는 등 국제적 압박이 강화되자 아베 총리는 “아베 내각에서 고노 담화의 수정을 생각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이때부터 양국간 외교부 국장급 실무회담이 본격적으로 시작됐지만 일본 정부는 위안부를 부정하는 발언과 행동을 계속했고 그 때마다 국제사회의 압박이 이어졌다. 그러던 2015년 11월 현 정부 출범 이후 처음 열린 한일 정상회담을 계기로 급진전돼 이날 한일 외무장관 회담에서 극적인 타결을 보게 된 것이다.